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8일 (화)
(녹)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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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_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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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4-06-11 ㅣ No.173192

요즘 저는 어느 암 투병 신부님의 글을 유심히 바라봅니다.아프시다는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루 하루 묵상글을 남기시는 것을 보고 주님께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제 말씀주신 것을 보면서 나름 깜짝 놀랐습니다. 참된 행복은

주님께 죽음을 청했던 엘리야 예언자의 마음에 대해서 말씀하시길래 참.. 어두운 세상에 어느 누구도 세상의 어두움에 대해 말하고 정의를 바로 세우고 하느님의 나라를 힘껏 말 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요즘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데 그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이 정의를 외쳐야 하는 시기구나 라는 영감을 얻었습니다.  특히나 정의를 외치면 그 정의를 어둠이 공격하고 더욱 힘들게 합니다. 어제도 나누었지만 요즘 본당에 계신 신부님들이 고난의 행군을 하고 계십니다. 게시판에 어느 신부님에 대한 글을 보았는데, 저도 예전에 그 신부님의 강론을 자주 들어 보았는데요. 그분은 유머러스하고 항상 웃음을 주시는 신부님이시고 사람들이 그분의 강론을 들으면 한주의 어두움이 사라지고 집으로 갈때면 항상 편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던 신부님으로 기억하는데 그분이 정의의 길을 걸어가면서 무거운 십자가를 질머지고 가는 것을 보고 너무 가슴이 아팟습니다. 엘리아 사도 시대가 우상 숭배로 판을 치던 시대입니다. 온통 세상은 어둠으로 가득찬 세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를 부르십니다. 자신 안에 있는 정의감을 내 작은 목소리로 외친들 누가 알아 주겠나 하면서 죽음을 청했던 엘리아 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를 그렇게 놓아 두지 안았고 그를 하느님의 사도로 세우십니다. 그래서 그는 승천합니다. 그가 승천할 수 있는 것은 거져 받은 것을 거저 줄 수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세상이 시퍼렇게 어두운데 하느님 믿고 정의를 외친 것입니다. 그러니 행동하시는 주님이 그를 통해서 당신의 정의를 세상에 세우신 것입니다. 이런 엘리아 같은 정의감으로 세상과 부딛히시면서 아주 큰 고난의 십자가를 질머지고 가시는 신부님.. 

 

나는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아는 것이 구원의 시작입니다. 그것이 없어서 세상에 많은 다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내가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것.. 오늘 축일을 지내는 인물이 바르나바 축일입니다. 그는 바오로 사도의 길잡이 역할을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후세에 바오로 사도는 베드로 사도와 함께 주님의 대표적인 사도입니다. 그런데 바오로 사도는 우리 사도들에게 혹독한 공격을 한 사람입니다. 아무리 회심을 하였다고 하여도 그를 사도단에서 받아 들이기 어려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바르나바가 그를 사도단과 하나될 수 있도록 인도한 사람이고 그의 희생과 인도가 오늘의 바오로 사도를 만든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한 것은 주님으로 부터 거져 받았으니 거저 준것입니다. 온전히 하느님의 소명에 투신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바오로 사도보다 앞에 놓은 것 보다는 배경이 된 분입니다. 어찌 보면 하느님의 일꾼들은 공수래 공수거입니다. 그 안에 움직이시는 분은 하느님의 성령이 작용하시기에 세상이 이롭게 움직이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휼륭한 성인들을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그분들이 영적인 세상에서 대화가 가능하기에 이런 휼륭한 영적인 결과를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세상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성직자들에게 너무 힘든 고난의 행군과 같은 현 상황입니다. 어두움이 너무 짙어서 영적으로 깨어계신 신부님들이 한발 한발을 내딛기 어려운 시기입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하느님은 심판을 예고 하셨습니다. 그것을 망각한다면 구약에 바빌론에서 성전이 부수어 지는 그런 결과가 초래 할 것입니다. 구약의 역사를 보고 타산지석의 교훈을 얻어야 겠습니다. 하느님을 중심으로 살지 않고 내 마음대로 살면 바빌론에 성전이 부수어지는 결과가 올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 겠습니다. 하느님을 무서워 할 수 있어야 겠습니다.하느님을 무서워 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결국 본당의 신부님을 어려워 할 줄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분들의 숨은 공로로 우리는 바오로와 같이 빛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바르나바가 오늘 날에는 지금의 본당 신부님이고 우리가 바오로입니다. 그분들의 숨은 희생에 감사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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