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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충 바오로 권상연 야고보 최초 순교자 압송로 순례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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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순례 하면 보통 차로 이동하여 성지에서 기도하는 것쯤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같은 순례이긴 한데 저는 실제 도보순례를 더 선호합니다. 신앙인이라면 기도는 가장 기본적인 생활이어야 할 것입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게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기도를 하는 방법도 다양할 것입니다. 흔히 보통 누구나 생각하는 기도도 있지만 우리가 아는 그런 기도 외에도 걸으면서 할 수 있는 기도가 있습니다. 걸으면서 한다고 하니 걸으면서 묵주를 돌리는 것을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냥 단순히 걷는 것으로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걷은 게 기도가 될까? 순교자들이 하느님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신앙을 지킨 그 여정을 묵상하며 걷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요즘 걷기 열풍처럼 힐링 차원에서 걷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렇다면 왜 많은 길을 놔두고 죽음을 향해 가신 그 길을 걷는 게 신앙에 어떤 도움이 될지 저의 그간 경험을 바탕으로 묵상한 내용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그분들은 어떻게 해서 자신의 생명을 하느님을 위해 바칠 수 있었을까요? 사람은 기본적으로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순교라는 게 말처럼 어느 순간 마음먹고 하느님을 사랑하니, 순교하겠다고 생각해서 순교하는 경우는 아마도 거의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당연할 겁니다. 그렇다면 과연 순교자분은 어떤 힘으로, 어떤 생각을 가졌기에 그와 같은 길을 걸어가셨는지 실제 그분들이 걸으신 그 길을 걸으면서 그분들과 같은 입장이 돼 걷다 보면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신자로서 하는 기본적인 의무만 이행하는 수준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만 해도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기도 합니다. 예전 신앙 선조들이 신앙을 지킨 모습과 오늘을 사는 우리의 신앙생활과 비교하면 한없이 부끄러울 때가 많이 있습니다. 잘은 몰라도 저는 순교라는 건 하루아침에, 어떤 한 순간의 생각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평소에 매일매일 일상 속에서 순교의 삶을 살았기에, 결정적인 순간에도 두려움 없이 순교를 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순교도 평소에 그와 같은 각오를 부단히 되새기면서, 신앙이라고는 하지만 생명 앞에서는 누구나 생존 본능이 강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그 생존 본능도 꺾을 수 있는 신앙심이 있어야만 가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그 생각 밑바탕에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지극한 마음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순교는 믿음으로써 자신의 신앙을 증거하는 위대한 행위입니다. 왜냐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단순히 믿음 하나만으로 자신의 목숨을 건다는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경지에 가려면 육의 옷을 입고 있는 인간 본성인 ‘나’라는 ‘자아’를 버리는 연습을 무수히 해야 그게 가능하지 않을까를 미루어 짐작해보면 우리와 같은 범인은 가히 상상조차도 하기 힘든 일입니다. 피를 흘리는 순교는 하지 못할망정 최소한 그분들이 걸어가신 숭고한 순교 정신만이라도 본받으려고 하는 마음 자세는 가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지만 그분들의 순교 영성이 가랑비에 옷 젖듯이 젖다 보면 우리도 언젠가는 하느님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순교는 하지 못할지라도 일상의 삶을 오롯이 하느님께 봉헌할 수는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도보순례를 하게 되면 순례 영성 못지않게 중요한 걸 배울 수 있습니다. 도보순례는 ‘사랑의 훈련장’과도 같습니다. 원래 사람은 이타적인 본성보다는 이기적인 본성이 강합니다. 누구나 머리로는 사랑을 실천하라는 말씀을 잘 알기는 하지만 인간의 나약한 본성인 시기, 질투와 같은 게 있기에 사랑 실천이 어려울 수도 있는데, 도보순례에서는 그와 같은 인간 본성을 뛰어넘는 인간 본연의 순수한 모습이고 사랑 그자체인 형제애를 느낄 수 있는 아주 좋은 장이 된다는 건 체험을 해 보면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도보순례는 순교 영성을 본받으려고 하는 마음도 마음이지만, 아름다운 형제애를 느끼고 또 배우는 것은 오늘날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고결한 신앙의 한 단면을 생생히 체험하기 때문에 단순히 걷는 행위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고 몸으로 바치는 위대한 기도가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지금까지 다양한 도보순례를 하긴 했지만, 이번에 순례를 하면서 미처 생각하지도 못한 걸 윤지충 바오로· 권상연 야고보 압송로에서 매년 영적 지도신부님으로 참석하신 이영춘 사도요한 신부님과 이런저런 대화를 하면서 배운 게 있습니다. 순교자의 삶을 묵상하며 잘 걷게 되면 이 또한 예수님의 수난에 동참하는 것과도 같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그분들은 죽음으로써 자신의 신앙을 증거했고 우리도 그와 같은 길을 갈 수 있는 신앙인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몸으로 표현하는 신앙고백이기 때문에 이 또한 예수님의 수난에 동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우리가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천상 예루살렘을 향해 가는 복된 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요즘처럼 바쁘게 살아가는 시대에 도보순례를 통해 자신의 신앙을 되돌아볼 수 있는 뜻 깊은 시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도보순례로 신앙을 다져보시는 걸 적극 추천 드리고 싶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