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5일 (금)
(홍)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신앙상담 신앙상담 게시판은 비공개 게시판으로 닉네임을 사용실 수 있습니다. 댓글의 경우는 실명이 표기됩니다.

q 가톨릭 알코올사목센터 허근 신부

인쇄

비공개 [24.10.164.*]

2011-04-15 ㅣ No.9447

 
 
 
 

가톨릭 알코올사목센터 허근 신부

 

                                                   그때 술을 마시지 않았더라면

   
 
   
     


삼형제가 모두 성직자인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주정뱅이 신부님이 출현했다. ‘음주 집전’을 했던 이 신부님은 ‘중대한 위기알코올 중독자’라는 판명을 받고 폐쇄 병동에서 전문 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다시 태어난 허근 신부. <나는 알코올중독자>라는 고백서를 통해 알코올중독의 위험성을 알리며, 가톨릭 알코올사목센터 소장으로 알코올중독 환자들의 치유와 상담을 돕는 우리들의 멋진 신부님을 만났다.

“죽기 위해 술을 마셔요?”
“글쎄, 술을 계속 마시기 위해 죽는 건지도 모르지.”
영화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의 시나리오작가 벤(니콜라스 케이지)의 눈빛이 떠오른다. 알코올중독으로 이혼과 해고를 당한 후, 라스베이거스에서 원 없이 술 마시다가 죽는 것이 벤의 마지막 꿈이었다.
알코올중독자 벤은 죽기 위해 술을 마셨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살기 위해 마신다. 술 한잔으로 고단한 일상을 풀고, 헤어진 연인을 잊고, 상사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날린다. 기뻐서, 그리워서, 서러워서 가끔 마시는 술은 약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술은 2차, 3차를 부르게 마련이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술에 의지하다 보면 몸은 망가지고 더 많은 양을 마셔야 기분이 좋아지며, 결국은 술을 마시지 않으면 금단현상이 나타나는 알코올중독에 빠진다.


가톨릭 신부라는 신성한 신분으로 새벽까지 고주망태가 되어 앞에 누가 있는지, 지금이 몇 시인지 모르던 신부가 있었다.
“아침까지 술에 취해 자는데, 함께 마시던 신자가 찾아와서 큰일 났다는 거예요. 전날 밤 술자리에서 내가 다른 신자와 말다툼 끝에 치고받고 싸워 그 신자가 입원했다고요. 술 마시는 횟수를 거듭하는 동안 주벽은 점점 심해졌지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군에서 배운 욕설도 퍼붓고, 완전히 망나니 신부였지요.”
알코올중독에 빠졌던 허근(55·바르톨로메오) 신부의 고백은 충격적이다.

가톨릭의 중독 치유 활동의 중심에는 허근 신부가 있다. 그는 1999년 정진석 추기경의 배려로 서울대교구 단중독(斷中毒)사목위원회 산하 알코올사목센터를 열고 소장으로 활동하며 알코올중독 상담·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인터뷰를 위해 수차례 전화와 메일이 오갔지만, 정작 당사자인 허근 신부와는 한 번도 통화할 수 없었다.
“이제 며칠 있으면 가톨릭 알코올사목센터 창립 10주년이 됩니다. 제가 단주한 지는 11년째가 되지요. 알코올중독과 관련해 만나는 사람들은 상담과 강연 등을 포함해 1년에 1만 명 정도예요. 새벽이건 자정이건 시도 때도 없이 휴대폰이 울려대서 일을 할 수가 없을 지경이에요. 그래서 전 휴대폰이 없어요. 하하.”


허 신부의 첫인상은 단아하다(새색시라는 별명에서 주정뱅이 신부의 옛 그림자는 찾기 힘들었다). 그는 시인이기도 하다. <그때 술을 마시지 않았더라면> <나는 알코올중독자> 등의 시집에서 알코올중독 체험을 치유와 신앙 성장의 도구로 승화하고 있다.
“중독의 수렁에서 스스로 빠져나오기는 쉽지 않지요. 종교건, 기관이건 반드시 외부적인 도움이 필요합니다. 술, 담배, 도박, 인터넷 등 모든 중독은 중독자의 노력뿐만 아니라 주위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중독자 스스로 중독임을 인정 못 하고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에요. 일차적으로는 식구들이 손길을 건네야 하지만, 사회나 종교의 역할도 크다고 봅니다.”

 

酒님은 主님보다 힘이 세다?

 
   
     

허 신부는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자랐다. 친가 쪽으로 7대, 외가 쪽으로 6대가 천주교를 믿었다. 두 남동생도 사제다. 집안 자체가 가톨릭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신부가 되기 위해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중·고등학교 과정을 모두 신학교 부설 기숙학교에 다녔다. 대학 졸업 때까지 술이라고는 구경도 못하던 그가 알코올중독자가 되리라는 것은 꿈에도 상상 못 한 일이었다. 술을 처음 접한 것은 1983년 해병대 군종 신부가 되면서다.

 

한번 술을 마시면 끝장을 보는 해병대의 기질은 제대 후 본당 사목을 하면서 신자들과 친교를 빙자하여 술자리에 어울리며 횟수가 늘어갔다. 처음에는 ‘술을 좋아하는 화통한 신부’가 왔다고 좋아하던 신자들도 차츰 비난과 조소로 바뀌기 시작했다. 술에 취하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군종 시절에 배운 쌍욕을 해댔으며, 자신이 한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일까지 생겼다. 거의 매일 술에 절어 살다 보니 주임신부라는 것은 호칭뿐 미사 집전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음주 집전’을 하거나 아예 미사 시간에 깨어나지도 못했다. 주(酒)님이 주(主)님보다 힘이 셌던 것이다.


“어느 해 겨울 새벽 미사를 봉헌하고 해장국을 먹으러 갔다가 술을 마시기 시작했어요.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몰라 밖을 보니 해가 보이더군요. ‘아, 이제 해가 떴군요’하니 ‘신부님, 저 해는 서산에 지는 해예요’ 하더군요.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하루 종일 술을 마신 거예요.” 뒷날 그는 이런 시를 쓴다.

아침을 여는 시간부터
술과 함께 오늘을 시작했는데
어느새 해는 서산을 넘어가며
붉은 얼굴로 인사를 하네
- 시집 <그때 술을 마시지 않았더라면> 중에서

술 때문에 신자들과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자 사제 생활마저 위기를 맞는다. 주교님께 허 신부를 본당에서 떠나게 해달라는 탄원서가 배달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분노하며 자신이 알코올중독자란 사실을 부인했다.
“술에 빠져 있을 때 어머니가 매일 새벽 5시에 성당으로 전화했어요. 아침 미사를 빠뜨릴까 걱정이 돼서요. 사제인 두 동생이 술 얘기를 꺼내면 무릎을 꿇고 그냥 울었죠. 하지만 저녁이면 다시 술에 취해 나는 주(酒)님을 모셨다며 전화를 걸었어요.”

 

 

알코올중독자에서 사목 책임자로 태어나다

 

 

어머니의 눈물 어린 기도 외에 허 신부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은 사람은 김옥균 주교다. 98년 초 평소 허 신부를 염려해주던 김 주교가 알코올중독치료센터에서 본격적 치료를 받으라고 강력하게 설득했다. 허 신부는 용기를 내어 전문 병원에서 치료받기로 결심했다. 의지를 굳히려고 일부러 연고도 없는 광주의 성요한병원을 찾아갔다. 당시 그의 몸 상태는 체중 46킬로그램에 식사 대신 술을 마시는 상태였기에 ‘중대한 위기의 알코올중독자’판정을 받았다. 폐쇄 병동 입원 후 4단계 치료에 들어갔다.
1단계는 그동안 술에 완전히 무력하여 전혀 통제할 수 없음을 시인하고, 술 때문에 일어났던 숱한 문제들을 자각하는 과정이다. 2단계는 ‘자기 인식 훈련’을 통해 자신의 객관적인 태도와 장단점을 살펴보는 과정, 3단계는 과거 알코올중독의 진행 과정을 성찰함으로써 진정한 회복의 길을 결심하고 아픈 과거를 재현하지 않겠다는 통회와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4단계에서는 술 없이 살아갈 새로운 생활을 계획하면서 단주에 대한 자신과 확신이 생겼다.
5개월 후, 서울로 향하는 그는 두려움과 기대로 떨렸다. 정말 다시 술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신자들이 나를 다시 인정하고 받아줄까.


그때 상계동 알코올중독 치료 모임을 만든 모켈리 신부의 장례미사가 떠올랐다. 추기경께서 “외국 신부면서도 우리나라 알코올중독자들을 사랑하고 돌봐주신 신부님께서 돌아가셨으니 슬프고 안타깝다. 하루빨리 그들을 사목할 한국 신부가 나오길 바란다”고 말씀하신 기억이 났다.
“그래, 이제 나이기에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다. 알코올중독 환자들을 위해 내가 도움을 줄 수만 있다면….”


서울과 광주를 오가며 사목을 위한 강의와 추후 치료를 마치고 퇴원하던 1999년 가을, 열차 안에서 소원하던 일이 이루어졌음을 들었다. 가톨릭 알코올사목센터가 생긴 것이다. 알코올중독자를 위한 사목 책임자로 임명 받는 순간, 하느님께 감사와 기쁨의 기도를 올리며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알코올중독자였던 신부가 알코올중독자를 위한 책임자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어느 때는 내가 알코올중독자가 된 것도 하느님의 뜻이 아닐까 생각한다”며 “수치스럽지만 그 경험을 통해 중독자들과 교감하면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고 말한다.

 
   
     

 

모든 중독의 대상은 영원히 채울 수 없다

 
   
     

가톨릭 알코올사목센터는 전화 상담심리 치료 상담 외에도 음악, 미술, 독서 치료 등을 망라해 알코올중독 환자들을 돕는다. 심리상담가 5명과 정신과 의사 2명이 전문적인 도움을 주고, 병원과 연계되어 집중 치료에 힘쓰고 있다.
“알코올중독은 학력이나 연령, 성별과 무관하지요. 많은 환자들이 치료를 받고 회복됐습니다. 그들은 새 삶을 얻어 가정생활과 사회·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다른 종교의 신자들도 편안하게 중독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2005년에는 중독학 전문학교를 설립해 전문 인력을 배출하고 있어요. 알코올중독 극복을 위한 원스톱 서비스를 구축했다고 자부합니다. 전화 상담부터 중독 치유 프로그램, 단주 성공 이후 프로그램, 관련 기관 연계까지 중독 치유에 필요한 모든 핵심적 용역을 제공합니다.”
허 신부는 우리나라에 알코올 남용·중독자가 300만 명에 이른다고 보고 있다. 2001년에 보고된 음주로 인한 손실은 13조 원이다. 특히 알코올 남용·중독은 다른 범죄의 원인이 되는데, 자살과 성폭력의 50퍼센트가 취중에 일어났다고 한다. 자살의 경우 음주는 권총의 방아쇠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그는 무엇보다 알코올중독은 질병임을 강조한다. 집안에 암 환자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알코올중독 환자가 있다면 어떤 병인지 확실히 인식하고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알코올중독은 다른 가족도 환자 버금가는 정신적 문제를 겪기 때문에 가족 치료를 받거나 한 명이라도 치료를 받고 대응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은 사랑해야 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술을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사랑하면 내가 사랑해야 할 아내와 자식과 부모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부끄러운 나머지 하느님도 피합니다. 극단적 술 사랑의 종착역은 사망입니다. ‘좋은 중독’도 있기는 하지요. 굳이 중독되려면 운동이나 독서, 봉사에 중독되는 게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중독의 공통점은 중독의 대상을 영원히 채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허 신부의 중독에 대한 경계가 이 겨울, 죽비처럼 내리 꽂힌다.


이 험하고 불안한 세상에 술마저 없다면 무슨 재미로 살아가느냐고 따지지 않기로 했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순간적 만족을 주는 술에 잠시 의존하지 않기로 했다. 술이 위로와 안식을 주리라는 환상을 버리기로 했다. 술의 유혹은 어느 순간 나를, 삶을, 세상을 지배하고 삼켜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때 술을 / 마시지 않았더라면
아름다운 세상을 보았을 텐데
그때 술을 / 마시지 않았더라면
좋은 친구들을 만났을 텐데
그때 술을 / 마시지 않았더라면
건강한 몸으로 살고 있을 텐데
그때 술을 / 마시지 않았더라면
맑은 정신으로 살아가고 있을 텐데
그때 술을 / 마시지 않았더라면
하느님을 좀더 사랑했을 텐데.
-시집 <그때 술을 마시지 않았더라면> 중에서

 


Tip 가톨릭 알코올사목센터 홈페이지

자가 진단을 통해 간단하게 알코올중독 여부를 알아볼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알코올의 영향, 알코올중독의 진행 과정, 프로그램 내용에 대해서도 나와 있다.
문의 02-364-1811~2(www.sulsul.or.kr)

 

취재 박미경 리포터 rose4555@hanmail.net



592 2댓글보기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