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6일 (일)
(녹) 연중 제14주일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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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4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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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05:05 ㅣ No.183260

학생들의 여름 캠프가 있었습니다. 23일간의 일정이었고, 저는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캠프장을 다녀왔습니다. 왕복 8시간의 긴 여정이었지만, 아이들의 밝은 얼굴을 보고, 선물도 건네고 돌아왔습니다. 문득 옛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보좌 신부였을 때, 본당 신부님께서도 멀고 먼 캠프장을 찾으러 오셨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 길고 피곤한 여정을 마다하지 않으셨던 신부님의 모습은, 어쩌면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 곁으로 오신 그 사랑과 닮아 있었습니다. 이번 캠프에는 사도회 형제님들도 함께했습니다. 미국식 식사가 익숙지 않은 아이들을 위해, 형제님들은 한식 재료를 가득 챙겨서 저녁 식사를 정성껏 준비해 주었습니다. 그 따뜻한 손길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의 자비로운 사랑처럼 보였습니다. 먹고 마시는 일처럼 소박한 일이지만, 그 안에는 희생과 헌신이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좋아하는 것에는 노력도, 헌신도 요구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랑은 다릅니다. 사랑은 희생이 있고, 헌신이 따릅니다. 그리고 사랑은 기억을 남깁니다. 시간이 지나도 그 기억은 공동체를 지탱하는 힘이 됩니다.

 

2012년에 만들었던 본당 설립 35주년 영상을 보았습니다. 13년 전의 영상입니다. 성당은, 공동체는 건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당과 공동체는 믿는 이들의 믿음과 희망 그리고 사랑이 함께 하는 삶입니다. 영상에는 공동체와 함께했던 성직자, 수도자, 교우들 그리고 아이들의 맑고 순수한 웃음이 있었습니다. 이번 캠프장에는 대학생 봉사자들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캠프에 참석했던 학생들이 대학생이 되어서 이제 봉사자로 함께 했습니다. 2년 후면 본당 설립 50주년이 됩니다. 50년 전에 씨를 뿌렸던 교우분들은 이제 공동체를 지켜 주는 든든한 후원자가 되셨습니다. 그때 아이들은 사목 위원과 봉사자가 되어서 공동체를 받쳐주는 기둥이 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으로 전임 사제 두 명이 저의 동창 신부님입니다. 3번 연속 동창 신부가 본당 신부로 오게 되었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이야기한 것처럼 도미니꼬 신부는 성전을 건립하였고, 안드레아 신부는 코로나 팬데믹을 이겨냈습니다. 저는 50주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동체를 이끄시는 분은 하느님이심을 믿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야곱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면서 내가 무사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해 주신다면, 이 돌은 하느님의 집이 될 것입니다.” 그 돌은 기념 기둥이 됩니다. 저도, 우리 공동체도 50여 년의 세월 속에서 하느님께서 함께하셨다는 기억의 기둥을 세우고 있는 셈입니다. 건물은 시간이 지나면 낡아지고 허물어질 수 있지만, 하느님과의 만남은 우리 안에 살아 있는 성전이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우리는 한 여인과 한 소녀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열두 해 동안 병을 앓은 여인은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댑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또한 죽은 소녀의 손을 잡으시며 말씀 없이 생명을 불어넣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나옵니다. 사람들은 비웃었지만, 믿음은 죽음보다 강했고, 그 소녀는 다시 살아났습니다. 오늘 우리는 믿음의 본질에 대해 다시 성찰합니다. 믿음은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한 여인처럼, 우리도 보이지 않는 희망을 붙들고 옷자락을 만져야 합니다. 그 믿음은 우리를 구원하고 일으켜 세웁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여정은, 사랑과 헌신의 자취를 남깁니다.

 

우리는 지금도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기념 기둥을 세워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고 헌신한 자리마다, 하느님의 집이 지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공동체의 기둥이요, 희망의 돌입니다. 우리들의 눈물과 수고 위에 하느님의 영원한 기쁨이 피어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저와 함께 계시면서 제가 가는 이 길에서 저를 지켜 주시고, 저에게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마련해 주시며, 제가 무사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해 주신다면, 주님께서는 저의 하느님이 되시고, 제가 기념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은 하느님의 집이 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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