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7일 (일)
(녹) 연중 제14주일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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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나'보다는 '우리'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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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식 [big-llight] 쪽지 캡슐

2012-07-08 ㅣ No.6180

김종업 님의 충정어린 충고에 못난 소생을 다둑이며 푸념을 표합니다.
널리 이해를 부탁드리며,
소생의 이 짓거리도 다 하염없음을 어찌 모를리야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그 때가 오면 그분도 이해하시겠죠.
다들 소생의 이 푸닥거리를 가볍게 부담없이 봐 주시기를 부탁드리며
어리석은 짓이라고 손가락질 해 주십시오.
당분간은 감내하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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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생은 마태오 18장 15-18절의 내용인
‘형제가 죄를 지으면’이라는 내용을 자주 묵상합니다.
그리고 자주 묻곤합니다. 그래도 ‘시비를 걸면 어떡해야합니까?’라고.

그분은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라고 일깨웁니다.
그러시면서 그분은 말씀하십니다.

‘불행하여라,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 많은 이 세상! 사실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을 하는 사람!’

소생은 이런 불행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여러 것을 포기했습니다.

‘네 손이나 발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던져 버려라. 두 손이나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불구자나 절름발이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또 네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 던져 버려라. 두 눈을 가지고 불타는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한 눈으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달고 바다 깊은 곳에 빠지는 편이 낫다.’라는 내용을 묵상하면서요.

그렇지만 그 어떤 인간은 결코 물러설 줄을 모르군요.
과시와 오만에 찬 저질성 시비를 겁니다.
그래 참아야지 하고 물러서면 참으면 더 대쉬합니다.
끝내는 남의 것을 음해/왜곡으로 몰고 가서는 말살하려합니다.
그걸 용납해야 합니까?

배려라곤 전혀 없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요!’란 말은 없어요.
그건 아니고 ‘이것뿐입니다.’란 것 이외에는 타협이 없는 독종입니다.
‘이에는 이’가 라는 게 있더군요.
이번에는 소생도 ‘이’가 되렵니다.


소생의 글을 맘대로 자기 홈피에 퍼가 게시하고는 자기것인양하면서,
또는 자기 것 부각을 위해 소생의 것을 악용하는 그 작태를 시정하고 반성하는 그 시각까지 외로움을 택하렵니다.

그 인간은 ‘우리’가 없더군요.
오직 ‘나 또는 자기’것만 있어요.
‘우리’라는 각도에서 보면 ‘우리’가 되는 것을 ‘자기’ 각도로 꼭 끌어들이려는 작자지요. ‘자기’를 위해서 ‘우리’라는 곳곳에 저질성이면서,
속 보이는 시비를 걸고,
이상한 언어와 글로 도배질을 하는 것을 더 이상 묵과해야합니까?


소생은 이번만은 하느님도 ‘우리’편을 들어주시리라 확신하시기에
이 외로움을 당분간은 견디렵니다.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감사 또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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