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5일 (금)
(홍)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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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추수의 기본 원칙-박상대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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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24.10.164.*]

2010-12-29 ㅣ No.9284

 
 
1 신약성경 마태오복음서 13:24 가라지의 비유
2 신약성경 마태오복음서 13:25 사람들이 자는 동안에 그의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에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
3 신약성경 마태오복음서 13:26 줄기가 나서 열매를 맺을 때에 가라지들도 드러났다.
4 신약성경 마태오복음서 13:29 그는 이렇게 일렀다.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5 신약성경 마태오복음서 13:30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겠다.’”
6 신약성경 마태오복음서 13:36 가라지의 비유를 설명하시다
7 신약성경 마태오복음서 13:36 그 뒤에 예수님께서 군중을 떠나 집으로 가셨다. 그러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와, “밭의 가라지 비유를 저희에게 설명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8 신약성경 마태오복음서 13:38 밭은 세상이다. 그리고 좋은 씨는 하늘 나라의 자녀들이고 가라지들은 악한 자의 자녀들이며,
9 신약성경 마태오복음서 13:39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악마다. 그리고 수확 때는 세상 종말이고 일꾼들은 천사들이다.
10 신약성경 마태오복음서 13:40 그러므로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태우듯이,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추수의 기본 원칙

오늘 복음은 ‘밀과 가라지의 비유’에 대한 예수님의 상세한 해설을 담은 대목이다. 무대는 군중을 떠나 야외에서 집안으로 바뀌었다. 따라서 이 해설은 오직 제자들만을 위한 것이다. 해설의 내용을 살펴보면 비유 자체만큼 쉽게 이해된다. 좋은 씨는 하늘나라의 자녀이며, 가라지는 악의 자녀이다.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은 바로 예수님 당신이시고, 독을 품은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악마이다. 이렇게 세상이라는 밭에 뿌려진 밀과 가라지를 주인이신 하느님은 추수 때까지 자라도록 내버려 두라고 하셨다. 그것은 가라지를 뽑으려다 자칫 밀을 뽑아 낼 수도 있다는 주인의 염려와 배려 때문이다.(29-30절)

추수 때는 세상의 종말을 의미하고 추수꾼은 천사들이다. 가을에 잘 익은 알곡을 거두어들이고 그 나머지는 모두 뽑아 처분하는 것이 추수의 기본 원칙인즉, 세상의 종말에도 이런 원칙이 적용된다. 세상을 심판하실 인자(人子)는 천사들을 보내어 선인(善人)을 뽑아 아버지의 나라에 살게 하고, 악인(惡人)은 뽑아 모조리 불구덩이에 처넣는다는 것이다.

오늘 복음을 읽다보면 제자들이 바로 앞에 있었던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31-33절)는 놔두고 밀과 가라지의 비유를 두고 가라지를 특히 강조하여 예수께 설명을 부탁한 점이 대단히 인상적이다. 왜 그랬을까? 밀과 가라지의 비유말씀이 마태오복음의 고유한 전승인 점을 감안한다면, 저자는 마태오복음공동체 안에 있었던 문제점들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이미 주지하고 있다시피 상당히 빠른 시일 안에 벌어질 세상종말과 최후심판의 도래, 그리고 인자의 재림(再臨)에 관한 기대는 초기 거의 모든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갖고 있었던 생각이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지체현상을 보이자 어쩔 수 없이 기대를 수정하게 된 것이다. 기대의 수정은 학습을 통해 이루어진다.

교회 공동체는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를 통해서 하느님나라의 완성이 생각보다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학습하게 되고, 밀과 가라지의 비유를 통해서 교회와 세상 안에 선인과 악인이 세상 끝까지 공존한다는 것을, 악인을 섣불리 제거하려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궁극적으로 악인과 선인의 구분은 공동체의 소관이 아니라 재림하실 인자의 소관이라는 점들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 구성원의 관점은 자연히 세상종말에 가서 선인과 악인이 각각 받게 될 보상과 대우에 치우치게 된다. 오늘 복음의 후반부가 세상종말에 비유된 추수 때의 일들을 상세하게 묘사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을 듯 하다.

밀과 가라지의 비유를 배경에 두고 신앙생활을 하는 모든 신앙인을 돌아보면, 우리 각자는 언제든지 좋은 밀알이 될 수도 있고, 가라지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가라지는 올바르고 바람직한 신앙생활과 하느님과의 관계를 방해하는 온갖 악의 요소들이다. 이런 악의 요소들은 이미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서 확연히 드러났다.(연중 제16주간 금요일 복음산책 참조)

사람은 자기 마음에 뿌려진 씨앗을 이렇게 가꿀 수도 있고 저렇게 가꿀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이 말하듯이 예수께서 가라지를 뿌린 원수를 악마로 규정하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세상 안에 분명히 악의 세력이 있다는 말이다. 이미 경험한 적이 많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런 악의 세력에 비교적 약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결코 악이 선을 이길 수는 없다.

이 점에 대해서는 J. W. 괴테(1749-1832)가 쓴 불후의 명작 ≪파우스트≫를 감상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이렇게 비유설교 안에서 좋은 밀알은 영원히 좋은 밀알로 남고, 가라지 또한 영원히 가라지로 남아 있을 것이지만, 신앙의 실제 생활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우리는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 안에 성전(聖殿)을 마련하신 성령께서 그 변화를 도와주실 것이라 믿는다. 사람의 마음 밭에 뿌려진 좋은 복음의 씨앗이 좋고 많은 열매를 맺을 때까지 씨앗의 주인이신 하느님은 인내와 끈기로 기다리신다. 그러나 마지막에 가서는 누구에게나 철저한 추수의 기본원칙이 적용될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박상대 신부(부산가톨릭대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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