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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9주간 월요일, 성녀 클라라 동정 기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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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9주간 월요일, 성녀 클라라 동정 기념] 마태 17,22-27 “우리가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
예수님과 제자들이 카파르나움에 도착했을 때, 예수님께서 ‘성전세’를 내셔야 하는가 라는 문제가 사람들 사이에서 논란이 됩니다. 성전세는 광야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께서 머무르시는 거룩한 장소, 곧 ‘만남의 천막’을 유지, 보수하기 위해 스무살 이상의 유다인 남자 모두에게 반 세켈씩 걷었던 전통이 예수님 시대에까지 이어진 것이지요. 예루살렘 성전의 유지와 보수를 위해, 그리고 희생제사에 쓰이는 제물의 관리를 위해 비용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전에서 일하는 사제나 제관들은 성전세를 납부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성전은 ‘하느님의 집’이고, 사제와 제관들은 하느님을 위해 봉사하는 일꾼들이니, ‘하느님의 일’을 하는 일꾼들은 그 일을 하는데에 필요한 세금을 납부할 의무를 관면해 준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성전세와 관련해서 논란이 된 것은 그분의 ‘신원’ 때문입니다. 많은 군중들이 믿는대로 예수님이 하느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가 맞다면, 엄연히 하느님의 일을 하시는 그분의 ‘일꾼’일진데 그런 분에게 성전세를 부과하는게 맞는지 갑론을박이 벌어진 것이지요. 사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시니, ‘아버지께 기도하는 집’인 성전의 주인이십니다. 그런 예수님의 신원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성전세를 납부하실 이유가 없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전세를 내신 이유는 그분께서 세례를 받으신 이유와 비슷합니다. 그분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것은 그렇게 하여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의로움’을 이루시기 위함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성전세를 내신 것은 모세를 통해 전해진 하느님 말씀에 순명함으로써 그분 뜻이 이 세상에 이루어지게 하기 위함인 것이지요.
또한 예수님께서 성전세를 내신 다른 이유는 당신을 반대하고 배척하는 유다인들을 위해서입니다. 이를 구체적으로 이렇게 표현하시지요. “우리가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 이 구절을 원문 그대로 직역하면 “그들을 걸려 넘어지게 하지 않도록”이라는 뜻입니다. 즉 예수님은 당신이 하시는 사소한 말 한 마디, 평범한 행동 하나도 그것을 보는 이들이 시기와 질투, 오해와 미움으로 걸려 넘어져 죄를 짓게 만드는 ‘스캔들’이 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하신 겁니다. 걸려 넘어지는 것 자체는 당신 탓이 아니라 당신 말씀과 행동을 왜곡해서 바라보는 그들의 탓이지만,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여 당신 나라에 초대하고자 하시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고자 하신 것이지요.
다만, 그들을 위한 배려가 당신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에게 또 다른 스캔들이 되지 않도록, 그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놀라운 방법으로 성전세를 내십니다. 갈릴래아 호수에서 고기를 잡아 그 입안에 들어있던 돈으로 성전세를 내신 겁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 믿는 제자들의 믿음을 지켜주시는 한편, 우리가 하는 ‘봉헌’은 내 능력과 힘으로 마련한 것을 하느님께 억지로, 마지못해 바치는 게 아니라, 하느님께서 나를 위해 손수 마련해주신 것을 마땅히 하느님께 돌려 드리는 일임을 알려 주시지요. “야훼이레”의 신비이자 하느님 사랑의 섭리가 예수님의 순명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우리도 그런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야겠습니다. 나의 말과 행동이 다른 이를 죄짓게 하지 않도록 삼가고 조심하는 한편, 하느님의 뜻을 적극적으로 실천함으로써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가 오게 하는데에 이바지해야겠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