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이야기 신앙생활과 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좋은 글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고해소의 통곡

인쇄

김현 [kimhh1478] 쪽지 캡슐

2020-11-11 ㅣ No.98308

고해소의 통곡

“‘양심의 회복은 은총의 회복이요, 참 생명의 회복입니다.’
그리고 그 길목에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거저 받는 신자만의 특권이자
구원의 통로인 고해성사가 있습니다.” (상설 고해소 안내문 중 일부)

영세 후 첫 고백성사. 참 힘들었다. 이걸 꼭 해야 하는 것일까.
교리 시간을 통하여 잘 배우고 들었건만 막상 한다고 생각하니
무언가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느님과 나 사이에 신부님의 존재 때문이었을까.

힘겨운 나와의 싸움, 아니 두려움과 부끄러움.
하여간 잘못을 하긴 꽤 했나 보다가 아니라 매일 잘못을 저지르며 살고 있다.

왜 꼭 잘못을 좁은 고해소에 들어가 신부님에게 해야 하는가.
사람 사는 세상사가 얼마나 복잡하고, 나는 또 얼마나 이중적인가.

살면서 순간순간 내비쳐진 악마 같은 모습은 다 감추고,
수도 없이 부대끼며 양면의 모습을 얼마나 많이 내비쳐야 했던가.
양심 성찰 한 번 제대로 하지 않고 오히려 그 잘못을 변명하려
끙끙거리며 미사여구만 늘어놓았던가.

남에게는 “솔직하자”는 말을 수없이 뱉어 내면서
나는 내 속을 얼마나 열었던가. 주님 앞에서조차 나를 감싸려 하다니
스스로가 너무 초라하다. ‘매번 다짐하면서도 안 되는 이 나쁜 마음을
허물어 버려야 하는 데…’를 수없이 되뇌면서도 변하지 않는 나를 자책한다.

매번 수박 겉핥기식으로 앵무새처럼
“이 외에 알아내지 못한 죄에 대해서도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고해받는 신부님께서도 다 알고 계시리라 생각하면 참 답답해하실 것 같다.
알맹이는 저 깊숙이 감추고 겨우 변죽만 울리다가 만 것을….

고해소를 나오며 지금까지 저지른 죄를 다 씻어낸 듯 해방감과 안도감,
그러면서도 뭔가 다 하지 못한 찝찝함. 뒤가 켕긴다.

같은 잘못의 반복.
나는 이미 나의 내면의 갈등조차 못 다스렸으니 천당 가기는 틀린 것 같다.

어느 때부터인가 나는 그저 습관적으로 고해소를 들락거리는
나에 대한 거부감이 들었다. 핑계지만 잠시 냉담한 적도 있었다.

어떻게 하면 잘못을 낱낱이 고백할 수 있을까.
다 아뢰지 못한 잘못들이 앙금처럼 가라앉았다가
화석처럼 굳어져 버린 게 아닐까.

그날도 고해소에서 죄를 고백하던 중 나의 잘못을 어떻게 하면
이쁘게 표현할 수 있을까 머뭇거리던 순간,
왈칵 북받쳐 오르는 울음으로 말을 더듬으며 울먹이다가
쏟아내듯 빠르게 고백하곤 어떻게 고해소를 나왔는지를 모르겠다.

내 속에 숨어 있던 거짓의 껍질이 깨어지는 순간이었다.
나와서도 한참을 나 스스로를 제어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속이 후련해졌다.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그 나쁜 버릇은 또 쌓여 가고 있다.
오늘도 나의 나약함으로 고해소의 통곡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나뿐일까, 아니 나뿐이기를 바란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이가 많다면 고해소를 내려다보시는
하느님은 얼마나 마음이 아파 통곡하셨을까.

어느 어르신 말마따나 “살아 있는 것이 죄이지요.”하는
말씀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임길성(발렌티노) 시인}   {Html By 김현} 

움직이는 아이콘 예쁜라인 이미지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 영화'타이타닉' OST "주여 임하소서 내 마음에" ♬

주여 임하소서 내 마음에

암흑에 헤매는 한 마리 양을

태양과 같으신 사랑의 빛으로

오소서 오 주여 찾아오소서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927 1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