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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4주간 화요일,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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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4주간 화요일,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 루카 7,11-17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우리가 살면서 마주하게 되는 여러 일 중에 가장 슬픈 것은 아마도 소중한 사람, 너무도 사랑하는 사람을 이 세상에서 떠나보내는 일일 것입니다. 불의의 사고로 갑자기, 그것도 젊은 나이에 떠났다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슬픈 것은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일입니다. 부모는 죽으면 땅에 묻지만 자식은 죽으면 가슴에 묻지요. 또한 부모를 잃은 자녀는 고아라고 부르고, 배우자를 잃은 사람은 과부 혹은 홀아비라고 부르지만, 자식을 잃은 부모는 그 슬픔과 아픔이 얼마나 깊은지 가늠할 수 없어서 마땅히 부를만한 이름조차 없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그러니 오늘 복음에 나오는 과부는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을까요?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버리고 힘들게 홀로 키운 외아들이,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이자 희망 자체인 존재가 세상을 떠나버렸으니 삶을 살아갈 의지조차 꺾여버렸을 겁니다. 그런 그녀의 신세가 얼마나 딱하고 안타까웠으면 같은 고을에 사는 사람들이 큰 무리를 지어 그 아들의 장례행렬에 함께 했을 정도였지요.
예수님도 그 과부를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습니다. 그래서 그 행렬 앞으로 나아가 관에 손을 대시어 걸음을 멈추게 하십니다. 그리고는 그 아들이 누워있는 관을 향해 큰 소리로 외치시지요.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그러자 죽었던 아들이 다시 살아났고 예수님께서는 그를 그 어머니 품에 돌려 주십니다. 우리의 슬픔과 아픔에 깊이 공감하시는 예수님의 자비가 만든 놀라운 기적입니다. 그 어머니가 예수님께 죽은 아들을 살려달라고 직접적으로 청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처지를 안쓰럽게 여기신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꼭 필요하며 가장 중요한 것을 알아서 채워주신 것이지요. 그것이 바로 주님께서 우리를 돌보시는 방식입니다. 우리가 당신께 달라고 졸라대는 것을 주시어 당장의 탐욕을 채워주시기보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을 알아서 주심으로써 우리 삶 자체를 충만하게 채워주시는 겁니다.
주님께서 큰 소리로 외치신 그 말씀이 계속해서 우리 마음을 울립니다.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하느님 앞에서는 모든 이가 살아있는 존재이듯, 주님 앞에서는 모든 이가 참된 기쁨과 행복을 한창 누릴 ‘젊은이’입니다. 그런데 그런 젊은이로 살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행해야 합니다. 하나는 주님 말씀을 귀기울여 듣고 마음 깊이 새김으로써 영적으로 깨어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나태함과 안일함에 빠져 무기력하게 누워있지 말고, 즉시 일어나 주님께서 바라시는 뜻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때로는 세상의 풍파에 휩쓸려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넘어져도 괜찮습니다. 넘어지는 것이 죄가 아니라 절망에 빠져 그대로 누워있는 것이 죄니까요. 어제 나의 약함과 부족함 때문에 넘어졌더라도, 오늘 주님 말씀으로 힘을 얻고 다시 일어나 힘차게 그분 뜻을 실천하며 살면 됩니다. 그러면 당신 백성을 찾아오시어 함께 하시는 자비의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