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30일 (일)
(녹)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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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0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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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1-06-06 ㅣ No.147386

작년에 이어서 올해에도 캠핑을 다녀왔습니다. 작년까지 준비를 맡아왔던 신부님께서 새로이 참가하는 신부님께 진행을 맡겼습니다. 새로이 팀을 이끌어가는 신부님께 대한 걱정은 캠핑의 즐거움으로 바뀌었습니다. 우선 식단이 새로워졌습니다. 첫날 저녁은 싱싱한 샐러드와 고기 그리고 마무리는 비빔 면이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은 속이 활 풀리는 황태 해장국이었습니다. 근처에 있는 등대를 다녀왔습니다. 점심은 시원한 묵밥과 굴전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녁은 수육과 장터국밥을 준비하였습니다. 오는 날 아침은 만둣국이었습니다. 캠핑을 간 것이 아니라 맛 집 여행을 다녀온 것 같았습니다.

 

작년에 캠핑을 준비했던 신부님은 최대한 간편하게 식사를 마련했습니다. 음식 준비 때문에 한 사람이 너무 고생하면 캠핑을 계속하기 힘들다고 하였습니다. 가는 날 저녁은 식당에서 사서 갔습니다. 해가 짧아서 짐 정리하면 식사를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아침은 일어나는 사람이 각자가 먹었습니다. 충분한 수면 시간을 주었습니다. 고기, 어묵탕, 부대찌개 같은 것을 준비하였습니다. 재료를 사서 끓이면 충분했습니다. 진행 신부님이 바뀌었어도 저의 일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저의 일은 설거지입니다. 캠핑이 즐거운 것은 자연 속에서 신부님들과 친교를 나누는 것입니다. 또한 즐거운 것은 돌아올 집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어진 일상의 삶이 감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을 비교하였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회개를 선포하고, 단식할 때는 너무 힘들다고 하였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이스라엘 백성의 위선과 가식을 비판하였기 때문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제시한 엄격한 신앙생활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함께하고, 세리의 집에서 먹고 마실 때는 예수님의 행동을 비난하였습니다. 예수님의 행동이 자신들의 기준에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과 계명의 에서 자유로웠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온다고 하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율법과 계명을 통해서 주어진다고 하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혈통, 계급, 능력, 재산, 신분에 의해서 정해진다고 하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의 의로움이 드러나는 곳에서 시작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행복의 기준을 외부에서 찾으려 합니다. 재물, 명예, 권력을 통해서 행복이 주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얻기 위해서 양심을 속이기도 하고, 이웃의 것을 빼앗기도 합니다. 행복은 조건이 채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조건이란 풀잎 끝에 맺혀있는 이슬과 같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다른 차원의 행복을 이야기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행복은 내부에서 시작된다고 하십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 슬퍼하는 사람, 온유한 사람,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마음이 깨끗한 사람,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 자비를 베푸는 사람,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 예수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하셨습니다. 마음에서 시작되는 행복은 샘이 깊은 물과 같아서 시련과 고통이 다가와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와 같아서 환난과 박해가 찾아와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행복은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부족한 것들이 채워지는 것도 아닙니다. 행복은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지금의 상황에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입니다. 행복은 작은 것에라도 만족할 때 시작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전에 읽은 글이 있습니다. ‘행복은 있다고도 할 수 있고, 없다고도 할 수 있다. 그것은 마치 길과 같다. 길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다니면서 길이 되는 것이다.’ 행복도 그와 비슷합니다. 우리가 행복한 마음으로 살아가면 행복의 길이 우리 곁에 생겨납니다. 그러나 우리가 행복한 마음으로 살지 못하면 행복의 길도 금세 근심과 걱정의 잡풀이 자라나서 사라지는 것입니다. 오늘 독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환난을 겪는 것도 여러분이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고,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여러분이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위로는 우리가 겪는 것과 똑같은 고난을 여러분도 견디어 나아갈 때에 그 힘을 드러냅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았던 바오로 사도는 환난 속에서도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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