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12일 (화)
(녹) 연중 제19주간 화요일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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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기도는 나만의 보물을 확인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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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봉 [gloria7] 쪽지 캡슐

2025-08-09 ㅣ No.184036

 

 

  

 

 

2025년 다해 연중 제19주일

 

 

 

<기도는 나만의 보물을 확인하는 시간>

 

 

 

복음: 루카 12,32-48

 

 

 


LORENZETTI, Pietro 작, (1325)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요? 단순히 밤에 잠을 자지 않는다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깨어 있지 못함이란, 정말 중요한 핵심을 놓치는 어리석음을 말합니다. 스페인에서는 47층짜리 초고층 건물을 지으면서 엘리베이터 설계를 빠뜨리는 황당한 일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17세기 스웨덴에서는, 국왕의 욕심 때문에 대포를 너무 많이 실은 군함이 출항하자마자 균형을 잃고 가라앉기도 했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날까요? 돈에 대한 집착이 엘리베이터의 필요성을 잊게 만들고, 과시욕과 교만이 배의 균형이라는 기본을 무시하게 만든 것입니다. 저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군 복무 시절 운전을 하다가 그만 사고를 내고 말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길을 건너던 예쁜 유치원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한눈을 팔았기 때문입니다. 순간의 즐거움에 마음을 빼앗겨 안전이라는 더 큰 가치를 놓친 것입니다.

 

 

    우리의 눈을 가리고, 정말 중요한 것을 잊게 만드는 것. 가톨릭 교회는 이를 ‘세속과 육신과 마귀’의 유혹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오늘 루카 복음은, 바로 이 ‘깨어 있지 못함’의 가장 큰 증거가 ‘나눌 줄 모르는 마음’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가진 것을 팔아 자선을 베풀어라. 너희 자신을 위하여 해지지 않는 돈주머니와 축나지 않는 보물을 하늘에 마련하여라. 거기에는 도둑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좀이 쏠지도 못한다.” (루카 12,33)

 

 

    우리는 왜 나눔과 절제의 가치보다 순간적인 욕망의 가치를 더 크게 여길까요? 그것은 우리의 마음이 이 세상의 것들에 매여 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 역시 사제가 되기 전부터 강론을 써서 나누는 일을 저만의 자선으로 실천해 왔습니다. 하지만 첫 주임으로 사목하다 지쳐 교구청에 들어왔을 때, 몇 년간 그 나눔을 멈추었습니다.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는 삶이 주는 안락함은 달콤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제로서 깨어 있지 못한 삶이었습니다. 

 

 

    다시 영성관으로 오면서, 강론을 쓰지 않는 제 모습이 점점 더 불안하게 느껴졌습니다. 바로 그때, 이 말씀이 제 가슴을 비수처럼 찔렀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 종이 마음속으로 ‘주인이 늦게 오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하인들과 하녀들을 때리고 또 먹고 마시며 술에 취하기 시작하면,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그를 처단하여 불충실한 자들과 같은 운명을 겪게 할 것이다.” (루카 12,45-46)

 

 

    이 말씀이 제 마음에 들어오자, 더 이상 강론을 나누지 않고는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죽을 때까지 사제로서 말씀을 나누겠다’는 결심이 제 안에 새로운 빛을 밝혔고, 그 빛이 저를 변화시켰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은 바로 우리 안에 있는 ‘보물’입니다. 말씀이 나의 보물이 될 때, 비로소 우리는 깨어 있을 수 있습니다.

 

 

    런던의 거리에서 마약에 중독된 채 살아가던 노숙자, 제임스 보웬의 이야기를 아실 겁니다. 세상은 그를 없는 사람 취급했고, 그 자신도 스스로를 ‘쓸모없는 중독자’, ‘거리의 쓰레기’라 부르며 절망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그는 자신의 허름한 거처 복도에서 상처 입은 길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합니다. 그 순간, 그의 얼어붙었던 마음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렸습니다. 그는 며칠을 굶어야 할지도 모르는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고양이의 치료비를 냈고, ‘밥(Bob)’이라는 이름도 지어주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그는 더 이상 ‘쓸모없는 노숙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한 생명의 ‘보호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정체성이 바뀐 것입니다. ‘보호자’라는 새로운 정체성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었습니다. 이제 그는 자신만이 아니라, 밥도 먹여 살려야 했습니다. 밥을 어깨에 메고 버스킹을 하자, 놀랍게도 사람들은 더 이상 그를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마약 중독자’가 아니라 ‘어깨에 고양이를 멘 특별한 남자’를 보았습니다.

 

 

    세상의 시선이 바뀌자, 그 자신도 스스로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마약을 끊기로 결심합니다. 지옥 같은 금단 증세가 찾아올 때마다, 그는 곁에서 조용히 온기를 나누어주는 밥을 보며 다짐했습니다. ‘나는 밥의 보호자다. 나는 무너질 수 없다.’

 

 

    무엇이 제임스를 다시 살게 했을까요? 그의 의지력이 강해서였을까요? 아닙니다. 그는 자신을 ‘노숙자’라는 낡은 정체성 안에 가두는 대신, ‘보호자’라는 새로운 삶을 살게 해 준 새로운 ‘보물’, 밥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그 이유를 정확히 알려주십니다.

    “사실 너희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 (루카 12,34)

나의 보물이 있는 곳에 나의 마음이 머물고, 나의 마음이 머무는 곳이 바로 내가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나의 보물이 돈에 있다면 나는 이 땅에 속한 사람일 것이고, 나의 보물이 말씀과 나눔에 있다면 나는 하늘에 속한 사람일 것입니다.

 

 

    신자 여러분, 여러분의 보물은 무엇입니까?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를 지녔다고 믿는 것, 그것이 여러분의 보물입니다. 저에게는 그것이 말씀과 성체입니다. 그리고 이 보물을 다시금 들여다보고, 그 가치를 되새기고, 더 깊이 끌어안는 시간이 바로 ‘기도’입니다.

 

 

    귀한 보물이 생긴 사람은 그 보물을 수시로 들여다보고, 만져보고, 확인하지 않겠습니까? 남의 밭에 묻힌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사지 않습니까? 기도가 바로 이와 같습니다. 

 

 

    기도는 내 삶의 주인이 누구인지, 내 가장 소중한 보물이 무엇인지 날마다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의 마음은 세상의 중력에 이끌려 다시 땅으로, 세속의 가치로 떨어지고 맙니다. 기도는 바로 그 마음을 하느님께서 계시는 하늘로 들어 올리는 거룩한 행위입니다.

 

 

    오늘부터 기도하실 때마다, 하늘의 보물이신 하느님 아버지와 그분의 거룩한 뜻을 내 마음의 저울 위에 올려놓는다는 생각으로 정성을 다해 보십시오. 그러면 우리는 날마다 조금씩 더 잠에서 깨어나, 기쁘게 베푸는 사람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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