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20일 (월)
(녹) 연중 제29주간 월요일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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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9주일 나해, 전교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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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corenelia] 쪽지 캡슐

2025-10-19 ㅣ No.185688

[연중 제29주일 나해, 전교주일] 마태 28,16-20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영국이 인도를 점령하여 식민지로 지배하던 시절에 인도의 정신적 지도자인 마하트마 간디가 영국군 장성들의 모임에 초청을 받아 연설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간디는 연단에 올라가 영국군 장교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당신들은 가는 곳마다 십자가가 달린 교회를 짓는데, 당신들이 그리스도인이라면 교회 건물이나 선전 벽보가 아니라 당신들의 삶으로 예수의 모습을 보여주시오. 당신들이 믿는 예수가 부당하게 폭력을 휘두르며 살인하라고 가르쳤습니까? 당신들의 예수가 나약한 여인들을 겁탈하라고 가르쳤습니까? 가난한 이들의 재산을 약탈하라고 가르쳤습니까? 내 조국 인도를 그냥 놓아 두시오! 우리는 당신들의 예수가 없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나는 예수를 사랑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싫습니다.”

 

 영국군은 곳곳에 교회를 짓고 벽보를 붙이며 다양한 방법으로 그리스도교를 전했지만, 간디의 말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올바로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스스로 ‘그리스도인’으로 자처하면서 폭력과 강압으로 신앙을 강요하고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들의 모습 때문에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자리잡게 되었지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이번에는 마더 테레사가 인도에 갔습니다. 그녀는 인도에서 가장 가난한 도시인 캘커타의 빈민가에 들어가서는 길거리에서 죽어가는 병자들을 돌보았습니다. 마더 테레사는 교회도 짓지 않았고 벽보도 붙이지 않았으며 예수님을 믿으라고 시끄럽게 외치고 다니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묵묵히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삶으로 보여주었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 덕분에 그리스도교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고 현재는 2천 4백만명 정도의 가톨릭 신자와 2만 명의 사제, 만 명이 넘는 해외 선교사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역동적인 교회를 이루고 있습니다.

 

 내가 사는 곳에서, 내가 일하는 곳에서 하느님의 삶을 사는 것이 바로 ‘전교’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삶’이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자비와 사랑을 실천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런 방법으로 하느님을 믿지 않는 이들을 신앙으로 이끄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그리스도교 신자인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살려고 힘쓰지 않는다면, 우리들 각자가 하느님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 되지 못한다면 전교는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모습이 전교의 힘입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말을 듣기보다는 먼저 우리의 행동을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복음을 살아가지 못한다면, 예수님의 복음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있지 않다면, 이웃에게 복음을 전해줄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만 전해 줄 수 있을 뿐, 그리스도 자체를 전해주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실천한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 기쁨을 찾지 못한다면 ‘주님의 기쁜 소식’인 복음을 전해 줄 수 없습니다. 죄를 짓지 않기 위한 율법은 전해 줄 수 있어도, 주님의 자비와 용서를 체험한 사람들이 느끼는 참된 기쁨과 행복을 전해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물질과 권력과 명예를 추구하는 데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면,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또 하나의 ‘우상’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이 아니라 단순한 부적이나 보험처럼 여기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나 자신이 주님으로부터 오는 커다란 기쁨과 평화를 누리며 살아간다면, 그 모습을 본 세상 사람들은 그 기쁨의 원천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큰 관심을 가지고 다가갈 것입니다. 

 

 전교는 그리스도교 신앙인에게 있어서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이 우리가 사랑하고 따르는 예수 그리스도의 뜻, 그중에서도 마지막 유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전교해야 하는 더 크고 중요한 이유는 바로 전교가 우리들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던 이들이 나의 인도를 통해 구원받게 되는 만큼,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그들을 인도하는 나 역시 하느님의 자녀로 변화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시는 구원을 더 깊이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선교의 사명을 맡기십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단순히 선교하라는 ‘명령’으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열심히 선교하는 이들에게는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는 약속 또한 주어지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삶으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드러내는 ‘선교 사명’을 충실히 수행한다면, 언제나 나와 함께 계시는 예수님께로부터 오는 진정한 기쁨을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하루 하루의 삶을 거룩하게 함으로써 나중에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커다란 은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망설이거나 미뤄두지 말고 ‘선교 사명’을 열심히 수행하는 하느님의 충실한 일꾼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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