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6일 (일)
(녹) 연중 제14주일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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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진 신부님_<신앙인의 충실한 신앙생활 자체가 복음 선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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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08:23 ㅣ No.183272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같은

집에 머무르면서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마라.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면 차려 주는

음식을 먹어라. 그곳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하고 말하여라(루카 10,2-9).”

1) 신앙인은 아버지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성령께서 몸소,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우리의 영에게

증언해 주십니다. 자녀이면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상속자입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인

것입니다(로마 8,16-17ㄷ).”

자녀는 곧 상속자이기 때문에

‘아버지’의 일은 곧 자녀의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의 일꾼과 하느님의 자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들은 모두 하느님의 일꾼입니다.

따라서 ‘선교활동’은 하느님의 자녀들을 찾는 활동이기도

하고, 하느님의 일꾼들을 모집하는 활동이기도 합니다.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라는 말씀은, “사람들이 믿고 회개해서 구원받을 수 있도록

사람들을 인도해 주십사고 하느님께 청하여라.”입니다.

<이 말씀은, 선교활동은 ‘기도하면서’ 해야 하는 활동이라는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2)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라는 말씀은,

‘이리 떼’를 ‘양들’로 변화시키라는 지시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을 회개시키고

‘구원의 길’로 인도하라는 지시입니다.>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는

‘이리 떼’를 ‘양들’로 변화시키는 방법에 관한 말씀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이들’이 세속의 물질에 의지하지 않고

하느님에게만 의지하는 모습 자체가, 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데도 내적 평화를 누리면서 사는 모습 자체가,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는 복음이 되고, 신앙의 증언이 됩니다.

만일에 복음을 전하는 이들이 돈 걱정을 하고 있다면,

그들이 전하는 복음은 복음이 아니고, 그들의 증언은

신앙의 증언이 아닙니다.

<돈 걱정이나 하고 있는 이들이 전하는 ‘기쁜 소식’은

기쁜 소식이 아니라 ‘걱정스러운 소식’이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신앙에 대해서 말한다고 해도, 믿음을 증언하는 일이

되기는커녕 믿음을 부정하는 일이 되어버립니다.>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라는 말씀은,

‘세속 일’에 연연하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7절-9절의 말씀은, 복음을 전하는 이들이 돈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이유, 또는 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에 대한 말씀입니다.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일꾼을 당연히 먹이신다.”입니다.

“너희를 받아들이면”은, “너희를 받아들여서

음식과 숙소를 제공하면”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이들을 받아들여서 음식과 숙소를 제공하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일꾼들을 먹이기 위해서

보내 주신 천사와도 같은 사람입니다.

“같은 집에 머무르면서”와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마라”는, 더 좋은 대접을 받기를 바라면서 옮겨 다니지 말고

‘주는 대로’ 먹으라는 가르침입니다.

3)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라는 말씀은, 선교활동은 ‘하느님의 평화’를

전해 주는 일이라는 가르침입니다.

<세상 사람들을 상대로 싸우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느님의 평화’는 구원받은 사람들이 누리는 평화를

가리키고, 하느님 나라의 구원, 영원한 생명, 영원한 기쁨과

행복 등을 총체적으로 나타내는 말입니다.

평화를 전해 주는 방법은 평화밖에 없습니다.

자기 자신이 먼저 평화를 누리고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돈 걱정을 하고 있는 사람은 이미 그 평화를 잃은 사람이고,

그런 사람은 남에게 하느님의 평화를 전해 줄 수 없습니다.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은, “복음을

받아들여서 믿으면”이고,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는,

“구원을 받을 것이고”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는, “복음을

전해 주는데도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하고 배척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구원받지 못하는 것은 그 사람 자신의

책임이고, 너희의 책임은 아니다.” 라는 뜻입니다.

4)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라는

선포는,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선포입니다.

<종말의 심판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선포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늦기 전에 빨리 회개하고 믿으라는 선포입니다.

이 선포는 예수님의 첫 복음 선포와 같은 것인데(마태 4,17),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뒤에는 예수님의 부활에

복음의 초점이 맞추어지게 됩니다.

<처음에는 ‘회개와 믿음’을 강조했고, 부활 후에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바뀌었는데,

그래도 복음의 핵심 내용이 바뀐 것은 아닙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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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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