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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영혼 [121.131.208.*]

2012-08-02 ㅣ No.9961

인간적인 견지에서 강적이 걸렸다는 느낌이군요.
여기에서의 강적이란 겸손치 못하고 기복적인 시행착오로 인한 약체에게 패퇴할 때의 강적일 수 있고
그 반대로 무엇이 하느님의 일인가?, 하느님의 권세와 치유를 전해주시는 삼위의 대천사등과 함께 모두를 포용할 수도 있기에 상대가 또한 약체일 수 있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승부의 세계는 험난하겠지요.

오수산나 자매님의 교회를 걱정하는 보편 심리도 보시기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신학교 그만둔 그 집 남편이나 수도생활에서 환속한 그 아내나 크게 보면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겠지요.

일단 우울증시 보다 범위를 넓게 생각하라는 격언이 있듯 세세하게 기억하면 충격 받기 쉬우니 선을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던 관점부터 생각해봅시다.

그 집안 부부는 신앙지식이 크기에 아마 이러한 원리도 잘 알듯 싶습니다만 그런한 작은 것들로 인하여 용기 잃지 마시고 그들과의 대화 물꼬를 이으시기 바란다는 것이지요. 대화(침묵 포함)라는 것도 인간적인 고정관념을 탈피할 수 있는 풍성한 성화 은총이 산재하지 않겠습니까?

생각의 대화에서부터 오수산나 자매님이 성모님의 마음으로 그 가족을 궁휼히 여겨주는 방법도 묵주기도등 무궁무진하지요. 이것은 우리가 상대의 영혼을 바라보며 재빨리 기도하지 못하는 순발력 위한 보속과도 관련 있겠습니다. 그리고 그분들 가정 또한 인간적 율법 기준은 높을테고 보편심리로 보면 반골기질 또한 다분하리라 여겨집니다.

일단 어찌 하겠습니까? 시나브로 사랑으로 그리고 다시 은하수 저 편까지의 오수산나님의 빨랑까 기도가 필요한 것을요. 그러다 보면 먼저 하늘로 오른 친구의 영혼들도 다시 만날 수 있겠지요. 오수산나 자매님 또한 실상은 그리 기도하고 계실 것입니다. 왜냐면 주님 사랑은 영원 무궁하고 우리는 그러한 주님 안배에 따라 세상을 살아가니까요.

하느님은 우리를 놀랍게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자주 배반 일색인 우리를 언제나 기다려 주시며 놀라운 대화의 타이밍을 이어 주시기도 할 것입니다. 따라서 자매님도 지금 대화의 타이밍이라는 것을 체득하고 계신듯 한데 이 또한 은총일 것입니다.

그 부부들 기준과 마찬가지로 물질 만능주의가 팽배하고 불합리와 어둠의 존재들이 판을 칠 수 있는 세상에서 심지어 기도하는 사람들의 그것을 빼앗긴 입장일 때 내가슴 더욱 후덥지근해질지라도 이 때의 채념과 불합리들로 인하여 넓은 기준의 기도할 힘조차 잃었을 때 등 다만 작은 선행 한가지로도 놀라운 기도의 물꼬를 이어주시는 것을 만나잔 이야깁니다.

그런데 우리는 바보같이 이미 주시는 그것을 계속 안주신다고 보채기도 할 것이고 인간적 편견으로의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는 금새 요요현상으로 전염되는 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오수산나 자매님은 그 부부을 사랑하기에 떠난다는 흔한 가사처럼 지금은 반목하고 싶은 단계가 아닌가 합니다. 그 자체도 일단 주님 제대에 올려 놓으세요. 그러면 더욱 이어주실 것입니다.

공동체의 원리 가운데 꿈의 단계 - 갈등의 단계 - 조정 극복의 단계라는 것이 있습니다. 필자의 경우는 일반 평신자지만 그 남편과 같은 기질이 다분하여 이러한 경우 자가치료를 앞 세우려는 나쁜 습관이 많습니다. 주님과 함께가 아닌 내 의지만을 앞세우려 할 때 자기에게 관대하고 타인에게 엄정한 어리숙한 인간은 권력욕, 지나친 안정욕등으로 보이지 않는 음지에서 고생하는 이웃에게 커다란 피해를 입히기도 할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을 냉혹하게 바라보는 그 사람에 대한 자유의지 또한 주님께 맡기는 것이 상책일 듯 싶습니다.

그분 또한 나눔 의지도 상당히 많은 편이라 생각됩니다. 문제는 치유자의 그것이 아닌 약장수의 그것을 발한 나주 성모님파일 수 있다는 것이군요. 그럴땐 하느님의 눈으로 예수님의 입으로 그리고 성령의 의지로(성호경) 그것을 무찌르는 성 미카엘께 간구함으로부터 하느님의 치유자 성 라파엘, 하느님의 권세를 누리게 해주시는 성 라파엘의 이름으로 기도안의 공기 놀이가 우선일 것입니다.

요즘 런던 올림픽에서도 보면 우리나라 선수들이 강적과의 선전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오심 사례도 적지 않고요. 이것이 우리들 사는 모습 아니겠습니까?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되 악법도 법이라며 독배를 든 소크라테스를 기억하되 이기회에 자매님이 성모님 마음으로 그저 조건없이 할 걸음 더 나가는 것에 감사의 성호경을 바쳐보세요.

사실 그 신학공부자 출신 남편의 아내 또한 한 어머니로서 자녀들에 대한 보이지 않는 진학 걱정 등이 많을 것입니다. 따라서 동변상련 부모의 마음으로 그러한 것을 짚어주고 도와줄 때 그 관계는 더욱 돈독해질 것입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복자이신 데레사 수녀님 말씀처럼 그 과정에서 물에 빠진 사람 구해주면 보따리 내놓으라 야단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부부는 왠지 그것은 덜할 것 같긴 하군요. 보이지 않는 다른 뭔가가 느껴지기도 합니다만 그래서 더욱 부드럽게 더욱 진지하게 그 자매님과 주님 사랑을 공유할 수 있도록 마음을 평화롭게 가져보세요. 잘 안되면 농부처럼 다시 심으면 됩니다.

교회에서 인준할 수 없는 나주파 사건과도 연루된 그 부부를 위해서도 이싯점 우리가 할 수 있는것은 기도입니다. 물에 물탄듯 술에 술 탄듯 하겠으나 실상들은 더욱 물이요 더욱 술인데 우리는 자주 그것을 비판하고 판단하려는 오류의 유혹을 받기도 합니다. 따라서 그 부부들이 염세주의 사관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빼앗아 같은 비판주의로 물들기 쉬운 것이 우리 자신이기에 다만 그 사람들을 위한 조력의 길이 무언가를 곰곰히 생각하는 지금 자체가 좋은몫의 기도인 것입니다. 마르타와 마리아 영성의 조화를 생각해봅니다.

성모님 가브리엘 대천사를 만난 아기예수님 무염시태 사건시 '곰곰히 생각하다'가 우리의 기도이자 영생을 향한 두번째 태교(천주교)인 것이지요. 나주 윤율리아 사건 등의 잡념과 연루되면 그 기도가 더욱 힘들겠지요. 그러함에도 이 때에 피하지 않고 더욱 대처하는 의지가 생성된다면 그것은 또한 주님 보시기 좋은 훌륭한 기도로부터 이루어질 것입니다.

기도는 학식을 뽐내고 남을 누르며 무언가를 이루려는 전쟁같은 악습과 반대의 길들을 제시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자주 이 때에 주님을 호텔 종업원으로 하대하며 고급 메뉴얼을 펼쳐 놓고는 이것 달라 저것 달라 하며 주문을 외우기도 할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 불합리 속에서도 세상을 이기신 주님처럼 모든 것을 포기하고 포든 것을 기꺼이 감내할 때 모든것이 새로워지고 모든 것이 또한 신비의 사랑으로 이뤄질 기적의 체험이 또한 기도이니 그저 그 가정을 위해 내가 미사 때에 봉헌하는 자체만으로도 가장 큰 기적의 씨앗으로 심어질 것입니다. 세상이 또한 준성사안의 미사니 이 얼마나 기쁜 소식이겠습니까?

자녀들의 공부생활 좋은 것이지만 요즘같은 세태에서 과연 그 부부들의 육아책 방식과 훗날 사회에서의 몫 또한 우리가 판단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세상에 선의 씨앗을 심는데 우리는 그것을 잘 재배하기도 힘든 입장일 수 있기에 하느님과 함께 남성적인 관점으로 의로운 돈키호테처럼 적진을 돌파하는 것도 좋고 오수산나 자매님처럼 여성적으로 곱고 부드럽게 침묵으로 대처함도 또한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펜싱 첫 금메달 김지연 선수처럼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는 것도 필요하겠지요. 여기서 나비는 부드러움의 자연 몫이고 벌은 자기 가족과 친구만을 위한 개미의 삶을 뛰어 넘으며 어둠속에 진을 친 어떤 사람의 모습일 수도 있는 거미같은 삶도 탈피하는 다만 소외받는 사람들을 돌보며 함께하는 벌같은 사랑을 뜻할 것입니다.

펜싱, 양궁, 축구등을 보면 그 안에도 차고도 넘칠 많은 신앙이 담겨 있음을 봅니다. 그러나 필자도 그 남편처럼 올림픽 8강에 접어들어 최선 다하고 있는 홍명보 감독도 축협의 늙은 구렁이과 존재들의 밀실인사로 인한 초특급 승진제에 따른 희생양인 점을 볼 가능성이 엿보이고 음지에서 수고하고 더 소외받게 된 많은 감독들의 아픔등을 보게 됩니다. 신학을 공부했다는 그 남편도 비슷한 마음일 수 있다고 보여지는 것이지요.

그런 사람에게는 비슷한 고집을 가진 사람으로서 말씀 드리건데 자주 만류를 해도 나주 윤 율리아건 더욱 솔깃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보다 지혜롭게 만류가 우선이 아닌 조언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십시오. 다만 주님께 으ㅏㅣ탁하는 자세 또한 보완될 것입니다. 방법은 그사람 내면 또한 단점보다 장점을 더 보려는살아있는 의지와 대인 관용폭 또한 깊을테니 그 기복성을 어루만져주고 좁혀주는 것입니다. 

그것을 내 기준으로 보면 한없이 불합리할 것입니다. 그 사람과 나의 그것을 성화시켜주시는 주님 기준으로 의탁하면 공짜 뷔페와도 같을 것입니다. 그렇게 정답게 다시 나눔을 기약하는 것입니다. 더불어 기회가 닿을때 때때로 얄미운 남편 후라이펜 한 방으로 보내듯 나주 윤 율리안건에 대하여 기습 슛팅을 날리면 그만일 것입니다. 그러나 절대로 한국 2위의 이혼율의 결과가 보여주듯 남편 힘들 때는 때리면 그늘 더 깊어지는 점 한 아내로서 유념하시어 이때에 더욱 위로해주는 아내가 될 수 있도록 수도 5년차 케리어 그 아내의 깊은 맘도 잘 살피셔야 할 것입니다.

사실 누구나 세상의 어지러운 그것들에 대하여 불신이 많을수 있습니다. 우리가 불신이 잦으나 그것에 대한 기도력이 나약하고 게으른 결과이기도 합니다. 그러하니 우선 이 미사때에 주님 제대에 우선적으로 그것을 봉헌하도록 해보세요. 수학, 과학, 역사 기타 건등 학습지식이 부족하다는 수산나 자매님의 성모님 닮은 꼬치꼬치 사랑도 보기 좋습니다. 그러나 이나라가 세계 1위의 낙태, 제왕절개율을 보이듯 돈의 노예가 된 의사들이 많고 한국인의 빨리빨리 근성 속에는 장점도 많겠으나 거미들의 덫에 걸려 죽어가는 아픈 이웃들을 만드는 단점 히스토리 또한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하니 말을 걸러서 하기 위해 생각의 폭도 자매님 특유의 자유롭게 바라보되 보시기 훌륭한 기도가 될 수 있도록 우선적으로 감사의 방안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그 남편 백수인 점도 여성적 편견으로 바라보는건 매우 위험한 발상일 것입니다. 왜냐면 세계 2위의 이혼률로 이어지는 중차대한 사회적 문제와 밀접하거니와 두 배의 이혼 의사를 피력하는 여성 심리일 수 있기에 그것으로부터 도피하려는 남성 심리와도 무관치 않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 거친 남자는 조용한 곳에서 쉬고자 하는 욕구가 상대적으로 조용한 여성들보다 더 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남편의 경우는 신앙 지식이 많기에 그 머리지식이 가슴사랑으로 부드럽게 흐를 수 있는 물꼬만 도와주면 되겠습니다. 아마도 그 남편 현재의 마음속에는 세상에 백수란 없다라는 사고가 지배할 것이고 이어지는 경제적 어려움에 홀로 외롭고 힘들어 할테니 그 틈새 공략 방안으로서 응원해 주시는 것이 좋을듯 합니다.

진실은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승리합니다. 이 때의 여성은 진실의 승리를 꼬치꼬치 확인 받고 체험하고자 하는 달란트가 있는 반면 그것을 인간인 우리가 자칫 낙태, 제왕절개를 하려 하기에 기하 급수적인 악순환으로는 세계 2위의 교통사고 및 이혼률이 여전히 팽배한 것이니 그 사람들에게 이러한 네가지에 대한 견해와 함께 복음 나누기 수다를 줄겨보세요. 자매들과 수다하기 좋아하는 그 남편 오 수산나 자매님과는 더 보시기 좋은 데이트를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영성체의 거룩함 또한 필자가 논한다는 것이 염치 없으나 나주에 다니면서 본당 영성체에 임하는 것도 관용과 긍정적 요소부터 다시 한 번 살펴보세요. 대체적으로 오 수산나 자매님의 지적들이 틀린 바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자매님 또한 비판적 식견이 많을 수 밖에 없기에 보편성을 믿는 천주교가 왜 세상속의 성사혼과 사실혼 그리고 사회혼의 삼위일체를 추구하는지 왜 예비 이혼자들이 별거하고 있는지를 그 남편과 마주치기도 싫어하는 지금의 자매님 내면으로 들어가 그 자체를 봉헌한다면 좋은 씨앗이 될 것이고 주님과 함께 즐겨 재배할 때 회심으로 진화하는 생명체가 사랑이란 것을 재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참고로 천주교에서는 세속의 이혼을 별거로 봅니다. 이 때의 재혼이 왜 간음인지 또 만인을 사랑하시는 바오로 특전법은 왜 있는지 지상에서의 인사, 정보, 작전, 군수를 위한 영적 싸움 또한 한량 없기도 할 것입니다. 신학적으로 마음은 이성+영혼이라고 하였습니다. 감성은 정신과인 마음과 별개일 수 있는 육체과라는 것이지요. 따라서 남자보다 두배의 감성을 가진 여인들이 왜 스킨쉽을 좋아하는지 남자는 왜 거칠고 더 감성적으로 보이는지 꼬치꼬치 수다떨기 좋아하는 우리네 여정이 더욱 지혜롭게 대처하고자 하는 자매님의 승리를 기원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주의해야 할 것은 패자와 함께한다는 것은 불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본인안의 선과 악의 싸움에서 승리 또는 화합을 추구하는 것이 관건이겠습니다.



海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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