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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미사는 완전한 기도이자 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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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영혼 [121.131.208.*]

2010-02-28 ㅣ No.8742

 
 
표제에서 미사 = 완전한 기도 = 제사라는 언어속에 힌트가 있을줄로 압니다.
저는 천주교 3대에 걸친 신자로서 20여년 대내외 홍보분과 봉사직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대답하여 드리겠습니다.
저도 지난번 빙장 어르신의 제사 때에 전통 유교, 불교 혼합방식 제사에 처음 참례하게 되었군요.
화장터를 오가는 버스내에서는 찬불가가 이어지기도 하였는데 듣는이 저마다 관점이 다를수 있었겠지요.
 
이 때에 난생 처음 장례식장에서부터 사위로서 조문객 맞이등 일천배 가까운 절을 했던 기억이 나는데 해당되실 분들은 체력적으로 천천히 대비하는 마음이면 더 좋을듯 합니다. 그러면서 가톨릭 신자로서 너무 쉽고 편안하게 미사에 임하고 있다는 반성이 들기도 하였지요.
 
개신교 신자는 이경우 묵도만을 하는데 이와 다른 모습을 취하고 있는 상황이지요.
그것은 AD 1503년 프로테스탄트교가 생길 때 마르틴 루터가 연옥교리를 삭제해서 생긴 상황입니다.
이는 마치 우리가 母단체에서 갈등을 빚어 새 둥지를 틀 때 母단체의 헌법을 고치는 의도와 같을 것입니다.
여담이겠습니다만 자기 의지에 따라 고칠수록 자기 의지에 더 속기 마련이겠지요.
다시 한 번 그리스도안의 한 핏줄인 개신교 형제와의 화해의 길을 모색해봐야 하겠습니다.
 
AD 자체가 '그리스도의 해'라는 뜻인데 하느님 말씀을 누락 시킴은 아무튼 루터의 커다란 오류였는데 하지만 신성을 완비하신 하느님께선 어떻게 생각하실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가톨릭은 또한 보편성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필자로선 신자이나 하느님 보시기에 보편聖과 보편性(성품性)을 겸비한 미물이기도 한 것이 형제님과 비슷한 문제와 답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종교인이 되지 말고 신앙인이 되자는 격언들이 따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복습 잇습니다. 저보다 깊은 저변의 천주교 가족으로서 장모님 종교 존중 잘하셨다고 봅니다. 이는 우리 가톨릭의 핵심 교리와도 밀접하다 봅니다. 아니 무조건 하느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커다란 은총이지요. 본질이 이타적 사랑인 가톨릭 교리를 몰라 적지 않은 교형들이 이교 또는 비신자와 혼인(이 경우 조당으로 형제님의 경우는 저희 가정처럼 관면 혼배로 풀으셨을줄 압니다)을 맺고 방황하는 이 때에 형제님께서 천주교 예법을 집안에서도 잘 보존하고 계신다니 반가운 일입니다. 반면 여성들 입장에서는 출가외인, 시집살이등의 애환을 공감하지 않을 수 없으나 가톨릭 신자는 가톨릭 신자와 결혼해야 하는 신비는 고정관념으로만 듣고 흘릴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독자층은 장차 절감하실분들도 많다고 여겨집니다. 특히 미사 지각이나 파견 성가시 일찍 성당문을 빠져나가는 습관에 젖은 분들을 새겨 들으시면 좋을듯 합니다.
 
저는 당시 처가에서 유교 전통 제사 방식을 따를 때에 십자성호를 자주 바쳤습니다. 평소 식당에선 남들 보더라도 자신있게 바치고 있습니다만 이 때에는 어느 신부님 강론 대로 상황이 어려울 때라던가 상대에게 위화감이 들 수 있을 때였기에 주로 손바닥에 조용히 바쳤지요. 오늘 복음 말씀과 관련있는 이순신 장군 이르시길 '나의 죽음을 저들에게 알리지 말라'와 관련있는 이야기네요.ㅎ
 
그러나 글을 쓰는 이 순간 역시 쉽고 편안한 마음으로 아니면 내 종교 가톨릭이 제일이다. 유교는 가톨릭 첫 순교자 윤지충님을 배출한 종파다! 하면서 반감을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하느님 마음이 어떠셨을까?란 생각을 가져보기도 합니다. 이러한 복잡한 이야기를 사순 2주간을 맞으며 혹시 그것이 나만 더 편해지려고 그런 행위로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군중심리가 아니었는가? 반성해보게 됩니다. 이렇게 쓰면 또 마음이 여린 분들의 장차 신앙생활 때 분심 유발이 되기도 하겠군요.^^* 이런 분들은 미사 입당시 그리스도제대를 먼저 바라보는 순서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형제님의 질문 가운데에도 그리스도 제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리스도 제대를 과연 얼마나 바라보았는가?의 논리가 이 글속에 숨어있기도 할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답의 힌트는 우리가 완전한 제사(성체성사를 생각해보세요)인 다시 미사의 파견 때에 신부님 강복을 받습니다.
 
이는 하느님과 이웃 하느님과 자연과 특히 내안의 예수님과 보다 친숙하게 지내라는 은총일 것입니다. 따라서 형제님의 그것은 설날 세배를 할 때 살아있는 어른과 어린아이가 나누는 절과도 관련있는 행위입니다. 영혼은 어디서나 죽지 않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과유불급에 대한 걱정이 엿보이는데 AD 2010년째 보전해오는 가톨릭 교리야말로 진짜 유익한 삶의 지침이자 신약(신 사도행전등이) 담겨 있다고 생각됩니다.
 
형제님의 그것은 상등통회로서 즉 미사 서반부시 참회예절로서 임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다른 제사에 또 참례할 때에 신부님 강복 은사에 연계하여 구천을 맴돌 수 있는 영혼 또는 인터넷 선용으로의 이성들을 하느님께 인도하는 행위가 곧 우리 생활속의 준성사(미사의 파견)로 이어질 것입니다. 형제님께서 계속하여 물으신 어느 정도까지 궨찬은지는 예수님께서 이 사순(四旬) 때에 40 주야중 현재 10일이 지나신 일인데도 저는 편하게 비유로 말씀드림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차근차근 질문에 의거하여 응답을 드리고 있습니다만 골자가 담긴 질문에 대한 응답은 시간이 걸리겠군요. 필요하시면 02)351-4589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절두산 순교 성지에서 오늘도 미사곡 홀로 선창 당번이기도 하였는데 연아(스텔라)의 일곱번 점프 성공 축하와 더불어 평화로운 날개짓을 연상하며 부르게 되니 평소 내가 잘 부르려는 의지에서도 자유로워 좋았습니다. 그리고 지난번 작별의 편지 두 장만 남기고 고국으로 돌아가셨다는 원로 수녀님처럼 화사한 미소의 외국인 수녀님께서 미사후 집으로 나설 때 엄지 손가락으로의 감사 인사를 주시더군요.
 
앞으로도 처가에서의 전통제사방식을 따른다는 개념에 대하여 하느님께 해당 영혼들을 초대하는 것 잊지 마시라는 복음화 교리를 전해드렸는데 많은 분들이 이를 간과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고해성사를 봐야하는 죄같지는 않습니다.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시면 성찰/ 정개/ 참회/ 고해/ 보속의 고해성사 다섯 순서를 찬찬히 묵상하시면서 하느님께 더욱 의탁해 나가시면 될듯 합니다.
 
 
2010. 2. 28.
海棠 하경호 Domi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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