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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Re: 어려운 말씀이 많으셔서 잘 알아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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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영혼 [61.106.105.*]

2006-09-11 ㅣ No.4450

 

 

   같은 믿는 교우들의 실언등으로 상처를 받았을 때에도 너무 구체적으로 기억하면 충격받으니 그럴 때는 보다 범위를 넓게 기도하시면 됩니다. 님 스스로 성부를 믿고 닮으려고, 이왕이면 아이를 사랑하는 그 맘의 성모님을 닮으려 하는 신심과 관계 있겠습니다. 이처럼 아이의 맘이라면 성모님께 꼬치 꼬치 묻는 것도 한 방법인 것입니다.

 

어느 가르멜 원장 신부님께서는 성모님이 창조주로도 오신다고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것을 가톨릭의 보편 교리중, 인간적 율법이나 바리사이기질로 해석하면 궨시리 완전한 하느님의 권능에 의탁하는 수순이기도 하겠으나 노파심이 들 수도 있겠습니다.

 

아무튼 사람은 포도나무이신 주님을 역시 따르는 여정이기도 하겠으나 잔가지형 해석에 연연할 수 있기에 너무 상심하시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사탄의 졸개인 마귀, 악귀등에 속는 사람들은 자매님으로 하여금 그 아이가 불쌍하여 선행을 베풀려는 의지에 상처를 주려 하고 있습니다. 결코 그 아이가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라며 말씀이지요.

 

이것은 일생을 하느님과 이웃을 위하여 희생과 봉사의 성사를 행하시는 신부님, 수녀님, 수도승들에게도 때로는 과연 하느님이 현존하시는가?라는 분심을 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랑은 언제나 믿음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인간의 과학은 믿고 듣고 보는 것의 역순으로 보일 때(보고 듣고 믿으려는)가 많다는 것이지요. 과학이 꼭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그러다 보면 황우석 박사같은 베아의 생명에 무지한 이상한 과학자(들통나지 않은 우리를 닮기도 하였지요?)도 나오고 그러는 것입니다. 생긴 것이나 말하는 품새가 적그리스도 많이 닮아 있는데 추한 정치권자들과 연루되었다는 심증(저는 성질 : 성격과 기질이 급한 사람이라 황우석 박사가 정 추기경님과 악수하고 인터뷰한 다음날 다른 강연에서 말하는 품새 보고 그를(또는 나를) 싫어하기 시작하였습니다만)은 있는데 물증이 없어 요즘은 다시 그 사건들이 잠잠해 지는 모양새라 생각됩니다.

 

주님은 깊은 나로도 현존하심을 믿으시고 성모님과도 대화를 즐겨 보십시오. 꼭 우리 성당으로 와야 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주님은 예배당에도 현존하실 테니까요.

 

아무튼 복음 설파도 지혜가 필요할 것이고 또한 님처럼의 순수한 봉헌도 필요할 것이며 이를 위해서 우리가 그 미친 사람처럼 때때로 아무데서나 복음을 설파하기도 할 것입니다. 누가 잘하고 못하고는 역시 하늘도 모르고 하느님 어머니도 모르며 천사들도 모르며 오직 하느님 아버지만 아신다 믿고 의탁하는 자세가 필요하겠습니다.

 

각설하고, 대화는 타이밍도 소중하기에 지난번 대구 지하철 참사 때처럼 시도 때도 없이 '믿음 천국, 불신 지옥'이라는 피켓을 아무데서나 들고 복음을 주장한다면 어리석은 일이지요. 마찬가지로 아기들은 무고한 영혼이기에 그렇게 함부로 아기의 구원을 규정할 수가 없는 노릇인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사이비 교주가 되지 않도록 기도해 보십시오.

 

그러나 그것을 설파한 사람도 나름데로 깊은 뜻이 담겨 있슴을 믿음을 통하여 볼 수는 있을 것입니다. 가톨릭은 보편적으로 그런 양 극단의 믿음을 닮지는 않습니다. 왜냐면 가톨릭은 어제도 오늘도 초대 교황을 성 베드로로 모시는 첫번째 그리스도교이기 때문입니다. 집 떠난 개신교인들이 아무리 자기네가 진정한 그리스도교(기독교)라 한들 이것보다는 누가 더 주님께 나를 의탁하느냐가 관건이듯 님 역시 지나치게 마음 아플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이 시간의 마음 아픔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 드리시면 좋을 것입니다.

 

역시 누군가 세상에서 가장 귀한 생명을 주님품으로 떠나는 모습으로 보았을 때에도 우리는 나의 아픔, 슬픔보다 그 영혼의 영원한 안식을 먼저 지향하는 것이 좋기 때문입니다.

 

회심으로 하느님과 화해하는 자에게 '복된 죄'라 고백할 수 있는 경우가 많은데 아무튼 '오직 성령, 오직 예수, 오직 성경'을 주창하는 그 취지는 매우 좋은 것이겠으나 그것을 생각과 말과 행위로 이웃과 나눌 때는 스스로 책임을 지는 것이 좋을 것이고 이왕이면 점쟁이들에게 그것을 내어 맡기는 것이 아닌 더 쎈 사랑의 신이신 그분께 의탁하는 자세가 필요하겠습니다.

 

따라서 흑백 논리로 주장하는 그 사람의 그것을 우리가 판단하는 것도 쉬운 것은 아니고 다만 하느님께 의탁하고 성찰함으로서 주변을 변화시킬 수도 있는 크리스천이 되면 좋을 것입니다.

 

1.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우리는 부모님의 의지로서 첫번째 탄생을 맞았습니다.

 

2. 두번째 결혼, 세례등의 은총은 나와 그분의 의지가 반반씩 섞이는 선택으로서 주변에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3. 그리고 세번째 거룩한 죽음을 통한 영원한 생명은 역시 나의 의지보다 하늘 부모님의 의지가 더욱 필요할 수 있도록 기도하면 좋치 않을까요? 자칫 강박 관념이나 지나친 호기심도 경계하면서 말씀이지요.

 

이 세개의 탄생 역시 인간의 깨닮음만으로 머무는 윤회주의가 되어선 곤란합니다 우리는 강생(Incarnation)을 믿는, 즉 부활을 믿는 크리스천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구약보다 신약을 믿는 크리스천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매일 아침 준 성사생활로도 새로 태어나 저녁이면 경건한 마음으로 죽는 연습을 누리기도 합니다. 때때로의 분심중 그냥 촛불을 켜고 아무 생각없이 주님을 바라보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흑백논리의 신앙은 자칫 이중 인격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래서 저는 삼중인격이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가운데 평상심으로 재빨리 돌아오고 싶다는 체질인것이지요.

 

아무튼 어둠의 분심들일랑 빛의 분심으로 커버 받도록 하십시오.

 

예를 들어서 성가를 부를 때처럼

 

첫음을 아기 예수처럼 여리게 시작하는 습성을 가꾸시고,

 

가운데 음들을 예수님 향한 성모님 손잡고 있음을 바라보는(하늘에서 땅으로) 음을 지향하듯, 내가 하늘로 오르려고 끙끙대지 않으려는 '늘 깨어남'의 파견음을 즐기시고,

 

종음 또한 입김마저 내가 끊지 않는 겸손음으로 주님께 의탁하기 위하여 회색, 검은 구름등의 위로 그렇게 봉송하면 더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입니다.

 

이러한 이치를 즐겨서도 누구나 노래박사, 노래중 그림박사, 또한 시편등의 성경 음미등 좋은 공부가 될 것이며 양심의 이정표를 쇄신 받는 분별력으로 진화될 것입니다. 아무튼 바보같으신 님의 마음도 부럽습니다. 제가 욕심장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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