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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하느님 중심의 삶 “돈이 아니라, 하느님이 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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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8.연중 제31주간 토요일
로마16,3-9.16.22-27 루카16,9ㄴ-15
하느님 중심의 삶 “돈이 아니라, 하느님이 사람이 먼저다”
"저의 임금이신 하느님, 영영세세 당신 이름을 찬미하나이다."(시편145,1)
오늘 시편 화답송 후렴입니다. 이런저런 나눔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얼마나 부지런한 레오교황인지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 못지 않게 근면 성실한 말그대로 하느님의 사람, 교회의 사람입니다. 어제 교황청에서 하루만 만남시 주신 중심 메시지만도 무렷 다섯입니다.
“사업가들이나 전달자들은 공동선을 추구해야 한다.” “우리는 중독을 막기 위해 온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아버지의 뜻을 찾아야 한다.” “다스림에서 침체를 피하고, 형제들에게 희망을 불러일으키라.” “AI(인공지능)은 창조주 하느님의 의도를 반영해야 한다.”
모두가 시의적절한 조언으로 하느님 중심의 삶에 기반을 두라는 말씀들입니다. 어제 만난 피정중인 미카엘라 자매의 삶도 감동적이었습니다. 20대 말 중국땅 연길에서 30대 말 전남 함평의 알콜중독 형제에게 시집와서 4년 방통대도 졸업하고 산전수전 다 겪으며 가족을 다 살리고 성가정을 이루어 사는 자수성가형 주님의 용사같은, “누가 하느님과 같으랴”이름 뜻에 손색없는, 하느님 중심의 영적승리의 삶을 살았던 미카엘라 자매였습니다. “사랑밖에 길이 없었네” 책을 독료했다며 두 시를 곡을 넣어 노래도 불러 줬습니다.
“나무에게 하늘은 가도가도 멀기만 하다 아예 고요한 호수가 되어 하늘을 담자”<1997.2. >
<하늘>이란 시에 이어 노래한 <하늘길>이었습니다. 두 시 다 하느님 중심의 삶을 노래한 시입니다.
“참 많이도 굽었다 하늘빛 찾아가는 길 순탄대로 곧은 길만은 아니다 첩첩의 장애물 나무들옆 좁은 틈바구니 하늘빛 찾아 이리저리 빠져나가다 보니 참 많이도 굽었다 조금도 부끄러울 것 없다 거룩한 아름다움이다 살아있음이 찬미와 감사다 하늘빛 가득 담은 소나무야!”<2001.4.21.>
자매의 곤고했던 하느님 중심의 삶을 반영하는 시인지 참 진지하게 온 정성을 다해 불렀습니다. 참으로 시종여일 하느님 중심의 삶에 충실한 이들은 하느님 친히 보호자, 인도자되어 함께 해 주심을 새삼 확인했습니다. 다음 시편도 이를 입증합니다.
“죽음의 그늘진 골짜기를 간다해도 당신 함께 계시오니, 무서울 것 없나이다 당신의 막대와 그 지팡이에, 시름은 가시어서 든든하외다”(시편23,4)
공자의 “덕불고 필유린(德不孤 必有隣)” 덕이 있으면 반드시 이웃이 있으므로 외롭지 않다는 뜻입니다. 덕 대신 하느님 중심의 믿음을 넣어도 그대로 통합니다. 좋은 믿음에 좋은 이웃이 계속 연결됨으로 혼자가 아닌 더불어의 삶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제가 노년의 품위유지를 위해 강조하는바 <1.하느님 믿음, 2.건강, 3.돈>의 우선순위입니다. 오늘 복음도 전부 돈과 관계된 것입니다. 재물이나 돈의 거부가 아닌 올바른 사용을 강조합니다.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 일에도 성실하고, 아주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일에도 불의하다. 너희가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다. 삶에 중심이 둘 일 수는 없습니다.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우선순위의 문제입니다. 돈의 거부가 아니라 하느님과 돈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영적일수록 현실적입니다. 하느님의 중심의 삶에 충실할수록 땅의 현실에도 충실하여 재물 관리에 만전을 기하되 절대 인색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돈이 아니라, 하느님이, 사람이, 공동체가 먼저입니다.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의 모든 말씀을 듣고 비웃자 예수님의 경고 말씀이 우리에게도 좋은 깨우침이 됩니다.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아신다. 사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형오스러운 것이다.”
참으로 하느님 중심의 삶에 충실한 자는 자기를 아는 겸손하고 지혜로운 자임을 깨닫게 됩니다. 돈을 좋아하는 돈 중심의 사람은 교만할 수 뿐이 없고, 하느님께는 참으로 혐오스러운 모습입니다.
언젠가 어느 자매가 먹을 것을 예상하며 무엇을 좋아하느냐 묻길래 순간 ‘돈을 좋아한다’ 말할까 하다가 ‘자매를 좋아한다’ 말했고, 즉시 ‘하느님을 좋아한다’ 말했습니다. 하느님을 좋아할 때 저절로 초연하고 자유로운 무욕의 품위있는 삶에 분별력의 지혜도 뒤따르기 마련입니다. 아이들의 교육도 <돈맛>보다는 <하느님맛>을 들이도록 훈련해야 함을 봅니다. 재물을 맘몬이라 불렀듯이 재물은, 돈은 사람을 노예화 중독시키는 마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옛 고려말 충신 최영 장군의 어록도 생각납니다. 그러니 돈 중심의 <이해관계>로 살것이 아니라 하느님 중심의 <형제애 관계>로, <의리관계>로 사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관계가 참 놀랍습니다. 하느님 중심의 복음 선포 활동을 통해 형제애로, 의리로 맺어진 관계들입니다. 로마서를 끝내며 나누는 끝인사와 권고가 끝이 없습니다.
날마다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하느님 중심의 믿음을 굳건히 하며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과의 우정을 깊이 해줍니다. 마지막 바오로 사도의 장엄한 하느님 중심의 믿음의 고백으로 강론을 마칩니다.
“하느님은 내가 전하는 복음으로,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로, 또 오랜 세월 감추어 두셨던 신비의 계시로 여러분의 힘을 북돋아 주실 능력이 있는 분입니다. 홀로 지혜로우신 하느님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로마16;25,27).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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