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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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Re:그리스도인의 삶과 세상의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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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영혼 [220.72.245.*]

2016-09-05 ㅣ No.11241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사람에 따라서 늘 불안하고 두려워하는 유형이 있지요.

그럴때는 노심초사 주님의 마음을 바라보세요.

잠시나마 죽음에 직면한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도 좋습니다.

 

죽음(순교)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삶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라기보다 영원한 삶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죽음 또한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빛과 그림자같은 동반 존재이기에 영원한 삶을 추구할 때 하나의 과정이라는 이야기지요.

 

죽음을 배척하면 더욱 마음의 그늘이 집니다.

그러나 죽음조차 수용하면 그 또한 지나갈 뿐입니다.

그것을 평신자들의 생활속 녹색순교라고 합니다.


녹색순교가 사제의 백색순교와 순교자의 적색순교와 닮은점은 자연속의 빛의 삼원색 합산 속에서도 잘 나타나 있지요.

빛의 삼원색 빨강+파랑+녹색=흰색과 달리 왜 색의 삼원색을 합하면 검정이 될까요?

그럴땐 세상에서 이미 죽은 사제, 수도자의 검은 수단을 기억해 두세요.


따라서 무언가 분심이 들 때는 보다 범위를 넓게 생각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면 그것들에 대한 더 나아가 대인 관계에서의 양보의 미덕과 지혜의 대화를 주실것입니다. 이때에도 겸손과 섬김은 필수이지요.

신앙은 성경에도 잘 나타나 있듯이 유다의 민족주의도 아니고 베드로의 열정도 아니라는 설명이 나옵니다.

 

현대에도 진보의 운동과 보수의 바리사이 율법 마찰이 보이는데 상호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보이지요?

누군가의 전쟁-평화-전쟁이 보이지요?

이때의 신앙은 이 두 가지를 교만으로 방관하지 않고 내안의 바리사이, 율법주의를 삼위일체 신비로 의탁하는 것이지요.

 

교만으로 무지 등으로 방관하는 사람은 전쟁이 나면 민간인이 더 많이 죽듯 한국이 세계 최고 낙태, 제왕절개, 교통사고, 이혼, OECD 최고 자살, 복지예산 꼴지 등의 이 현실 속에서 그 후손들 또한 자유롭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층 계단을 오르면 칼로리 소모로 2분 생명 연장되듯 노래할 때 많은 칼로리 소모할수록 더 힘차고 정재된 소리 나옴을 봅니다. 노래(소리)+기도(말씀)의 화해 또한 전대사, 한대사로서 이와 무관치 않치요. 이처럼 마음의 거울을 즐겨 본다는 것은 좋은일입니다.

 

삼위일체 신앙은 머리로 정채하는 것이 아닙니다. 광야의 소리(세례자 요한) 말씀(예수님)으로 이루고자 그 소리와 기운 또한 흉성, 비성, 두성으로 흐름을 보는 것이 결과와 과정인 것입니다. 때때로 작은 소리가 기운과 만나 서로 대화하며 그 통로 지남을 느끼거나 단순 참례할 때도 행복함이지요.

 

우리는 과정에서 세상에 머리둘 곳 없는 나를 발견합니다. 이 때에 하느님께 의탁하는 사람은 현명한 것입니다. 어느 재빠른 종 이야기도 이와 관련이 깊습니다. 분심중 머리이신 예수님을 모실 곳 없으면 보다 범위를 넓게 바라보면 됩니다. 그것이 발상의 전환이고 관점으로의 목표도 낳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 결재 필하면서 매일의 정의와 능동 목표 삼위일체가 되도록 노력해보세요.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흙(土)에 점하나 찍으니 입(口)이 열리어 갈지자로 걷기까지 하더라.....造.

하느님 창조(創造)는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진행형이라는 이야기지요.

따라서 하느님 빽으로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고 선교 대상이지요.

이때의 선교는 욕심없는 나눔이니 걱정도 일단 그리스도 제대로 의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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