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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9일 수원 교구 묵상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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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기도에 대한 가르침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 가운데 기도인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시고 난 다음, 비유를 통해 항구히 기도할 것을 강조하심과(5-8절) 아울러 온전한 신뢰심으로 하느님 아버지께 청하라고 권하십니다(9-13절). 먼저 어떤 친구가 이미 온 가족이 잠자리에 든 친구를 찾아와 무엇인가를 청할 때, “줄곧 졸라대면” 친구로서가 아니라, 귀찮음을 떨치기 위해서라도 일어나 그 청을 들어줄 것이라는 비유 말씀이 소개됩니다. 사람이 이럴진대, 하느님은 더욱더 사람들의 줄기찬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의로우실 뿐만 아니라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기도하기 위해서 하느님을 향하는 우리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말씀을 건네십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하시는 말씀으로 우리가 향하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밝혀주십니다. 하느님은 그 어떤 아버지보다 자비로운 분이시며 우리의 바람에 꼭 응답해 주시는 분이기에, 우리의 기도는 결코 헛되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심어주십니다. 꾸준히, 정성을 다해,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기도하면, 꼭 들어주신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희망과 용기를 주는 말씀대로 우리의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나 체험한 적이, 원망하거나 체념한 적이, 그래서 신앙의 위기를 경험한 적이 한두 번씩 있을 것입니다. 청했지만 받지 못했고, 찾았지만 얻지 못했고, 두드렸지만 열리지 않았던 적 말입니다. 진지하게, 그리고 큰 믿음으로 오랫동안 주님께 기도했지만, 육체적이면 정신적인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특히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지만, 별 효과가 없어 보였던 경우입니다. 어디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까? 기도하는 나입니까, 아니면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느님입니까? 예수님의 가르침을 다시 읽고 묵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무엇보다 먼저, 우리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향할 때마다, 아버지는 귀를 기울이시고 들어주시고 응답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하느님은 우리의 바람에 무관심한 분이 아니십니다. 다음, 예수님은 하느님은 우리가 요구하는 바에 따라 그대로 들어주시는 분이 아님을 분명히 밝히십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좋은 것을 주시며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은 우리가 청하는 것 이상으로 무엇이 우리에게 좋은 것인지를 잘 알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마치, 단 것을 좋아하는 자녀에게 청할 때마다 매번 단 것을 주지 않고, 더 좋은 것을 주고자 하는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면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한편, 기도는 항구하게 해야 한다는 불변의 가르침 속에는, 같은 내용을 계속해서 반복해야 한다는 의미 이상으로, 기도하는 나의 자세와 내용에 대한 꾸준한 반성도 겸비되어야 할 것입니다. 빛을 청해야 하는데 어둠을 청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의를 찾아야 하는데 불의를 찾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실의 문을 두드려야 하는데 거짓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등등입니다. 더욱이 이웃의 행복이 아니라 불행을 기도한다면,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하는 주님의 가르침 앞에 무슨 낯으로 서 있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 하루, 기도의 자세와 내용을 바로잡고, 특히 좋은 것을 주시는 아버지의 뜻대로 내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며, 남이 나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나도 남에게 해 주는, 신앙인다운 하루 꾸며 나가기를 기도합니다.
조명연 신부님_강화에 살 때, 철새의 이동 시기인 11월에서 이듬해 2월 사이에 조류인플루엔자가 위험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강화도에 들어가는 다리에서부터 차량 방역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방역을 철저하게 하는 것은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닭, 오리 같은 가금류에서 고병원성 AI가 발생하면 치사율이 매우 높아 대량 폐사가 일어납니다. 때로는 드물지만, 사람에게도 전염될 수 있기에 강화도 입구에서부터 철저하게 방역하는 것입니다.
이를 생각하면, 하느님 나라에 곧바로 가지 못하고 연옥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영혼이 깨끗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사랑한다면서도 왜 곧바로 하느님 나라로 부르지 않는 이유입니다. 깨끗한 하느님 나라를 위해 자기 영혼의 정화는 필수지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계속해서 자기 영혼의 정화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미리 하느님 나라를 체험할 수 있는 길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계속 정화하면서 하느님 나라에 가까워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사랑에 집중하면서 하느님 뜻에 맞게 살아갈 때, 우리의 영혼은 더욱 깨끗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가 필요합니다. 기도는 하느님과 인간의 대화라고 하지요. 이 기도를 통해 하느님과 가까워지고, 당연히 하느님 뜻을 실천하는 데 커다란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을 통해 특별히 기도의 자세와 하느님의 응답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한다고 하지요. 비유와 가르침을 통해 어떤 마음으로 기도해야 하며, 기도를 들으시는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명확하게 보여주십니다.
끈질긴 벗의 비유를 통해 기도하는 이의 절대 물러서지 않는 자세를 이야기하십니다. 한밤중에 벗을 찾아가 빵을 구하지요. 당시는 한밤중에 찾아온 손님을 대접하지 못하는 것이 주인에게 큰 수치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빵을 구하러 간 사람은 단순히 개인적인 부탁이 아니라, 공동체의 명예와 의무를 지키기 위해 ‘줄곧 졸라대고’ 있습니다. 단순히 끈기나 성가심을 넘어 뻔뻔하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대담함이라는 강한 의미를 보입니다. 자기 체면이나 상대방의 불편함보다, 반드시 해결해야 할 필요성에 집중하여 물러서지 않는 자세를 의미합니다.
이렇게 물러나지 않는 기도를 하는 사람을 하느님께서는 절대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최고의 선물, 모든 선물의 근원인 ‘성령’을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성령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 뜻을 깨닫고, 어려움을 이겨낼 힘을 얻으면서, 우리의 영혼이 진정으로 깨끗하게 정화됩니다. 하느님 나라에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만일 당신이 누군가를 미워한다면, 당신은 그 사람 안에서 당신의 일부인 그 어떤 점을 발견하고 미워하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일부가 아닌 것은 아무것도 우리를 괴롭힐 수 없다(헤르만 헤세). 한상우 신부님_."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루카 11, 9)
하느님 사랑을 생각하고 실천하는 기도의 시간입니다.
거짓의 나가 사라지면 간절하고 절실한 마음의 나를 만납니다.
가장 좋으신 하느님으로 가득한 기쁨을 만납니다.
하느님을 향한 확고한 믿음이 기도입니다.
온전히 우리 생활에 함께 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지금 이 순간을 아버지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로 삶을 바라보는 마음이 바뀌게 됩니다.
올바른 마음의 행위가 참된 기도입니다.
조르고 청하는 기도에서 시작하지만 기도는 성장하며 받아들이고 베풀 줄 아는 겸손한 마음으로 우리를 변화시켜 나갑니다.
기도를 열심히 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입니다.
언제나 기도에 화답하시는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이십니다.
기도는 우리의 마음과 하느님의 마음을 만나게 합니다.
가슴과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임을 다시 배웁니다.
우리를 있게 하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진심으로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마음을 낮추면 이미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주고 계시는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됩니다.
기도는 나의 뜻이 아닌 아버지 하느님의 가장 좋으신 뜻을 받아들이는 평화입니다.
아버지 하느님과 함께 가장 좋은 날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기도는 가장 좋은 사랑입니다. 전삼용 신부님_주님의 기도를 꾸준히 할 때 일어나는 일; 믿어진다.
오늘 복음은 어제 ‘주님의 기도’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내가 하느님의 자녀로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원하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임이 증명되고 자녀로서 받아 누릴 수 있는 것을 받는 특권까지 누립니다. 따라서 주님의 기도에서 청원하는 내용에 집중해야지 그것을 통해 얻으려는 것에 집중해서는 안 됩니다. 일단 부모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녀도 원할 때 무언가 더 주고 싶어집니다.
오늘 복음은 ‘주님의 기도’를 바치며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꾸준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부모는 자녀가 무언가 자신에게 꾸준히 청할 때 자녀가 자신을 신뢰한다는 사실에 기뻐합니다. 그러면 무엇이든 들어주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무언가를 꾸준히 청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꾸준히 청하는 것은 약간 누군가를 괴롭히는 일이기에 꾸준히 청할 수 있으려면 상대에 대한 사랑과 신뢰가 굉장해야 합니다. 따라서 꾸준히 청한다는 것은 이미 그만큼 하느님을 신뢰하고 있음을 증명하기에 하느님은 그런 자녀의 마음을 아프게 하실 수 없으십니다.
평생 5만 번의 기도 응답을 받았다고 하는 ‘조지 뮬러’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기도 노트에는 기도 제목들이 3천 페이지나 넘게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도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 기도했지만,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어렸을 때부터 같이 우정을 나누었던 5명의 친구 구원 문제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다섯 명의 친구를 위해 계속 기도했습니다. 한 사람씩 믿음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끝까지 안 믿는 친구가 두 사람 있었습니다. 조지 뮬러는 이 두 친구를 위해서 무려 52년간 기도했지만, 그들은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조지 뮬러는 노년이 되어서 자기 인생의 마지막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날 조지 뮬러의 안 믿던 한 친구가 그 설교를 듣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나머지 한 친구는 안 믿었습니다. 결국, 조지 뮬러는 마지막 기도 제목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후에 그때까지 안 믿고 있었던 한 친구가 뮬러의 죽음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조지 뮬러가 자기를 위해서 52년간이나 기도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조지 뮬러가 죽은 바로 그해 그 소식을 들은 이 친구는 결국 신앙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믿고 나서 그 친구는 전 영국 땅을 순회하면서 “조지 뮬러 목사의 기도는 다 응답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최후의 응답입니다. 당신의 모든 기도는 다 응답합니다.”라고 간증하였습니다.
만약 두 아이가 무언가 청하는데 한 아이는 그저 ‘찔러보는 식으로’ 이것 청했다가 저것 청했다고 하고, 또 한 아이는 하나가 이루어질 때까지 ‘끈질기게’ 청한다고 할 때 누구의 청을 먼저 들어주시겠습니까? 자신께 신뢰심을 보이는 아이일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청하면 그분은 반드시 들어준다는 믿음이 꼭 필요합니다. 그래야 멈추지 않고 끈질기게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 대한 신뢰심은 기도의 ‘꾸준함’으로 증명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친구들이 한 명, 한 명 회개하였다는 것입니다. 내가 확고한 믿음이 있다면 한 번만 청해도 다 들어주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믿음을 가지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기가 두 발로 걷기 위해 수천 번 넘어지는 시도를 하는 것처럼 꾸준히 청해야 합니다. 그러면 변화를 느끼며 믿음이 함께 성장합니다. 아기들도 걸음마를 할 때 매번 똑같이 넘어지지 않습니다. 조금씩 발전합니다. 그렇게 믿음이 더해져 포기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험악한 얼굴에 인간미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성격까지 괴팍하였습니다. 얼굴과 성격만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생활도 아주 엉망이었습니다. 방탕 그 자체였습니다.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항상 문제만 일으켰습니다. 그는 누가 봐도 구제불능이었습니다. 그가 왜 이 지경까지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어린 시절에 받은 부모의 학대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학창 시절에 당한 왕따 때문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원래가 이렇게 못돼먹은 존재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엉터리 같은 남자의 마음에 사랑의 온정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사랑하게 된 아름답고 순결한 아가씨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는 그가 할 수 있는 온갖 사랑의 말로 고백했고 청혼도 했습니다. 용기를 내어 온갖 진심을 보여주었지만 돌아온 것은 싸늘한 거절뿐이었습니다.
“그 마음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당신같이 험악하게 생긴 사람의 아내가 될 수는 없습니다.” 참 매몰찬 거절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든 그녀의 마음을 돌이키고자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한 가지 묘안이 떠올랐습니다. 무도회에서 흔히 사용하는 가면을 이용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는 비싼 값을 치른 후 인자하게 생긴 얼굴의 가면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그 가면을 쓰고 다시 그녀에게 다가갔고, 청혼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여인의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달콤한 사랑의 말과 가면의 인자한 모습에 감동한 것입니다. 남자는 결국 결혼을 허락받을 수 있었습니다.
원래 선량함이란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던 남자였습니다. 하지만, 자기가 원하던 여인을 신부로 얻게 되자 그는 달라졌습니다. 그는 사랑스러운 신부를 기쁘게 해 주기 위해 열심히 일했습니다. “사랑한다.”라는 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한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그 손님은 이 남자에게 좋지 않은 감정이 많았던 사람이었습니다. 남자가 잠든 사이 그는 여자에게 진실을 말하였습니다. 가면 속에 감춰진 남편의 험악한 얼굴과 방탕한 과거의 추한 모습들을 낱낱이 폭로했습니다. 그것은 아내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진실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잠든 남편의 가면을 슬그머니 벗겨보았습니다. 순간 남편의 과거를 폭로했던 손님이 충격적인 표정을 지었습니다. 가면 속의 얼굴은 과거 그가 보았던 험악하고 비열한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살며시 미소 머금은 얼굴로 편안하게 잠들어 있는 그 표정은, 오히려 그가 쓴 가면의 얼굴보다 더 인자하고 푸근하게 변해있었습니다.
끈질기게 기도하면 좋은 점이 무엇이냐면 그러면서 “믿어진다.”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좋으신 분임이 믿어지고 그래서 내가 청하는 것을 꼭 들어주실 것이 믿어집니다. 그렇게 나 자신도 더욱 믿음이 강한 사람으로 자신도 모르게 변합니다.
저는 ‘일곱 번의 주님의 기도’를 1997년 신학교 입학하는 해 1월 1일부터 계속 바쳐오고 있습니다. 연옥에 가지 않고 순교자의 지위에 올려주신다는 약속이 있습니다. 처음에 이 기도를 바칠 때 마음 한구석에서는 ‘설마!’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러나 1년이 지나가고 10년이 지나면 ‘정말 그럴 수도 있겠는데?’라는 믿음이 생깁니다. 이 기도를 바치며 자신이 조금씩 변화됨을 스스로 체감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제일 중요한 것은 내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믿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완전한 믿음을 지니지 못합니다. 그랬다면 지금 물 위를 걸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더라도 자꾸 바치다 보면 주님의 기도에서처럼 조금씩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면 믿어지게 되고 믿어지면 못 할 게 없어집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청하는 것은 다 들어주실 것을 확고하게 믿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기도 내용을 깊이 묵상하며 꾸준하게 바쳐야 하는 이유입니다.
젖을 줄 때까지 계속 ‘엄마!’를 외치지 않는 아기는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외칠 때마다 젖을 주는 엄마를 보면 아이는 엄마임을 더욱 확실히 믿게 됩니다. 이병우 신부님_"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루카11,9)
'행복한 그리스도인이 되자!'
오늘 복음(루카11,5-13)은 '끊임없이 간청하여라.'는 말씀과 '청하여라, 찾아라, 문을 두드려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루카11,9-10)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루카11,13)
그리스도인들은 '청하는 사람, 찾는 사람, 문을 두드리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을 청하고, 성령을 찾고, 성령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입니다. 그것도 끊임없이. 그리스도인들은 성령께 나의 온 존재를 내어 맡기는 사람입니다.
이 성령께서 나를 움직이십니다. 나의 생각과 말과 행위를 이끄십니다. 그리고 이 성령께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용서하는 사람이 되게 하시고, 유혹과 악에서 우리를 구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믿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큰 은총이며, 큰 행복'입니다.
'믿음이 충만한 가정'은 재물에 대한 탐욕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러니 큰 재산을 모으는 부자는 못 됩니다. 그러나 그들의 가정은 행복합니다. 눈에 보이는 재산보다도 더 큰 재산인 성령 안에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돈이 아니라 성령을 찾고, 성령을 구하고, 성령의 문을 두드리면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행복하여라! 악인의 뜻에 따라 걷지 않는 사람,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되새기는 사람."(화답송)
참으로 행복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2사무10,14)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