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5일 (금)
(홍)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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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새 마음을 주리라 [부제] 치유하는 고해성사 -스캇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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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06 ㅣ No.9142

 
 
 
 
 
새 마음을 주리라 [부제] 치유하는 고해성사
 
새 마음을 주리라
 
장로교 목사였던 저자는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을 이야기하면서 고해성사가 왜 필요한지, 고해성사의 목적은 무엇인지, 실제로 고해성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해성사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에 대해 여러 가지 관점에서 깊이 있게 설명한다.

이미 국내에서「영원토록 당신 사랑 노래하리다」로 널리 알려진 저자는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을 이야기하면서 내용을 풀어간다. 특히 그가 이 책에서 보여주는 구약성경에 나타난 고해성사를 예시하는 부분은 새로운 접근이라 할 수 있다. 곧 아담과 하와와 카인의 죄를 이야기하면서 고해성사와 관련된 우리의 태도를 돌아보도록 한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전례를 설명하면서 역사적 통찰도 시도하며, 이와 같은 구약의 성사가 초대교회와 신약시대까지 이어졌음을 지적한다.

또한 다른 전례들과 마찬가지로 고해성사도 역사 속에서 그 모습이 많이 변화했음을 이야기한다. 곧 구체적인 전례 형태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본질은 변하지 않았음을 지적하면서 그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한다. 또한 죄의 유형을 다루면서 죄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보여준다.

아우구스티노가「고백록」에서 보여준, 열여섯 살 때 저질렀던 좀도둑질에 대한 자기 분석과 관련된 내용은 우리가 죄를 짓는 이유를 성찰하도록 이끌어 주며, 그 죄의 대가에 대한 설명은 고해성사의 또 다른 측면을 살펴보게 한다.

계약이라는 개념으로 고해성사를 설명하기도 하며, 널리 알려진 ‘되찾은 아들’의 비유를 새로운 관점에서 살펴보면서 고해성사에 대한 저자 자신의 통찰을 보여주기도 한다. 참회의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며 참회의 성사인 고해성사를 자주 볼 것을 적극적으로 권유한다.

고해성사에 대해 여러 관점에서 깊이 있게 설명함으로써 고해성사를 어려워하면서 되도록 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과, 고해성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책이 될 것이다.

 

 
 
제1장 이해하기
제2장 회개의 깊은 뿌리
제3장 활짝 피어난 성사
제4장 성사로 봉인된 참된 고백
제5장 무엇이 잘못인가?
제6장 죄는 왜 달콤한가?
제7장 계약으로서 고백
제8장 되찾은 아들의 비밀
제9장 집을 떠나서는 참고향이 없다
제10장 마음을 끄는 회심의 비결
제11장 효율적인 고해자의 습관
제12장 영적 싸움
제13장 열린 문

 

 
 
스캇 한
1957년에 태어나 10여년간 장로교회 목사요 교수로 활동하다가 1986년 부활절에 가톨
릭으로 돌아온 스캇 한은 성서와 가톨릭 교회 신앙에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국내외
에 발표하고 있다. 1979년 그로브 신학대학에서 신학,철학,경제학을 전공 했으며,
1982년 고든 콘웰 신학대학에서 조직신학 석사학위를, 그리고 1995년에는 마르케트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최우수로 수여했다. 현재는 1990년 이래 스투벤빌 프란치스코
대학교에서 신학과 성서학 교수생활을 하고 있으며, 2002년에는 성바오로 성서신학센
터(Scotthahn.com)를 설립,운영하고 있다. 같은 해 콜럼버스에 있는 요세피눔 교황
청 신학대학 부교수로 초대되었고, 성서문학학회를 비롯한 여러 기관에 가담,활약하
면서 탁월한 교수법과 연구실적으로 다양한 상을 받았다.

저서로는 [영원토록 당신 사랑 노래하리다] [어린양의 만찬] [거룩하신 모후님,하례
하나이다]외 다수가 있다. 몇십 편에 달하는 논문과 글을 썼으며 오디오,비디오 테이
프가 있다.

    - 이 저자의 다른 도서
어린양의 만찬
나는 왜 믿는가
치유하는 고해성사

[역자] 강우식
1959년에 태어나 가톨릭 대학을 졸업했으며 현재 영어 번역가로 활동중이다. 옮긴 책
으로 「내가 만난 예수」「복된 슬픔」「하느님을 만나는 곳」「치유를 위한 10가지
기도방법」「나에게 맞는 기도방법 찾기」「당신을 바꿀 100가지 이야기」「로마서
에 의한 영신수련」「루르도의 기적」「삶, 아름다운 진실」「아하! 스트레스」「성
령과 함께 손에 손잡고」「새벽을 흔들어 깨우리라」외 다수가 있다.

     

 

 
 
 
하늘나라를 그리워 함
천 베네딕다 수녀 | 2007-09-15

책을 읽을 때 저자를 보고 선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책도 그런 책 중에 하나다. 이번에 새로 나온 신간인데 `치유하는 고해성사`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그러면 대충 책의 내용을 짐작할 것이다. 이 책은 고해성사에 대한 신학적인 바탕이 깔고, 이 시대에 고해성사를 어떤 마음 자세로 봐야 하는지를 성찰한 글이다. 책의 저자인 스콧 한이 이 문제에 대해 반감을 가졌던 사람인만큼 어떤 시선으로 고해성사를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했다.

저자는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목사이자 대학 교수였다. 현재도 여전히 스투벤빌 프란치스코 대학에서 신학과 성경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이런 남다른 이력 때문에 개신교 신자나, 비신자들을 만날 때마다 한 번씩은 꼭 들어보는 고해성사의 필요성에 대한 설명을 그는 어떻게 하는지 보고 싶었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가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들은 죄고백과 용서의 과정에서 사제는 불필요하다고 이의를 제기한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죄를 직접 하느님께 고백할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그렇게 할 수 있지만 하느님이 뜻하신 방법으로 고백하지 않는 한 사람 편에서는 죄의 용서 여부를 확신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고해성사의 필요성을 말하기 위해 스콧 한은 구약의 계약을 끄집어낸다. 레위기 5장 5-6절을 보면 실제로 모세 율법에는 하느님이 당신 백성에게 제시한, 즉 죄를 고백하는 구체적인 의식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이와 같은 의식을 단지 형식적인 행위로 치부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는 잘못알고 있는 것이라는 것. 율법의 많은 조항은 일상적인 의식과 관련되어 있음을 잊지 말라고 권고한다. 그는 이외에도 성사의 은총과 고백성사의 핵심에 대하여, 참된 회심은 무엇인지 `잃었던 아들`의 비유를 통해 설명한다. 특히 작은 아들과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자주 죄에 빠지는 우리 자신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해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

성아우구스티노는 "사람이 육신을 지니고 사는 한 어느 정도 가벼운 죄를 피할 수 없다."고 했다. 또한 "가벼운 죄가 모여 거대한 죄를 낳는다."고 했다. 이 죄를 피하기 위해 교부들과 성인들은 자주 `성찰`하라고 한다. 죄는 저 바깥 어딘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 깊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사랑에 비추어 내 삶을 성찰하고, 하느님의 사랑에 사랑으로 응답하지 못한 것을 아파하며 뉘우치는 것이다. 사랑 없는 참회는 병적으로, 세상을 증오하는 마음으로, 기쁨을 모르는 생활로, 음침하거나 자학적인 삶으로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찰을 하다보면 그것이 습관적인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무분별한 욕구 때문인지 알 수 있다. 그리하여 다시는 죄를 짓지 않을 것을 결심하고 성사를 보는 것이다. 고백의 핵심은 자신이 저지른 잘못과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정직하게 자기 자신을 탓하며, 그 잘못이 궁극적으로는 오로지 자신의 결정이었음을 변명하거나 부인하거나 둘러대지 않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고해성사를 자주 보다보면 고백할 때마다 같은 죄를 되풀이해서 짓는 딜레마에 빠진다. 그러나 스콧한은 하느님께 면목이 없고 창피하지만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란다. 습관적인 죄에 새로운 죄를 자꾸 더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이다. 점점 나아지지 않는다하더라도 더 나빠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말도 일리가 있다. 인간은 마땅히 하늘나라를 그리워해야하지만 늘 그리워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이 세상이 주는 기쁨은 인간을 호리는 마력을 있다. 본래는 그 기쁨이 하느님을 갈망하도록 우리의 마음을 돋우어야 하는데 우리는 탐욕 때문에 이 세상 것에 대한 무분별한 욕망을 키운다. 지금 이 순간 필요한 것보다 항상 더 갖길 바라며 집착하거나 탐닉한다. 그래서 자신에게 진정 도움이 되는 것 대신 욕망을 따라 선택하곤 한다. 그러나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은 인간이 그 안에서 궁극적인 만족을 얻지 못하게 하셨다. 이것은 한층 더 하늘나라를 그리워하게 하기 위함이다.

하늘나라를 그리워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다른 이를 위해 희생할 마음 자세가 되어 있다. 그 희생이란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함 행위다. 예를 들면 다른 사람의 편의나 즐거움이나 위안을 위해 불편을 감수하는 것이다. `밭에 묻힌 보물`의 비유를 보면 우리를 먼저 사랑하는 분은 항상 아버지시라는 것을 되새기게 된다. 내가 그분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분이 모든 것을 팔아 우리를 사셨다. 얼마나 놀라운 사랑인가! 그래서 고해성사는 사랑의 성사이다.

 

치유하는 고해성사
홍 아스테리아 수녀 | 2008-01-23

곱게 물들었던 단풍이 하나씩 퇴색해 가는 계절이 되면 어김없이 위령성월과 대림절이 다가온다. 동시에 연말연시를 외치는 여러 가지 선물과 이벤트로 분주한 거리와 홍보매체들 사이를 거닐기 마련이다. 마땅한 여유와 생각을 하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앉아 이 1년을 마무리하는 것보다는 이런 속에서 조금은 들떠서 훌쩍 넘어버리는 것이 익숙하고 얼떨결에 한해를 턱 받아놓고 어이없어 했던 것 같다.

<새 마음을 주리라>라는 책은 ‘치유하는 고해성사’라는 작은 제목이 달려 있다. 이 책을 보면서 언젠가 느꼈었던 ‘연말연시’의 허전함과 새로움이 불현듯 떠올랐다. 아직 미처 할 일을 다 하지 못함을 속상해 하고 있는데, 막상 새로운 한해가 관대하게 나를 기다리면서 여유를 주었던 그런 느낌들 말이다.

그처럼 고해성사는 고백하기에는 두렵고, 수치스러워 피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켜나와 어둠과 두려움에서 매어 있던 자기 자신을 대면하게 해주는 것 같다. 그런 행위와 영적인 움직임은 나를 여유 있게 할 뿐 아니라, 나 자신과 죄를 직면하고 죄의 ‘이름’을 짓는 것만으로도 참된 해방을 이루어주시는 하느님을 만나게 한다는 것이다.

자신, 잘못을 대면하여 인정하지 못하고, 자기 죄의 이름을 짓지 못함은 참 불행하다.
끊임없이 죄의 노예가 되어 쫓기듯 불안을 사는 일 밖에는 없는 것 같다. 고해성사는 어떻게 보면 나의 입으로 죄를 고백함으로써,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끊임없이 협조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하느님께서는 말씀하심으로 살아 있는 모든 것을 현존하게 하셨고, 이름을 지어 정체성을 부여 하셨다. 사실 우리의 심오한 정체성은 ‘사랑받는 하느님의 자녀’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를 고백한다는 것은 멀리 뒷걸음쳐 피하려 하던 하느님께로 나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것이요, ‘하느님 자녀’의 품위에로 복귀하는 것이고, 우리를 아들, 딸로 당신의 품안으로 맞아들이시는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로 고백하는 것이요, 품안에 안기는 것이다.

바오로 사도가 “피조물만이 아니라 성령을 첫 선물로 받은 우리 자신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우리의 몸이 속량되기를 기다리며 속으로 탄식하고 있습니다.” 라고 하신 로마서의 말씀처럼 우리 자신들은 자기의 잘못을 죄를 대면하고, 통회함으로써 그것에서 해방되기를 깊이 간구한다.

<새 마음을 주리라>는 뒷걸음치고 어둠의 음성에 귀 기울이던 습성에서, 바람결에 들려오던 하느님의 음성, 하느님께서 거닐던 소리를 귀 기울이게 하도록 우리의 마음을 열어젖힐 것을 초대하는 책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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