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6일 (일)
(녹) 연중 제14주일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를 것이다.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주님의 제자, 주님의 일꾼 “평화와 기쁨, 희

스크랩 인쇄

선우경 [forgod] 쪽지 캡슐

07:39 ㅣ No.183267

2025.7.6.연중 제14주일                                         

 

이사66,10-14ㄷ 갈라6,14-18 루카10,1-12.17-20

 

 

주님의 제자, 주님의 일꾼

“평화와 기쁨, 희망과 위로, 십자가와 새창조의 사람”

 

 

“온땅은 춤추며 하느님을 기리라.”

오늘 미사중 화답송 후렴이 참 흥겹습니다. 이어지는 시편도 우리의 신명을 북돋웁니다.

“그이름을 노래하여라, 빛나는 찬미를 당신께 드려라.

 너희는 주께 아뢰어라, 당신이 하신일이 얼마나 놀라운고”

 

찬미와 놀라움의 영적 감수성이 참으로 절실한 시대입니다. 주님의 제자이자 주님의 일꾼인 우리들이 마땅히 지녀야 할 영적 감수성입니다. 연중 제14주일 아침 성무일도 즈카르야의 노래 후렴도 어제 저녁기도 마리아의 노래 후렴과 동일했습니다.

“추수할 것은 많으나 일꾼이 적으니, 추수할 일꾼을 보내달라고 주님께 청하여라.”

 

예나 이제나 여전히 추수할 주님의 일꾼은 적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일입니다. 추수할 일꾼을 청함은 물론 우리가 먼저 주님의 제자이자 일꾼으로서 주어진 책임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막연한 사랑이나 믿음이 아니라, 책임을 다하는 사랑, 책임을 다하는 믿음입니다. 쏜살같이 흐르는 세월입니다. 모두가 한때입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주님의 제자로, 주님의 일꾼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떻게? 오늘 말씀이 그 길을 알려줍니다.

 

첫째, 평화와 기쁨입니다.

평화와 기쁨의 일꾼으로 파견되는 주님의 제자들입니다. 주님의 파견 명령이 그대로 오늘 우리에게 주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돈 주머니도 여행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집에 평화를 빕니다.’하고 말하여라.”

 

말그대로 무소유의 정신은 절실합니다. 곳곳에 산재한 형제들의 환대에 의존하면서, 소유가 아닌 존재의 삶, 홀가분한 자유로운 삶일 때 주님의 일을 잘 수행할 수 있겠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참 좋은 선물이 주님의 평화입니다. 우리 선교의 자리 오늘 지금 여기가 예루살렘입니다. 이사야서 말씀이 기쁨으로 넘치게 합니다. 평화의 기쁨입니다.

“보라, 내가 예루살렘에, 평화를 강물처럼 끌어들이리라.”

 

바로 주님의 강물같은 평화의 통로가 되는 삶이자 선교입니다. 파견과 귀환은 삶의 리듬입니다. 파견됐던 일흔 두 제자가 귀환하여 기쁘게 보고하자 주님의 답이 우리에게도 큰 격려와 힘이 됩니다. 흡사 이 거룩한 미사전례가 귀환의 기쁨을 보고하고 노래하는 장처럼 생각됩니다. 그대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힘을 억누르는 권한을 주었다. 이제 아무것도 너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주님 친히 보호자와 방패가 되어 주시니 천하무적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이 참기쁨의 소재를 알려줍니다.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완전히 하느님께 소속됨에서 오는 기쁨이요 이를 확인하는 거룩한 미사전례시간입니다. 이런 숨겨진 기쁨의 샘에서 샘솟는 평화요 기쁨입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늘로부터 오늘 참 기쁨입니다.

 

둘째, 희망과 위로입니다.

바빌론 유배후의 절망적 상황에서 희망과 위로를, 기쁨을 노래하는 희망과 위로의 예언자 이사야입니다. 예루살렘이 상징하는 바, 우리가 몸담고 있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입니다. 그대로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시는 감로수같은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이들아! 모두 그와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그 위로의 품에서, 젖을 빨아 배부르게 되리라. 너희가 그 영광스러운 가슴에서 젖을 먹어 흡족해지리라.”

 

우리 교회는 늘 자비로운 어머니의 품같습니다. 사랑 가득한 어머니의 품, 이 거룩한 미사잔치에서 받는 주님의 은혜가 차고 넘칩니다.

“너희는 젖을 빨고 팔에 안겨 다니며, 무릎위에서 귀염을 받으리라. 어머니가 제 자식을 위로하듯, 내가 너희를 위로하리라.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라.”

 

위로의 주님이요 위로의 교회입니다. 희망의 주님 자체가 우리에게는 위로가 됩니다. 우리를 위로하는 희망입니다. 그러니 주님의 제자이자 일꾼답게 주님의 희망과 위로가 되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셋째, 십자가와 새창조입니다.

주님 십자가와 부활의 사도 바오로가 주님의 제자이자 일꾼의 빛나는 모범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와 일치된 삶입니다. 바오로의 고백을 우리의 고백으로 삼는 것입니다.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십자가에 못 박혔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만 남고 세상도 나도 없습니다. 정말 자유로운 새 창조의 삶입니다. 이 법칙을 따르는 이들에게 주님의 평화와 자비의 은총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와 일치될수록 날로 자유로워지는 새 창조의 삶입니다. 어디서나 새하늘 새땅의 삶입니다. 먼저 바뀌어져야할 것은 밖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우리입니다. 다음 바오로의 고백도 우리의 고백이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다음 바오로 사도의 고백도 평생화두로 삼고 싶을 만큼 깊은 울림을 줍니다.

“앞으로는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나는 예수님의 낙인을 내 몸에 지니고 있습니다.”

 

정도와 양상의 차이일뿐 주님의 십자가와 일치가 날로 깊어지는 분들 역시 몸에 이런 예수님의 낙인을 지니고 있을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 원장 막바지 책임을 다하고 있는 어느 도반 수녀님의 메시지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저는 지금 남은 몇 달, ‘십자가를 껴안다’라는 말을 매일 아침 되뇌이면서 성실한 마무리, 신앙인답게 마무리를 할 수 있기를 고대하며 기도합니다. 신부님도 기도해주세요.”

 

내 삶의 자리가 예루살렘이요 복음선포의 장입니다. 바로 여기 오늘 지금부터 주님의 제자답게, 주님의 일꾼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평화와 기쁨, 희망과 위로, 십자가와 새창조의 사람이 되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이 여러분의 영과 함께 하기를 빕니다.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5 1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