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10일 (금)
(녹) 연중 제27주간 금요일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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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0일 수원 교구청 묵상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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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09:07 ㅣ No.185415

김건태 신부님_힘센 하느님 나라

 

 

오늘 예수님은 당신의 능력과 권위에 도전장을 내미는 사람들을 향하여 명쾌한 논리로 응답하십니다이 사람들은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신 일을 보고,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는 모독적인 언사를 마다하지 않는가 하면아직도 미심쩍어하는 사람들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요구합니다표징을 요구한다는 것보고서야 믿겠다는 것은 실은 아직도 믿음이 없음을 드러내는 증표입니다따라서 반대편에 서 있는 자는 모두 내 편에 서지 않는나를 반대하는 자”,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흩어버리는 자입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은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벙어리 마귀를 쫓아낸다는 사람들 의 중상 앞에 서십니다베엘제불이라는 이름의 기원은 분명하지 않으나아무튼 예수님은 마귀들에 대해 아무런 권능도 지니지 못하고다만 그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조종할 뿐이라는 억지 주장입니다성부의 뜻에 따라 성령의 도움으로 악마의 세력을 제압하여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주님을 모독하는 참언입니다그러나 주님을 모독하기 위해 내세운 이러한 논리는 적대자들의 세계를 궁지에 빠뜨리는 자기모순이 되고 맙니다왜냐하면 너희의 아들들곧 특출한 능력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고 있던 사람들도 마귀를 쫓아내는 구마(驅魔의식을 거행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이들의 특별한 능력을 무시할 뿐만 아니라그들조차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바로 그들이 너희 재판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을 궁지에 빠뜨리리 위해 온갖 궤변과 억지를 서슴지 않는 이들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서에 의하면 바리사이들 또는 율법학자들과의 논쟁을 깔끔하게 정리하시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십니다하느님 나라 건설만이 그분의 최종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사실복음서에서 예수님은 반대 세력의 도전에 크게 개의치 않으시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십니다하느님 나라 건설에 다소의 불편함을 줄 수는 있어도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깊이 의식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시선은 당신의 권위 있는 말씀과 행적 앞에 놀라워하던 군중처럼 우리를 향하십니다저 많은 반대 세력과 그들의 집요한 방해에도 불구하고정의와 진리와 평화보다는 불의와 거짓과 불목이 난무한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 건설은 과연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으로 다소 소심해진 우리 앞에 예수님은 힘센 분으로 서십니다반대 세력의 증대가 우리에게 희망 없음의 예표로 다가올 때가 있어도우리 주님은 힘센 분임은 우리에게 희망 있음의 강력한 증표로 길이 머물 것입니다.

 

 

 

오늘 하루내적 또는 외적인 반대 세력의 훼방에도 불구하고 주님과 함께 모아들이는 신앙인의 삶을 더욱 다지고 실천에 옮기는소중한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거짓이 아니라 진실을 말하고불의가 아니라 정의를 실천하며불화가 아니라 평화를 이루어내고자 노력할 때마다힘센 분이 세우시는 하느님 나라는 서서히그러나 분명히 건설되어 나갈 것입니다! 

 

 

조욱현 신부님_복음: 루카 11,15-26: 내 편에 서지 않는 사람은 나를 반대하는 사람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권능, 곧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우리 가운데 현존하고 있음을 선포한다.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시자, 사람들은 오히려 그분을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15절)고 비난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라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20절). 

 

성경에서 하느님의 손가락은 곧 성령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 마귀를 쫓아내신 것은 성령의 힘으로 하신 것이다. 오리게네스는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의 손가락은 곧 성령이시다. 그 손가락으로 돌판에 계명이 새겨졌듯,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에 그리스도의 법을 새기신다.”(In Lucam Hom. 24,1) 여기서 우리는 삼위일체의 신비를 본다.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통해, 그리고 성령 안에서 역사하신다. 따라서 예수님의 구마 행위는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친히 개입하시는 구원 사건이다. 

 

예수님께서는 비유로 설명하십니다. “힘센 자가 무장하고 자기 집을 지키면 안전하다. 그러나 더 힘센 자가 와서 그를 이기면 그의 무장을 빼앗고 전리품을 나눈다.”(21-22절). 주님은 십자가와 부활로 사탄의 무장을 해제하시고, 우리가 사탄의 종살이에서 벗어나 아버지의 자녀가 되도록 해주셨다. 성 이레네오 교부는 이를 이렇게 표현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강도(사탄)에게 사로잡힌 인류를 당신의 힘으로 풀어내셨다. 하느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심으로써, 인간은 다시 하느님께 돌아가게 되었다.”(Adversus Haereses V,21,3)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내 편에 서지 않는 사람은 나를 반대하는 사람이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흩어 버리는 사람이다.”(23절). 중간은 없다. 주님과 함께 모으든지, 아니면 사탄처럼 흩어 버리든지 둘 중 하나다. 따라서 신앙은 단순한 태도나 기분이 아니라, 분명한 선택이다. 

 

예수님께서는 또 경고하신다. 더러운 영이 쫓겨 나간 집이 빈집으로 남아 있으면, 더 악한 영들이 들어와 그 집은 이전보다 더 악해진다고 하십니다(26절 참조). 우리 마음이 하느님의 성전으로 채워져 있지 않다면, 언제든 악이 다시 들어올 수 있다. 성그레고리오 교황은 이렇게 가르친다: “하느님의 은총이 머무르지 않는 마음은 곧 악령이 거처하는 빈집이 된다.”(Hom. in Evang. 29,2) 따라서 단순히 죄를 버리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자리를 성령과 말씀과 성체로 채워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마음의 집이 하느님의 성전이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매 순간 기도와 성사 안에서 주님의 손가락, 곧 성령의 힘을 청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안에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시작되고, 주님의 승리가 우리 삶 안에서 드러나게 될 것이다.  


전삼용 신부님_이 시대 또 다른 베엘제불, 거짓 목자! 

 

 

베엘제불(Beelzebul)이라는 단어는 ‘악령들의 두목’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어로는 복합명사 바알제불(Ba'al Zebul)인데, 이는 집주인(lord of the dewlling)이라는 뜻입니다.

악의 원천이 되는 존재로 악의 중심, 악령들의 대부 역할을 하는 ‘대마귀’(大魔鬼)라고 보시면 맞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쫒아내시자, 그 광경을 지켜 본 군중 가운데 몇 사람이 참으로 해서는 안 될 말을 예수님을 향해 던지고 있습니다.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쫒아낸다.”(루카 11,15) 

 

정말이지 해도해도 너무한 말, 어처구니없고 얼토당토 안한 말 앞에 예수님께서는 정말이지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자신들을 베엘제불로부터 구원해주기 위해 이 땅에 내려오신 당신을 향해, 쌍수를 들어 환영하고 백번 천번 감사해야 마땅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을 향해 마귀들의 우두머리 베엘제불과 협력하여 작은 마귀들을 쫒아낸다는 루머를 퍼뜨리니, 뭐라 할 말을 잃고 마셨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퍼트린 악의에 찬 가짜 뉴스가 얼마나 큰 잘못인지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이 땅에 내려오신 하느님이십니다.

그런데 하느님을 향해 마귀의 두목이라고 하니, 이보다 더 큰 신성모독이 어디 있겠습니까?

성령의 인도로 이 땅에 오셨고, 성령으로 충만하시며, 성령의 힘으로 악령을 쫓아내고 계신 예수님께 사탄의 협조자라고 하니, 이보다 더 큰 성령 모독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몰지각한 유다인들이 유포하고 있는 가짜 뉴스의 심각성과 폐해를 잘 알고 계셨던 예수님께서는

아주 강한 어조로 조기 진화에 나서십니다.

그들이 계속 엉뚱한 말을 계속할 때, 당신의 어린 양들이 받게 될 악영향이 심각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만일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말이냐?

그러면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라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 가운데 와 있는 것이다.”(루카 11, 19-20) 

 

따지고 보니, 하느님을 대놓고 거부하는 사람들, 구세주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 성령의 역동적인 현존을 무시하는 사람들, 끝까지 하느님께로 돌아서지 않는 사람들, 그래서 스스로 자신을 구원과 영원한 생명으로부터 배제시키는 사람들, 이 시대 또 다른 악의 세력이요, 베엘제불입니다. 

 

요즘 주변을 살펴보니 여기저기 베엘제불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이 시대 또 다른 대마귀들이요 악령들입니다.

그들은 교묘하게 위장하고 등장해 어린 양떼를 현혹시킵니다. 

 

그들에게 있어 양떼는 섬김의 대상이나 사목의 대상이 절대 아닙니다.

먹잇감이요 욕구충족의 대상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분위기는 비슷합니다.

거짓 목자들은 가짜 뉴스를 진짜인 양 목숨 걸고 퍼뜨리고 있습니다. 

 

목자로서의 가장 기본인 인성이나 품위, 겸손의 덕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천박한 언행과 기이한 억지 논리로 양떼를 악의 구렁텅이로 몰고 가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베엘제불입니다. 

 

선한 영과 악령을 구분하고자 노력하는 식별력이 더욱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더 눈을 크게 떠야겠습니다.

거짓 목자에게 현혹되지 않도록 유의해야겠습니다. 


한상우 신부님_"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루카 11, 20) 

 

우리를 위한

구원의 선물이신

예수님을 뜨겁게

만납니다. 

 

예수님을 통해

드러나는

영원한 생명력과

새로운 삶의

치유를

넘치는 예수님

사랑의 힘에서

만납니다. 

 

아직도 우리의

사랑과

우리의

믿음은 미성숙과

불안으로

혼재되어

있습니다. 

 

사랑 안에

미움이 있고

믿음 안에

분노가

있습니다. 

 

하나의 욕망은

또 다른 욕망을

마구 낳습니다. 

 

이렇듯이

소외된

우리들의

삶의 부자유와

삶의 모순을

예수님께서

치유하여

주십니다. 

 

모든 속박과

모든 소외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시는

주님이십니다. 

 

이미 와 계신

하느님 나라

그 자체이신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소외시키는

온갖 마귀들을

삶의 현장에서

쫓아내십니다. 

 

더 이상

악령들에게

종속당하거나

지배당하지 않는

우리 고유의 삶을

기쁘게 살게 하십니다. 

 

억압하지도 않고

억압당하지도 않는

당신 자녀들의

참된 자유를

우리들에게

안겨주십니다. 

 

이용하지도 않고

이용당하지도 않는

사랑의 질서를

바로잡아 주십니다. 

 

하느님의 손가락은

서로를 북돋아 주고

서로를 살리는

사랑을 가르칩니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올바로 볼 수 있는

눈과 올바로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믿을 것을

믿는 것이

하느님 나라의

시작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사람의 마음을

정화시키고

깨끗한 정신을

갖게합니다. 

 

우리에게서

하느님 나라는

소외가 아닌

자유와 해방을

완성시키는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이미 와 계신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을

우리에게

주시고 

 

우리는 예수님께

우리의 삶을

완전히 내어드려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기쁜 날입니다.

 

 

조명연 신부님_신부가 되고 얼마 안 되었을 때, 봉성체 갔다가 있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봉성체 대상자는 독거노인이셨지요. 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것은 발 디딜 틈 없이 바닥에 펼쳐져 있는 많은 물건이었습니다. 여기에 오랫동안 청소를 하지 않았는지 이상한 냄새로 가득했습니다. 봉성체 후, 레지오 단원 봉사로 이 집 청소를 부탁했습니다. 너무 열악한 환경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음 날, 레지오 단원들이 할머니께서 반대하셔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고 하셨습니다. 할머니의 반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1) 미안해서 2) 게을러서 3) 사람이 싫어서

 

이 중에 답은 없었고, 다른 답이 있었습니다. 허리와 다리가 너무 아파서 일어났다 앉았다가 힘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용하는 모든 물건을 바닥에 펼쳐놓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이 물건들을 다시 제자리에 가져다 놓으면, 필요할 때 이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처럼 사회복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때였고,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이라는 이름이 낯설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할머니는 고군분투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알고 나니 할머니 집의 모든 물건이 바닥에 놓여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었고, 할머니의 행동이 이해되었습니다.

 

알면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알지도 못하면서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을 쉽게 합니다. 주님의 활동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왜일까요? 주님을 잘 모르기 때문은 아닐까요? 주님을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분의 인간에 대한 사랑이 비로소 보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이해하면서 지금을 잘 살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의 모습을 봅니다. 그들은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신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의 은총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이야기합니다. 악의적인 비방입니다. 이런 비방은 여기서 멈추지 않지요.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요구하며 예수님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영적 무지를 드러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행적이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들의 편협한 틀 안에서 멋대로 판단하고 시험하려 합니다.

 

“너희 아들들은 누구의 힘으로 마귀를 쫓아내느냐?”(루카 11,19)라고 되물으십니다. 당시 유다 사회에도 마귀를 쫓아내는 이들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자신들의 이런 행위는 하느님의 힘으로 여기면서, 정작 예수님의 행위는 악마의 힘으로 몰고 있습니다. 제대로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과연 누구 편인가요? 예수님 편이기를 바란다면, 예수님을 이해하기 위해 더 큰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분의 사랑과 자비에 머물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준 우리의 모습은 근본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거부함으로써만 우리 자신이 될 수 있다(장 폴 샤르트르).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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