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13일 (수)
(녹) 연중 제19주간 수요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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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신부님_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 것도 소유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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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5-08-10 ㅣ No.184062

 

1212년 성지주일 아시시의 부호이자 명망가였던 스티피카 공작의 대저택 뒷문으로 신부처럼 단장한 한 젊은 여인이 몰래 빠져나왔습니다.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해 도착한 곳은 자그마한 소성당, 포르지운콜라(Porziuncola, 현재 아시시 천사들의 성모 대성당 내 위치한 소성당)였습니다.

소성당 앞에는 상거지 복장을 한 프란치스코회 수사들이 촛불을 들고 마중 나와 그 젊은 여인을 성당 안으로 안내했습니다. 곧 장엄한 기도와 감미로운 성가가 교대로 울려 퍼졌고, 잠시 후 젊은 여인은 제대 앞으로 나왔고, 놀랍게도 길고 윤기 나는 머리카락이 싹둑싹둑 잘려 나갔습니다.

이른바 세상과 가족을 떠나는 작별 예식이 거행된 것입니다. 여인은 머리에 수건을 둘러썼으며, 세상의 옷을 벗고 소복으로 갈아입었고, 허리는 끈으로 동여매고, 제대 앞에 엎드렸습니다.

여인의 정체는 아시시 프란치스코를 추종하기로 결심했던 스티피 공작의 장녀 클라라였습니다. 포로지운콜라 소성당에 거행된 예식은 클라라가 부모 형제와의 인연을 끊고 프란치스코의 영적 자녀로 새로 태어나는, 이른바 착복식이었습니다.

이로써 클라라는 아시시 프란치스코의 제자들 가운데 최초의 여제자가 되었습니다. 뿐만아니라 프란치스코회에 이어 프란치스코 제2회, 다시 말해서 클라라회의 창립자가 된 것입니다.

후에 클라라는 교황 및 아시시 프란치스코의 당부에 따라 수녀회 총원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겸손함은 한결같았습니다. 그녀는 총장이었지만, 스스로를 항상 말단으로 생각했습니다. 생각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생활로서 모범을 보였습니다.

한번은 다른 수녀회를 떠나 클라라 수녀회로 넘어온 한 수녀가 있었습니다. 클라라 수녀는 그녀를 환영하는 의미에서 대야를 준비하고 물을 떠오고 그녀 발 밑에 엎드렸습니다. 정성껏 뽀독뽀독 그녀의 발을 씻겨준 다음, 그 발에 입을 맞추려고 했습니다.

너무나 당혹스러웠던 그녀는 이러시면 안됩니다, 하면서 발을 웅크리다가 실수로 클라라 총원장 수녀의 얼굴을 가격하게 되었는데, 그로 인해 클라라 수녀의 얼굴에는 만만치 않은 상처가 생겼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저 같았으면, ‘적당히 해라이~ 가만 좀 있어라이~’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클라라 수녀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활짝 웃으면서, 다시 그녀의 발을 잡아 부드럽게 친구를 했답니다.

스승 프란치스코의 영성에 따라 클라라의 가난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컸던지 그 고집은 교황님도 막지 못했습니다. 너무나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았던 클라라와 수녀들의 모습이 안타까웠던 당시 교황님은 최소한의 양식이라도 확보하기 위해 약간의 부동산을 소유하도록 권했습니다. 그러나 클라라는 끝끝내 완강히 거절했습니다.

클라라가 한평생, 혼신의 힘을 다했던 투쟁 가운데 하나가 물질과의 투쟁이었습니다. 최소한 다음 날 먹을 양식만이라도 확보해놓으면, 수도공동체는 먹는 것으로부터 걱정을 덜게 되고, 그만큼 더 열심히 관상 생활에 투신할 수 있지 않느냐는, 사람들의 의견과 맞서 클라라는 한평생 싸웠습니다. 절대로 내일을 생각하지 않게 했습니다.

클라라에게 있어 내일에 대한 보장은 오직 하느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내일을 염려하는 사람들에게 클라라는 언제나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조차 없다”는 주님의 말씀만 되풀이 해주었습니다.

클라라는 ‘거룩한 가난’과 얼마나 깊이 관계를 맺고 사랑했던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소유를 단호히 거부하였습니다. 자신의 영적인 딸들에게도 무엇 하나 가지기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사랑하는 자신의 딸들이 오직 예수님만 사랑하고, 그분께만 마음을 쓰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성 보나벤투라는 클라라에 대해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그녀는 프란치스코의 정원에 핀 첫 꽃송이로서 마치 빛나는 별처럼 반짝였으며, 희고도 순수한 봄꽃과도 같이 향기로웠습니다. 그녀는 그리스도 안에 프란치스코의 딸이었으며 가난한 클라라회의 창설자였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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