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21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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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9주일제1독서 (이사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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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업로마노 [rlawhddjq] 쪽지 캡슐

2025-10-19 ㅣ No.185673

 

 

 연중 제29주일제1독서 (이사2,1-5)

 

수많은 백성들이 모여 오면서 말하리라.  " 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느님의 집으로!  그러면 그분께서 당신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시어, 우리가 그분의 길을 걷게 되리라."  이는 시온에서 가르침이 나오고,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말씀이 나오기 때문이다. (3)

 

앞선 2절에서는 세말에 모든 민족들이 주님의 집(성전)으로 모여드는 영광된 미래를 예언하였다. 이제 본절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날에 수많은 백성들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을 예언한다.

 

그 가운데 본문에서는 주님의 통치를 받으러 모여드는 사람들이 아직 관망하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동일한 여정을 떠나자고 촉구하는 내용이 직접화법으로 소개된다.

여기에서 '자'(오라)에 해당하는 '레쿠'(leku)는 '걷다' 라는 의미의 동사 '알라크'(alak)의 명령형으로서, 적극적으로 주님 신앙을 받아들이라는 강력한 요청의 의미를 지닌다.

 

아울러 '야곱의 하느님의 집으로' 에 해당하는 원문인 '엘 뻬트 엘로헤 야아코브'(el beth elohe yaqob ; to the house of the God of Jacob)에는 동사가 없다.   다시말해서 본문의 동사는 앞 문장에 나오며, '우리가 ~ 올라가자' (let us go up) 로 번역된 '웨나알레'(yenaalle)이다.

 

따라서 본문은 실질적으로 야곱의 하느님의 집으로 올라가자는 촉구이며,  여기서 '야곱의 하느님의 전'은 앞서 나온 '주님의 산' 과 동일한 곳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주님의 산' 이 바로 '야곱의 하느님의 전' 임을 드러내는 것은 그들이 받을 축복이 본래 이스라엘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을 근거로 세워진 신약의 교회는 구약의 성도들의 신앙과 결코 다른 것이 아니다. 바로 성조들이 섬겼고, 이스라엘 자손들이 만들었던 성전에 임재하신 하느님을 신약의 교회도 섬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르게 여겨지는 것은 구약의 선민인 이스라엘 자손들이 구원사의 점진적 전개 과정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폐쇄적으로 배타적인 선민 의식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분명 민족중에서 하느님의 소유로 부르심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 자신만의 구원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부르시면서 그들을 민족 중 사제의 나라로 삼으셨다고 밝히셨다.(탈출19,5.6) 이것은 결국 그들만의 구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천하만민을 중재하는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이다.

 

즉 그들은 자신들이 사제의 나라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 자체에 자신들만의 구원이 아니라 이방인들, 곧 천하만민의 구원이 전제되어 있음을 깨달아야 했다.

이것은 그들의 조상이며, 거룩한 민족 공동체와 예배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아브라함을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과정에서부터 구체적으로 표명된 것이기도 하다.(창세12,1-3)

 

이같은 측면에서 세상 만민, 모든 민족들이 하느님의 성전에 나아가  하느님을 섬기며 하느님의 통치를 받는다는 본문의 내용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대가 이르렀음을 선포하는 것이지만, 전혀 새로운 것만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도리어 이스라엘의 실패와 허물, 하느님의 구원사에 대한 오해와 왜곡을 바로 잡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분께서 당신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시어  우리가 그분의 길을 걷게 되리라.'

 

주님의 성전에 오르기 전까지 이방인들은 주님의 가르침과 전혀 무관한 삶을 살았지만, 그 산에 오른 후로는 주님의 가르침을 받으며 살 것이다.

 

여기에서 '당신의 길' 에 해당하는 '밋데라카이우'(mydderakaiu)의 원형 '떼레크'(derek)는  원래 여러 사람들이 오랜 시간 동안 밟아서 만들어진 탄탄한 길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본문에서는 3인칭 단수 소유격 접미어가 붙어 하느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위해 이상적으로 정해 놓으신 삶의 방식을 의미한다.

 

주님께서는 당신과 상관없이 육신의 욕망에 이끌려 살아왔던 이방인들 중에서도 새롭게 그분 은총의 통치 아래 들어온 자들을, 당신 백성들이 이전부터 지켰던 삶의 방식으로 가르치실 것이란 사실이 예언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그 결과는 주님의 산으로 올라온 자들이 주님의 길로 걷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분의 길' 에 해당하는 '뻬오레호타이우'(beorehothaiu)의 원형 '오라흐'(orah)는 '떼레크'(derek)보다 약간 작은 길을 의미한다.(창세49,17)

 

본문에서는 '~안에' 라는 의미를 지닌 전치사 '뻬'(be)가 접두되어, 새롭게 주님의 백성된 자들이 그분의 길 안에서 살 것이라는 사실을 나타낸다.

이것은 신약의 빛 아래 비추어 이해하면, 그들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해 주님의 뜻을 알게 되고, 성령의 인도를 통해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것임을 나타낸 것이 된다.(예레31,34 ; 요한14,26)

 

'이는 시온에서 가르침이 나오고,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말씀이 나오기 때문이다'

 

본문은 이유의 접속사 '키'(ki)로 시작되는 문장으로서, 주님의 통치 아래로 모여든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그분의 가르침을 받고 그분의 길 안에서 거닐 수 있는 것인지, 그 근본적인 이유를 보여준다.

또한 본문은 '가르침'(율법)과 '주님의 말씀' 이 대응을 이루고, '시온에서 ~나오고' 와 '예루살렘에서 ~나오기'가 대응을 이루는 평행 대구 구조의 문장이다.

 

여기서 그 이유는 '가르침'과 '주님의 말씀' 이 '시온' 즉 '예루살렘' 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으로 제시된다. '가르침'(율법)에 해당하는 단어는 '토라'(torah)이며 기본적으로 가르침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에는 관사가 부착되어 있지 않는데, 이것은 구약의 모든 율법을 포함하여 주님께서 당신 백성의 거룩한 삶을 위해 그들에게 계시해 주신 모든 뜻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말씀' 에 해당하는 '따바르'(dabar) 역시 주님의 계시를 가리킨다. 주님은 그분 계시의 말씀, 그분의 백성들이 분명히 분별할 수 있는 율법을 근거로 해서 그분에게 모여든 모든 사람들을 가르치실 것이 예언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명확히 계시된 주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분이 원하시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그 '가르침'(율법)과 '말씀' 이 '시온' 즉 '예루살렘' 에서 나온다는 것은 주님의 임재와 현존이 있는 곳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나올 것이라는 의미 더불어, 복음 전파가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될 것을 암시한다. 이러한 예언은 사도행전에서 그대로 구현되었다.

 

실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 머물러 약속하신 성령을 받았으며 바로 그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 전파를 시작하였다.(사도2장)

당시 16개국에서 모여든 디아스포라 유대인들 및 경건한 이방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전파된 복음을 각기 자기 나라 말로 들었으며, 그때부터 복음이 만방에 전해지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사실상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복음의 빚진 자들이며, 이스라엘이라는 원 올리브나무에 접붙혀져 그 진액을 먹고 성장한 자들이다.(로마11,17.24)

 

본문에서 이사야는 이 일이 이루어지기 700 여년 이전에 이미 하느님의 계시로 이런 일을 내다보며 이것을 예언하고 있다.

이것은 하느님의 구원사가 우연이나 계획없이 아무렇게나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철저한 계획과 작정에 따라 한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되어 나아감 선명하게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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