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5일 (금)
(홍)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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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Re:8년냉담하다 다시 다니기시작했는데.. 다시 냉담하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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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221.159.63.*]

2007-10-29 ㅣ No.5928

 

 

저는 열심한 개신교 신자였습니다. 그런데 공부를 자꾸하다 보니 교회의 핵심인 성체성사가 개신교에 없다는 것을 알았을때, 아 ~ ~ 나는 지금 속고 있구나 !!

어서 빨리 제 자리로 돌아가야 겠다는 생각으로 천주교에 입문했습니다.

 물론 개신교회안에서의 갈등도 이유가 되었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성체성사였습니다. 다정다감한 개신교 신자들 부러워 마세요. 사람 차별이 심하고, 뒤돌아서면 누구는 어떻게 사네 하고 흉보고, 힘들어서 십일조 못내면 쑥덕거리고...

저역시 인간적인 갈등이 심했죠. 그때는 너무 힘들었으니까요.

 천주교 생활...

사람들의 무관심, 형식적인 묵주기도, 먼지 쌓인 성경책, 형식적인 기도생활...어느것 하나 저를 만족시켜 주는 것이 없더군요..

그래도 교회의 원천이며 우리 신앙인의 핵심인 성체성사가 있기에 저는 행복했습니다. 개신교는 성사생활이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신 구원의 신비를 성사들을 통해서 신앙인들의 공동체인 교회안에 쏟아지는 은총을 베푸십니다.

한마디로 천주교 신자들은 참 좋은 몫을 택했다고 봅니다. 7성사로 코팅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저 역시 젊은 자매이며 공소 신자입니다. 처음에 공소에 들어 섰을때의 서글픔이란 이루 말할수 없었지요. 젊은 사람들이 없어서 아예 벽을 쳐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외롭고 고독한 신앙생활이 이어졌습니다.

 공소 생활한지 13년이 되었습니다. 중간에 왜 갈등이 없었겠습니까?

동네 목사님은 우리집을 방문하셔서 저를 위로해 드리고 하셨지만 본당 신부님은 아예 관심조차 없었을때의 허무감이란? 신자들 조차 냉냉했죠.

 몇번이고 가던길을 돌려 개신교로 가려했었고, 그럴때마다 하느님께서는 성체성사로서 저를 잡아 주셨습니다.

 종교는 인간의 친절이나 사교적인 장소가 아닙니다. 물론 교우들간의 일치와 사랑이 이루어지는 곳이 교회안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 먹지 않는다면 신앙의 핵심이 빠진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공소에 101세된 할머니께서 성체를 영하기 위해 80세된 아들의 손에 의지해서 걸어서 40분이상이나 걸리는 본당까지 가서 미사에 참례하신다는 소리를 어제 공소 회장님의 강론증에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몸을 모시지 않는다면 나중에 예수님 뵐 면목이 없다면서 말입니다. 그 만큼 성체성사가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2천년전에 이루신 구원의 빠스카 신비를 교회안에서 성체성사중에 현재화하십니다. 지금 이자리에서 이루어 주십니다.

미사를 통해 하느님 사랑안에 머무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저는 공소에서 살아남기 위해 성경을 많이 읽었습니다. 무조건 성경 몇줄 달달 외워서 그것이 신앙의 전부인양 입에 침을 튀기면서 자기 자신을 내세우는 개신교 신자들을 닮지 않기 위해, 저는 한줄 성경을 읽더라도 깊은 묵상을 하면서 읽었습니다.

 묵주기도도 처음에는 형식적으로 했는데 자꾸 하다보니 성경과 연결되어서 깊은 묵상이 되었습니다. 아 ~ ~ 묵주기도가 개신교 신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성모님께 드리는 기도가 아님을 깊은 묵상중에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의 전 생애를 통해 이룩하신 구원의 깊은 뜻을 깨달았고, 이제는 모든 묵상은 묵주기도로 할 만큼 생활하 되었습니다. 묵주기도는 복음서의 요약이라는 것도 묵주기도중에 깨달았습니다. 제 스스로 깨달았지만 성령의 역사하심이죠.

 누가 저에게 이런걸 가르쳐 주었겠습니까? 시골이다 보니 인터넷도 최근에 개통되었고, 책을 읽고 싶어도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오직 성경읽기와 묵주기도로 깊은 묵상을 했습니다. 이제는 동네 개신교 목사님도 저에게 깍듯합니다. 우리 아이들 공소를 이끌어 갈 정도로 열심입니다.

부디 다른 맘 먹지 마시고 자매님께서 선택하신 길을 꽉 잡으십시요. 자매님께서는 참종교인 천주교를 택하셨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지금부터 쓴 글은 제가 나름대로 제 신앙생활에 대해 정리한 글입니다.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세례만 받으면 하느님께서 다 알아서 모든일이 잘 풀리게 해 주실 것이라 믿었는데 그런데 하느님의 방향은 나의 방향과 정 반대이셨다.

 세례때 신부님께서는 3가지를 기도하시면 하느님께서 무조건 들어주신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물질과 건강과 부를 청할려고 마음먹었다가 세례받는날 엉뚱한 기도를 청했었다.

 끝까지 냉담없이 당신을 배반하지 않도록 해 주셔요...

우리가정 성가정 주세요. 우리집안은 주지스님이 탄생될만큼 뿌리깊은 불교집안입니다... 그리고 우리아들 사제성소로 불러주세요...

 그래서 인지 나의 신앙생활은 초창기부터 고통의 연속이었다.

세례를 한달 앞두고 원인모르게 몸이 아파 병원에 가 보니 여기저기 수십군데 혹이 자라고 있었다. 몸은 얼마나 살이 빠졌는지 그 완강한 시어머니께서 나의 몰골을 보고 놀라 자빠질 정도였다.

 곧바로 수술을 들어가야 된다는 의사의 말에 나는 세례를 받고 수술에 들어간다고 우겼다. 죽더라도 세례후에, 그것도 그렇게 기다리던 영성체를 하고 죽고 싶었던 것이었다.

 1년 6개월의 치료끝에 건강을 되찾자 말자 시어머니께서 뇌졸중으로 쓰러 지셨다. 급하게 이삿짐을 싸서 시골로 들어올수 밖에 없었다.

 이때부터 진짜 고통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병원과 집을 오가며 어머니 병수발을 들어야 했고, 네살 다섯살 아이들은 그대로 시골에 방치된 체 엄마잃은 고아들 마냥 천덕꾸러기로 클 수 밖에 없었다.

 아 ~ ~ ~  이게 뭐람...

하느님을 믿으면 사업실패로 갈곳없는 남편의 일도 잘 풀릴것이고, 가정도 행복할줄 알았는데 모든 것이 꼬여서 엉망 진창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거기에다가 빚더미에까지 앉았으니..

 오랜 시어머니의 투병.. 목조차 가눌수 없을 정도로 중병중인 시어머니의 손발이 되어 줄수 밖에 없던 나에게 그나마 힘이되어주시는 것이 있었으니 성경 말씀이었다.

 특히 시편을 읽으면서 울고 또 울었다. 모두 나에게 하는 말씀인것 같아서 였다. 하느님께 살려달라 부르짖고, 매달리면서 그렇게 누구하나 기억해 주지 않는 삶을 살았었다. 들꽃같은 인생이었다.

꽃같은 30대를 그렇게 시골에서 이름조차 없이 살았었다.

 시골이라서 공소 신자들도 냉냉했고 본당에서조차, 신부님조차 죽어가는 내 영혼을 위해 한번도 방문해 주시지 않으셨다.

 그 처절함이란??  그 비참함이란??

내 아들이 사제가 된다면 먼저 양복을 벗고 잠바와 운동화를 신으라고 말하고 싶다. 아니 실제로 그렇게 말을 한다. 언제든지 어려운 신자들을 위해 뛰어갈수 있는 자세로서..

목에 힘 빼고, 로만칼라 벗어버리고, 사도 바오로처럼 신앙을 삶으로 증거하도록 그렇게 교육시킨다. 신자들이 사준 맛있는 밥과 술대신 힘들게 연명하는 어려운 신자들의 피땀으로 얼룩진 술을 마시기를 그렇게 교육시킨다. 아들이 사제 성소가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지만 ....  

성경책이 눈물에 젖어서 이튿날이면 말라 비틀어 져서 펴지지 않을 정도로 성경책에 매달렸고 기도에 매달렸다.

 특히 주님의 기도중에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서 다음기도로 넘어가지가 않았다. 아버지 품에 안겨서 몇시간을 울었는지 모른다.

그때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체험으로 나에게 다가오셨다. 인간의 언어로 어떻게 표현할수가 없었다. 하느님 체험으로 나는 다시 일어설수 있었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신학원에 들어갔다.

남들은 자동차를 가지고 편안하게 이쁜 옷 입고 다녔지만 나는 재 활용되는 옷에다가 버스를 타고 다녔다. 갖혀있던 새장속에서 훨훨날아가는 새 처럼 나의 날개는 힘이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 직장에 나가서 두시간 일하고 신학원을 가면 온몸에 힘이 빠졌다. 그나마 약한 몸이 었는데 하루를 공부와 씨름을 벌이자니 힘이 많이 들었지만 그래도 기쁨이 있기에 견딜만 했다.

 오후에 수업마치면 또 직장에 들어가서 아침에 이은 일을 해야만 했다. 남들은 수업마치면 외식하려 간다, 쇼핑하려 간다 했지만 나는 어느누구에게 나의 사정을 말하지 않고 그렇게 세상적인 조건과 담을 쌓는 생활을 했었다.

하느님께서 공부할수 있도록 직장도 주시고 생활 여건도 마련해 주심에 감사를 드리면서 그렇게...

 9시쯤 집에 들어와서 저녁준비에다가 신학원 과제물로 하루를 마감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참 힘든 하루였음에도 잘도 견디어 내었다.

 조건이 좋은 자매님들중에는 중간에 탈락자도 많았다.

그렇지만 하느님께서는 이 부족하고 보잘것 없는 나를 어디에다가 쓰실려고 여기까지 이끌고 오셨는지 알 수가 없지만 분명 하느님의 깊은 뜻이 숨겨져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렇게도 힘들었었고, 사는것이 왜 이리 힘드냐고 그렇게도 많이 울었었고...중간에 아슬아슬한 위기가 몇번 있었음에도 나는 일어설수 있었다.

아이들도 학원한번 보내지 않았지만, 남의 헌옷 얻어 입히면서 키웠지만 지금은 반듯하게 공부도 잘 하고 신앙안에서 잘 자라고 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그렇다...

하느님의 일은 세상적으로 보았을때는 비참함이요, 실패한것처럼 보이겠지만 이것이 바로 신앙안에서는 성공한 삶일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그동안 내가 넘어지는 과정을 통해 인생을 알게 해 주셨고 하느님을 알게 해 주셨다.

 내가 만약 넘어지는 과정이 없이 성공한 삶만 이어졌다면 과연 하느님을 알았을까? 그 잘난 자존심에 세상 무서울것이 없었을 것이다.

 더 큰 것을 주시기 위해 이렇도록 혹독하게 나를 단련시킨 것이었다. 이 질그릇 같은 내 안에 당신의 보화를 담아 주시기 위하여 ....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원하는 나의 기도는 이미 이루어져 있었다. 지나온 삶 속에서 서서히 하느님 뜻을 받아들이고 내 뜻을 죽였으니 나의 기도는 이미 이루어진 것이었다.

고통을 통해서 나를 성숙한 신앙인으로 단련시키신 하느님...나를 죽이고 상대를 배려하며 사랑할수 있도록 나를 변화시키신 하느님...하나하나 길을 닦게 함으로써 진정한 인간으로 만들어 주신 하느님..

하느님은 사소한것 하나도 나에게는 그냥 주시지 않았다. 하나하나 길을 닦게 하셔서 땀을 흘리게 하셨다.

 그때에는 너무나 서운 하기도 했었지만 그것이 나에게 보약이었음을, 그것이 당신을 향할수 있는 지름길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무한한 당신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무한한 당신의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의 보호속에 사는이,

전능하신 분의 그늘에 머무는 이는

주님께 아뢰어라. "나의 피신처, 나의 산성이신

나의 하느님, 나 그 분을 신뢰하네,"

 

그 분께서 새 잡이의 그물이에서

위험한 흙사병에서

너를 구하여 주시리라.

당신 깃으로 너를 덮으시어

네가 그분 날개 밑으로 피신하리라.

 

그분의 진실은 방패와 갑옷이라네.

너는 무서워하지 않으리라, 밤의 공포도

낮에 날아드는 화살도

어둠속에 돌아다니는 흑사병도

한 낮에 창궐하는 괴질도.

 

네 곁에서 천 명이,

네 오른쪽에서 만 명이 쓰러져도

너에게는 닥쳐오지 않으리라.

오히려 네 눈으로 바라보리라.

악인들이 벌 받음을 너는 보리라.

 

이는 네가 주님을 너의 피신처로,

지극히 높으신 분을 너의 안식처로 삼았기 때문이다.

너에게는 불행이 닥치지 않고

재앙도 네 천막에는 다가오지 않으리라.

그분께서 당신 천사들에게 명령하시어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

너는 사자와 독사위를 거닐고

힘센 사자와 용을 짓밟으리라.

 

"그가 나를 따르기에 나 그를 구하여 주고

그가 내 이름을 알기에 나 그를 들어 높이리라.

그가 나를 부르면 나 그에게 대답하고

환난가운데 내가 그와 함께 있으며

그를 해방하여 영예롭게 하리라.

내가 그를 오래 살게 하여 흡족케 하고

내 구원을 그에게 보여 주리라."(시편 91, 1-16)

 

 가장 힘들었을때 제게 힘이 되었던 시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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