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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Re:악을 이겨내기위한 마음의 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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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영혼 [121.131.208.*]

2012-07-15 ㅣ No.9948

   서로 사랑하라. 이는 주님의 커다란 계명입니다. 따라서 십계명 준수는 인간의 의지만으로는 단 하루도 수행하기 어렵지만 하느님 완덕 은사를 믿으며 저마다 수호천사의 도움을 보다 수용하면 결코 불가능한 것이 아니란걸 깨닫게 됩니다.

빛이 환하면 그림자도 깊은 법이기에 누구나 세상의 풍파를 피해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주 안주하고 싶고 무엇을 도피하고 싶다가 막다른 골목에 접어들기도 합니다.
님께선 성실한 피가 흐르고 계시는군요.

역시 누구나 마음이 어두우면 어두운 영 즉 사탄에게 속기 일수일 것입니다.
이 때의 성령께서는 결코 속임수를 쓰지 않으심을 우린 믿고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때때로 분심이 끊이지 않는 것은 우리가 자주 게으름, 교만, 불안의 회색안개를 피해갈 수 없기 때문인데 그럴수록 남자답게 임전무퇴의 정신을 함양하십시오.

이 때의 예수님의 생애를 함축한 묵주기도는 아주 좋은 성화방법입니다.
그리하여 미사, 영성체, 성체조배를 더욱 맛들이며 다시 신원과 사명을 복기하게 될 것입니다.

창조주체로 오시는 성모님 마음으로 창조주이신 주님을 맞는 성체조배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냥 아기처럼 잠만 자도 되고 영원한 생명 위한 세 번째 탄생을 앞 둔 찰나일 수밖에 없는 이 생에 있어 두 번째 탄생(세례성사) 이후의 두 번째 태교를 보다 확고하게 믿으며 실천까지 다지고 다지면 될 일입니다.
태교가 무엇입니까? 이는 엄마와 아기가 나누는 교육입니다.
천주교가 무엇입니까? 상형문자를 다시 한 번 잘 살펴봅시다.

미사 참례할 때 성수를 바르고 구마하는 것을 우리가 잘 알지만 아직도 성당 입당시 제일 먼저 그리스도 제대를 바라보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는 산고는 알아도 더 아픈 아기 예수님 탄고를 우리가 알면서도 모르는 이치와도 같고 세상을 동물이 지배하는 것이 아닌 실상은 고요한 식물종이 더 많은 자연의 이치와 부합됩니다.

따라서 성실하고 조용한 님은 매우 좋은 인성을 가지신 분으로서 신성으로 함께오신 주님을 여하히 맞는것이 관건이겠습니다. 그분의 바램대로 기도를 풍성히 할 수 있다면 전자의 예와 같이 님은 무언가 열정파인 필자보다 더 부드럽게 그것을 해쳐나가며 더 깨끗한 마음으로 성체를 영할수 있기 때문일것입니다.

다만 이 두 마음 구분이 님께서 대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알쏭달쏭 하기도 할 것입니다.
대죄란 알고 짓는 것이고 소죄는 모르고 짓는 것이기에 신발의 먼지를 털고 어딘가를 떠난 뒤에도 폐부를 찌르는 아픔에 대한 도전과 응전이 끊임 없을텐데 역시 임전무퇴의 정신으로 해쳐나가기 위하여 우리는 지금 미사참례의 기쁨을 나누고 있습니다.

말이 빙글빙글 돌고 있군요.
마음 정화는 치유의 성사인 고해성사를 한, 두 달에 한번 정도 주님과 나누는 것이 좋습니다.
성사를 위하여 우리는 매일 고해성사의 5단계인 성찰, 참회, 정개, 고해, 보속을 생활속의 준성사로 연습하고 있는데 만약 님께서 평소 두리뭉실하게 살아오셨다면 이 다섯가지 은총을 그리스도의 다섯 상처와 연계하여 실전연습해 보시는 것도 좋겠다 사료됩니다.

이 것 자칫 잘못하면 토마스처럼 너는 꼭 보고서야 믿느냐?며 주님께 혼나기 일수일 것입니다. 하지만 깊은 너와 깊은 나로 오시는 주님을 망각하고 아전투구하기 바쁜 자아를 떠나 깊은 대화 할 수 있는 님이기에 임의 대화는 곧 기도로서 승화될 것인데 모태 신앙인으로서 몇가지 개인적인 태크닉을 전해 드리고자 합니다.

삼위일체 관념을 통한 노래로 설명해 드리죠.

이 때의 음치들을 보면 음치의 삼대요소를 골고루 갖추고 있습니다.
자기무시, 작가무시, 청중무시지요.
이런 분들 특징은 "나는 노래를 못해" 하면서도 청중무시에 이르기까지 합니다. 이런 사람의 특징은 미사를 예배로 드리기는 커녕 파견성가시 자리를 뜨며 영적으로도 빅인빅, 부익부의 양극화 현상 희생 제물이 되기도 할텐데 이 때의 하느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시겠는지요?

결국 이 음치 삼대요소들을 뒤집으면 우리는 가수 부럽지 않은 가수로 거듭나게 됩니다.
만약 님께서도 노래에 자신 없다면 역시 거꾸로 하시면 세상이 보일 것입니다.
청중부터 챙기는 것이지요. 배려와 공과사 등의 기본과 원칙을 챙김인 것입니다. 그러면 진정성은 보너스로 안기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음악을 즉 하모니를 모르는 사람도 지휘자가 되고 싶은 욕구 충족 등으로 여기 저기서 난동을 부리기도 할텐데 이 또한 내 모습 내면 거울일 뿐일 것입니다. 이 때에도 상대의 영혼까지 바라보며 기도할 수 있는 임은 축복받은 분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점이 몇가지 있습니다.
음치나 청중의 입장을 무시하거나 얼어붙을 수 있는 사람들이 간과하는 특징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머리가 머리로 부르는 것이기에 분심이 따르는 것입니다.
이 때의 분심 자체를 가슴으로 소통시키는 것이 노래인 것입니다.
가수들을 잘 보면 머리가 머리로 부르지 않습니다.
가슴으로 부르지요. 그리고 소리가 쓸데없이 넘치거나 모자라지도 않습니다.

즉, 노래가 곧 대화인데 왜 우리들은 대화는 편하게 하면서 노래는 노래로 국한 시킬까요?
왜 사운드발, 화장발에 취해서 들리지 않는 소리와 섬세한 소리까지 뭉둥거리며 노이펙 환경에서의 최고의 악기인 내 소리를 때때로 이웃과 음성상화(音聲相和)=유무상통(有無相通)으로 이루지도 시도하지도 못할까요?

여기서 음성상화는 노이펙 환경에서의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더 맑고 깨끗한 진짜 내 소리와의 휴식과 해후를 즐김으로서 노래하는 이도 듣는이도 더욱 깊고 넓고 높이 화합하는 순간을 뜻합니다. 이로서 사운드발이 아무리 쎄더라도 더 섬세하고 힘찬 내 소리가 대화 즉 기도로서 나누게 됩니다.

따라서 골고타 예수님 일곱마디를 묵상하시어 칠성사를 암기해 두시면 좋겠습니다.

1. 저사람들은 지금 무슨 죄를 짓고 있는지 모릅니다.
2. 어머니, 이제부터 이사람들이 당신의 아들입니다.
3. 이분이 너희 어머니시다.
4. 목마르다(육의 고통).
5. 엘로이 엘로이 라마 사박다니!(영의 고통)
6. 다 이루었다.
7. 아버지, 제 영혼을 당신께 맡깁니다.

1. 입문성사: 세례, 견진, 성체성사
2. 봉사성사: 혼인, 성품성사
3. 치유성사: 고해, 병자성사

우리에게 과거는 일방 고백과 치유의 고백성사 시대였는데 지금은 누군가와 그것을 나누고 치유받는 고해성사 시기입니다. 따라서 보이지 않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임의 노하우가 기대되는 시간들입니다.

이쯤 되면 힌트를 많이 드렸으니 노래가 또한 기도이자 인생이라는 것을 감지하셨을 것입니다.
이 것들은 다만 이 사람의 태크닉 관련이니 그냥 참고 삼아 두셔도 좋겠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 없을 하느님 은총과 은사들이니 용기 백배로 주일미사 죽을 때까지 거르지 않도록 기도해 보심은 어떨까요?

세계 1위의 낙태, 제왕절개, 2위의 교통사고, 이혼률이 팽배한 한국인들의 빨리빨리 사고중 나쁜 요소를 멀리해 온 임의 신원과 사명으로서 시나브로 사랑 전하시는 하느님 말씀을 즐겨 묵상하시면 기도가 곧 실천까지 가능해질 일이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실천은 말이 아닌 생각의 침묵부터 이뤄집니다.
그리고 임이 주님께 의탁할 때 주어지는 선물로서 거룩한 침묵에 안기는 강물같은 평화의 침묵이 따를 것인데 생각의 침묵이 진짜 침묵인 것입니다. 말과 행위는 생각을 따르기 마련이기 때문이지요.
그리하여 과거와 미래로 도둑맞지 않는 평화가 어디에 있는지요?

사실 미사는 성당 안과 밖의 미사가 있습니다. 하늘의 기상은 내 맘대로 못하지만 내안의 기상은 얼마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은 하느님 빽으로 우리가 사탄을 물리칠 수 있는 힘까지 보장됩니다.
그러다 보면 매일복음? 안보고는 못 배깁니다.
복음 하단의 묵상 글 그것도 죽입니다.

이는 노래 잘하는 사람들이 못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이치와 같고 슬픈 노래는 슬프게 기쁜 노래는 기쁘게 부르는 기본과 원칙을 향해 우리가 부단히 인생이라는 노래를 기도화로서 매진하는 은사와 관련 깊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박자 음정도 못 맞추고는 못 배기는 은사도 따를 수 있는데 이는 노래 고수들 이야기고 일단 내안의 생각과 말과 행위에 대한 기본과 원칙에 대하여 회복 운동을 벌리는 것이 좋을듯 싶습니다. 그것이 찰나이든 우선적으로 일치를 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야 영원한 생명을 위한 죽음도 두렵지 않을 미래가 보장되겠지요.

1. 성부= 성자= 성령
2. 생각= 말과= 행위
3. 글과= 그림= 노래
4. 꿈과= 희망= 사랑
5. 아침= 점심= 저녁
6. 초성= 중성= 종성
7. 소년= 중년= 노년
8. 농부= 농사= 농토
9. 어제= 오늘= 내일 일치화 방법은 과연 무엇이 있을까요?

정답은 매일의 크리스마스(그리스도 미사)로서 우리는 이미 그것을 참례하고 파견받고 있습니다.
삶과 죽음이 하나일 때 이러한 묵상들이 더욱 빛나고 미사의 가치를 버리거나 잊을 때 막장 드라마가 이어집니다.
우리는 이미 공인이기에 우리가 자주 살지만 죽음으로서의 베르테르 효과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저도 염치없고 부족한 죄인이기에 이상 사랑과 가치론에 대한 참고사항이었습니다.
손가락 아파서 여기까지^^' 건승하십시오.

2012. 7. 15(日). 海棠 Domi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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