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8일 (월)
(녹) 연중 제14주간 월요일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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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죄가 되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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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96.51.85.*]

2010-02-08 ㅣ No.8706

안녕하세요, 아가다 자매님!
 
마음 고생이 정말 많으시겠네요. 겉으로는 다 용서한 것 같고 아무에게도 화가 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어쩌면 아직도 상처로부터 벗어나고있지 못한 듯 보입니다. 용서란 그렇게 짧은 기간에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내가 용서하기를 결심했다고 해서 상대방이 그 용서를 꼭 원하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용서를 하려고 하다가 더 깊은 상처를 받게 될 수도 있답니다.  그럴 때는 섣불리 용서하겠다고 달려드는 것 보다 한 발짝 물러서서 잊어버리려고 노력하는 쪽이 더 쉬울 수도 있지요. 세월이 약이 되기도 하구요.  
 
사람이 실연을 했을 때 그 사랑의 상처에서 벗어나는 길은 하나밖에 없다고 합니다. 바로 새로운 사랑을 만나는 것이지요.  어쩌면 자매님도 천주교와의 사랑에서 실연 당하고, 그 아픔을 위로해 줄 대타로서 옛 연인을 다시 그리워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의 공동체에서 맛보았던 따스함과  열정이 결코 폄훼될 성질의 것은 아니지요.  우리 천주교인들도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하다고 봅니다. 확실히 개신교인들에게선 따스함이 있고 열정이 있고 구체적인 사랑(공동체 안에 한정된 경우가 많긴 하지만)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매님은 천주교를 떠나겠다는 것이 아니라, 주일미사는 성당에서 드리되 공동체 활동은 개신교회에서 하고 싶다는 것이지요.  제가 알기로 주일미사를 거르지 않으면서 신자로서의 의무를 다 한다면, 과외로 다른 활동을 하는 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고 알고 있어요.  다만 걱정되는 것은 개신교 사람들이 자매님을 온전한 천주교인으로 가만이 놓아둘 지? 이랍니다.  대부분의 개신교 신자들은 천주교에는 구원이 없다는 둥, 마리아를 숭배한다는 둥 잘못된 지식으로 무장되어있는데다 전도에의 열성이 너무 강해, 정확한 교리로 단단히 무장된 사람이 아니고서는 천주교인으로서 그들 속에 함께 존재하기가 무척 힘이 들 것이라는 것입니다.
 
저 역시 어린 시절 개신교를 다니다가 청년기에 천주교로 옮긴 사람입니다. 천주교와 개신교를 모두 사랑했기에 일찌기 '교회일치운동'에 깊이 공감하고 이를 몸으로 실천하려고 개신교 친구들을 따라 개신교 집회에도 참여하고 수련회도 참석하고 하였지요.  그렇게 하면 그들도 천주교에 대해 마음을 열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구요.  그러나 결국 그 곳에서 발을 완전히 빼게 되었는데,  그것은 그들이 겉으로는 초교파인 척, 친절한 척 하면서도 뒤에서는 내가 이단(? 천주교!)에서 나와 자신들의 교회로 들어오게 되기를 간절히,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부터였답니다.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기도를 하는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또 처음에는 같은 믿음을 가지고 함께 나누던 친구와도 나중에는 교리 상의 다른 점을 가지고 언쟁하게 되더군요.  그 친구는 하다하다 안되니까 저를 천주교에서 개종한 어떤 높은 사람에게 데려가 거의 강제로 개종시키려고 까지 했답니다. 만일 제가 천주교에서 성령세례를 받고 하느님을 확실히 만나지 않았다면, 그래서 미사가 얼마나 위대한 선물인지를 체감하고 있지 않았다면, 아마 개신교 쪽으로 벌써 넘어갔을 것 같아요.  
 
이처럼  신앙의 본질적인 측면에서 저는 가톨릭을 철저히 옹호하고 결코 떠날 생각이 없었지만, 공동체 생활면에서는 자매님과 같이 회의를 느낄 때가 한 두 번에 아니었답니다. 긴 신앙생활 동안 특히 견딜 수 없었던 시절이 한 번 있었는데, 그 때는 하느님이 천주교회에 살아계심을 멀쩡히 알면서도 수 년 동안 냉담하고 죄 중에 빠지기도 하였습니다. 너무 외롭고 하느님이 그리웠지만 정말 성당에는 가기 싫었어요. 개신교회에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뼈에 사무치게 들더군요. 개신교는 좋은 것이 내 마음에 드는 교회를 고를 수 있다는 것이예요. 내 입 맛에 맞는 목사, 내 입 맛에 맞는 교인, 내 입 맛에 맞는 시설과 시스템 등...   만일 맘에 안들면 교회를 또 옮기면 되구요.  하지만 그렇게는 못 하겠더군요.   결국 백기를 들고 성당으로 다시 찾아들어왔지만, 지금도 외로운 것은 마찬가지예요.  성당에서 인간적인 위로와 즐거움, 사교생활을 한꺼번에 누리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행인지 불행인지 저는 이제껏 성당에서 사람 보다는 하느님 하고 주로 대화하며 지내온 것 같아요.  그래도 세월이 지날수록 내가 가톨릭인 것이 너무 감사하고, 성사생활과 묵주기도가 주는 은혜는 모든 외로움을 상쇄하고도 남는 것 같아요. 게다가 자애로우신 하느님께서는 간간이 인간적인 위로와 형제애들도 느끼게 해 주시더군요. 제가 그것에 너무 함몰되지 않을 정도로만요. 지금도 이웃의 개신교 신자들이 성경공부니 셀 모임이니 하며 친밀하게 자주 만나는 것을 부러워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오랜 세월 신앙생활 하기에는 천주교가 최고다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장 안전한 신앙.....  이라고나 할까요?
 
그러나 자매님은 아직 젊으시니까, 많은 경험을 해보는 자체는 그다지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천주교에 대한 확고한 신앙이 있으시고 교회일치운동에 대해 진심으로 공감하고 계시다면요.  그렇다면 로제 수사님이 세운 떼제공동체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보실 것을 권해드립니다.  그러나 만일 자매님이 단순히 성당 공동체의 차갑고 퍽퍽한 분위기가 싫고 개신교회의 환대와 위로, 편안함이 좋아서 그리하고 싶으신 거라면 말리고 싶네요.  언젠가는 그 곳에서도 환멸과  상처를 경험할 수 있고, 자칫 소중한 가톨릭 신앙을 잃어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사실 저는 이제와 생각하니, 그 젊은 시절 이리 저리 헤매지 말고 가톨릭을 좀더 깊이 연구하고 성모님과 더 가까이 지내려고 노력했더라면 지금쯤 더 많은 열매를 맺고있을 텐데... 하며 후회하고 있답니다.  사람마다 인도하시는 방법이 다 다르니  뭐라고 단언할 순 없지만요.
 
마지막으로, 자매님에게 상처를 치유할 새로운 사랑의 대상으로서의 공동체를 가톨릭 교회 안에서 다시 한 번 찾아보심이 어떨지 권해보고 싶네요. 반드시 기존에 다니던 성당의 청년부로 돌아갈 필요는 없을 것 같구요.  교구 차원의 단체들도 많이 있으니, 자신에게 맞음직한 단체를 찾아 신앙생활에 도움을 받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혼자 미사만 다니는 것 보다 확실히 성장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아가다 자매님께서 젊음을 허비하지 않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로 더 가까이 나아가는 일에 시간들을 활용하실 수 있기를 기도드리며 긴 글 마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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