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8일 (화)
(녹)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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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진 신부님_<‘회개’만이 주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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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4-06-06 ㅣ No.173074

 

 

 

 

“그날은 준비일이었고 이튿날 안식일은 큰 축일이었으므로,

 

유다인들은 안식일에 시신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지 않게

 

하려고, 십자가에 못 박힌 이들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시신을

 

치우게 하라고 빌라도에게 요청하였다. 그리하여 군사들이

 

가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다른

 

사람의 다리를 부러뜨렸다. 예수님께 가서는 이미 숨지신

 

것을 보고 다리를 부러뜨리는 대신,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이는 직접 본 사람이 증언하는 것이므로 그의 증언은 참되다.

 

그리고 그는 여러분이 믿도록 자기가 진실을 말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의 뼈가 하나도 부러지지 않을 것이다.’ 하신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런 일들이 일어난 것이다.

 

또 다른 성경 구절은 ‘그들은 자기들이 찌른 이를

 

바라볼 것이다.’ 하고 말한다(요한 19,31-37).”

 

 

 

1) 십자가에 못 박힌 이들의 다리를 부러뜨리는 것은,

 

죽음을 앞당기기 위한 것입니다.

 

군사 하나가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른 것은,

 

예수님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는 것은,

 

예수님의 죽음은 분명한 사실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우리 교회는 그 일을, 아담에게서 하와가 생겨난 것처럼

 

예수님에게서 교회가 생겨났음을 상징하는 일로 해석합니다.

 

그렇게 해석하는 경우에, ‘피’는 예수님의 희생과 성체성사를

 

상징하고, ‘물’은 세례성사를 상징합니다.

 

“그의 뼈가 하나도 부러지지 않을 것이다.” 라는 말씀은,

 

탈출기 12장 46절, 민수기 9장 12절에 있는, 파스카

 

희생양의 뼈를 부러뜨리지 말라는 명령을 인용한 것인데,

 

예수님의 다리를 부러뜨리지 않고 옆구리를 창으로 찌른

 

일을 예언한 말씀으로 본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찌른 이를 바라볼 것이다.” 라는 말씀은,

 

즈카르야서 12장 10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을 죽인 자들은 그 죄에 대해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라는 뜻이기도 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이고, 믿지 않으면 심판을 받을 것이다.” 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2) 이상한 일인데, 사랑이 크면 클수록 고통도 커집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 수난 때에 겪으신 ‘큰 고통’은,

 

우리에 대한 예수님의 ‘큰 사랑’을 나타냅니다.

 

<십자가는 고통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사랑의 상징이고,

 

부활로 이어지기 때문에 생명과 구원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인간들이 모두 회개해서 구원받기를 바라시는

 

‘예수님의 마음’은 ‘사랑’이고, 아직도 믿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인간들이 많다는 것이 ‘예수님의 고통’입니다.

 

사랑이 크면 클수록 고통도 커지는 것은, 사랑이 완성되지

 

않았을 때 생기는 일이고, 사랑하는 쪽과 사랑받는 쪽의

 

일치가 완성되지 않았을 때 생기는 일입니다.

 

따라서 고통은 사랑의 완성과 일치를 향해서 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따르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고통은, 인간들 쪽의 사랑과 일치가 아직 부족하고

 

미완성 상태이기 때문에 겪으신 고통입니다.

 

물론 항상 고통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충실한 신앙인들, 즉 성인 성녀들은 주님의 ‘큰 기쁨’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고통과 슬픔을, 그리고 그 반대쪽에 있는

 

기쁨을 나타내신 비유가 ‘되찾은 양의 비유’입니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 그가 양을 찾게 되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마태 18,12-13).”

 

‘잃은 양’을 애타게 찾는 마음도 ‘예수 성심’이고,

 

그 양을 찾았을 때 크게 기뻐하는 마음도 ‘예수 성심’입니다.

 

 

 

3) 주님에 대한 사랑이 크면 클수록 신앙인들이 겪는 고통도

 

커지는데, 그것은 세상의 미움과 박해라는 형태로 다가옵니다.

 

주님을 덜 사랑하는 사람은 박해도 덜 받을 것이고,

 

사랑하지 않으면 박해를 안 받을 것입니다.

 

만일에 박해받는 것이 두려워서, 또는 박해받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신앙을 버린다면, 그것은 주님을 사랑하기를

 

포기하는 것이고, 주님의 사랑을 받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통을 잘 인내함으로써 완전히 단련되고 정화되어서

 

마지막 단계까지 가면, 즉 사랑이 완성되고, 주님과 완전한

 

일치를 이루게 되는 단계에 도달하면,

 

고통은 사라지고 ‘영원하고 참된 기쁨’이 찾아올 것입니다.

 

 

 

4) ‘예수 성심의 사랑’에 응답하는 방법은 ‘회개’뿐입니다.

 

만일에 회개는 하지 않으면서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주님께 더 큰 고통과 슬픔을 드리는 일입니다.

 

루카복음 7장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루카 7,47).”

 

이 말씀에서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라는

 

말씀은, “이 여자는 자신이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고

 

생각하면서 크게 감사하고 있다.” 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라는 말씀은,

 

“크게 감사하고 있기 때문에 크게 회개하면서 큰 사랑으로

 

응답한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라는 말씀은,

 

“자신이 적게 용서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적게 감사하고

 

적게 사랑하고 적게 회개한다.” 라는 뜻입니다.

 

<감사, 회개, 사랑은 하나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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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예수 성심 대축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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