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20일 (토)
(녹) 연중 제24주간 토요일 좋은 땅에 떨어진 것은, 말씀을 간직하여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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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4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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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5-09-17 ㅣ No.184901

한국 건축 용어 중에 차경(借景)’이라는 개념이 있다고 합니다. 차경(借景)"경치를 빌린다"라는 뜻으로, 건축물 외부의 아름다운 경관을 마치 건축물 안의 일부인 것처럼 활용하는 전통적인 건축 기법을 의미합니다. 특히 한옥에서 창이나 마당을 통해 주변 자연경관을 끌어들여 공간감을 확장하고 심미적인 효과를 높이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중국과 일본에는 없는 개념이라고 합니다. 중국은 정원을 크게 만들어서 즐겼다고 합니다. 저도 북경의 이화원에서 큰 정원을 보았습니다. 일본은 분재를 만들어서 정원을 꾸몄다고 합니다. 한국은 마루나, 창문을 통해서 주변의 경치를 볼 수 있도록 집을 지었다고 합니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자연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나무의 성장을 억제하면서까지 자연을 즐기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차경의 원리를 아시고 복음을 선포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에서 참된 행복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호수 위를 걸으면서 굳센 믿음을 알려 주셨습니다. 겨자씨의 비유,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잃어버린 양의 비유도 모두 차경의 개념이라고 생각됩니다.

 

창세기는 바벨탑의 사건을 전해 줍니다. 바벨탑을 쌓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떨치고 온 지면에 흩어지지 않으려 했습니다. 이는 하느님보다 자신들을 더 높이고자 하는 교만과 자기중심적인 욕망을 드러냅니다. 바벨탑 사건은 하느님의 창조 목적과 섭리를 불신하고 거역하는 인간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홍수 이후에도 인간은 여전히 하느님을 신뢰하지 않고 자신들의 힘으로 생존과 번영을 이루려 했습니다. 바벨탑은 단순히 높은 건축물을 넘어 제사를 드리는 신전의 역할을 했습니다. 이는 예배의 본질을 왜곡하고, 하느님이 아닌 자신들을 위한 종교적 행위를 하려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21세기의 인간은 또 다른 바벨탑을 만들려고 합니다. 인간의 지능을 초월하는 초지능을 만들려고 합니다. ‘AI’는 스스로 학습하는 인공지능입니다. 이미 많은 부문에서 인간의 능력을 추월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창조물인 인간이 선과 악을 아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듯이, 하느님의 창조물인 인간이 바벨탑을 만들었듯이, 인공지능이 선악과를 먹으면, 바벨탑을 만들면 인간의 문명과 인간의 문화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할 것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태어나서 1년 이내에 16가지 이상의 예방 주사를 맞는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예방 주사를 맞기 때문에 질병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방 주사를 통해서 깨끗해진 아이들은 면역체계가 약해지기 때문에 새로운 질병에 쉽게 노출된다고 합니다. 많은 아이가 비염, 아토피, 각종 알레르기에 걸린다고 합니다. 너무나 깨끗해진 아이들의 몸이 그런 질병을 이겨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몸은 아직도 4만 년 전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의 환경은 급속하게 변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너무 많이 먹고, 너무 적게 움직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당뇨, 고혈압, 심장질환, 비만이라는 새로운 질병과 싸우게 됩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게임, 텔레비전, 컴퓨터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일주일에 하루는 들판의 꽃도 보게 하고, 도토리도 줍게 하고, 흐르는 물에 발도 적셔 보게 하면 좋겠습니다. 머리로 세상을 살기보다는 가슴으로, 몸으로 세상을 살 수 있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그래야만 예방 주사 때문에 오히려 약해진 우리의 몸과 마음이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시몬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에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아 주었다. 너는 나에게 입을 맞추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줄곧 내 발에 입을 맞추었다.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부어 발라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부어 발라 주었다.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이 여자는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우리를 하느님께로 이끄는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이기적인 사랑이 있고 이타적인 사랑이 있습니다. 이기적인 사랑은 되돌려 받으려는 사랑입니다. 이타적인 사랑은 조건이 없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개인적인 사랑이 있고 사회적인 사랑이 있습니다. 개인적인 사랑도 숭고합니다. 그 사랑이 가정을 이루고, 그 사랑이 우리 삶의 바탕이 됩니다. 사회적인 사랑은 정의와 공정이 함께 하는 사랑입니다. 그런 사랑은 평화로 열매 맺습니다.

 

바리사이파라는 직분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자이며 성직자라는 신분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사랑하고, 존재하는 모든 걸 사랑하는 겁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야기합니다. ‘그러니 말에서나 행실에서나 사랑에서나 믿음에서나 순결에서나, 믿는 이들의 본보기가 되십시오. 이렇게 하면 그대뿐만 아니라 그대의 말을 듣는 이들도 구원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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