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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은 그 불의한 집사를 칭찬하였다. 그가 영리하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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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선종하신 내 사부 신부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수도회에 자신의 방 창문으로 전선이 지나간다고 하셨습니다. 그 전선에서 소리가 난다는 것입니다. 저라면 이렇게 했을 것입니다. 수도회 원장 신부님에게 말을 해서 신부님 저 방 좀 바꾸어 주세요. 밤에 잠을 잘 수 없습니다. 그런데 신부님의 답은 달랐습니다. 그냥 지나가면 지나가는데로 잠을 주무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당시에는 무슨 말씀인가? 그런데 요즘에 저를 놓고 묵상하고 저가 어떤 사람인가 더 깊이 묵상하다 보니 이중성이 있는 것입니다. 나에게 손해 보는 것은 전혀 용납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묵상한다고 글을 쓰고 있으니 이것을 보면서 결론이 나왔습니다. 그렇다 내가 자주 쓰러지는 것은 이중성에 있다.. 그것입니다. 그래서 신부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면 나에게 손해를 본다고 해도 그 상황을 받아 들이고 산다는 것입니다. 개선하면 좋겠지만 나 중심적이지 않는 방향으로 살아가겠다는 것이 신부님의 말씀으로 받아 들입니다. 여기서 개선이라고 하면 하느님의 은총을 드러낼 수 있으면 그것이 개선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것이 결국 개선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으로 돌아가면 중간에서 큰 재산가의 재물을 관리 하는 집사가 자신의 주인의 재산으로 사람들에게 적선하는 것이 어찌 보면 좀 이해가 가지 않는 영역이지만 그것을 우리 인간의 영역에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 인간은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를 받고 태어 났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빚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나의 것으로 착각하고 세도가처럼 사람부리고 때리고 죽이고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재산도 하느님의 것입니다. 내 몸 자체가 하느님의 것입니다. 오늘 나온 복음의 집사는 내가 가진 것이 주님의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을 하느님의 자손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회개 입니다. 나의 것으로 착각하였는데 하느님의 것으로 돌려 놓는것.. 그것을 행실로 보여주는 것이 오늘 복음의 집사의 모습입니다. 그것도 절박한 모습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 절박하고 기민하게 움직인 것이 이 집사입니다. 예수님의 핵심 메시지는 불의한 방법이 아니라, 그 "절박함"과 "실행력"에 있습니다. 집사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 지금 당장 행동했습니다. 주저하지 않았고, 변명하지 않았으며, 구체적인 계획을 즉시 실행했습니다. 반면 "빛의 자녀들"인 우리는 어떻습니까? 영원한 생명, 하느님 나라라는 무한한 가치를 알면서도, 정작 그것을 위해서는 얼마나 미온적입니까? 세상 사람들이 재물과 성공을 위해 쏟는 열정의 절반이라도, 우리가 영적 삶에 쏟는다면 우리 삶은 얼마나 달라질까요? 우리는 무엇에 더 절박합니까? 이 땅의 안정입니까, 영원한 안식입니까? 세상의 인정입니까, 하느님의 인정입니까? 집사는 자기 생존을 위해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우리는 영원을 위해 무엇을 거는지, 아니 걸기나 하는지 되물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악한 방법을 쓰라고 말씀하시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선한 목적을 위해서는 더욱 지혜롭고, 더욱 절박하게, 더욱 구체적으로 살아라"고 촉구하십니다. 내일이 아니라 오늘, 이 순간이 우리의 영원을 준비할 때입니다. 집사처럼 영리하게, 그러나 정직하게. 집사처럼 절박하게, 그러나 사랑으로. 하느님 나라를 위한 우리의 투자는 어떠합니까?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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