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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4주일 : 칼에서 배워야 할 예수님의 가르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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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더 진지하게 묵상해보고 싶습니다. 다른 것보다 한 포인트만 집중해서 보고 싶습니다. 검찰에서 전설적인 검사로 알려진 심계륜 검사의 수사 십계에 보면 나오는 마지막 말이 있습니다. '칼에는 눈이 없다'입니다. 보통 인간의 말이지만 이 말의 의미를 가지고 오늘 복음을 한번 묵상해보고 싶습니다. 심 검사의 어록에 나오는 칼의 의미는 다양한 뜻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일단 여기서 칼이 의미하는 대표적인 뜻은 피의자를 수사할 때 사용하는 수사의 기법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비록 피의자를 수사한다고 해도 칼은 수사할 부분을 잘 판단해서 그 부분만 칼이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부위를 잘 판단하는 것도 수사하는 사람의 역량입니다.
그럼 이제는 '칼에는 눈이 없다'는 의미를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혹시 그런 경험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자기가 자기 손으로 칼을 들고 사용했어도 자기 칼에 베인 적 말입니다. 저 역시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이건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하셨을 겁니다. 칼에 어떤 센서가 있어 그런 상황이 일어났을 때 자동으로 감지해서 그런 상황이 일어나기 전에 동작을 정지시킬 수 있는 상황을 연출하지 못 한다는 것입니다. 좀 더 광의적으로 말하면 칼이라는 것은 잘못 사용하면 자기도 다칠 수 있는 무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런 의미를 잘 이해하신 상태에서 오늘 복음으로 한번 들어가보겠습니다.
오늘 주일복음 전반적인 내용은 과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복음 사명을 주시면서 하셨던 파견 내용의 일부분입니다. 병자들을 고쳐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하는 복음선포를 전하라고 하십니다. 이것 외에도 다양한 것을 지시하셨지만 마지막 후반부에 보시면 원수의 힘을 억누르는 권한을 주셨습니다. 여기서 사용되는 권한은 무형적인 요소입니다. 자산도 무형자산, 유형자산이 있듯이 여기서 권한은 눈에 보이지 않는 권한입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이게 실체를 가진 모습이 있다고 인식하기 위해서는 겉으로 현실적으로 어떤 미치는 힘이 있어야만 휘두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때 사용하라고 주신 게 바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부여하신 권한입니다. 그 권한은 원수를 물리칠 상황에서 휘둘러야 하는 권한입니다. 그럴 때 그 휘두르는 권한은 정당한 권한이 될 것입니다.
설령 그런 '권원'에 의해(권원과 권한은 다른 뜻입니다) 나오는 '권한'을 사용한다고 해도 마구잡이식으로 휘둘러서는 안 됩니다. 마구잡이로 잘못 휘두르다가는 자칫 생명을 위협하는 무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메스가 수술용 기구로 잘 사용되어야 그때 메스는 생명을 살리는 칼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건 살인도구가 된다는 것입니다. 병을 고치는 도구가 잘못 사용돼 살인의 도구로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전체를 통합적으로 오늘 복음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초반에 말씀드렸다시피 한 부분에만 집중해서 본다고 했듯이 '권한'이라는 것에 대해 보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시는 권한은 마치 상징적으로 오늘날 사제나 신부님들만을 상징하는 게 아닙니다. 평신도에게도 사제직의 권원이 있는 권한 직분을 수행할 수 있는 것처럼 평신도에게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결론입니다.
사실 오늘 복음 묵상 포인트 핵심은 사제가 됐든 평신도가 됐든 자기의 위치를 잘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제는 말그대로 사제에게 부여된 범위 내에서만 그 권한을 잘 사용했을 때 예수님께서 죽어가거나 병든 양을 치유해 줄 수 있는 예수님을 대신해서 의사가 될 수 있지만, 그걸 잘못 남용했을 땐 오히려 양을 사지로 몰고 또 양을 죽이는 살인의 도구로 쓰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세상 법적인 논리를 비유적으로 표현하면 예수님은 살인 교사의 간접정범이 됩니다. 간접정범은 정범과 동일한 신분입니다. 실제 살인을 교사한 살인범과 같은 취급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정말 무서운 말입니다. 이런 결론을 알게 된다면 사제는 사제의 고유 권한을 어떻게 잘못 사용하면 이런 엄청나고 무시무시한 결론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심각성을 자각하고 조심해야 예수님에게 그런 잘못이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렇게 복음을 묵상하는 것은 권한을 잘못 사용하면 이런 결과도 빚어진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사제들에게 알려드리고 싶을 따름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