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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8일 수원교구 묵상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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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욱현 신부님_복음: 루카 16,9-15: “세속의 재물로라도 친구를 사귀어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불의한 집사의 비유를 이어,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 그래서 재물이 없어질 때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하여라.”(9절) 주님은 재물을 무가치한 것으로 보지 않으신다. 오히려 재물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영원한 생명을 준비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말씀하신다. 사도 바오로는 분명히 말한다. “우리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으며,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1티모 6,7) 우리가 가진 재물, 재능, 시간은 본래 우리의 소유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선물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것을 관리자로서 사용해야지, 주인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가르친다: “네가 가진 것은 네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것이며, 너는 단지 관리인일 뿐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창고가 바로 네 창고다.”(Sermo 86) 우리가 나누지 않는 재물은 언젠가 사라질 것이지만, 사랑으로 나눈 재물은 영원한 삶으로 옮겨져 하늘의 보화가 된다(마태 6,20 참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친구”는 단순한 인간적 관계가 아니다. 가난한 사람들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우리가 그들에게 베풀 때, 실제로는 주님께 드리는 것이다(마태 25,40).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말한다. “네가 가진 것을 가난한 이에게 내어주어라. 그러면 그가 천국의 문 앞에서 네 친구가 되어 너를 맞이할 것이다.”(Homiliae in Matthaeum, Hom. XIX) 재물은 사라질 때가 오지만, 우리가 재물로 나눈 사랑은 우리를 영원한 거처로 인도하는 친구가 된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신다. “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다.”(13절) 재물은 본래 선물이지만, 그것이 우상이 될 때 우리는 재물의 주인이 아니라 오히려 그 노예가 된다. 교리서는 경고한다. “탐욕은 우상 숭배와 같다. 재물에 대한 끝없는 욕망은 하느님보다 피조물을 더 사랑하는 데서 비롯된다.”(2534-2536항 요약) 우리가 재물의 올바른 주인이 되는 길은 그것을 사랑이 지배하도록 놓아두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자선을 통해 재물을 다스릴 때, 비로소 우리는 자유로워진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재물의 본래 목적을 일깨워 준다. 재물은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고 영원한 생명을 준비하는 도구이다. 우리가 재물의 종이 되지 않고, 하느님의 자녀답게 재물의 주인이 되어 사용할 때, 그것은 영원한 보화를 준비하는 길이 된다. 나눔 속에서 얻는 참된 자유, 그리고 가난한 이 안에서 만나는 그리스도야말로 우리가 섬겨야 할 한 분 주님을 닮아가는 길이다.
전삼용 신부님_내가 가진 무엇은 그저 ‘운’ 때문입니다 베토벤에게는 크리스토프라는 동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투기에 열중하여 대단한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모은 돈으로 땅을 사재기하여 자칭 ‘토지 소유자’라 칭했습니다. 언젠가 베토벤이 돈에 쪼들려 견디다 못해 동생에게 통사정했습니다. 얼마 후에 동생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답장이 왔습니다. “지금은 매우 살기 어려운 세상이며 이때를 이겨 나가려면 누구나 있는 힘을 다해 일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형님이 선택한 직업은 딱하게도 죽기에는 부족하고 살기에는 더욱 모자라는 수입밖에 안됩니다. 따라서 형님이 지금과 같은 딱한 처지에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형님 자신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저는 형님을 도와 드릴 수가 없습니다. 당신의 동생, 토지 소유자 크리스토퍼 올림.” 이런 답장을 받자 분을 못 참은 베토벤은 단숨에 다음과 같이 한 줄짜리 편지를 써 보냈습니다. “네 돈은 필요 없다. 네 설교는 더욱 필요 없다. 두뇌의 소유자 루드비히.” 여러 해 동안 일본 납세액 1위를 달렸던 거부 사이토 히토리는 중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지만 일본 최고 부자이자 성공한 사업가로서 언론에 얼굴 등 자세한 신상이 공개되지 않아 ‘괴짜 부자’, ‘별난 사업가’ 등으로도 불립니다. 그에게 그토록 많은 돈을 번 이유를 물으면 그는 언제나 이렇게 대답합니다.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겸손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재물은 ‘운’ 때문에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다만 그 재물 운이 자신에게 오도록 받아들일 자세로 살 뿐이라고 말합니다. 열심히 일하면 재산을 많이 모을 수 있을까요?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운 좋은 사람이 부지런한 사람을 이깁니다!” 소유는 운 때문입니다. 운 좋으면 받고 운 없으면 못 받고, 운 좋으면 살고 운 나쁘면 죽는 게 인생입니다. 인간은 실제로 자신의 능력으로는 아무 것도 소유할 수 없습니다. 생명도 단 1초도 더 늘릴 수 없고, 머리카락 단 한 개도 더 나게 할 수 없습니다. 죽을 때 무엇을 소유할 수 있겠습니까? 생명까지도 받은 것이기 때문에 그 생명을 다시 찾아가시면 그 사람은 자신이 소유했다고 여기는 모든 것을 놓고 떠나야합니다. 가져갈 수 없으니 자신의 소유가 아닌 것입니다. 만약 베토벤의 동생이 이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그것으로 형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동생은 투기로 번 돈이 자신의 노력으로 합당히 벌었기에 자신이 당연히 소유해야 하고 그런 노력을 하지 않은 형은 가난한 것이 당연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렇게 가장 위대한 음악가인 형을 잃었습니다. 무언가를 소유했다고 여기는 사람은 그것이 자신의 것이라 여겨서 남에게 주기가 아깝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의롭지 않다고 여기면 쉽게 줄 수 있습니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사귀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재물을 불의하게 여겨야 나누어줄 수 있고 친구를 사귈 수 있다는 뜻입니다. 불의하다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합당하지 않은데 가지고 있으면 의롭지 못한 것입니다. 운이 좋아 가진 것들이 불의한 재물인 것입니다. 모든 것은 주님 것이기에 우리 소유는 다 불의한 재물입니다. 주님 것을 내가 소유하기 때문입니다. 김제동 씨가 못생긴 사람이 없으면 잘 생긴 사람도 있을 수 없다면서 조인성 씨 앞에서 그를 면박 주는 강의는 참으로 재미있습니다. 그 얼굴과 그 키와 그 모든 외모를 자신이 만들었느냐는 것입니다. 자신이 만든 것도 아닌데 왜 그런 사람들이 운이 좋아 더 받은 것 때문에 사람들에게 더 인정을 받아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운 나쁜 것이 그 사람 탓은 아닙니다. 복권에 당첨되지 못했다고 그것을 그 사람 탓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내가 북한에 태어나지 않은 것이 내가 잘나서 그런 것일까요? 내가 굶어 죽는 곳이나 전쟁의 고통 속에 태어나지 않은 것이 나의 노력 때문일까요? 다 운이 좋아서 그럴 뿐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굶어 죽어갈 때 도와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북한 주민들이 수없이 굶어 죽어갈 때 그것을 지켜보고만 있어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과연 우리를 친구라 여겨줄 수 있을까요? 참다운 나눔은 나의 것이 합당해서가 아니라 그저 운으로 주어진 불의한 재물임을 알 때 시작됩니다.
이병우 신부님_"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루카16,9ㄴ) '재물의 올바른 사용인 자선!' 오늘 복음(루카16,9ㄴ-15)은 세 단락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곧 '재물을 올바르게 이용하여라.', '하느님이냐, 재물이냐',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들의 참모습'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반복해서 언급되고 있는 단어가 '재물'입니다. 오늘 복음은 '재물의 올바른 사용인 자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 그래서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하여라."(루카16,9) 예수님의 이 말씀이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풀라'는 말씀으로... '내가 살아 생전에 자선을 베풀면, 자선의 혜택을 받은 이들이 훗날 나를 기억해 줄 것'이라는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루카16,13) 재물은 주인이 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재물은 하느님께 속해 있는 종이라는 말씀입니다. 재물이 주인이 되는 것, 그래서 하느님의 자리에 재물이 자리잡고 있는 것, 이것이 곧 '우상숭배'입니다. 바리사이들은 돈과 재물을 하느님께서 주시는 복으로 생각했고, 재물의 소유는 그가 의롭기 때문에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바리사이들은 자신들의 의로움을 드러내기 위해서 부지런히 돈을 추구했고, 그렇게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겼던 것입니다. '재물은 주인이 아닙니다.' '재물은 하느님의 종이며, 가난한 이들을 통해서, 곧 자선을 통해서 하느님께 되돌려져야만 하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자선에는 '물질적인 자선'이 있고, '영적인 자선'이 있습니다. 영적인 자선은 '영적인 것을 나누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너를 위해 바치는 기도'입니다. 죽은 이들을 기억하는 '위령성월'입니다. 죽은 이들의 구원을 위해 열심히 기도합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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