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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24.10.164.*]

2012-10-20 ㅣ No.10020

사람을 죽이는 칼, 살리는 칼

 

 

 

지난 연중 제 24주일인 2012년 9월 16일

주보에 실렸던 최인호 작가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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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지식인들은 서구의 열강들이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점령하던 시기에

먼저 총과 칼을 앞세운 군대로 정복한 후

성경을 든 선교사들이 들어가 기독교로 현지인들을 세뇌시킴으로써

약탈의 식민정치를 합법화하였다는 논리를 앞세워

“기독교가 있는 곳에 전쟁이 있다.”

는 오류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멀리로는 11세기 말에서 2백여 년간 8차에 걸쳐 감행된

십자군 전쟁으로부터 가까이로는 동양의 파리라고 불리던 베이루트를

초토화한 기독교인과 이슬람교도 사이의 내전과

여러 중동 지역에서 벌어지는 종교 분쟁들은

기독교적 오류의 지적을 뒷받침하고 있는 역사적 사건들입니다.

 

 

 

이러한 전쟁과 분쟁을 합리화시키는 기독교적 논리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칼을 주러 왔다”

성경말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걸로 아느냐,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나는 아들은 아버지와 맞서게 하려고 왔다.

   집안 식구가 바로 자기 원수다.”

(마태 10,34-36 참조)

 

 

 

루카복음은 이 구절보다 훨씬 더 충격적입니다.

“나는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내가 이 세상을 평화롭게 하려고 온 줄 아느냐?

   아니다.

   사실은 분열을 일으키려 왔다.”

(루카 12,49,51)

 

 

 

 

 

 

열두 제자를 파견하면서 한신 주님의 이 말씀

“평화”와 “사랑”을 강조한 평소의 말씀과는 정반대로

“전쟁(칼)”과 “분열”을 외치심으로서 큰 오해를 불러일으킨

가장 위험한(?) 성경구절 중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무엇보다도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성서의 어떤 예언(말씀)도 임의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2베드 12,20)라고 성서의 말씀을 준엄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예언(말씀)은 인간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성령에 이끌려서 하느님께로부터 받아 전했기 때문이다.”

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붙잡히기 직전 베드로가 칼을 빼어 종의 귀를 잘라버리자

“칼을 도로 칼집에 꽂아라.

   칼을 쓰는 사람은 칼로 망하는 법이다.”

(마태 26.52)라고 하시며 고쳐 주신 것을 보면

주님께서 하신

“칼을 주러 왔다.”

말씀은 감히 인간의 생각으로,

마음대로,

한쪽에서 유리하게 일방적으로 해석하면

절대로 안 되는 경구임을 알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습니다.

 

 

 

부처께서 祈園精舍(기원정사)에 계실 때

아난다가 옷깃을 여미어 합장하고 계를 청하자

부처는 입을 열어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산목숨을 죽이지 마라.”

   둘째, 음행하자 마라.

   셋째, 훔치지 마라.

   넷째, 거짓말하지 마라.

 

 

 

이것이 바로 불교의 가장 중요한 “네 가지의 근본 계율”입니다.

 

이 계율은 열 가지의 계(十重大戒 : 십중대계),

마흔여덟 가지 계(四十八輕戒 :사십팔경계)로 발전되어 나가지만

그 어떤 계율이든 첫 번째는 不殺生(불살생)의 계율입니다.

 

 

 

그런데 불교의 1천7백 개의 화두 중

남전참묘란 공안에는 산목숨을 끊는 살생의 장면이 나오고 있습니다.

 

 

 

남전이 주석하고 있는 선당은 동서에 선방을 두어

동쪽의 선방에 사는 수자를 東堂(동당),

서쪽의 수자는 西堂(서당)이라고 불렀습니다.

 

 

 

어느 날 모든 납자(선승)들이 들에 나가 일을 하고 있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났습니다.

서로 자기네들 고양이라고 주장하며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다툼이 시끄러워지자 스승 남전은 무슨 일인가 나와 지켜보다가

싸움의 원인이 고양이 한 마리 때문임을 깨닫자

고양이의 목을 한 손으로 쥐어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칼을 들어

모가지에 들이대고는 말하였습니다.

 

 

 

“너희들이 뭔가 한마디 할 수 있다면 이 고양이를 죽이지 않겠지만

   말할 수 없다면 목을 베어 죽일 것이다.”

 

 

 

서슬이 퍼런 스승의 선기에 압도되어 버린 대중들은

입조차 달싹 못하고 침묵을 지키고 있을 뿐,

남전은 그 자리에서 고양이 목을 베어 죽였습니다.

 

 

 

외출에서 돌아온 제자 조주가 인사하러 왔을 때

남전은 낮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고

“네가 그 자리에 있었으면 어떻게 하겠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조주는 말없이 자신이 신던 짚신 한 짝을 머리 위에 얹고

걸어 나갔습니다.

 

 

 

이에 스승 남전이 혀를 차며 말하였습니다.

“네가 있었더라면 고양이는 살 수 있었을 터인데.”

 

 

 

그 이후부터 “불살생”의 계율을 파계하여

고양이의 목을 벤 남전의 칼은 애욕을 끊기 위한

“사람을 죽이는 칼(殺人刀 : 살인도)”이며,

그것이 분쟁의 원인인 고양이라 할지라도

하찮은 짚신조차 머리 위에 떠받드는 것처럼 섬기겠다는 조주의 칼은

“사람을 살리는 칼(活人刀 : 활인도)”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근세의 선승 彗月(혜월)은

1937년 죽기 전 선암사에 주석하고 있었는데

그에게는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는 천하의 명검”

이 있다는 소문이 자자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헌병대장이

보고 싶은 욕망에 절을 찾아왔습니다.

 

 

 

“그 칼을 보여 주실 수 있겠습니까?”

라는 간청에

“물론입니다.”

하고 앞장서 걷던 혜월은 느닷없이 뺨을 후려쳐서

헌병대장을 섬돌 아래로 떨어뜨렸습니다.

 

 

 

졸지에 수모를 당한 헌병대장이 허리에 찬칼을 빼려하자

혜월이 먼저 다가가 그를 부축하여 일으키면서 말하였습니다.

 

 

 

“이것이 내가 갖고 있는 천하의 명검이요.

   내가 때려 섬돌 아래로 떨어뜨린 손은 사람을 죽이는 칼이며,

   부축하여 일으켜 새운 손은 사람을 살리는 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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