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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하느님 중심의 삶 “분별력의 지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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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8.11.월요일 성녀 클라라 동정(1194-1253) 기념일
신명10,12-22 마태17,22-27
하느님 중심의 삶 “분별력의 지혜”
"주여, 당신의 집에 사는 이는 복되오니, 길이길이 당신을 찬미하오리다."(시편84,5)
아침 성무일도시 시편 성구와 더불어 다음 동정녀 축일의 찬미가도 아름다웠습니다. 오늘 기념하는 성녀 글라라를 두고 하는 찬미가처럼 들립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을 확고히 해 줍니다.
"꿋꿋이 우리주를 높이기리며 오롯이 한생바친 동정성녀여 지금은 성인들의 반열에들어 영원한 그행복을 누리시도다."
제가 좋아하는 “하늘과 산”의 수도원 로고를 휴대폰에 붙여 드리며 강조하는 내용들입니다. “이 로고를 볼 때 마다, 하늘보고 땅보고, 기도하라 일하라, 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기억해야할 두가지는 ‘하느님’과 ‘죽음’입니다. 하느님을 기억하고 늘 죽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 수도생활 초창기부터 늘 강조했던 주제입니다. 하느님을 찾는 삶이 바로 우리 수도자의 삶이며 하느님은 우리 삶의 목표이자 방향, 우리 삶의 중심이자 의미임을 늘 강조했습니다. 어제도 내 중심이 아닌 하느님 중심의 삶에서 나온 모든 무사한 행위들이 하늘에 보물을 쌓는 일임을 강조했습니다. 오늘 읽어보는 다산 정약용의 깨달음의 말마디에사도 그의 하느님 중심의 삶을 엿볼수 있습니다.
“황량한 귀양지에서 이렇게 마음을 다잡는다. 위기는 나의 바닥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다.” “인간의 격은 축적한 지식이 아닌, 드러난 태도로 증명된다.”
어떠한 위기의 상황에서도 반드시 살펴 볼 바 하느님 중심의 삶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은 알게 모르게 전삶을 통해 표현되기 마련입니다. 오늘 신명기의 모세도 하느님 중심의 삶을 강조합니다.
“주 너희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모든 길을 따라 걸으며 그분을 사랑하고,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섬기는 것, 그리고 너희가 잘 되도록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님의 계명과 규정들을 지키는 것이다. 보라, 하늘과 하늘 위의 하늘, 그리고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주 하느님의 것이다.”
그대로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날마다 오늘 하느님 중심의 삶을 새로이 하라는 것입니다. 오늘은 성녀 클라라 동정 기념일입니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하면 성녀 클라라가 연상될 정도로 두분의 영적 우정은 각별했습니다. 성녀의 삶에서도 하느님 중심의 복음적 삶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바로 ‘거룩한 단순성과 겸손과 가난’의 본질적 복음적 삶은 성녀가 평생 추구했던 덕목들입니다.
이탈리아 아씨시의 귀족 가문에서 장녀로 태어난 성녀는 어머니가 기도중에 세상을 밝게 비출 빛을 얻으리라는 약속을 들은후 ‘빛’을 뜻하는 ‘글라라’ 이름을 붙여 주었으며 평생 주님의 빛으로 살았습니다. 글라라는 18세 때 출가하여 스승이며 영적 아버지인 성 프란치스코를 따라 그리스도의 가난과 겸손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글라라는 성 프란치스코가 마련해 준 성 다미아노 수도원의 봉쇄 구역안에서 40년 동안 공동체를 이루어 살았고 늘 건강 때문에 고통을 받았습니다.
교회 역사상 여성 수도자로서 최초로 쓴 회칙은 성녀가 세상을 떠나기 이틀전 1253년 8월9일 교황 인노첸시아 4세로 승인을 받았고 이틀 후인 오늘 8월11일 선종합니다. 성녀는 프란치스코가 말년에 병을 앓았을 때, 1226년 성인이 선종할때까지 그를 돌보았다 합니다. 글라라 수도회의 창설자인 성녀 글라라는 사후 불과 2년만인 1255년 교황 알렉산델 4세에 의해 시성되었고, 교황 비오 12세는 1958년 글라라 성녀를 TV의 주보로 선포합니다.
참으로 하느님 중심의 삶에 오롯히 충실했던 ‘빛’이라는 이름뜻 그대로 ‘주님의 빛’으로 주변을 환히 밝혔던 참 아름다운 하느님의 성녀 글라라였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제2차 수난과 부활의 예고가 뒤따르며 제자들은 몹시 슬퍼했다 합니다. 늘 죽음을 눈앞에 환히 두고 살았던 예수님이요 더불어 하느님 중심의 삶을 새로이 했을 주님입니다.
오늘 복음은 성전 세를 바치는 문제로 여기서도 주님의 분별의 지혜가 빛납니다. 모든 덕의 어머니인 분별력의 지혜는 베네딕도회는 물론 모든 공동체의 지도자들에게, 또 모든 공동체 성원들에게 필수적 영적 덕목입니다. 베네딕도 규칙을 봐도 성인이 얼마나 디테일에 강한 분별력의 현자인지 알아 챌 수 있습니다. 한 대목만 인용합니다.
“모든 덕행들의 어머니인 분별력의 다른 증언들을 거울 삼아, 모든 것을 절도있게 하여 강한 사람은 갈구하는 바를 행하게 하고, 약한 사람을 물러나지 않게 할 것이다.”(성규64,19)
예수님은 물론 성 베네딕도는 분별력의 대가였습니다. 이런 분별력의 지혜를 지닌 이들은 결코 미풍을 태풍으로 바꾸지 않고, 태풍은 곧 미풍으로 바꿉니다. 참으로 하느님 중심의 삶에서 나오는 분별력의 지혜 은총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의 성전에 하느님의 자녀들인 제자들은 세금에서 면제되지만 시몬 베드로에게 세금 납부를 명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 호수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올라오는 고기를 잡아 입을 열어 보아라. 스타테르 한 닢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을 가져다가 나와 네 몫으로 그들에게 주어라.”
예수님을 통해 발휘되는 하느님의 전능을 상징하는 물고기 입에서 스타테르 한 닢을 발견했다는 자연이적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은 성전의 주인이기에 성전세를 바치지 않아도 되지만 당시 사회적 의무에 충실함을 보여주니 이 또한 하느님 중심의 삶에서 나오는 분별의 지혜입니다.
좌우간 주님은 불필요한 물의를 피하고자 분별력의 지혜를 발휘하여 시몬 베드로에게 세금납부를 명하십니다.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문제때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마태22,21)라는 예수님의 답변과 일맥상통합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하느님 중심의 삶을 새로이 하시며 분별력의 지혜도 지니게 하십니다.
"찬미의 제사를 바치는 이 나를 공경하나니, 옳은 길을 걷는 이에게는 하느님 구원을 보여 주리라."(시편50,23).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