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5일 (금)
(홍)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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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Re:과연 예전의 은총을 다시받을수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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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영혼 [121.131.235.*]

2011-04-27 ㅣ No.9465

 
전능하신 하느님의 사랑을 내가 받으려 하면 문제가 복잡하게 얽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살면서 단순하고 편안한 것을 선호하는 것이 일반 심리겠습니다만 지금의 하느님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그대로 믿으려는 임의 마음이 소중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을 통하여 겸손과 영적 쇄신을 이루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내영과 선신과 악신의 대화를 물끄러미 구경하기도 합니다. 성가를 부른다는 것은 이 때에도 보다 밀도있는 영성 추구에 도움을 받을 것입니다. 그래서 무대체질이라는 세속 연예인들 다수는 음악 자질을 살려 가수를 더욱 선호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더우기 평화와 행복의 성령 체험까지 받으셨다면 보다 하느님의 좋은 몫으로 거듭날 것입니다. 이 때의 성가와 체험 두 기둥과 같은 은사는 내 자아가 스스로 지치고 힘들 때 좋은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이는 필자 도민고가 일지기 로사와 그 어머니의 도움 기도가 담긴 영적 체험으로 최근까지 절두산 1인 미사곡을 7년간 봉송하게 되어 조금 알게 된 경험담이기도 하지요.
 
형제님이 성가를 부르다가 끊긴 사연, 도중에 성당을 나온 사연도 그래서 어느정도 공감이 가고 있습니다. 그만큼 성가와 반주 일치에 대하여 밀도있게 관심갖고 훈련 받는 사람으로서 그 민감함과 열의가 담긴 고백이라고 느껴집니다. 절두산 미사곡 전 화답송을 순례자들과 공부하려 하면 정말 가톨릭 신자들 다수가 입도 뻥긋 하지 않으시더군요. 때때로 악보도 제대로 못 읽는 내가 이 어려운 연습을 의무감으로 겨우 공부해 왔는데 늘 그런 문제에 봉착하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저는 성당 신자석에 앉아 입도 뻥긋 하기 싫어질 때가 많아졌습니다. 형제님의 그 마음처럼 '그것도 노래냐?' 하면서 마치 원맨쇼 같다며 핀잔을 주던 어떤 수녀님의 화살을 있는척, 잘난척으로 노래하는 새로운 사람에게 돌리기도 합니다. 이는 하느님의 사랑을 내가 받으려 한 시행착오의 결과입니다.
 
우리는 게으름, 교만, 불안의 회색 안개에 휩쌓일 때가 있습니다. 전대사를 이룬다 한들 다시 죄에 물들기 쉽상입니다. 따라서 전대사를 통하여 내세를 믿고 연옥 영혼들에게 그것을 양도할 수 있는 지혜가 더욱 소중할 것입니다. 임께서 성가를 가까이 하시니 전대사는 면죄부가 아니요. 하느님께서 허락하실 때 전대사는 모든 잠벌을 관면해주시는 특전이라는 양자의 은총을 이해하실 것입니다.
 
미사를 궐하는 일반의 습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기회에 미사를 절대 궐하지 않도록 기도해 보시는건 어떨까요? 그리고 미사 지각도, 파견 성가시 일어나는 잘못된 일반 신자들의 신앙 습관들도 함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미사 15분전 입당 및 절대 도중에 나가지 않겠다는 힘을 강구해 보심은 어떨런지요?
 
성령은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있기에 들어주실 것입니다. 필자도 체험 관계상 죽어도 미사를 궐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미사 지각이나 도중에 나가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오늘까지 버텨오고 있기도 합니다. 하루는 신부님께 그것을 은근히 자랑삼아 말했을 때 신부님께서는 이런 대답을 하였습니다. "마땅히 그래야지요" 이 한마디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예전의 은총과 함께 더 좋은 은총까지 계속 받는 방법 또한 단순할 것입니다. 희망의 끈을 놓치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사랑을 더욱 믿고 닮고 따르기 위하여 성가가 두 배의 기도임을 바라보며 미사를 보지않고 참례하려는 것입니다. 여전히 미사 태도 의무감이나 해치움이 적지않은 마음이오나 응원 기도로 함께 하겠습니다.
 
2011. 4. 27(木). 海棠 domi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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