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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영혼 [210.106.15.*]

2008-09-17 ㅣ No.7134

 

 

✝찬미예수님

 

우리네 삶이라는 것, 오늘도 마음속 선과 악의 치열한 싸움을 만나 하루를 살게 됩니다.

 

언젠가 저희 큰 형수 카타리나가 암을 선고 받았을 때 어머니 수녀님께서 이르시길 암이나 당뇨병 역시 성인병이니 평상시 건강관리가 소중하다 하신 말씀을 상기해 봅니다. 결국 시어머니 모시기를 거부해야 했던 형수는 사형 선고받은 첫날 ‘이제 살만하니 죽음을 선고 받았노라’ 한탄하시며 피골이 상접한 이듬해 9월 1일 금요일 깊은 밤 다행히 병자성사를 받고 하늘로 떠나게 되었고 이날 밤 울먹이던 형 요셉의 모습이 아른거립니다. 모든 고통에서 풀려 잠자는 듯 평온해진 그녀의 주검에 염을 할 때 바닥을 가로 짓는 일생을 자기 가족만을 위해 고생하는 개미 한 마리는 염의 대열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고통은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최고의 은사입니다. 고통 중 기도는 역시 어렵습니다. 그러나 불은 쇠(鐵)를 증명하고 시련은 의인을 증명합니다(준주성범). 현재 임의 어머니와 막내아들의 기도는 그래서 어려운 상태이고 다만 어머니는 비로소 생명의 주관자이신 주님을 영접할 때 죽을 때까지 머리가 살아있는 가운데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는 암 병고로써 세속의 모든 것을 버려야 하는 과정에서 막내아들을 그리워하고 계실 것입니다.

 

이는 최고의 기도인 주님의 기도가 이루어진 게쎄마니 동산에서 예수님의 다가올 엄청난 고통 가운데 성부의 의노와 잠든 열 두 제자들을 보시며 지상에서 가장 고독과 고통을 미리 감수하심과 닮아 있습니다. 자매님도 평상 기도로서 이것을 알기에 오늘 이 귀한 자리를 청원하셨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려 남편이 어머니를 찾아 뵐 수 있도록 묵주의 기도와 미사, 영성체, 성체 조배 등의 주님께서 제공하시는 성화 방법을 잘 받아들이셔야 할 것입니다. 이는 어느 성인이 제가 가진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하고 헐벗은 이웃에게 주고 세상을 순례함보다 한 번의 미사(그리스도 미사=크리스마스)가 더욱 소중함을 인식하셔야 할 것입니다. 미사는 내 자아가 봉헌되는 것이 아니고 전능하신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봉헌 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남편에게도 그것을 설명해 주십시오. 그러기 위하여 부모님 돌아가시어 죽을 때까지 후회함보다 살아 생전에 잘 모시는 것이 백번 중요함을 포기하지 마시고 설명 드려야 할 것입니다.

 

추석을 보내며 김웅렬 아우구스티노 신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가위(큰 가운데)를 맞아 1. 자연을 섭리하시는 하느님께 감사를/ 농부가 하는 일은 씨 뿌리고 김 메주고 물주고 비료주고 추수하는 것이지 '생명의 주인은 하느님'/ 세상의 모든 것은 익으면 고개를 숙이고 하느님께 감사의 표현을 하는데 인간은 인색하다./ 2. 돌아가신 영혼들께 감사와 청원 기도를/ 그분들께 받은 것이 아무것이 없다 하더라도 존재하는 것 그분들의 덕임을/ 하느님을 알지 못하고 돌아가신 분께도/ 연옥의 조상들에게는 우리들의 기도와 선행이 엄청난 힘이 된다./ 돌아가신 분들을 위한 연미사/ 3. 알게 모르게 도와주신 분들을 위하여 기도해줘야 한다./ 나를 위해 기도해 주셨던 성직자, 수도자들을 위하여/ 부모를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기도하시오./ 3. 내 영혼의 상태를 확인/ 부자는 모든 것이 다 자기 것이라 함, 영혼까지도/ 이런 사람들은 세속의 사람이요/ 절대 신앙과는 거리가 먼 사람/ 이제 부자가 되었으니 먹고 마시자 하는 어리석은 인간이여/ 이 순간 하느님의 말씀/ '오늘 밤 너의 영혼을 내가 가져가면 너는 무엇이 남느냐?' 하시며 우리 마음속의 경종을 울려주십니다.

 

돌아가신 다음의 묘소를 백날 치장함도 결국은 자손들의 명예욕 한계입니다. 우리 가톨릭(보편성) 신자信者들은 절대적으로 설득은 하되 필요이상의 협박의 무익함을 또한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부군께서 가진 상처는 결국 하느님도 제일 힘들어 하시는 배신감인 듯합니다.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당하는 배신감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지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그러나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라고 하였듯, 또한 모세가 약속의 땅 바로 앞에서 숨을 거두어야 했던 하느님의 엄위하신 벌이란 것이 당시 광야에 물이 없다고 불평하는 백성들을 보시고 모세로 하여금 지팡이로 바위를 치면서 백성들을 향해 “이 반항자들아!”(민수기 20장)라고 외치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야 했기에 주님께서 “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못하였다” 하시어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다고 선포하십니다(생활성서/ 소금 항아리). 이처럼 사랑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도 없고 어려운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든 덕행을 내 앞으로 돌린다는 것은 결국 하느님을 소외시키는 공치사로 끝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군께서는 지금 그것에 속고 계신 듯합니다. 자매님의 지혜 청원이 필요하며 이에 ‘기도’를 우선하시고 ‘선택’은 차선임을 숙성시키시기 바랍니다.

 

복잡한 형제들 간의 유산 문제는 먼저 우리가 그동안 부모님을 부족하게 모신 보속이라 여겨두심은 어떻겠는지요? 그것에 대한 문제는 차차 풀어보기로 하겠습니다. 왜 형제 들 조차 물질에 속고 사랑에 속아야 할까요?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하느님은 그 사람의 죄를 묻지 않는 기억상실을 가진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 또한 아들을 다시 찾으시는 것 같습니다. 운동선수가 가장 좋은 컨디션으로 경기장에 임해야 하듯 남자들은 예로부터 속으로 그것을 인정하기에 성령의 감화로서 어머니 문병을 할 수 있도록 내조를 지향하십시오. 이때에 인간의 오욕 칠정에 메임은 부질없는 것이니 자매님 또한 치열하게 싸워 승리해야 할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어머니께서 아들과 비례하는 아픔가운데 용서와 화해의 손을 내밀었습니다. 이에 아들은 그 손을 잡고 함께 가고 싶은 마음이 분명 상존하나 가야할 길과 가고 싶은 길도 삼위일체로 이루어 질 때 가장 행복함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그럴 수 있습니다. 그냥 가면 될 것이니 그리 가게 기도하셔야 할 것입니다.

 

형제들과 마주치면 싸움이 난다 하셨는데 세상 천지에 죽음을 앞 둔 부모 앞에서 열 두 제자처럼 잠은 들어도 싸움은 나지 않으니 그런 염려는 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이것을 우리는 지나친 겸손 즉 교만이라고 합니다.

 

남편을 위해서 아이들을 위해서 며느리가 몰래 가는 것 도 한 방법입니다만 아들만 못하겠지요. 모쪼록 잘 청원하시어 좋은 결과 얻으시기 바라며 함께 묵주 기도 중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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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afe.daum.net/morningnews

詩作노트 : 자매님께서도 부족하지만 Daum Cafe ‘홀로이 머물러 다른 사람이 되어 나가라’로 함께 하시어 기도 나누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참고로 소모임(가톨릭 공동체)는 가입을 하시어야 참여할 수 있습니다.

졸작卒作 한수 전합니다.

 

 

白鶴 / 海棠 河京鎬

 

 

6. 29 백학白鶴

육체와 정신 거룩한 生日

파스카의 신비

 

 

산고보다 더 아픈 탄고

피같이 붉은 탄생

 

 

대처승 목사

비구니 수녀

비구승 신부

영광으로 죽는 아침

 

 

빗장 열두 번 열고 기다려 주시는 地上 어머니 눈물, 비, 아픔

열두 번 바라보시는 아버지 눈길

 

가야 할/ 가고 싶은/ 함께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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