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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지혜의 자녀다운 삶을 삽시다 “진리의 기둥이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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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9.17.수요일 성녀 힐데가르트 동정 학자(1098-1179) 기념일
1티모3,14-16 루카7,31-35
지혜의 자녀다운 삶을 삽시다 “진리의 기둥이며, 하느님의 집인 하느님의 교회안에서”
"내 영혼아 하느님 찬양하여라. 당신의 온갖 은혜 하나도 잊지마라."(시편103,2)
‘늘 옛스러우면서도 늘 새로운(ever old, ever new)’ 가톨릭교회 전통에 감사합니다. 이런 교회 안에 자리 잡은 레오 교황의 행보도 지혜롭고 안정적입니다. 때로 교황의 뛰어난 영성도 감지하며 배우는 마음이 됩니다. 교황의 다음 말마디 역시 교회 안에서 진실하고 겸손한 지혜의 자녀다운 삶에 좋은 가르침이 됩니다.
“위로는 견고하고 안정적인 믿음안에서 발견된다.” 좋은 믿음안에 주님의 위로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연민이 없이는 정의도 없다.” 연민이 감상적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의와 함께해야 함을 봅니다. “형제애는 타인들 안에서 하느님의 얼굴을 보는 것이다.” 하나하나가 하느님의 얼굴을 반영함을 볼 때 진정한 형제애의 실현이라는 것입니다. “‘다리들의 건설자들’(builders of bridges)’이 되라는 새 주교들을 향한 강론 요지도 신선했습니다.” -평화, 모두의 도전. 자비로서 사건들을 직면하기. 사회적 미디어에 대한 현명함:오직 진리(only truth). 결코 폐쇄된 집단안에 자신을 가두지 않기-
비단 주교들만 아니라, 믿는 모두에게 주는 가르침입니다. 진리에 순종하는 진리의 협력자로, 진리의 연인이 되어 진실과 겸손의 삶을 살아야 함을 깨닫습니다. 오늘 옛 현자의 말씀도 좋은 참고가 됩니다.
“버려야 할 것을 못 버리는 것은 스스로를 내다 버리는 것이다.”<다산> 새삼 부단히 불필요한 것을 버리고 비우고 내려놓고 주님을 따르는 여정임을 확인합니다. “공자는 네 가지를 절대로 하지 않았다. 억측을 버렸고, 반드시 해야 한다는 일을 버렸으며, 고집을 버렸고, 이기심을 버렸다.”<논어> 지혜의 자녀다운 진실과 겸손의 공자였음을 봅니다.
오늘 복음의 주님 말씀도 우리의 주의를 새롭게 환기시킵니다. 진리의 사람으로 하느님의 자녀답게 진실과 겸손의 삶을 살아야 겠다는 마음을 지니게 합니다. 참으로 경계해야 할 바 부패, 변질되어 순수를 잃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개탄하는 세대는 시공을 초월하여 언제나 존재하는 부패, 변질된 세대를 가리킵니다.
“그러니 이 세대 사람들을 무엇에 비기랴? 그들은 무엇과 같은가?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완전히 공감능력을 상실한, 제대로 반응할 줄 모르는 편견으로 굳어진 인간의 내적 왜곡 변질된 부패상황을 보여주니 누구나의 가능성입니다.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개한 성인은 있어도 부패한 성인은 없다’는 말씀도 생각납니다. 예전 어느 자매의 ‘음식이 상해 맛이가면 버리기라도 하는데, 사람이 상해 맛이 가면 버릴 수도 없다’는 탄식조의 말도 생각납니다. 바로 지혜의 자녀인 요한과 예수님에 대한 그 세대 사람들이 이러했음을 다음의 사례가 입증합니다. 편견으로 부패 변질되어 마음의 순수와 진실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와서 빵을 먹지 않고 포도주를 마시지도 앉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말하고, 사람의 아들 예수님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본질을 직시하지 못하고 표피적 외적 현실을 판단 잣대로 삼는, 진실과 겸손, 순수를 상실한 경박한 피상적 사람들입니다. 새삼 부패와 변질을 막는데 경청과 회개가 얼마나 본질적 덕목인지 깨닫습니다. ‘사람은 고쳐 쓸 수 없다’는 말마디나 ‘원판 불변의 법칙’이란 말마디가 더욱 경청과 회개의 절박성을 깨닫게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이 진리를 추구하는 우리 구도자들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됩니다.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을 지혜의 모든 자녀가 드러냈다.”
세례자 요한이나 예수님뿐 아니라 지혜가 옳다는 것을 드러내는 지혜의 자녀들인 교회의 사람들은 시공을 초월하여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는 법입니다. 하느님의 집에 몸담고 살아갈 때 지혜의 자녀들이요 이런 우리를 향한 바오로의 격려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집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교회로써, 진리의 기둥이며 기초입니다. 우리 신앙의 신비는 참으로 위대합니다.”
이어지는 당대 그리스도의 찬가가 오늘의 우리에게도 예수님의 전생애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바로 다음 고백이 그리스도 예수님이 참으로 위대한 우리 신앙의 신비임을 알려줍니다.
“그분께서는 사람으로 나타나시고, 그 옳으심이 성령으로 입증되셨으며, 천사들에게는 당신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시어, 온 세상이 믿게 된 그분께서는, 영광속으로 올라가셨습니다.”
바로 이런 위대한 신앙의 신비를 믿고 사랑하며 살았던 무수한 성인성녀들이요 오늘의 우리들입니다. 오늘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은 특별히 성녀 힐데가르트 동정학자 기념미사를 봉헌합니다. 아씨시 성 프란치스코는 성녀 사후 2년후 태어났습니다. 힐데가르트 귀족 가문의 10번째 딸로 태어나 어린시절 수녀원에 입회합니다. 성녀는 최초로 독립된 수녀원을 세운 인물로 여성판 레오나르도 다빈치라 불리는데 다빈치 보다 무려 350년전 태어난 인물입니다.
힐데가르트는 베네딕도회의 수녀원장, 문학가, 과학자, 작곡가, 신학자, 카운슬러, 화가, 요리사, 약초학자, 언어학자, 철학자, 의사, 예언자등 당대 대부분의 분야에서 당대 최고였으며, 무수한 업적을 남긴 한마디로 상식을 뛰어넘는 우주적 천재였습니다. 우리 세종대왕이 이런 분인데 이보다도 뛰어나 보이는 성녀입니다.
가톨릭교회에서 교회가 인정한 기적을 일으킨 것도 아니고, 순교한 것도 아니고 시성된 것도 아니지만 워낙 출중한 업적으로 1664년 독일 마인츠 교구는 성녀가 선종한 9월17일 오늘을 축일로 지내기 시작합니다. 이어 1940년 교황청에서는 공식적으로 성인 명단에 올렸고, 833년만인 2012년 5월10일에 교황 베네딕도 16세가 정식으로 시성하였고 같은 해 10월7일 교회학자 칭호를 부여합니다.
진리의 기둥이며 기초인 하느님의 교회안에는 참으로 무수한 보물들인 성인들로 가득합니다. 이처럼 하느님은 당신 교회에 그 시대가 필요로 하는 지혜의 자녀들을 보내주심을 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지혜의 자녀가 되어 경청과 회개, 진실과 겸손의 순수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하느님 찬양하라, 내 영혼아 한평생 주님을 찬미하라. 이 생명 다하도록 내 하느님 기리리라."(시편146,1-2).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