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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진 신부님_<재림과 심판에 대비해야 하는 때는 바로 ‘지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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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루카 12,35-40).”
1) 허리에 띠를 매는 것은, 일을 할 준비를 하는 것, 또는 여행을 할 준비를 하는 것을 뜻합니다. 등불을 켜 놓고 있는 것도 일을 할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는 것은, 여기서는,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잘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을 뜻합니다. 회개와 충실한 신앙생활이 그 준비입니다. 이 준비는 종말에 대한 대비이기도 하지만, 각 개인의 임종에 대한 대비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 언제 부르실지 알 수 없지만, 부르시면 한 사람도 예외 없이 곧바로 가야 합니다. 잘 준비되어 있는 사람은 기쁜 마음으로 갈 것이고, 준비가 안 되어 있는 사람은 공포심에 사로잡힐 것입니다.>
2) 주인이 혼인 잔치에서 돌아온다는 말은, 언제 올지 모른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다른 뜻은 없습니다. 주인이 문을 두드린다는 말에서 다음 말씀이 연상됩니다.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묵시 3,20).” 묵시록에서는 ‘그의 집’이라고 표현되어 있지만, 루카복음에서 주인이 문을 두드리는 집은 ‘주인의 집’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집’에 오시는 손님이 아니라, 당신 집에 오시는 ‘주인이신 분’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 문을 열어 드리는 것은, 내가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종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 주인이 종들을 식탁에 앉게 하고 시중을 들 것이라는 말은, 하늘나라에서 최고의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묵시록에 있는 다음 말씀에 연결됩니다. “승리하는 사람은, 내가 승리한 뒤에 내 아버지의 어좌에 그분과 함께 앉은 것처럼, 내 어좌에 나와 함께 앉게 해 주겠다(묵시 3,21).”
3)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은, “도둑이 몇 시에 오는지는 몰라도 온다는 것이 확실하다는 것을 집주인이 알면”입니다. <종말과 재림이 언제인지는 몰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종말과 재림의 날’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형제 여러분, 그 시간과 그 때에 관해서는 여러분에게 더 쓸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의 날이 마치 밤도둑처럼 온다는 것을 여러분 자신도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평화롭다, 안전하다.’ 할 때, 아기를 밴 여자에게 진통이 오는 것처럼 갑자기 그들에게 파멸이 닥치는데, 아무도 그것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어둠 속에 있지 않으므로, 그날이 여러분을 도둑처럼 덮치지는 않을 것입니다(1테살 5,1-4).”
4)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일부러 갑자기’ 재림하신다는 뜻은 아니고, 종말과 재림과 심판의 날이 언제인지 계산하거나 예측하지 말고, 평소에 잘 준비하라는 뜻입니다. <평소에 잘 준비하고 있는 사람은, 종말과 재림과 심판이 갑자기 이루어지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종말과 재림과 심판의 날이 언제인지는, 인간의 능력으로 계산하거나 예측할 수 없습니다(마르 13,32). 따라서 종말의 날을 계산해서 알아냈다고 선전하는 자들은 백 퍼센트 사이비 종교입니다.
5) ‘깨어 있음’의 반대는 ‘잠들어 있다.’와 ‘취해 있다.’입니다. 뒤의 21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그리고 그 날이 너희를 덫처럼 갑자기 덮치지 않게 하여라(루카 21,34).” <이 말씀은, 평소에 깨어 있는 사람에게는 그 날이 덫처럼 갑자기 덮치는 날이 되지는 않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이제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잠들지 말고,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도록 합시다. 잠자는 이들은 밤에 자고 술에 취하는 이들은 밤에 취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낮에 속한 사람이니, 맑은 정신으로 믿음과 사랑의 갑옷을 입고 구원의 희망을 투구로 씁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진노의 심판을 받도록 정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차지하도록 정하셨습니다(1테살 5,6-9).” <깨어 있지 않고 잠들어 있는 것은, 영혼 구원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현세적인 것만 신경 쓰면서 사는 것입니다. 또 깨어 있지 않고 ‘취해 있는 것’은,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집착하고, 그것만 가지려고 욕심을 부리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심판도 영혼의 구원도 모두 외면하고 살면서, 권력에 대한 욕망과 재물에 대한 탐욕에 빠져 있는 것, 그것은 심각하게 취해 있는 것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연중 제19주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