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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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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모임 활성화를 위해서 형제님들과 친교 모임을 가졌습니다. 어색함을 풀기 위해서 차를 마시며 대화했습니다. 대화 중에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가 생각났습니다. 4명이 모두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2명은 저의 중학교 후배였습니다. 낯선 미국 땅에서 그것도 46년 전에 졸업했던 중학교의 후배를 만났습니다. 같은 학교를 나왔다니 더 반가웠습니다. 학교 선생님 이야기, 운동장과 도서관 이야기, 걸어서 가는 길에 보았던 풍경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1명은 저와 고향이 같았습니다. 고향에 있던 성당 이야기, 고향길에 있었던 시냇가 이야기, 함께 알고 있는 신부님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언젠가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서 만나게 된다면 이런 기분일 것 같습니다. 성지순례 갔던 이야기, 성당에서 봉사했던 이야기, 뜻하지 않는 사고로 함께 고통을 나누었던 이야기, 이웃의 기도와 배려 덕분에 슬픔을 이겨냈던 이야기를 할 것 같습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날지 모르니 지금 만나는 사람에게 선을 베풀면 좋겠습니다. 지금 만나는 사람의 좋은 점을 이야기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성서 말씀은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독서에서 우리는 나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올리브 나무는 나무의 왕으로 세운다고 하니 싫다고 합니다. 좋은 기름을 만들어야 하는데 굳이 힘든 왕을 하겠느냐고 거절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왕이 되고 싶어 합니다. 무화과나무는 좋은 열매를 만들어야 하는데 굳이 힘든 왕을 하겠느냐고 거절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왕이 되고 싶어 합니다. 포도나무는 맛있는 포도를 만들어야 하는데 굳이 힘든 왕을 하겠느냐고 거절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왕이 되고 싶어 합니다. 결국 아무런 기름도, 과일도, 포도도 맺지 못하는 가시나무가 왕이 되겠다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가시나무는 왕이 되겠다고 합니다. 정말 많은 사람이 헛되고, 힘든 권력이라는 탑을 향해 올라가려 합니다. 앞서가는 사람을 가시로 찌르고, 뒤에 오는 사람을 가시로 찌르면서 허황된 탑을 향해 기를 쓰고 올라가려 합니다. 복음에서 우리는 포도원 소작인의 품삯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능력과 성과에 따라서 임금을 받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좋은 대학을 나오려 하고, 좋은 학과를 나오려고 합니다. 그래서 다양한 경험을 쌓으려고 합니다. 그런 경쟁과 긴장이 있기에 인류는 자본주의라는 배를 타고 산업혁명이라는 바다를 건넜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풍요와 발전은 성과에 대한 보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도전에 대한 응전으로 발전하였습니다. 물론 우리는 자본주의와 물질 만능주의가 가져오는 공존의 그늘도 알고 있습니다. 부유한 사람은 더욱 부유해지고,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해지는 악순환도 있습니다. 무한할 것 같은 자원을 마구 사용하면서 지구를 황폐하게 만들었습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병들게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새로운 이야기를 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선한 사람에게나 악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리시고, 햇빛을 주신다고 이야기하십니다. 오전부터 일한 사람에게도, 점심부터 일한 사람에게도, 저녁에 잠깐 일한 사람에게도 같은 임금을 주신다고 이야기하십니다. 경쟁과 긴장도 좋지만, 복지와 나눔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십니다. 세상의 기준은 ‘능력’과 ‘성과’로 평가하지만, 하느님 나라의 기준은 ‘사랑’과 ‘은총’입니다. 오늘 기념하는 성 베르나르도 성인은 프랑스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세상의 명예를 버리고 시토 수도회에 입회하였습니다. 그분은 수도자들을 성실함과 절제의 길로 이끌었고, 교회의 분열을 막기 위해 유럽을 다니며 평화의 사도로 살았습니다. 그 삶은 마치 자신이 올리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처럼 열매 맺는 삶에 충실하겠다는 고백처럼 느껴집니다. 그는 ‘왕이 되는 자리’보다,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무는 자리’를 선택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누는 이 자리도 어쩌면 작은 하느님 나라의 모형입니다.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는 능력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 덕분입니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이 사람과도 언젠가 천국에서 함께 웃으며 지난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입니다. “아, 그때 성당에서 함께 반 모임 갔었죠?” “성가대에서 봉사했었잖아요?” “어려울 때 기도해 주셔서 참 고마웠어요.” 이렇게 말입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합니다. 지금 만나는 사람에게 선을 베푸는 겁니다. 지금 만나는 사람의 좋은 점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리고 성 베르나르도 성인처럼, 높아지는 삶보다 깊어지는 삶을 선택하는 겁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