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7일 (월)
(녹)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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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고난회 김준수 신부님의 연중 제7주간 목요일: 마르코 9, 41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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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승 [bona24] 쪽지 캡슐

2024-05-22 ㅣ No.172642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하여 너희에게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사람은 반드시 자기의 상을 받을 것이다.” (9,41)


삶을 살다 보면 우리는 자연의 이치처럼, 행복의 법칙을 깨닫게 됩니다. 핵심은 언제 어디서든 타인을 행복하게 하고 베풀면 반드시 좋은 것이 다시 내게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베풂이 행복의 비결입니다. 이것은 바로 자연의 리듬이고, 그 리듬에 발맞춰 오르고 내리며, 차고 비우며, 밀려가고 밀려오듯이, 주면 받고, 받으며 주게 되는 이 모든 게 자연의 이치이고 행복의 비결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가 베푸는 것은 꼭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라, 따뜻한 말 한마디, 눈빛 한 번, 미소나 웃음 같은 작은 친절일지라도 그 모든 것이 우리의 행복을 도와주는 좋은 에너지가 됩니다. 잘 아시다시피 우주의 본성은 충만한 풍요이고 완전한 비움입니다. 비움과 채움, 채움과 비움이 우주의 본성입니다. 본디 우리 안에도 그런 우주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감사는 무한한 풍요를 받아들이는 마음이며 베풂은 무한 풍요를 주는(=나누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받은 것에 감사하며 베푸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우주의 리듬에 맞춰 사는 사람이여, 우주의 마음을 얻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제 복음 말미에,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9,40)하고 말씀하시고, 이어서 오늘은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하여 너희에게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사람은 반드시 자기의 상을 받을 것이다.” (9,41)하고 말씀하십니다. 베풂의 내용이나 형식엔 일정한 틀이 없습니다. 적절하고 좋은 베풂이란 상황에 따라 다른 법입니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 좋아하는 것을 선물 받으면 더 기분이 좋듯이, 상대방에게 지금 필요한 것이나, 상대가 간절히 원하고 좋아하는 것을 베푸는 것이 좋겠지요. 외로운 사람에겐 외로움에서 벗어나는 뭔가를 해주는 게 좋고, 당장 끼니도 채우기 힘든 사람에겐 밥 한 끼 먹을 쌀을 주는 게 좋을 것이고, 마음이 우울한 사람에겐 밝은 위로와 함께 기쁨을 심어주는 것이 좋은 베풂이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무엇을 주고받느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예수님 당대 그리고 사후에 당신 제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하여 너희에게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사람은 반드시 자기의 상을 받을 것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제자들에게 격려와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께서는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고,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 (요13,20)하고 또한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나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마태10, 40.42)라고 늘 하신 말씀을 통해서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의도가 명료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아빠 하느님과 예수님은 당신의 자녀이고 당신의 제자들에게 베푼 이를 기억하시고 그에 따른 상급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베풂이 바로 행복의 비결임에도 불구하고, 베풂보다 오히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이와 같은 제자들에게, 선이 아닌 악으로, 베풂이 아닌 죄짓게 하는 악행을 베푸는 이들에게 경고의 말씀을 구체적으로 표명하십니다. 다음 말씀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겐 지지를 그리고 제자들을 거부하고 배척하며 죄짓는 이들에겐 불행을 선포하신 말씀입니다.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낫다.” (9,42)하고 경고하십니다. 그릇된 말과 행동으로 약하고 작은 이들을 죄짓게 하는 것은 자신의 신앙에 비추어 옳지 않으며 그로 인한 모든 불행의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구체적으로 “네 손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네 발이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또 네 눈이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 던져 버려라.”(9,43. 44. 46)라고 차마 듣기 섬뜩한 말씀을 하십니다. 이렇게 섬뜩하게 말씀하신 것은 비록 베풀지 못할지언정, 자신보다 약하고 작은 이들의 걸림돌이 되는 악한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 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의도를 깨닫게 될 때야 비로소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맛을 내겠느냐? 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 (9, 50)하고 하신 말씀을 알아듣고 실행할 것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소금은 자신을 위해서 존재하기보다 자신을 버리고 내어놓을 때, 비로소 소금은 소금이 됩니다. 그때 소금이 소금다워집니다. 자신을 온전히 내어놓고 베풀 때, 음식이 맛을 내고 그로 인해 그것을 상하지 않고 보존하도록 합니다. 한 마디로 소금은 베풀 때 자신의 베풂을 통해 보상받게 됩니다. 이렇듯 우리네 삶도, 신앙생활도 평화를 누리게 되고 다른 이들과 함께 공생하고 공존할 수 있습니다. 그 시작은 바로 자신이 받은 것을, 기꺼이 다른 이들에게 베푸는 삶입니다. 베풂과 나눔은 서로를 하나가 되게 만듭니다. 베풂의 마음은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가장 필요한 삶의 태도이며 실행입니다. 베풂의 마음이 모이고 모이면 다름과 차이에서 기인하는 모든 갈등의 벽을 허물고 서로를 받아들이고 맞아들이게 할 것입니다. 우리 삶의 모든 만남이 사실 이를 성취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요?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화답송 후렴)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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