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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필독서] 천주교와 개신교(요약)-박도식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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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24.10.164.*]

2012-10-09 ㅣ No.10015


천주교와 개신교(요약)

박 도 식 신부 지음


천주교를 가리키는 세계적인 공통 용어가 곧 “가톨릭”입니다. 그 원어는 라틴어 catholicus라는 형용사인데 그 뜻은 “보편된” “공번된”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전 세계적인 만인의

종교라는 뜻입니다. 천주교를 가톨릭, 그리고 구교, 성교회(聖敎會) 또는 공교회(公敎會)라고

하는데 가톨릭과 구별하여 개신교를 가리키는 세계 공통 용어는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입니다. 개신교를 구교와 구별하여 신교라고도 합니다.

“기독교”란 말은 “그리스도교”라는 말의 한자 표기어입니다. 한자로 그리스도를 기독(基督)이라고 하지요 그러니까 기독교라 하면 불교나 유교와 구별되는 종교로서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종교를 뜻합니다. 예컨대 가톨릭교, 장로교, 침례교, 성결교 등 모든 그리스도 교인을 한자로 표기해서 기독교 신자라고 하지요



*** 가톨릭은 마리아 교회인가?


예수님이 탄생하신 곳이 이스라엘의 베들레헴인데 그곳을 성지(聖地)라 합니다. 그럼 예수님을 낳으신 어머니를 당연히 성모(聖母)님이라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낳으신 분이기에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육적으로 예수님을 낳은 어머니시며 영적으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신 신앙의 모범이셨기에 또 다른 의미에서도 어머니가 되시는 것입니다. 어떤 면으로 보든지 마리아가 예수님의 어머니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마리아가 아들의 고통을 슬퍼하셨을 것이며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이렇게 말씀 하셨다.

“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 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 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요한19,26-27)


우리가 마리아께 드리는 기도는 마리아께서 우리를 위해 하느님께 전구해주시기를 청하는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개신교에서 목사님의 기도가 보통, 평신도의 기도보다 더 가치 있다고 생각되듯이 예수님을 낳아서 기르신 마리아의 기도는 어느 누구의 기도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이사 7,14)

”임마누엘“이란 말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입니다. ”임마누엘“은 구세주 예수그리스를 뜻하지요. 처녀가 예수님을 낳는다는 사실에는 벌써 하느님의 영원한 구세사 속에서 마리아를 간택하여 구세주를 낳을 것이라는 하느님의 뜻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하느님이 특별히 간택하신 분이고 영원히 인류의 귀감이 되는 복된 분이십니다.


*** 가톨릭은 우상을 숭배하는가?


성모상이나 예수 상 앞에서 기도를 하는 것이 국기 앞에서 경례를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인간은 무엇을 표현할 때에 말이나 글, 행동이나 형상으로써 표시합니다. 예컨대 “예수님” 했을때 “예수님”이란 발음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요. 그 말이 뜻하는 그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가톨릭의성상과 성화의 의미를 몇 가지로 요약하면

  첫째 -- 성상과 성화는 성전을 거룩하게 장식합니다.

  둘째 -- 성상과 성화는 신앙 교육에 있어서 시청각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셋째 --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누구나 집에 예수님의 십자가 고상을 모시고 있습니다.

          이것은 많은 비그리스도인 들에게 무언의 신앙 고백이기도 합니다.

  넷째 -- 우리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나 초상화 앞에서 경건한 자세로 경의를 표합니다.

          그분의 업적을 기리는 방법입니다. 가톨릭 신자들은 교회의 많은 성인 성녀들의

          성상이나 성화를 통해 그들의 생활에 자극을 받기도 하고 그들의 성덕 생활을 본  받으려는 결심을 하곤 합니다.


조각이나 그림을 부인한다면 그 사람은 진정 문화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개신교 신자들은 조각가도 화가도 될 수 없다는 말입니까? 그들에겐 예술도 없단 말입니까? 그러면 교회 지붕에 십자가는 왜 달아놓았습니까?



*** 사람이 어찌 죄를 사하는가?


성사란 “예수님이 설정하신 것으로 인류에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을 주시기 위한 가시(可視)적인 교회의 의식”이라고 규정할 수 있습니다.

가톨릭에는 일곱 성사가 있습니다. 세례성사, 견진성사, 성체성사, 고해성사, 병자성사, 혼배성사, 성품성사입니다. 가톨릭교회는 이천 년의 전통을 가진 교회로서 바로 그리스도께서 직접 인류 구원의 도구로 세우신 교회입니다. 가톨릭의 한 신부라는 점에서 부여된 사제로서의 신권(神權)은 곧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거쳐 예수 그리스도에까지 소급 되고 있기에 신부로서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가톨릭에는 다른 개신교에는 없는 성품성사가 있기에 가톨릭의 성직자들은 주어진 권한 안에서 신권을 이행 합니다.

그리스도는 당신의 구원 사업을 이 세상 마칠 때까지 계승하여 전 인류가 구원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당신의 전권을 제자들에게 부여하면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너는 베드로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마태 16.16-19)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특별히 사죄권을 주신 기록이 있습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면서, 사람들에게 그들의 잘못을 따지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화해의 말씀을 맡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입니다.” (2코린5,18-20)

“그리스도의 사절” 이라고 한 것은 곧 그리스도의 권한을 대리하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죄를 범했을 때 그리고 참회를 할 때마다 나타나셔서 그 죄를 사해주시지는 않습니다. 당신이 세우신 교회를 통해서 제자들에게 사죄권을 맡겨 대행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사절” 또는 “우리를 통하여” 이 말씀은 곧 성품성사를 받은 제자들을 말합니다.


고해성사의 핵심은 그 죄에 대한 참회의 자세입니다. 또한 남에게 끼친 정신적인 손해나 물질적인 손해는 배상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죄에 해당하는 보속(補贖)을 해야 합니다. 고해자가 이러한 조건을 갖춰진 재판소에서 죄를 고백할 때 그 순간만큼은 다시는 그런 죄를 짓지 않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습니다.



*** 소위 면죄부 사건의 진상


“면죄부(免罪符)”란 번역은 지나치게 비약적 입니다.

“면죄부”(Indulgence)는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금전 재물을 바친 사람에게는 그 죄를 면한다는 뜻으로 발행하던 증서. 본래 인둘젠스(Indulgence)라는 단어는 라틴어 Indulgentia(관대, 은사, 대사, 후하게 베풀어줌)에 그 어원을 두고 있으며 Indulgere(관대하게 처리하다, 용서해주다)라는 동사에서 나온 말입니다.

여기에 어원을 둔 인둘젠스는 “관대”, “용서”, “호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이것을 가톨릭교회에서는 “대사(大赦)”라는 뜻으로  옮겨 사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단어를 정확히 번역하면 “대사부(大赦符)” 또는 “대사령(大赦令)”이 되어야 맞습니다.


“대사”라고 하는 것은 고해성사를 받은 후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그 죄에 따라오는 잠벌(暫罰)의 일부나 혹은 그 전부를 그리스도의 무한한 공로로써 면제해주는 은전(恩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죄와 벌을 구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고해성사를 통하여 죄는 사해졌지만 그 벌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 벌은 보속을 통해서 없어지는데 교회가 부여하는 대사를 통해서도 없앨 수 있는 것입니다.

가톨릭교회에서는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교권으로 현재 매 이십오 년마다 소위 “성년(聖年)”을 선포하고 특별히 대사의 은혜를 베푸는 제도가 있습니다.


소위 “면제부” 사건의 발단이 된 것은 16세기 당시 교황 레오10세는 현재 로마에 있는 성 베드로 대성전 건립을 위해 세계 교회를 통해서 모금 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레오10세 교황이 “대사”를 받을 수 있는 일반적인 조건을 성 베드로 대성전 건립을 위한 헌금 조항을 하나 더 첨부한 것이 발단 된 것입니다. 이 헌금의 목적이 개인 영달을 위한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수제자 베드로의 성소를 마련하여 믓 백성들의 중심이 되는 성전을 건립하고자 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이 대사령이 독일에 와서 그 전달되는 방법에서 문제가 된 것입니다. 독일 교회의 대사 담당 추기경이었던 알베르트(Albert) 대주교는 이 대사령을 널리 선전하여 많은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 대사 교리와 그 선전 방법에 관한 장문의 교서를 발표했습니다. 이 교서에 열거된 대사를 받는 조건은

1. 과거에 범한 죄를 참회한 후 고해성사를 받아야 한다.

2. 적어도 지정된 성당 일곱 곳을 순례하고 성당 순례 때마다 그리스도의 오상(五傷), 즉 십     자가에 못 박힌 양손과 양발 그리고 창으로 찔린 옆구리의 상처를 묵상하는 뜻으로 주님     의 기도와 성모송을 다섯 번씩 바치거나 시편 50편을 바쳐야 한다.

3. 성 베드로 대성전 건축비로 응분의 헌금을 한다.

등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마지막 3항에 대하여 언급하기를 “천국은 부자나 가난한 자 모두에게 열려 있기에 돈 없는 가난한 자들은 헌금 대신 기도나 단식으로 대사를 받을 수 있다”라고 밝혀 놓았습니다. 알베르트 추기경의 교서에는 먼저 위의 1항과 2항을 실천 한다는 조건하에서 먼저 헌금을 하는 이에게 헌금 수령 증서를 주었습니다. 이 증서를 가진 자에게는 고해 신부룰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특권이 부여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현금 수령증서가 와전되어 소위 “면죄부”라는 이름이 붙어 허무맹랑하게 돈을 주면 죄가 사해진다는 비약적인 표현으로 바뀐 것입니다.

교회 일부에서는 이 헌금 증서를 내세우고 지나친 모금에만 몰두한 나머지 정도에 지나친 남용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소위 종교 개혁의 한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 가톨릭의 교권


“교회”라는 개념에 대하여 생각해보죠.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당신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그리스도를 대리해서 인류 구원의 기관으로 세워진 것입니다.


“나는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다” 하신 그리스도의 사명은 세 가지로 분석됩니다.

   첫째, “진리요” 즉 진리를 가르치는 스승 그리스도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가르치는 그리스도, 그래서 이것을 받는 교회는

            “교도권(敎導權)"의 주인공입니다

   둘째, “나는 길이요” 이 말씀은 양들을 다스리는 목자로서의 “사목권(司牧權)”을 뜻 합니다. 교회는 진리를 가르치고

            동시에 그들이 올바로 하늘나라로 가도록 인도하는 목자로서의 사명이 있습니다.

   세 번째, “나는 생명이다” 이것은 교회가 지님 핵심적인 요소지요. 다시 말해서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전달해주는 유일한 지상의 인간 단체 입니다. 여기서 그리스도는 교회를 통해서 하느님의 영원한 은총,

            즉 영생의 은혜를 주시기 위해“사제권(司祭權)” 즉 “성품성사”를 세우신 것입니다.


교회의 권위를 입증하는 성경 말씀으로는

마태복음18장18절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결국 이 말씀은 신자들의 모든 문제는 궁극적으로 교회에서만 해결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베드로 위에 세워진 교회는 교도권, 사목권, 사제권을 행사하는 명실 공히 그리스도의 대리 기관입니다.

성 베드로가 1대 교황이고 2대 교황은 성 리노, 3대 교황은 성 아나클레토, 4대 교황은 성 클레멘스, 이렇게 내려와 현 베네딕도16세 교황은 265대째 베드로입니다.



*** 베드로(교황)의 수위권 행사


교회도 인간의 단체입니다. 물론 그 설립자는 예수님이시고 인류 구원이란 뚜렷한 목적이 있기 때문에 일반 세상 단체와는 그 성격이 다르지만 인간을 위한 인간의 모임입니다.


개신교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우리 교회의 우두머리는 하느님이시다”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종의 궤변입니다.

교회가 갈라져서 싸움을 할 때 하느님이 직접 중재한 사실이 있습니까? 하느님은 인간을 통해서 교회 권한을 행사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내 양들을 잘 돌 보아라” 하시면서 “천국의 열쇠” 곧 지상의 권한을 상징하는 수위권을 주신 것입니다.

개신교에는 하느님이 임명하신 우두머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분열에 분열을 거듭하게 되어 어느 교파가 진정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하는지 분간하기 힘들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가 수위권을 행사한 사실의 예를 보면, 그는 열두 사도 중에 제일 먼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였습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 그러자 그가 즉시 발과 발목이 튼튼해져서 벌떡 일어나 걸었다“(사도3,6-8)

그리고 베드로가 오순절에 예루살렘에서 첫 번째로 설교한 사실입니다. 사도행전 2장 14절

입니다.

아우구스티노는 베드로를 “제1의 사도”라고 했으며 에우세비오 같은 학자들도 베드로를 “사도의 수장”또는 “사도의 원수”라고 표현했습니다.


천주교의 최고 통치자는 교황님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말씀대로 세상 끝까지 함께하시겠다고 했고, 성령이 인도하는 교회라고 하셨기에 천주교는 순수히 인간의 모임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 옛날 로마 시대 네로 황제가 교회를 말살을 시도했지만 교회는 더욱더 크게 성장했습니다. 이천 년 동안 많은 시련이 있었고 이단들도 있었지만 교회는 정통 교리를 그대로 보존하면서 인류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진정 예수님을 믿는 교회가 전 세계적으로 수백 종파나 있는데 그 모든 것이 다 진리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 모두가 예수님의 참 가르침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역사적인 사건을 기록하는데 여러 가지 이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두가 진리일 수는 없습니다. 진리의 기록은 하나뿐입니다. 다른 모든 것은 가설이거나 근거 없는 기록일 수밖에 없습니다.



*** 성경 해석 문제


성경 목록을 만드는 데 있어서 두 가지 중요한 단계가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성경이라고 인정되어온 책들을 모은 것이 제 1경전이고, 제 1경전 목록이 정해지고 나서 오랜 시간에 걸쳐 의심스러웠던 책들을 신중히 선별하여 제 2경전으로 확정했는데 이렇게 두 차례에 걸쳐 73권의 성경 목록이 완성된 것입니다.


개신교에서는 성경만이 유일한 신앙의 규범이라고 주장하고 그것을 자유롭게 해석합니다. 나름대로 해석은 하겠지만 그것이 얼마만큼 그 문장이 뜻하는 진리에 가까울 수 있느냐 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개신교가 성경을 자유롭게 해석한 결과가 무엇입니까? 정확한 신앙의 기준이 없으니 결국 분열의 결과만을 낳지 않았습니까? 성경이 중요하지만 그것을 올바로 가르치는 교회의 권위가 없다면 그것은 신앙의 진리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전부 성경에 기록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성경의 기록을 통해서 가르칠 마음이 추호도 없으셨습니다. 그분은 말씀으로 가르치셨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4복음서의 마지막 성경인 요한 복음사가가 그의 복음서 마지막 끝부분이

“예수님께서는 하신 일은 이 밖에도 많이 있다. 그래서 그것들을 낱낱이 기록하면, 온 세상이라도 그렇게 기록된 책들을 다 담아내지 못하리라고 나는 생각 한다(요한 20,25) 이렇게 써져 있습니다.

기록되지 않고 전해오는 예수님 말씀을 “성전(聖傳)이라고 합니다. 개신교에서 일요일을 주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분명히 안식일을 주장했고 안식일은 토요일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일요일을 주일로 지내는 것은 사도들이 정한 것입니다. 연옥설이라든지 성령께 대한 기도라든지 유아 세례의 전통 등 한마다로 성경에 불투명하게 되어 있는 것을 명확하게 설명해주는 것이 곧 성전입니다.


입으로만 전해오던 예수님의 가르침을 후에 기록한 것이 성경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기원은 성전입니다. 성전을 부정하면 당연히 성경도 부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이 생기기 이전에 벌써 교회가 존재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보다 교회가 먼저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입에서 입으로 전하다가 기록된 것이 신약성경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권위에 의해서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목록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 가톨릭의 독신 제도


가톨릭의 독신 생활은 복음의 권고를 따라 교회에서 교회법으로 결정한 것입니다. 따라서 가톨릭 신부들의 독신 생활과 관련된 교회법은 오늘이라도 얼마든지 변경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 교회법에서는 스스로 독신을 원하는 사람만이 성품성사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일반 평신도들이 성경에서 말씀하시 고귀성을 깨닫고 스스로 모든 것을 버리고 산으로 사막으로 들어가서 독신 생활을 통해서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바치며 살았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은수자(隱修者)라고 했는데 이들이 모여서 결국 가톨릭의 수도회(修導會)가 시작된 것입니다. 독신 생활은 인간의 자연적인 욕망의 부정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자유로운 선택입니다.

바오로는 독신 생활의 근본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혼인하지 않는 남자는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을까 하고 주님의 일을 걱정합니다. 그러나 혼인한 남자는 어떻게 하면 아내를 기쁘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세상일을 걱정합니다. 그래서 그는 마음이 갈라집니다. 남편이 없는 여자와 처녀는 몸으로나 영으로나 거룩해지려고 주님의 일을 걱정합니다. 그러나 혼인한 여자는 어떻게 하면 남편을 기쁘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세상일을 걱정합니다. 나는 여러분 이익을 위하여 이 말을 합니다.”(1코린 7,32-35)


사실 가톨릭 신부로 살다가 독신 생활에 자신을 잃고 환속하는 사제들도 있습니다. 16세기 마르틴 루터가 공식적인 첫 번째 사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수도자들은 한결 같이 말합니다.

“저는 저의 가슴에 타고 있는 값진 사랑을 잠시 지나가는 인간이 아닌 영원한 그분께 바치고 싶습니다.”

수도회의 기본 정신은 다음 세 가지로 모두 공통됩니다.청빈, 정결, 순명입니다.



*** 미사성제와 성체성사


가톨릭의 종교 의식의 핵심이 곧 “미사”입니다.

미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희생되신 유일무이한 완전한 제사를 기념하는 종교 의식입니다. 이 세상에서 단 한 번밖에 없었던 가장 완전한 제사, 이것으로 인해서 인류가 하느님과 궁극적으로 화해하면서 새로운 구원의 길이 열린 십자가상의 제사, 이것을 재현하는 것이 미사이며 십자가상에서 이루어진 구원의 은혜가 이 미사성제를 통하여 주어집니다.


미사성제와 연결된 성체성사는 가톨릭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입니다. 최후의 만찬 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빵과 포도주를 들고 “내 살이요 내 피니라” 하신 말씀을 통해서 제정된, 빵과 포도주가 성변화 되는 성체성사의 신비는 역시 가톨릭에만 있습니다.

예수님의 희생 제사가 인류 구원의 필수 조건이었다면 오늘날 예수님의 그 희생의 은혜를 받는 길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곧 미사성제입니다. 십자가상의 제사가 최후만찬을 통해 미사의 형식으로 변한 것입니다.


미사성제가 거행된 후 그 성체를 성당에 모셔 두기 때문에 가톨릭 교회당은 예배당이 아니고 성당(聖堂)이라고 합니다. 예배만을 보는 교회당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예배도 드리는 장소이지만 동시에 제사를 집전하고 성체를 모시는 장소입니다.


*** 가톨릭의 종교 의식


가톨릭을 가리켜 형식주의적인 종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종교학적인 입장에서 말한다면, 무릇 참된 종교가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소가 있어야 합니다. 즉 교의(敎義), 윤리, 그리고 종교 의식(儀式)이 그것입니다.

종교는 인간이 하느님을 믿는 것이기 때문에 그 신앙 행위는 마땅히 인간적이어야 합니다. 눈으로 볼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있는 방법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인간이 볼 수 있도록 사람으로 오시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인간입니다. 천사도 아니고 하느님도 아닙니다. 그리고 동물도 아닙니다. 영육의 결합체인 인간이기에 인간적인 요소가 담긴 종교 의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 연옥에 대해서


일반적인 개신교 교리에는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연옥교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에는 연옥 교리가 있습니다. 즉, 사람이 죽은 다음 하느님 앞에서 심판을 받을 때에 죄의 그림자조차 없는 깨끗한 영혼은 천국으로 가고 대죄를 지어 하느님과 영영 등을 진 사람들은 지옥에 갑니다. 그런데 그 중간에 천국도 지옥도 아닌 “연옥”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천국으로 들어가기 위해 그 죄에 해당하는 보속을 치르는 곳입니다.


연옥 설은 주로 성전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만 성경에도 그 뜻이 밝혀져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죽은 사람을 위해 기도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다는 각 사람에게서 모금을 하여 속죄의 제물로 바쳐 달라고 은 이천 드라크마를 예루살렘으로 보냈다. 그는 부활을 생각하며 그토록 훌륭하고 숭고한 일을 하였다. 그가 전사자들이 부활하리라 기대하지 않았다면,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하는 것이 쓸모없고 어리석은 일 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경건하게 잠든 이들에게는 훌륭한 상이 마련되어 있다고 내다보았으니, 참으로 거룩하고 경건한 생각이었다. 그러므로 그가 죽은 이들을 위하여 속죄를 한 것은 그들이 죄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것이었다.(2마카12,43-45)

소위 종교 개혁자들은 연옥 설을 부정하고 마카베오기를 성경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신약성경에는 구약성경처럼 명확한 기록은 없지만 연옥을 암시하는 구절은 있습니다.

“사람의 아들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마태 12,32) 

여기서 내세에서도 죄를 사함을 받을 수 있다는 암시가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천국에 가기 전에 죄의 벌을 받는 곳이 있다는 뜻이지요.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고소한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너를 형리에게 넘겨, 네가 감옥에 갇힐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마태 5,25-26) 이 말씀에서 감옥은 연옥을 의미 합니다. 지옥은 거기서 나올 수 있는 감옥이 아닙니다. “나올 수 있는 감옥”은 곧 연옥을 뜻합니다.

*** 소위 종교 개혁의 문제


마르틴 루터의 소위 종교 개혁은 근본적으로 그 방향과 목표가 전혀 엉뚱한 데 있습니다. 정확히 말해서 타락한 성직자들을 상대로 개혁을 한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정통 교리를 자기 임의로 뜯어고쳐 놓고는 종교 분열을 조장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교개혁”이라 하지 않고 “종교분열”이라고 표현 합니다.


루터의 신학 이론

   첫째 -- 신앙의 규범은 성경뿐이고 또 성경은 자유로이 해석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이런 주장을 내세우면서 교회의

               교도권을 완전히 무시해서 전통적인 사도들의 가르침을 내동댕이쳤습니다. 성경의 자유 해석은 결국 종교분열과

              종파주의만을 조장했을 뿐입니다. 결국 한국만 해도 정부 통계 66개 종파가의 개신교가 있고,  세계적으로는 700

              여개 종파의 개신교들이 난립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둘째 -- 오직 믿음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이론입니다. 인간의 어떤 선행도 무시하는 태도입니다.

           “사실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확신 합니다.”(로마 3,28) 이 말을

               인용하여 인간은 믿음만 있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야보고서에 나오는  “영이 없는 몸은 죽은

            것이듯 실천이 없는 믿음도 죽은 것이다” (야고2,26) 라는 말씀이 못마땅해서 마르틴 루터는 야고보고서는

               성경이 아니라고 까지 했습니다.

  세번째 - 인간은 원죄로 속속들이 부패되어 다시 일어설 수 없다. 고 했는데, 인간이 죄를 지어 근본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어떠한 선행도 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어쩌면 그는 하느님과의 독신 서약을 깨뜨린 것에 대해 거룩한 척 하면서

               변명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믿음 중요합니다. 그러나 천주교에서는 “믿음”만으로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가르칩니다. 우선 믿음을 갖고 하느님의 가르침대로 계명을 지키고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야보고 사도가 말했듯이 “행동”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듯이 실천이 없는 믿음은 분명히 구원을 주지 못합니다.


성당에 나가는 이유는 뭔가요?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인류 구원의 목적을 위해 세우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목자들에게 하느님의 은총을 전해주는 신권을 주셔서 성사를 집행하게 하셨고 신자들이 하느님의 은총을 전해주는 귀한 하느님의 제사(미사)에 참례하고 그리스도의 몸인 성체를 모심으로써 구원의 은혜를 받게 하셨습니다. 성당을 나가는 이유이지요.



*** 가톨릭교회관


예수 그리스도의 인류 구원 사명이 “나는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다”라는 말씀으로 표현되었다면 “그리스도를 통한 인간 구원”은 오늘에 와서는 “교회를 통한 인간 구원”이란 말로 표현됩니다. 그리스도가 인간 구원의 방법으로 이 지상에 오셨듯이 오늘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인류 구원의 방법을 온전히 대리하는 구원의 전당입니다. 교회는 곧 천국으로 인간을 인도하는 다리 역할을 하는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신학적인 표현으로“그리스도의 몸”또는 “그리스도의 신비체”또는 “하느님의 백성”이라고도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인류 구원을 위해 세우신 성사적(聖事的)인 인류의 집단.” 이 정의에서 교회의 요소를 4가지로 요약하면

   첫   째 --- 교회의 창설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입니다.

   둘   째 --- 교회의 사명입니다. 즉 “인류 구원을 위한” 교회입니다.

   세 번째 --- 그것이 성사적 이라는 것은 초자연적인 은총의 교회라는 뜻입니다.

   네 번째 --- 소위 “인류집단”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집단이기 때문에 인간적인 요소를 가진 교회라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가톨릭교회는 예수님의 교회입니다.



*** 가톨릭교회의 특징


첫   째 --- 지일성(至一性)인데 쉽게 말씀드리면 하나인 교회란 뜻입니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어떤 교리나 윤리 도덕적인 관점에서 다른 입장을 가진 분파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곧 예수님의 뜻이고 동시에 예수님의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둘   째 --- 가톨릭교회의 특징은 지성성(至聖性) 입니다. 교회는 그 본질상 거룩하고 엄숙해야 합니다.

세 번째 --- 교회의 지공성(至公性)입니다. 가톨릭이라는 말 자체가 “공번된”, “보편된”교회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네 번째 --- 사도 전래성(使徒傳來性)입니다. 많은 그리스도교 종파 중에서 진정 그리스도께서 세우셨고 사도들이 전해준

                  교회는 가톨릭교회뿐입니다.


우리는 종교 문제를 놓고 서로 비난하고 분파 싸움을 해서는 안 됩니다. 신앙 앞에서 겸손하고 진실해야 합니다. 우리 천주교에서는 절대로 개신교 신자들을 “떨어져 나간 형제” 라고 합니다. 절대로 이단시하거나 적대시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 (요한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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