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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여호와의 증인의 실체-임상만(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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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210.92.183.*]

2011-12-06 ㅣ No.9743

여호와의 증인은 무엇인가?

 

 

여호와의 증인의 실체---임상만(대건 안드레아) 신부


 

' 여호와의 증인'은 미국에서 창설된 기독교 종파로서 회중교인이었던, 러셀(C.T.Russell)이 1872년 피츠버그에서 시작했다. 초기에는 러셀파(Russellites), 천년 새벽파 (Millennial Da- wnists), 국제성서연구원(International Bible Students) 등으로 불리다가 1931년 2대 교주 러더포드(J. F. Rutherford)에 의해 ‘여호와의 증인'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1942년 러더포드가 죽자 노어(H. Knorr)가 계승했다.

패튼, 바버 등 천년 왕국론자들에게 영향을 받은 러셀은 임박한 아마겟돈 전쟁과 천년왕국전설을 주장하며 선발된 ‘14만 4천명’의 여호와 증인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기존교회와 사회질서를 철저히 부정하며 로마 가톨릭, 성공회, 자유교회 등을 공격하여 군복무, 국기경례 등도 거부한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거부하는 점에서 아리우스주의적인 면을 보이고 있으며 예수를 다만 완벽한 인간, 천사 미카엘과 같은 차원의 하느님의 특사로 보고 있다. 성만찬은 l년에 한차례 유대인들의 유월절을 기념하는 의식으로 행하며 ‘왕국회관’으로 불리는 집회소를 중심으로 전도와 교육을 실시한다. 문서를 통한 전도방법을 강조하며 파수대(Watch Tower), 깨어라(Awake) 등 정기간행물을 발행하고 있으며, 주로 사회, 경제, 정치적으로 소외되고 불만이 많은 계층을 대상으로 전도하였다.

여호와의 증인은 1884년에 설립된 펜실베니아 워치타워성서책자협회(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y), 1914년 영국에 설립된 국제성서연구원협회(International Bible Students Association), 1939년에 설립된 뉴욕 워치타워성서책자협회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1912년 홀리스트 부부가 내한하여 문서전도를 시작하였고 1914년 '만국성서연구회’라는 이름으로 단체를 조직하고 본격적인 전도를 시작했다. 일제말기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재림신앙을 강조하였다 해서 많은 신도들이 구속당했고, 선교사들이 추방당했다. 해방 후 1948년에 재건되었고, 1957년에는 사단법인 워치타워성서책자협회가 정식으로 설립되어 활동하였다.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여호와의 증인은 집총거부, 병역기피, 국기배례거부, 수혈거부, 학교교육거부 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1. 여호와의 증인의 조직


     

여호와의 증인의 조직은 1909년 펜실바니아주의 알레게니에 있던 교단 본부를 뉴욕의 부르클린으로 옮기면서 구체화 되었다. 직제상으로 나타나는 여호와의 증인의 조직을 보면 “일반 평신도들, 즉 전도인들 위에 일반교회로 치면 집사격인 봉사의 종이라는 장로가 있으며, 이들 장로들 중에는 회중 감독자(여호와의 증인에게는 목사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장로, 목자, 회중 감독자라는 말을 사용한다. 또한 회중이란 말은 교회라는 용어를 대신하는 용어이다)가 있다. 또한 그 위에 순회 감독자가 있는데 순회 감독자는 상부 기관인 지역 감독자의 지시를 받는다. 그리고 지역 감독자위에는 본부와 지부에 있는 최고 위원들을 보좌하는 벧엘 장로들이 있어서 이들이 국가 단위의 최고위층인 지부 위원 7명을 돕는다.

세계적으로는 세계를 15개 지구로 구분하여 15명의 지구 감독자가 있고 지구 감독자 위에 세계를 총괄하는 총 본부(워치 타워 성서 책자 협회)가 있다. 이 총 본부 내에는 최고 통치위원이 18명이 있어서 모든 결정 사항이 여기에서 결정된다.그러나 여호와의 증인의 조직 중에서, 직접 선교 활동에 임하는 그룹은 회중 감독자 이하의 사람들에 의해서 이다. 회중 감독자를 중심으로 하는 각 회중의 조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회중 감독자’는 이미 밝힌 대로 일반 교회의 목사에 해당한다. 그러나 회중 감독자 안에는 ‘주임 감독자’, ‘서기’, ‘신권 전도학교 감독자’, ‘봉사 감독자’, ‘파수대 교육 감독자’가 있다. 이들의 역할을 알아보면 먼저 ‘주임 감독자’는 ‘회중의 종’이라고도 하는데 그가 회중 전반에 걸쳐 일을 감독하는 책임자이다. 또 ‘서기’가 있는데 이는 ‘부 회중의 종’이라고도 하며 나이가 연로하고 회중 전체의 영적 복지를 위해서 일하는 가장 유능한 사람이다. 다음은 ‘봉사 감독자’로서 그는 회중의 모든 전도인들의 재방문과 성서연구를 돕고, 야외 봉사시에 ‘파수대’ 및 ‘지금은 깰 때이다’등의 책을 공급하고 봉사 구역을 할당한다. 이 봉사 감독자가 회중전도인과 파이오니아 및 집단(회중)서적 연구 사회자를 임명한다. ‘파수대 교육 감독자’는 매주 열리는 회중 파수대 연구에서 회중을 인도 한다. 이것은 여호와의 증인의 모든 회중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직책이다. 또한 ‘신권 전도학교 감독자’는 일반 교회의 주일 학교 책임자와 같은 직책이다.

이상과 같은 회중 감독자 그룹은 ‘회중 위원회’를 구성하게 되고 이들 밑에 일반 교회의 집사에 해당하는 ‘봉사의 종’이 있다. ‘봉사의 종’은 실질적인 책임자들은 아니지만 실질적인 활동을 주도하는 사람들이다. ‘봉사의 종’에는 ‘회계의 종’, `안내’, ‘회관 관리의 종’, ‘서적의 종’, ‘잡지의 종’이 있다. 이들 중에서 ‘회계의 종’은 여호와의 증인들이 내는 자진헌금을 관리 한다. ‘안내’와 ‘회관 관리의 종’은 회관에서 일어나는 자질구레한 일을 처리한다. 일종의 사무원 역할을 한다. ‘서적의 종’은 소책자와 신 세계역 성서 및 전도지를 나누어 주며 회중의 서적 보급 상태를 점검한다. 또한 ‘잡지의 종’은 ‘봉사 감독자(잡지 구역의 종)’와 비슷한 ‘파수대’ ‘ 지금은 깰 때이다’등의 잡지 및 비정기 간행물을 공급한다. 이들 ‘봉사의 종’ 그룹은 봉사감독자의 감독하에 매주 화요일에 열리는 ‘집단(회중)서적 연구 사회자’를 임명하는데, 이때 임명된 사람은 회중 서적 연구를 사회하고, 야외 봉사를 인도하며, 신도들의 영적 건강을 위해서 힘쓰는 임무를 맡고 있다. 또한 ‘집단(회중) 서적 연구 사회자’는 한 회중을 4-5구역으로 나누어 교육시키는 학습단위의 1구역 책임자 이기도 하다.

이상과 같이 살펴 본 여호와의 증인의 조직은 하나의 통치체제로서 피라미드식 구조를 지닌다. 이들의 조직 형태는 전교활동에 있어서 효과적으로 이용되며 조직의 운영을 손쉽게 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닌다. 이 조직을 간단한 도표를 통해서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2. 여호와의 증인의 선교 활동

여호와의 증인의 조직은 봉사의 직무를 수행하는데 효과적이고 철저를 기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봉사’라는 용어는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봉사의 개념과는 다르다. 즉 여호와의 증인에 있어서 봉사는 의례 ‘전도’라는 말로 통용되고 있다. 따라서 여호와의 증인의 선교 활동에 대한 고찰을 위해서는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용어와 문서 선교 및 호별 방문 선교로 규정될 수 있는 그들의 선교방법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1) 용어의 이해

여호와의 증인들은 용어 사용 면으로 볼 때 기존교회들과 다르다. 그들은 교회를 ‘회중, 회관, 왕국회관’ 이라고 부르며, ‘선교, 전도’라는 말보다는 ‘봉사’라는 말을 즐겨 사용한다. 또한 ‘신자, 평신도, 성도’라는 말도 사용하지 않으며, 그대신 ‘전도인’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이것은 모든 신자들이 전도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또한 옥외에 나가서 전도하는 것을 ‘야외봉사’라고 하고 집집을 방문하여 전도하는 것을 ‘호별봉사’라고 한다. 그들은 야외봉사나 호별봉사에서 대화한 사람은 반드시 그 사람의 주소, 성명과 다시 만날 수 있는 약도 및 대화한 제목을 ‘봉사수첩’이라는 수첩에 기록해 놓고 계속 찾아가게 되는데 이렇게 계속 찾아가는 것을 ‘재방’이라고 한다. 그리고 정규 방문이 아니고 버스나 기차 또는 자기 집에 찾아온 손님이나 상인들에게 전도하는 것을 ‘비공식 증거’라고 한다. 그리고 재방이나 비공식 증거를 통해서 여호와의 증인의 교리에 호감을 가진 사람을 ‘관심자’ 또는 ‘연구생’이라고 하며, 재방 때에 관심자와 전도인 간의 교리 학습을 ‘연구’ 또는 ‘가정 성서 연구’라고 한다.

    2) 선교 방법

여호와의 증인의 선교는 대체로 문서 선교와 호별 방문 선교에 의존하고 있다. 이것은 그들의 창설 초기에서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것으로서 방법적으로 철저한 전도인 교육을 밑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그들의 선교 방법의 역사적인 면이나 서적의 종류, 구체적인 활동 상황에 대한 파악이 필요하다.

    (1) 문서 선교

여호와의 증인의 선교 방법은 창설자 럿셀이 1875년 “주님의 귀환의 방법과 목적(The object and manner of the Lord’s Return)”이라는 팜프렛을 5만부 발행하여 배포하면서 부터 구체화 되었다. 그는 1877년 바르 보올과 함께 “제 3세계 혹은 구속의 계획(Three Worlds or Plan the Redemption)”이라는 책을 출판 했으며, 1876년 여호와의 증인의 최초의 잡지인 “아침의 여명(The Herald of the Morning)”을 발간했다. 또한 이들은 1879년에 “시온의 워치타워(파수대)” 잡지를 출판 배포했는데(1879. 7. 1) 이 잡지가 여호와의 증인에 새로운 물결을 일으키자 이에 힘입어 1880년에는 미국 내에 7개주에 30개의 회중을 갖게 되었다. 이 “파수대” 잡지는 지금까지 발행되고 있는 그들의 중요한 잡지이다.

여호와의 증인은 1919년 10월 1일에 파수대 잡지의 자매지라고 할 수 있는 “깨어라”를 발행했는데 현재는 그 지명을 바꾸어 “지금은 깰때이다”라는 이름으로 출판하고 있다. 그러나 이 “지금은 깰 때이다”라는 잡지는 2대 협회장이었던 러더포드가 1919년 10월 6일 부터 발행한 “황금시대(The Golden Age)”라는 잡지에 기인하고 있다. 이 “황금시대”는 1937년에 다시 “위안(Consolation)”이라고 지명을 바꾸어 발행했고 1946년에 와서야 지금의 명칭인 “깨어라(Awake)”로 바꾼 것이다.

이상과 같은 여호와의 증인의 잡지들은 현재 “파수대”가 월 l회 발행되는 것과 2회 발행되는 것 두 종류가 있으며 107개국어로 발행된다. 또한 매호 평균 발행 부수가 13,950,000에 이르고 있다. 이 잡지는 한국어판 발행이 1952년 9월 1일부터 시작 되었고 현재 월 2회 발행되고 있다.

여호와의 증인에 있어서 “파수대”와 “깨어라(지금은 깰 때이다)”는 그들의 신앙을 도모하고 앙양하는데 가장 중요한 잡지이다. 이 잡지들은 여호와의 증인에 있어서 신앙과 도덕, 그리고 생활에 대한 통치체의 유권해석이며, 포교 활동에 있어서도 이 잡지들을 먼저 내어 보이거나 판매한다. 또한 이 잡지들은 그들의 신앙 집회인 “파수대 연구”나 “봉사회”에서 집중 연구의 교재가 된다.

    (2) 호별 방문 선교

여호와의 증인의 생활은 일반적으로 그들의 ‘야외 봉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야외 봉사는 여호와의 증인의 제일 생활원리가 된다. 그들이 책자를 판애한 수익금은 협회의 운영금에 대부분이 충당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그들의 선교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호별 방문’이다. 호별 방문은 야외 봉사의 일부분이기는 하지만 가가호호를 방문하여 기존 신자이건 비 신자이건 가리지 않고 성서를 함께 연구해보자는 제의는 다른 어떤 기존의 교회와는 다른 독특한 모습이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은 야외 봉사나 호별 방문, 비 공식 증거 등을 통해 그들 교리에 관심을 가진 사람을 찾게 되면, 먼저 그들에게 워치타워 성서책자 협회에서 나오는 각종 전도지를 배부하고, “파수대”와 “깨어라(지금은 깰 때이다)”의 구독 신청을 받고 나서부터 1대1 방식의 개별적인 교육이 시작된다. 이들은 ‘가정 성서 연구’라는 명목하에 구체적인 시간을 정해 놓고 계속적인 재방을 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피교육생을 ‘관심자’ 또는 ‘연구생’이라고 부르고 가르치는 사람을 ‘사회자’라고 한다.

그들의 성서 연구에는 그들 나름대로 번역한 “성서 전서, 한글 개역판” 성서와 보조교재인 “우리는 지상 낙원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 라는 책을 사용하고 그때 그때마다 “파수대”나 “깨어라” 등에 실려 있는 협회의 유권 해석을 교육한다.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의 연구는 성서 연구가 아니며 그들의 신학이 실려 있는 교리서의 내용을 성서의 문자적 해석을 통해서 확인하는 과정에 불과하다.

이러한 1대1 식의 주입식 교육은 6개월이고 l년이고 교리에 의문이 생기지 않고 조직의 간부진인 통치체에 대한 충성심이 확고해 질때까지 계속하다가 침례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사회자가 인정할 정도가 되면 사회자는 장로회에 그 관심자에 대한 침례 자격 시험을 의뢰한다.

여호와의 증인에게 이 침례 자격 시험을 ‘침례 문답’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6개월마다 한번씩 있고 1명의 장로가 100문제씩 모두 4명의 장로가 출제한다. 관심자는 각 장로에게서 80점 이상씩을 받아야만 침례를 받을 자격이 있다.

일단 침례를 받고 여호와의 증인의 신도가 되면 그들은 형제 또는 자매로 불리우게 되고 또한 침례와 동시에 전도인으로 자동 임명되는데 침례 받는 날부터 어떤일이 있어도 십일조를 해야 한다.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의 십일조는 기존교회에서 말하는 물질의 십일조와는 완연히 성격이 다르다. 그들은 전도시간 즉 봉사의 십일조를 강조한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10일에 24시간을 의무적으로 전도(봉사)해야 한다.

새로 침례 받은 전도인들은 십일조 봉사만 하면 되지만 침례후 6개월이 지나면 전도인은 보조 파이오니아가 되어야 한다. 보조 파이오니아는 십일조 봉사 외에 매월 60시간 이상 봉사해야 하고, 보조 파이오니아를 l년 정도 하게 되면 정규 파이오니아가 된다. 이들은 십일조 봉사 외에도 매월 90시간 이상을 의무적으로 봉사해야 한다. 또한 특별 파이오니아가 있는데, 이들은 십일조 외에도 매월 140시간 이상 봉사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봉사 방법을 보면 매우 체계적이고 조직적이다. 물론 관심자(연구생)를 1대1식의 성서연구(교리교육)를 통해서 완전하게 교재를 이해시키고 교재 내용을 주입시키는 교육 방법도 그러하기만 각 회중(교회)에 “봉사 구역 카드”라는 카드가 30-50장 정도 구비되어 있어 자신들의 활동 구역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즉 그 카드에는 그 구역 내의 도로, 건물 및 골목과 주요 시설의 약도가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이들은 이 카드에 따라서 호별 및 야외 봉사를 한다. 또한 이들은 야외 봉사와 호별을 나가기 전에 철저한 선교교육을 받는다. 그들이 주로 사용하는 책자는 “성경을 사용하여 추리함”이라는 책자로서, 야외 봉사 중에 받게 될 질문들이나 그에 대한 해답을 간략하게 정리해 놓은 것으로 이 책의 9면부터 14면까지는 ‘야외 봉사에서 사용하기 위한 서론들’이라는 제목으로 상대방을 만났을 때, 어떻게 말을 건네며 선교 해야 하는 지에 대하여 그 방법을 자세히 알려 주고 있다. 또한 이곳에서는 상대방이 갖고 있을 관심 분야를 가정과 자녀,미래의 안전, 말세, 불공평과 고통, 인생과 행복, 직업과 주택, 최근의 사건들에 대한 18가지의 사항을 분류하고, 각 상황에서 사용 될 대화 방법의 예문을 싣고 있다.

또한 이들의 이 책의 15면에서 24면까지에서 “대화를 중단하려는 사람들에게 응답하는 방법”이란 항을 만들어 대화를 주관하기 위해서 상대방이 꺼낼 수 있는 대화의 유형을 13가지나 제시하고 있고, 각각의 유형에 따라 대답할 수 있는 방법들을 열거하고 있다.

그리고 여호와의 증인의 호별 방문에서 특이한 점은 성경 토론 방식에 있다. 이들은 성경 토론을 할 때에 상대방에게 교리나 성서의 지식에 대한 질문을 될 수 있는대로 많이 하여 그들 스스로 자신의 수준이나 약점을 드러내도록 만든 후에, 그들로 하여금 모르는 사실을 전해준다는 형식으로 기선을 제압하고 대화의 주도권을 갖는다. 그러나 성경 토론을 하다가 자신의 약점이 드러나거나, 박식한 상대를 만나 자신이 상대방을 설복 시킬 수 없음이 판단되면 정중히 인사하고 돌아간 후, 본부에 가서 자신이 곤란했던 부분에 대한 재교육을 받고 재방을 하든지, 자신보다 더 월등한 실력을 가진 사람을 보내서 그로 하여금 토론을 주도해 나아가도록 한다.

그러나 이러한 여호와의 증인의 호별 방문이나, 야외 봉사는 그 활동 상황과 결과를 반드시 보고하도록 되어 있다. 이들은 ‘봉사보고제도’를 만들어 한달 동안 활동한 시간, 연구시간, 잡지 및 서적의 판매 수량, 재방의 건수, 성서 연구시간 등을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각 개인별로 ‘개인 전도인 카드’가 회중에 배치돼 있어 봉사 활동을 한 달이라도 거르게 되면 ‘비정규 전도인’으로, 6개월 이상 전도 봉사를 하지 못하면 ‘무 활동’이라고 낙인이 찍혀 공개적인 문책을 면치 못한다.

그러나 이상과 같은 여호와의 증인의 호별 방문 선교는 창설 초기에서부터 실시 된 것은 아니다. 여호와의 증인에 있어서 호별 방문 선교는 1927년, 제 2대 협회장이던 러더포드 재임시기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초기에는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으며 본격적인 호별 방문 선교는 1941년에 그들의 자급자족 생활 터전(일종의 신앙촌)이라고 할 수 있는 길르앗(Gillead)이라는 왕국 농장을 가지면서부터이다. 그들은 1943년 3대 협회장이던 노어 시절에 ‘워치타워 길르앗 성서학교’를 개교하여, 신권 전도학교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그들은 이전에는 회중 내에서 그들의 선교사와 지도자를 선출했으나, 이 학교가 생긴 이후부터는 대부분 이 학교 출신의 사람들이 지도자가 되었고, 이곳에서 전문 포교 교육을 받은 전도인들에 의하여 그들의 선교 정책이 전문화되었다. 이곳 ‘워치타워 길르앗 성서학교’는 현재 각 나라에 파송 되는 선교사를 양성하고 있으되 호별방문 선교를 위한 교재 및 방법을 각 지부의 전도인들에게 교육하는 일을 맡는다.



 

    3. 여호와의 증인의 신앙관


     

여호와의 증인들은 자신들에 대하여 설명하기를 “하느님의 으뜸되시는 증인 예수 그리스도의 지도 밑에 하느님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헌신한 사람들의 집단 혹은 모임”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자기네들이 함께 모인 목적은 “야훼라고 이름하신 분만이 홀로 우주의 최고 주권자가 되신다는 것을 선포하며,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왕국이 임할 것을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신 천적 정부(天的 政府)의 창조자가 야훼 하느님이라는 것을 선포하기 위함”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들의 신앙은 기존 그리스도교 신파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과 큰 차이를 보이며, 자신들의 10가지 다른 신앙관이 다른 종교와 자신들을 구별 짓는다고 말한다. 그들이 주장하고 있는 신앙신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성서 : 여호와의 증인은 성서 전체를 하느님의 영감을 받은 말씀으로 믿으며, 인간의 전통에 근거한 신조에 고착하기보다는 신앙 전체의 표준으로서 성서에 고착한다.

     

    2. 하느님 : 그들의 여호와를 유일하신 참 하느님으로 숭배하며, 그분과 인류에 대한 그분의 사랑이 깃든 목적에 관하여 거리낌없이 말한다. 공개적으로 여호와에 관하여 증거 하는 사람은 누구나 대개 그 하나의 집단, 즉 ‘여호와의 증인’에 속한 사람으로 식별된다.

     

    3. 예수 그리스도 :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삼위일체의 한 위가 아니라, 성서의 가르침대로 하느님의 아들이고, 하느님의 첫 번째 창조물이며, 인간 이전의 존재를 가진 분으로서, 그분의 생명은 하늘로부터 처녀 마리아의 태로 옮겨졌으며, 그분의 완전한 인간 생명이 제물로 바쳐짐으로 믿음을 나타내는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구원이 가능하게 되었음을 믿으며, 그리스도께서는 1914년 이후 하느님으로부터 온 땅에 대한 권세를 받으셔서 현재 왕으로서 활동적으로 통치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는다.

     

    4. 하느님의 왕국 : 그들은 하느님의 왕국이 인류의 유일한 희망이며, 실재적인 정부이고, 멀지않아 모든 인간 정부들을 포함하여, 현 악한 사물의 제도를 멸할 것이며, 의로움으로 가득 차게 될 새로운 제도를 만들 것을 믿는다.

     

    5. 하늘 생명 : 그들은 144,000명의 영으로 기름부음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늘왕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하여 왕으로서 통치할 것을 믿는다. 그들은 하늘생명이 선한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6. 땅 : 그들은 땅에 대한 하느님의 본래 목적이 성취될 것이며, 땅의 주민들은 모두 여호와의 숭배자들일 것이며, 그들은 인간 완전성으로 영원한 생명을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며, 심지어 죽은 자들도 그러한 축복에 참여할 기회를 갖기 위하여 일으킴을 받으리라는 것을 믿는다.

     

    7. 죽음 : 그들은 죽은 자는 전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며, 어떤 영계에서 고통이나 즐거움도 경험하지 않으며, 하느님께서 기억하고 계신 것 이외에는 아무 데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장래 생명에 대한 희망은 죽은 자의 부활에 달려 있다고 믿는다.

     

    8. 마지막 날 : 그들은 우리가 지금 1914년 이후로 이 악한 사물의 제도의 마지막 날에 살고 있으며, 1914년의 사건들을 본 일부 사람들은 사악한 현세상의 완전한 멸망을 보게 될 것이고, 의를 사랑하는 자들은 깨끗해진 땅으로 생존하여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믿는다.

     

    9. 세상에서 분리됨 : 그들은 예수께서 자신의 추종자들에 관하여 말씀하신 그대로,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려 진지하게 노력한다. 그들은 이웃에 대한 순수한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나타내며, 어느 나라 정치에도 참여하지 않는다. 그들은 가족의 물질적인 필수품을 마련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열렬히 추구하는 물질적인 것과 개인의 명성 및 쾌락에 과도하게 빠지는 것을 멀리한다.

     

    10. 성서의 교훈 적용함 : 그들은 현재의 일상 생활에서 즉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회중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주는 교훈을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과거의 생활 방식이 어떠하였든지, 누구나 하느님의 말씀이 정죄 하는 습관을 버리고 경건한 교훈을 적용한다면 여호와의 증인의 한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1) 여호와의 증인의 삼위일체 부인

여호와의 증인들은 그리스도 교회께서 기본적인 믿음의 신조로 신앙하고 있는 하느님의 삼위일체성을 부정한다. 이미 우리가 살펴보았지만, 그들의 성서 해석 방법이 자구적 해석에 의존하기 때문에 성서에는 삼위일체라는 말이 전혀 쓰이지 않았는데도 즉 “그리스도교국의 많은 교파에서는 성서 가운데 삼위일체라는 말이 전혀 나타나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이 삼위일체라고 가르친다”라고 하면서, 이러한 비 성서적인 개념은 절대로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여호와의 증인에서는 삼위일체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이들은 삼위일체 교리를 “머리가 셋 달린 괴물”로 표현하면서 삼위일체를 삼위이체(三位異體) 또는 삼신일체(三神一體) 등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들은 “삼위일체는 갈라진 하느님 즉 성부 하느님이 1/3의 하느님, 성자 하느님이 1/3 하느님, 성령 하느님이 1/3 하느님이라고 믿고 있다.”

 

또한 이들은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이 아니거나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아니라고 가르쳐 주는 구절이 많음을 설명하면서 “예수께서 지상에 계실 때에 분명히 자기 아버지와 동등하지 않았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도 천사도 모르지만 하느님만이 아시는 것이 있다고 말씀했(마르 13, 32)을 뿐 아니라, 예수께서는 시련을 당하실 때에 자기 아버지께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하셨다(루가 22, 41-42). 또한 친히 ‘아버지는 나보다 크시다’고 말씀하셨다(요한 14, 28), 그러기 때문께 예수께서는 자기 아버지를 ‘내 하느님’ 또는 ‘유일한 참 하느님’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요한 20, 17 ; 17, 2)라고 말하면서 요한 10, 30의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는 성경구절은 삼위일체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데, 그 이유는 예수께서 다만 둘이 하나라고 하셨지 어디 셋이 하나라고 했느냐는 엉터리 같은 논리를 피력하고 있다.

 

또한 이미 앞에서 살펴본 것이지만, 요한 1,1에서 예수를 말씀이라고 했고 그 말씀이 곧 하느님이었다는 성서 구절을 해석하면서 그 말씀은 태초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고 했는데 사람들이 예수는 보았지만 18절에서는 본래 하느님을 본 사람이 없다고 했기 때문에 예수와 하느님은 동등하지 않다”는 것이다.


 

    2) 여호와의 증인의 예수 그리스도의 천주성 부인

“여호와의 증인의 신학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몸을 입으신(육화한) 하느님이 아니라 단지 피조물에 불과하다.” 그들은 “성서에 어디에도 여호와를 제외하고는 전능하신 분으로 불린 이가 없으며” “예수께서 인간으로 존재하기 전에, 천사들이 하느님에 의해서 창조된 영물(靈物)인 것처럼, 그분도 영의 피조물이었다고 분명히 알려주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창조물의 시작으로서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피조물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으로 태어나기 전의 예수는 ‘만물에 앞서 나신 분’(골로 1, 15)이며 `하느님의 창조의 시작’(묵시 3, 14)이었는데 여기에서 ‘시작’이라는 말은 예수께서 하느님의 창조를 시작하신 분이라는 뜻이 아니라 하느님 창조의 처음, 즉 첫 번째 피조물”이라는 것이다. 또한 성서에는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자를 의인화 하시기 위해서 ‘지혜’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는데, 이 용어는 바로 인간으로 존재하기 전의 영적 피조물로서의 예수를 가르키는 비유적 표현이기 때문에 인간으로서 존재하기 전의 ‘지혜’로서의 예수께서는 자신이 하느님과 붙어 다니는 조수 노릇을(잠언 8, 30)했고”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이 조수, 곧 하위 동반자를 통하여 다른 만물을 창조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의 수준으로 격하시키는 것외에 “하느님으로부터 완전하게 직접 창조된 피조물에는 아담과 천사들뿐이지만, 아담은 죄를 지었고 예수는 아담이 지은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세상에 왔기 때문에 예수는 아담이 될 수 없으며 천사일 수 밖에 없다”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대천사 미카엘과 같은 분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데살전 4, 16에 부활을 개시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이 ‘천사의 소리’로 언급되어 있고, 유다서 9절은 천사장이 미카엘이라고 알려준다. 예수께서 명령하는 소리를 보다 낮은 권세를 가진 자가 하는 것으로 비유한다면 적절한 것인가? 그러므로, 이치적으로 천사장 미카엘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다니엘 12, 1에서는 미카엘이 권세를 가지고 행동하기 위해서 ‘일어서는 것’을… 그때까지 없던 환난과 관련을 짓고 있다. 분명히 그 일은 그리스도께서 집행관으로서 국가들을 대항하여 행동을 하실 때 그들이 당하는 경험에 부합될 것이다. 그러므로 증거에 의하면 하느님의 아들은 이 땅에 오시기 전에 미카엘로 알려진 분이시며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영자로서, 거하시는 하늘로 돌아가신 이후에도 역시 그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라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실 때에는 인간으로서 끝나 아주 없어졌지만, 그때에 영적 피조물, 즉 미카엘이 그의 존재를 위하여 더욱 존귀한 자리에 높임을 받으셨다고 한다. 그들에 의하면 비록 예수께서 이 세상에 계시기 전·후에는 최초의 영적 피조물이었지만 결코 하느님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3) 여호화의 증인의 영혼의 불멸성 부인

여호와의 증인은 “인간의 영혼 불멸을 부정한다. 즉 인간이란 생리적이고 물리적인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지 영혼이 존재하기 않는다고 주장한다.” 결국 영혼의 불멸성 부정은 지옥(천국)의 존재 부정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게 되는데, 그들이 영혼의 “타고난 불멸성의 가르침과 영원한 고문의 두 교리는 함께 서든지 또는 함께 무너지든지 해야 한다. 그런데 그 두 교리가 모두 거짓된 것이므로 둘다 무너질 수밖에 없다”라는, 주장 안에는 여호와의 증인만이 갖는 영혼에 대한 독특한 이해가 있다. 즉 여호와의 증인에서는 영혼을 두 가지로 이해한다. 영혼이란 육체적 생명과 분리되는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육체적, 정신적 특질을 가진 인간 자신이 바로 영혼이고 인간이 죽으면 활동적인 생명력이 상실되기 때문에 영혼 또한 사라진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에게 있어서 영혼은 인간이나 동물, 또는 인간이나 동물이 누리는 생명을 의미하며 인간이나 동물이 생명을 갖고 있다는 것은 곧 영혼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성서에서 말하는 영혼은 “몸이 죽은 후에까지 살아 남는다. 의인과 악인의 미래 상태에 대해서는 예수 자신에 의해서 명백히 밝혀졌다. 예수께서는 마르타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한 11, 25 이하)라고 말씀하셨으며, 또 제자들에게는 ‘가서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가 내가 있는 곳에 같이 있게 하겠다(요한 14, 3)’고 말씀 하셨다. 특히 회개하는 강도에서 하신 말씀, 즉 ‘오늘 네가 정녕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루가 23, 43)’라는 말씀은 여기서 염두에 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의인과 악인이 둘 다 그들의 영혼이 살아남는다는 것은 부자와 나자로의 비유에서 암시되어 있다(루가 16, 19-31). 이외에도 많은 구절과 서신에서 이 가르침은 나타난다. 또한 미래의 심판에 대한 교의 역시 의인과 악인이 둘 다 죽은 후, 그들이 살아남는다는 진리를 전제로 하는 것이며, 우리는 이 진리를 믿는 것이다(로마 5, 11 ; 고린후 5, 10).”

    4) 여호와의 증인의 지옥의 존재 부정

이미 상술한 바와 같이 여호와의 증인의 영혼의 불멸성에 대한 부정은 내세의 존재에 대한 부정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지옥의 존재가 부인되는 것은 당연한 논리이다. 그들은 “아담은 죽자마자 그는 다시 전과 같은 무생명, 무의식 상태로 돌아갔다. 그는 불이 타는 지옥에도 혹은 천당에도 가지 않았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단순히 죽었다”고 하며 “사망 이후 악인이 영원토록 고통을 당한다는 지옥불의 교리는 다음 네 가지 이유 때문에 사실일 수 없다. ① 그것은 완전히 비 성서적이다. ② 그것은 비이성적이다. ③ 그것은 하느님의 사랑과 반대된다. ④ 그것은 하느님의 공의와도 모순된다.”고 말하고 있다.

신학적으로 볼 때 “지옥은 악마이건 인간이건 저주받은 자가 영벌을 받는 곳이다. 즉 타락한 천사와 의식적으로 하느님의 사랑으로부터 떠난 상태로 죽은 인간이 영원한 벌을 받는 장소와 상태를 지칭한다. 지옥의 벌은 영원한 것이다. 이는 이 살펴본 대로 최후의 날을 예고한 그리스도에 의한 선언(마태 25, 26), 악인은 ‘악마와 더불어 영원한 벌을 받는다’는 4차 라떼란 공의회(1215)의 정의(DS 801)에서 명백하다. 지옥의 존재는 하느님의 정의에 일치하고 있다. 하느님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존중하기 때문이다. 지옥에 떨어지는 자는 하느님으로부터의 은총에 저항함으로써 자기자신에게 현실적으로 지옥의 벌을 선고하고 있음이다. 선인이 그 덕행에 대한 보수로서 천국에서 복을 누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악에 대한 벌은 덕에 대한 보상과 대응되는 것이므로, 내세에 있어서도 죄에 대한 벌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악인들이 죽은 후에 벌을 받는다는 관념은 지옥의 존재에 대한 부수적인 증명에 불과한 것이다. 성서는 지옥벌의 영원성을 뚜렷이 설명하고 있다.

    5) 여호와의 증인의 시한부 말세론

여호와의 증인들은 그들의 기관지인 “파수대”와 “지금은 깰 때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출판물에서 그리스도의 임재의 표징이 여러 가지 특징들과 사탄의 악한 사물의 제도의 마지막날의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그들은 신약성서의 11개 구절 -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마태 24, 7), “처처에… 온역(질병)이 있으리라”(루가 21, 11). “처처에 지진이 있으리라”(마태 24, 7), “기근이 있으리라”(마태 24, 7), “불법이 성하리라”(마태 24, 13), “사람들이 … 무서워하리라”(루가 21, 26), “부모를 거역하리라”(디모후 3, 2), “돈을 사랑하리라”(루가 21, 26),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느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디모후 3, 4),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리라”(디모후 3, 5),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묵시 11, 18) - 을 인용하면서 이것이 마지막 날의 열가지 사건들이라고 표현한다.

즉 인류 종말에의 위협인 전쟁의 위기, 기근, 지진 등의 천재지변과 질병, 공해, 이상기후, 폭발적인 인류의 증가, 윤리 도덕의 파괴 등을 나열하여 수치적인 통계를 제시하면서 “성서가 예언한 이 참혹한 고난들은 바로 때에 맞게 1914년부터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 1914년이 역사적인 전환점이다 … 예수께서는 1914년 이후의 기간이 획기적인 것이 되게 할 여러 가지 사건들에 주의를 이끄신 후 … 이 세대가 가기 전에(이 제도의 끝을 포함한) 이 일이 다 이루어지리라(마태 24, 34. 14)고 했다 … 그분은 1914년에 살아있던 사람들의 세대를 의미했다 … 그러므로 우리는 확신할 수 있다. 즉 이제 가까운 장래에 모든 악과 악한 사람들이 아마겟돈에서 갑자기 끝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여호와의 증인들이 주장하고 있는 말세의 시작 시간인 1914년을 비롯한 연대계산은 어디에 근거하고 있겠는가?

그것은 성서의 자구적인 해석에 기인된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성서에 나타나 있는 연대를 그대로 그들의 말세의 시간에 대입하여 계산하고 있다. 그들의 연대 계산은 메시아의 출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시기 그리고 아담의 나이에까지 복잡하게 전개된다.

먼저 메시아의 출현에 대한 그들의 연대계산은 이러하다 : “메시아가 출현할 해는 이미 정확히 예언되고 있었다. 바사왕 아닥사스다가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명령을 발할 때 곧 그의 통치 20년인 기원전 455년에서 정확히 483년이 지난해였다(느헤 2, 1-8). 예언자 다니엘은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메시아 곧 왕이 일어나기 까지 일곱이레와 육십이 이레가 지날 것임을 예언하였다’(다니엘 9, 25).

그러므로 7주+62주=69주라는 예언적 이레의 기간이 이 두가지 중요한 사건의 사이를 갈라놓을 것이다. 문자적인 69주는 483일이다. ‘1일이 1년’이라는 예언상의 법칙에 의하면 메시아는 484년 후인 기원 29년에 출현할 것이다(에제 4, 6)”. “그리고 바로 그 해에 예수께서 침례를 받기 위하여 요한에게로 가셨다! 그때에 그분은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으시고 메시아 곧 그리스도가 되셨다(루가 3, 1. 2. 21-23) 라고 말하면서 메시아 출현 연대를 계산해 내고 있다.

더 나아가 1914년이라는 연대는 다윗 왕국의 멸망에서부터 계산을 하고 있다 : “다윗 왕국은 제한된 영토를 가지고 있었으며 하느님께서 고대 이스라엘의 경계로 정하신 곳까지만 확장 하였다. 그러므로 지상의 예루살렘은 하늘에서 온 땅을 영토로 다스릴 참 메시아 왕국의 모형에 불과하다 … 그런데 이 하느님의 모형 왕국은 기원전 607년에 바빌론의 느부갓네살왕에 의해서 정복되었다.

유대력으로 일곱째 달인 10월 중순경에 그 땅은 황폐케 되었다. 이 일은 하느님의 허락에 의해서 일어난 일이라는 증거로 여호와 하느님께서는 느부갓네살이 꿈을 꾸게 하셨다. 그것은 베어졌다가 ‘일곱때’ 기간이 지난 후에 다시 자라도록 허락된 한 나무와 연관된 꿈이다(다니엘 4, 10) … 그러나 느부갓네살이 군 꿈의 주제는 그 꿈의 주된 성취가 하느님의 모형 왕국과 관련된 것이며, 그 이방인 왕은 허락을 받아 그 왕국을 베었음을 보여 주었다 …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인류를 다스릴 메시아 왕으로 즉위하시기 전에 일곱 때라는 이방인의 통치기간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셔야 했다.” 그런데 일곱 때라는 기간은 “묵시록 12장 6절과 14절을 보면 1260일이 한때와 두 때와 반 때와 같은 기간임을 알게 된다. 그것은 도합 3과 1/2때이다. 그러므로 한때는 360일이다. 따라서 일곱 때는 360의 7배수 곧 2,520일이 된다.

이제 우리가 성서법칙에 따라서 하루를 일 년이라고 계산하면 ‘일곱 때’는 2,520년이 된다. 우리가 이미 알게 된 바와 같이 ‘열국의 지정한때’는 기원전 607년에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그때부터 2,520년을 계산하면 기원 1914년에 도달하게 된다. 그해가 바로 이 ‘지정한 때’가 끝난 해이다. 그 해에 1차 세계대전은 우리 시대에까지 계속 되어온 참혹한 고난의 기간을 열어놓았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1914년에 하느님의 하늘 정부의 왕으로서 통치를 시작하셨음을 의미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즉 기원전 607년 10월 중순이후 2,520년 후인 1914년 10월에 예수께서 하늘 정부의 통치를 시작했으며 “예수께서 왕의 인정을 받아 하느님의 영으로 기름 부음 받은 지 삼년 반 후에 여호와의 사자로서 영적 성전에 임하여 그 성전을 정결케 하기 시작하였으며 그 때는 1918년 봄이 된다. 그해는 심판하기의 시작이며 그 영을 받은 추종자들을 살펴보기 시작한 때였다”라고 하여 1차 세계 대전이 끝난 1918년을 기점으로 심판의 때를 계산하고 있다.

그런데 여호와의 중인들은 인류 최후의 날, 즉 심판 날을 아마겟돈 전쟁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아마겟돈을 “희랍어로 하르마겟돈, 히브리어에서 유래되었고 많은 번역자들은 아마겟돈으로 옮기었다. 므깃도산 또는 군대들이 집결하는 산을 뜻한다. 성서는 그 명칭을 핵참사가 아니라, 다가오는 우주적인 하느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의 전쟁과 관련 짓는다(묵시 16, 14. 16). 그 명칭은 특히 지상의 정치적 통치자들이 야훼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그분의 왕국을 반대하여 모이고 있는 장소(즉 상태 또는 상황)란 뜻으로도 이해 될 수 있다”라고 정의하면서, 아마겟돈이야말로 현재의 이 악한 세상을 멸망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천상적 왕국이 설립되는 시점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아마겟돈 전투가 벌어지는 이유는 하느님이 의로우시고 더는 악을 관용하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 천년 동안 악과 화를 초대한 악귀들과 반역적인 인간들로 구성된 사탄 마귀의 조직을 멸망되지 않으면 안된다. 아마겟돈은 야훼의 우주적 주권을 옹호할 것이다. 그리고 그 전쟁은 여러 세기동안 그분의 이름에 쌓인 모독을 말끔히 없앨 것이다 … 하느님의 아마겟돈 전쟁은 사실상 온 인류가 멸망되는 일이 없게 해 줄 것이다. 여호와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거주하도록 땅을 창조하셨지 인간들 사이의 핵전쟁으로 멸망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생명체가 살기에 부적합한 곳이 되도록 뜻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것이다 … 그로 인해 낙원이 회복되는 길이 열리고 땅과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목적이 성취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따라서 이 전쟁에서 20억 이상의 인류가 멸망하고 모든 이교들과 이교국가는 멸망하고 여호와의 증인 14만 4천명과 증인들이 복음을 전하는 다른 양 무리만이 살아남게 된다고 한다. 이때 한쪽에는 세계 모든 나라와 기독교 지도자들과 모든 이교도들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살아있는 14만 4천명이 있는데 이들은 여호와의 증인이 구성한 조직체에서 중대한 사무역할이나 주용 결정권을 소유한다. 위의 두 그룹의 무리에 있어서 전자는 멸망의 심판을 당하고 후자는 천년왕국에 들게 된다는 것이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이러한 말세의 근거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하느님은 이 세상을 6일 동안 창조하시고 일곱째 되는 날 쉬셨다. 그날이 바로 안식일이다. ‘요한 묵시록’을 보면, 말세가 끝나게 되면 안식의 시기인 ‘천년왕국’이 펼쳐지게 된다. 다라서 안식의 기간인 하느님의 하루는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인간의 시간으로는 천년에 해당된다. 하느님이 이 세상을 6일 동안 창조하시고 아담을 6일째 되는 날 창조하셨다는 것은, 아담의 창조후 이 세상이 하느님의 시간으로는 6일간, 인간의 시간으로는 6천년 동안 지속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아담의 창조날짜를 알면, 말세의 시기를 알 수 있다. 성서에 나타난 아담 이후 자손들의 역대와 그들이 살았던 나이들을 합산하여 계산해 보면, 아담의 창조일은 기원전 4026년 10월 1일 경이다. 따라서 이때부터 6천년을 계산한다면, 말세의 시기는 1975년 10월 1일경이 된다. 이것은 성경에서 언급된 말세의 징표들이 최근 모두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로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에서 세상 종말의 시기로 잡았던 1975년 10월 1일의 예언은 과거의 여러 차례의 예언과 마찬가지로 빗나갔다.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들은 세상 종말의 시기를 1975년으로 잡았던 것은 아담의 창조일을 기준으로 한 것이었지만, 그때에는 하와의 창조 일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계산 착오를 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아담의 창조 일로부터 하와의 창조 일까지의 기간만큼 종말의 시간은 지연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들이 말하고 있는 1914년의 그리스도의 재림시기는 그 시기가 어떠한 오류에서 출발하였든지 간에 초대교회의 성서의 사상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초대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며 그날이 도둑처럼 올 것이라고 준비하면서도 재림의 시기가 언제라고 지정하는 오류는 결코 범하지 않았다. 따라서 가톨릭 신앙은 역사의 종말을 상징하기 위해 묘사된 묵시록 등의 상징적 표현을 순전히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금한다. 왜냐하면 그런 자의적 해석은 계시의 곡해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14만 4천명의 적은 무리에 해석도 그렇다. 묵시록에 나오는 14만 4천명은 한정된 숫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유대 민족들의 사고 방식대로 완전한 숫자인 12의 배수로, 그것을 천배해서 전부를 포괄하는 완전성을 나타내는 숫자이다. 여호와의 증인의 해석대로 한정되고 선택된 숫자와는 거리가 멀게, 모든것을 포함하는 완전한 숫자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숫자의 의미는 구원을 받을 자의 수가 매우 적은 것이 아니라 이와는 정반대로 구원을 받을 자의 숫자가 대단히 많으리라는 희망적인 숫자인 것이다.

그리고 여호와의 증인의 말세 사상은 한국 내에도 수없이 존재해 있는 유사 종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한부 말세론과 다를 바 없으며, 이는 극히 비 성서적이다. 즉 그들은 이미 앞에서 고찰해 보았지만 성서를 필요에 따라서 아무 곳에서든지 인용해 내고 있다.

그들의 교리서의 일종인 “하느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의 연대 계산법을 보면 마태 24, 3과 마르코 13, 4 및 루가 21, 24의 종말에 대한 성서적 내용들을 인용한 다음에 다니엘 4장과 묵시록 12, 6. 14과 아울러 에제키엘 4, 6의 내용들을 뭉뚱그려서 하나의 결론을 도출시켜 낸다. 이 결론으로 그들은 다니엘 4장의 일곱 때가 바로 2520년이 되는 기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기원전 607년 가을에서부터 2520년 후인 1914년을 그리스도의 재림시기로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나 유다왕국의 수도인 예루살렘이 함락된 것은 기원전 597년이기 때문에 그들의 성서 해석은 물론이거니와 607년이라는 연대계산은 논거 자체가 이치에 맞지를 않는다.

또한 1975년의 말세 시일을 산출해 낼 때에는 창세 2, 1을 원용하여 아담의 창조로부터 6천년째가 되는 해라고 하는데 여기서 놀라운 일은 첫 인간인 아담이 창조된 때를 기원전 4026년으로 본다는 사실이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4026년을 계산하기 위해서 구약의 아담으로부터 이어내려 오는 족보와 그 족보에 따른 개개인의 생존 년수를 전부 더하는 오류를 저지른다. 그리고 여호와의 증인은 이 6천년이 끝나고 일곱째 천년동안이 안식일에 해당하는데, 이것이 야훼 하느님께서 통치하시는 천년왕국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 기간 즉 2975년까지 바로 천년왕국이 지속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말하는 천년왕국설은 요한 묵시록(20, 1-5)의 문장 해석에서 나온 것이다. 이들은 천년왕국이 최후의 심판, 즉 세상의 종말에 이르기전 천년동안 지상에 재림한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평화의 나라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 교설은 이미 초대 교회때에 유스띠노(100-165), 이레네오(130-200) 등의 교부들로부터 지지를 받은 적이 있었지만, 교회는 문제의 이 성서 구절에서 말하고 있는 천년왕국설을 천년 왕국의 도래에 대한 계시로 보지 않으며, 단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통하여 세상을 통치하는 것을 의미하고, 천년이란 기간 또한 무한히 긴세월을 의미하는 것에 불과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따라서 여호와의 증인들의 결정적인 오류의 근원은 성서의 축자 영감주의와 자의적 해석에 기인한다. 그들은 성서는 아무런 잘못이 있을 수 없고 만약 성서에서 과학적이고 고고학적인 오류와 같은 것이 보일 지라도 그것은 인간의 착오나 무지에서 나온 것이지 성서에서는 아무런 탓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서는 하느님의 영감에 의해 저술된 것이기 때문이며, 그들은 이러한 주장의 근거를 디모후 3, 16을 인용하여 설명한다 : “모든 성경은 하느님의 계시로 이루어진 책이다.”

그러나 성서의 시대적 배경은 1900년 이상 동 떨어진 문학과 문화권이므로 이에 대한 자의적 해석은 큰 오류를 발생시킨다. 따라서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이나 전해진 말씀에 대한 유권적 해석 임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권리를 행사하는 교회의 살아있는 교도권에만 맡겨져 있다. 이 교도권은 하느님의 말씀보다 높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에 봉사하고 전해진 것만을 가르치며 하느님의 명령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것을 경건히 듣고 거룩히 보존하며 성실히 진술하고 또한 하느님의 계시로 믿어야 한다고 제시된 모든 것을 신앙의 이 단일 위탁물에서 알아”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6) 여호와의 증인의 정부관

여호와의 증인들은 이미 1914년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 정부의 통치를 시작하셨기 때문에 곧이어 닥칠 아마겟돈 전쟁 이후에는 이 악한 세상의 어느 부분도 남지 않을 것이고 다만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들만이 계속살 것인데 그것은 이미 성서의 여러 예언에 나타나 있다는 것이다. 즉 “신세계에서는 전쟁, 범죄, 가난, 불공정이 전혀 없음을 알려준다. 병과 죽음은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매우 부적합함이 증명된, 분열을 일으키는 정부, 종교, 경제 제도가 더는 없을 것이다. 슬픔의 눈물은 즐거움의 눈물로 대체될 것이다. 악과 고통이 영원히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상태가 표본이 되는 이러한 성서 예언에는 … 더는 전쟁이 없을 것이다(시편 46, 9 ; 이사야 2, 4), 누구에게나 공의가 시행될 것이다(시편 72, 16 ; 에제 34, 27), 두려움에서 벗어날 것이다(미가 4, 4 ; 에제 34, 27), 늙는 일과 병이 더는 없을 것이다(욥 33, 25), 죽음, 애통, 고통이 사라질 것이다(묵시 21, 4)”가 있는데 이 때는 이미 새 하늘과 새 땅의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새 하늘은 물질적인 하늘이 아니라 땅에 대한 새로운 통치권을 의미하는데 그리스도가 그 왕이 될 것이며 그 새 하늘의 일부로서 그분의 충실한 추종자들인 144,000명이 그분과 함께 다스릴 것이라고 한다. 또한 새 땅은 새로운 무리의 사람 혹은 사람들의 새로운 사회를 의미하며, 악한 사람들의 세상으로부터 분리해 나온 하느님의 참다운 종들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들은 “공산주의를 포함한 현 정부들은 그들의 권력을 사탄 마귀로부터 받았기 때문에 이 멸망할 정부에 대해서는 협조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즉 “오늘날 정부들이 주장하는 국가적 주권들은 창조주의 우주 주권과 상치하는 것이다. 이 최고의 쟁점을 둘러 싼 군사적 대결은 이 마지막 때가 끝남에 따라 더욱 가까와 오고 있다. 우리는 다가오는 사건들에 대하여 묵시록이 이미 알려 주는 바에 비추어 지상의 왕들과 정치적 통치자들과 그들의 군대들과 지지자들이 끝까지 싸우기 위하여 아마겟돈으로 모아지고 있는 것을 보는가? 그렇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믿음을 통하여 하늘의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천사들로 이루어진 군대가 마치 흰 군마를 타고 달리듯이 그 동일한 전쟁으로 질주하는 것을 본다. 우리는 그에 대한 하느님의 말씀을 믿을 수 있다.

즉 아마겟돈에서의 전쟁은 전능하신 하느님의 군대의 승리로 끝날 것이며, 인간이 만든 모든 정치적 제도와 관리들과 군대와 애국적 지지자들은 멸망될 것이다”라고 주장하면서 이미 그들 자신이 설정해 놓은 전능하신 하느님의 왕국에 대한 충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에 지역사회 및 국가, 정치 등에 절대로 참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호와의 증인의 신앙관과 정부관이 그들 신도들에게 계속해서 주입되기 때문에 그들은 이 사회 안에서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 시키고 있다.

    4. 여호와의 증인이 사회와 교회에 미치는 영향

    1) 여호와의 증인의 병역거부 및 집총거부

여호와의 증인들의 병역거부 및 집총거부의 역사는 1916년 제2대 교주였던 러더포드가 1대 교주인 럿셀의 사망 후 여호와의 증인의 종교 운영권을 이어 받은 후부터 시작된다. 그는 1918년 미국의 시크라멘트 신앙대회에 참석한 신도들에게 병역거부와 집총 거부에 대한 교리를 공개 발표하고 이 사실을 신앙 진리로 받아들일 것을 선언하였다. 그러면서 러더포드 자신도 그 당시 군복무를 거부하여 측근 7명과 함께 미연방 교도소에서 20년의 장기 징역형의 중형을 선고받았으나 신도들의 끈질긴 탄원으로 1년 동안만 복역하고 풀려 났다.

그 이후 여호와의 증인들은 세계 각국에서 정부와 마찰을 빚게 되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이땅의 국가보다는 천국정부를 옹호해야 한다고 되어 있으며, 주기도문의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구절에서 ‘나라’는 여호와의 증인의 왕국회관을 의미한다”라고 하면서 특정한 국가에 속해 있지 않은 자신들은 묵시 13, 1-2에 근거하여 현정부의 권력은 사탄 마귀로부터 받았다는 말씀과, 요한 18, 36의 여호와의 증인의 왕국은 세상에 없으므로 세상의 모든 정치, 군사에 관여하지 않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솔선해서 따라야 하고, 자신들이야말로 이사야서 2, 2-4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도 엄습하지 아니하리라”와 같은 예언을 몸소 성취해야 하기 때문에 병역은 거부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호와의 증인들은 전체 신도들에게 병역을 거부해야 하는 것을 교사하는 세뇌교육을 주 5회 하고 있는데, 한번도 직접하는 경우는 없으며, 성서의 근거들을 들어, 여호와의 증인들은 정치적, 군사적 중립이라고 강조하고 마지막 날을 위해서 군입대를 거부할 것을 종용한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소집을 기피하게 되고 평생을 병역 미필자로 사회로부터 소외되는 것이다. 그러나 요즈음 방법을 달리하여 기피하는 것보다는 군에 들어가서 항명하는 방법을 택하는데, 그것은 1회의 처벌로 끝나기 때문이다. 가끔 여호와의 증인의 예배 때에 교도소 내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되는지를 교육시키기도 하는데 이러한 의식화 교육에도 불구하고 어떤 신도가 압력에 못 이겨서 군복무를 하게 되면 교회측에서는 무조건 이탈자로 처리하여 제명 처분시킨다.

이러한 병역거부는 사회적으로 예비군 교육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현재 30-35세까지 예비군 소집이 되고 있는데 여호와의 증인들은 대부분 주민등록을 말소시키고 기피자로 되어 있는 실정이다.

    2) 수혈거부 문제

여호와의 증인들은 수혈 행위를 금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러하다 : “이 금령은 모세의 율법에도 들어 있으며, 오늘날 우리 모두는 조상인 노아에게도 여호와께서 피는 먹지 말것이니라 라고 명령하셨다(창세 9, 4). 우리는 피를 신성하게 여겨야 한다. 그 이유가 레위기 17, 14에 기술되어 있는데 그것은 모든 생물은 그 피가 생명과 일체라는 것이다. 그리고 생명의 수여자 하느님이 보시기에는 생명이 소중하다.

따라서 목을 비틀어 잡은 닭의 경우와 같이 피를 빼지 않은 고기는 먹지 말라고 성경은 알려준다. 그것은 영적 이유 때문이다. 이렇게 멀리 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인간혈액을 우리 몸에 수혈하지 않는 것까지도 의미한다.” 이렇게 그들은 “피를 멀리하라”(사도 15, 20), “피를 먹지 말라”(레위 17, 14)를 엉뚱하게 확대 해석하여 수혈 거부법을 만들었다. 피가 없이 죽어 가는 신도들에게 죽어도 다시 부활 할테니 안심하고 수혈을 거부하고 죽어갈 것을 강요함으로써 많은 신도들이 죽어갔다.

또 그들은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갑자기 사고를 당해 급사할 경우 무의식 상태에서도 수혈을 거부한다고 수혈거부 카드를 전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에게 발급해 주어 주민등록증처럼 신분증화해서 항상 의무적으로 휴대하여야 하며 만약 본인이 무의식중에 처해 있을 경우에도 대리인이 거부하게 한다. 만약 지시를 어기고 수혈을 하여 살아나면 협회는 그를 제명시킨다.

그들의 수혈거부 카드에는 이렇게 명시되어 있다 : “본인은 다른 사람들이 본인의 생명이나 건강을 보존하기 위해 수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더라도, 본인에게 결코 수혈을 행하지 말 것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비 혈액 증량제는 사용해도 좋습니다. 이것은 환자로서의 본인의 권리와 여호와의 증인으로서의 본인의 신념에 따른 것입니다. 본인은 이 증서로, 의사들과 병원이 본인의 거부로 인한 손상에 대해 여하한 책임도 없음을 밝힙니다. 이 증서는 본인이 무의식 상태라 할지라도 유효하며, 본인의 상속인이나 법정 대리인에게도 구속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수혈 거부의 교리는 그들의 교리서에도 구체적으로 나타나있다. “그리스도인에게 피를 멀리하라는 요구는 의학적 수혈을 금지한다”라는 대목에서도 사도 15, 19. 20. 28. 29 ; 21, 25을 인용하고 있으며 “이 금지령은 어떠한 형태의 피에든지 다 적용된다”는 대목에서는 레위기 7, 10. 26. 27을 인용한다. 또한 “위급할 때라도 비 성경적 피의 사용은 잘못이다”라는 대목에서는 §역대 11, 18. 19 ; §사무 14, 31-34를 인용하고 있으며 “현재의 생명을 보존하려고 율법을 위반하는 것은 영원한 생명을 상실하게 한다”라는 대목에서는 마태 16, 25-26을 인용하면서 “실제적으로 볼 때, 극한 상황하에서 수혈에 의지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사실 생명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순간적이고, 대단히 일시적인 생명의 연장에 불과할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헌신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영생을 희생하는 일이 되어진다”라고 주장한다. 다라서 여호와의 증인들이 수혈을 거부함으로써 사망하는 사례는 매우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3) 사회 생활의 파괴

많은 신흥종교에서 강조하는 시한부 말세론은 신자들에게 긴박감과 공포심을 심어줌으로써 일상적인 사회 생활을 파괴시키는 요인이 된다. 또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종교생활에만 전념하도록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점은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여호와의 증인에서는 세상 종말의 시간은 임박했으며, 그 때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전도 생활에 전념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또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식구”(마태 10, 36)라는 구절과 “너희의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마태 10, 22)이라는 구절을 인용하여 가족의 반대를 필수적으로 받을 것이라고 한다. 또한 “참 종교를 택함으로 가족과 친지로부터 반대를 받는다”, “하느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이 첫째가 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신앙생활을 막는 식구가 있을 경우 가정을 떠나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워치타워 성서책자 협회의 교리를 교육 훈련시키는데 방해와 꺼리낌이 되는 직업은 단호하게 포기할 것을 강요한다. 국가공무원이 되는 일은 절대 거부하고 있으며 국토방위에 관련되어 있는 직종, 가수와 영화 배우, 탈렌트와 같은 인기직종, 술, 담배와 관련된 직종, 타종교 기관에서 근무하거나 관련된 직업 또는 스포츠에 관련된 직종은 취업해서는 안된다. 이러한 협회의 규율 때문에 여호와의 증인이 되면 생업을 포기해야 하고, 안정된 직업을 갖지 못해서 서적 외판원이나 개인 행상을 하면서 낙원의 도래를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은 대부분이 가난하게 살고 있으며, 그나마도 “파수대”나 “지금은 깰 때이다”와 같은 그들의 선전책자를 팔러 다니는 전시간 전도인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

또한 여호와의 증인들은 학문에 대한 지나친 편견을 가지고 있어 신도들이 학업을 포기하게끔 한다. 그들은 “세상의 지혜는 하느님의 승인을 받지 못한다” “거짓 지식에 의존하는 것은 멸망으로 인도한다”고 말하고 있으며, “하느님을 고려하지 않은 세상의 지혜, 지식은 유해하다” 라고 못박고 있으므로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의 대부분이 고등 교육 이상을 받지 못한 상태이다. 또한 그들은 골로 2, 8의 “여러분은 헛된 철학의 속임수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그것은 세속의 원리를 기초로 인간이 만들어서 전해준 것이지 그리스도를 기초로 한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한 구절을 인용하여 학업을 중단하도록 교묘하게 유도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기성 종교에 대한 그들의 비판에서도 잘 드러난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기성 종교를 사탄이 창시한 사탄의 조직이고, 큰 바빌론이며 그 교역자들은 음녀(창녀)라고 부르고, 그들의 종교 활동을 영적 매음행위에 비유하고 있다. 즉 “영적 매음행위는 세계 종교제도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그리스도교국은 그 제도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부분이며 성서에서는 그 제도를 큰 바빌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스러운 것들의 어미라고 부른다”고 말하면서 “하느님 보시기에 가장 심한 형태의 매춘행위가 있는데 그것은 영적 매춘행위 즉 참 하느님을 숭배한다고 주장하면서 사실상 다른 신들에게 숭배와 애정을 바치는 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기존 그리스도교에서 사용하는 예배의 내용이나 형식을 “하느님을 불쾌하게 만드는 관습들”이라고 낙인찍고 십자가의 사용, 종교적 형상과 그림, 인간의 제도에 영예를 돌리는 일, 부활제와 크리스마스를 지내는 것을 이교적 관습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4) 가톨릭 교회 신자들에 대한 포섭 활동

여호와의 증인들은 “아마겟돈 전쟁 때 멸망하게 될 큰 바빌론의 실상은 천주교를 두목으로 하고 있는 모든 종교의 연합체를 말하고 짐승의 우상과 멸망의 가증한 것은 국제연합 즉 U.N.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큰 바빌론에 속해 있는 음녀가 짐승과 지금 음행을 하고 있다고 하며, 그 음녀는 모든 사제들을 뜻하고 짐승은 모든 국가에 속해 있는 정치인들이고 말한다.” 따라서 그 음녀의 집단에 속해서 영적 매춘행위에서 미혹되어 있는 이들을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즉 말세가 되기 전까지 하루 빨리 144,000명의 무리 속으로 이끄는 것이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의 지상 목표이다. 그러기에 그들의 선교활동은 광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여호와의 증인들은 비 종교인이나 타종교인들 보다 그리스도교 신자를 선택하고 있고 그 중에서도 개신교 신자들보다는 가톨릭 신자들을 선교의 가장 바람직한 대상으로 삼는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증인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의 성경 토론을 중심으로 하는 선교활동에는 성경에 대한 관심이나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들보다는 어느 정도의 관심이나 지식이 있는 사람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신교 신자들은 가톨릭 신자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성경에 관한 지식이 많으며 여호와의 증인의 성서 해석상의 오류와 문제점에 대하여 자신들이 다니는 교회에서 교육을 이미 받아 왔기 때문에 선교의 효과가 그리 높지 않다. 그러나 자신의 신앙생활에 대한 자신감과 성서 지식과 교육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가톨릭 신자들은 이들의 좋은 선교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가톨릭 신자들의 집의 대문에 붙여 있는 “천주교 교우의 집”이라는 문패는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에게는 바로 선교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사실상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의 방문을 받지 않은 가정 주부들이 거의 없을 정도로 여호와의 증인들은 천주교 신자들을 공략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렇게 여호와의 증인들의 선교활동으로 인해 가톨릭 신자가 여호와의 증인으로 개종을 했을 때는 일종의 악순환이 벌어지게 된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증인이 된 가톨릭 신자는 누구보다도 가톨릭 교회의 사정과 약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다시 주위의 가톨릭 신자들을 포섭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 중에서 70%이상이 가톨릭 교회에서 개종한 사람들”이라는 통계가 가능한 것이다. 현재(1988)여호와의 증인이 신도수를 알아보면 72,276명으로 집계되어 있다. 따라서 이들중 70%이상이 가톨릭 교회에서 개종한 사람들이라면 그 숫자는 자그마치 49,893명이 넘게 된다.

이에 우리는 반성할 점이 많이 있음을 자각하게 된다. 현재 한국 가톨릭 교회는 양적으로 260만명이 넘는 신도들을 포용하는 교회로 발전했지만 이런 양적 증가는 질적 수준의 향상과 보조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여호와의 증인의 집요한 선교 활동과 만나게 되면 우리 신자들은 동요하게 되고 신앙의 뿌리 자체가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교회가 앞장서서 질적인 부족 현상을 타개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길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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