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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진 신부님_<충실한 신앙생활의 출발점은 ‘진실한 회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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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대 사람들을 무엇에 비기랴? 그들은 무엇과 같은가?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사실 세례자 요한이 와서 빵을 먹지도 않고 포도주를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을 지혜의 모든 자녀가 드러냈다(루카 7,31-35).”
1) 그 당시의 아이들은 장터에서 결혼식이나 장례식을 흉내 내면서 놀았던 것 같습니다.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는, “결혼식 놀이를 하자고 불러도 너희는 싫다고 하고”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복음을 선포하셨지만 사람들이 믿지도 않고 받아들이지도 않은 것을 꾸짖는 말입니다.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는, “장례식 놀이를 하자고 불러도 그것도 싫다고 한다.”입니다. 이 말은, 세례자 요한이 회개를 선포했지만 사람들이 그 선포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즉 회개하지 않는 것을 꾸짖는 말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빵을 먹지도 않고 포도주를 마시지도 않았다는 말씀은, ‘회개의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 요한이 엄격하게 극기고행을 하는 생활을 했다는 뜻입니다.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는, “저자는 미쳤다.”, 또는 “저자는 정상이 아니다.”입니다. 사람들이 요한의 회개 선포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회개하기가 싫었거나, 또는 의인이라고 자처하면서 자기는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그들은 자기들이 회개 선포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세례자 요한이 미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라고 핑계를 댔습니다.
2)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을 만나시고 ‘모든 사람’과 어울리신 것을 가리킵니다.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라는 말은, “예수는 기도나 단식 같은 신심생활은 전혀 하지 않는 죄인이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복음 선포를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들은, “예수는 죄인이다. 죄인이 하는 말이니 듣지 않겠다.” 라고 말하면서 핑계를 댄 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하실 때나 단식을 하실 때, 사람들이 보지 않는 시간에, 사람들이 없는 외딴곳에서 하셨습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모습이나 단식하시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또 사회적으로 죄인이라고 낙인찍힌 사람들과 어울려서 함께 식사를 하시는 모습을 자주 보았기 때문에 “예수는 세리들과 다를 것 없는 죄인이다.” 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지혜가 옳다는 것을 지혜의 모든 자녀가 드러냈다.” 라는 말씀은, “하느님께서 세례자 요한을 보내시고, 또 예수님을 보내셔서 하신 일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일이라는 것은, 회개 선포도 받아들이고 복음 선포도 받아들여서 구원받은 사람들이 증명한다.” 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에는, 세례자 요한의 회개 선포와 예수님의 복음 선포는 모두 ‘하느님의 일’이라는 뜻과 믿고 회개하는 사람만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여기서 ‘드러냈다.’ 라는 과거형 표현은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3) 사람들이 처음부터 세례자 요한의 회개 선포를 배척한 것은 아닙니다. “그 무렵에 세례자 요한이 나타나 유다 광야에서 이렇게 선포하였다.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그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요르단 부근 지방의 모든 사람이 그에게 나아가, 자기 죄를 고백하며 요르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마태 3,1-2.5-6).” 처음에는 세례자 요한에게 가서 ‘회개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는데, 요한은 그들을 꾸짖었습니다. “요한은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는 군중에게 말하였다. ‘독사의 자식들아,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라고 누가 너희에게 일러 주더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루카 3,7-8ㄱ)” 사람들은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라는 말을, 곧 심판이 닥친다는 예고로 생각하고서, 회개는 하지 않으면서 심판을 피할 생각으로 요한에게 가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는, “진심으로 회개하여라.”, 또는 “삶으로 실천하는 회개를 하여라.”입니다. 이 말은, 사람들이 회개하지는 않고 심판을 피할 생각만 하는 것을 꾸짖은 말입니다.
4) 예수님께서 복음을 선포하셨을 때에도,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사도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 그분의 제자들이 많은 군중을 이루고, 온 유다와 예루살렘, 그리고 티로와 시돈의 해안 지방에서 온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루카 6,17).” 그런데 병을 고치는 것만 원한 사람들은 치유의 은총을 받은 뒤에는 그것으로 만족하고 떠나버렸고, 제자들(신자들)은 ‘생명의 빵’에 관한 예수님 말씀이 이해도 안 되고, 듣기에 거북하다면서 떠나버렸습니다(요한 6,66). 그래서 열두 사도와 몇 명의 신자들만 남았습니다. <현세적인 복을 얻기만을 바라는 것을 기복신앙이라고 부르는데, 기복신앙은 신앙이 아니라 사이비 신앙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다가 떠나버린 사람들은 진심으로, 또 진실하게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아니었고, 처음부터 기복신앙에 빠져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런 모습들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연중 제24주간 수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