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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Re:성당1년 느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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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영혼 [59.86.229.*]

2007-08-29 ㅣ No.5743

 
 
    † 찬미예수
 
    예수님 동호회에서 우리 자신의 잘못을 보고 탈퇴를 한 뒤 다시 그 동호회로 재 가입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은총일 것입니다. 요즘 이혼한 부부들이 재결합 하는 것도 같은 이치일 수 있겠습니다. 피라밋도 가톨릭에서 유래된 것이고 문제는 언제나 성령을 초대함이 마땅할 것입니다.
 
형제님의 질문 속에도 미천한 필자가 보기에 또한 성령의 은사가 적지 않게 느껴집니다. 다만 우리의 기도가 주님과의 대화인 계와 응이듯 형제님의 질문에 근거하여 같은 평신자로서의 견해를 밝혀볼까 합니다.
 
 
♡ 첫째 질문에 대하여
 
   가톨릭 교회내에서 술 문화가 발달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형제님처럼 문제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또한 다수인 것도 사실입니다. 과연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물론, 세속의 흥청 망청의 접대 문화와는 다른 뭔가의 예의가 살아있고 레지오, 성령 쇄신 운동권등의 단체 회합 후 우정의 모임을 통한 뒷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형성받는 자리이기에 지혜로운 리더들로 인하여 이 자리 또한 없어서는 안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만, 세상이 악해져서인지 먹고 마심에 있어 다소 아쉬운 것도 사실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 좀 더 눈을 크게 뜨고 바라봅시다. 가난한 사람들은 차치하고라도 평소 묵묵하고 남 모르게 선행을 하는 신자들은 이러한 자리도 매우 절도있게 참여를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신부님들 또한 어린 마음의 신자들이 온갖 귀하고 맛있는 것을 대접하려 하지만 새날의 미사를 위해 그 자리를 고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부님 또한 상대의 선의를 쉽게 거절할 수 없기에 그 자리에 임하기도 합니다. 형제님도 이분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예수님을 그 어린마음으로 초대해 보십시오.
 
 
♡ 둘째 질문에 대하여
 
    성경건에 대해서는 형제님의 말씀이 곧 예수님의 지적이라 해도 궨찬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우리 본당의
경우처럼 저부터도 하도 성경이 약하여 아예 성당 비치용으로 성경을 두고 신자들과 함께 미사전 개인 묵상 및 영성체후와 파견때 그것을 함께 봉독하고 있습니다. 기도가 홀로보다 함께할 때 더욱 쉬워지기 때문입니다. 일단 형제님 또한 신부님께서 입이 닳토록 강론 때 성경과 성전의 중요성을 설파하심을 더욱 귀 기울이시고, 우리가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몫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또한 보이지 않는 성경으로의 '꿈속에서조차 오직 하느님만을 뵈옵기'를 청하며 잠드는, 하루를 살며 내가 죽기를 바라는 '성무일도'자들도 더욱 만날 수 있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 셋째 질문에 대하여
 
    역시 옳은 지적입니다. 복음을 전하는데 적극적이지 않습니다. 필자도 요즘 본당의 쓰러져가는 울뜨레야의 재건을 명받고 유기적인 대화 통로를 위한 카페 조성을 한 뒤 복음 편지를 전해 주었는데도 단 한사람도 가입을 하지 않았더군요. 환장할 노릇입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고백입니다. 때때로 인간적 판단에 물들면 앞 길이 막막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환장하고 지랄을 한다 한들 무엇이 해결 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모든 신심단체의 그것은 사람을 많이 모이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팀회합(레지오의 주회라고도 함)의 실적이 아니라 그것을 올바로 이끌 리더를 만들기 위함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누가 만듭니까? 주님이 만들어 주십니다. 그저 그것에 감사를 드리다 보면 방법을 주실지도 모를 일입니다. 따라서 가톨릭(카톨릭이 아님) 신자들은 자신의 미온함에 반성하며 양날의 칼을 갈듯 쌍날칼이신 주님께 그것을 의탁하기에 외적으로는 그것이 미온적으로 보이기도 할 것입니다. 아무튼 저는 쪽지를 만들어 이분들의 손에 쥐어 줄 참이고 이 쪽지 또한 님이 본당 게시판에 쓸 때의 그 것처럼 퇴고에 퇴고를 거듭해 오기도 합니다. 사랑은 분명 님처럼 좋은 관심에서 비롯되기에 혹여 그 분들이 이 글을 보고 카페 관심을 갖으면 좋을까 싶어 글을 쓰기도 함입니다.
 
 
♡ 넷째 질문에 대하여
 
    헌금 내는 것을 따지는 분들도 계시는군요. 당연히 기분 나쁘겠지요. 성당을 포함하여 모든 공동체에는 각양각색, 십인십색의 사람들이 모이기에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또한 대다수 본당의 사무장들은 일당 천의 신자들을 상대하기에 만약 귀 본당의 사무장이 그러하였다면 신자로서의 의무인 헌금 봉헌에 관하여 보다 관심이 깊고 적어도 촌지에 익숙했던 냉담에서 혼인, 장례등에 감복하여 애꿎은 사무장을 돼지로 만드는 그것의 방어력을 가진 분일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성당의 돈을 관리하는 사무장님을 위시한 일반적인 분위기는 너와 나의 자유의지를 소중하게 여길테니 특별한 경우가 되겠습니다.
 
님또한 불쾌한 그것들은 보지 않기 위하여 선악과조차에서도 보다 자유롭기 위하여 더 나아가 우리함께 오늘 다시 그것을 따도록 유혹하는 뱀의 유혹을 경계하기 위하여 성령의 은사로서 주님의 독방으로 피신이 아닌 의탁을 청원해보십시오. 내일은 피신조차 평화롭게 이끌어 주실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평소 주님을 닮지 못하면서도 우리의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중에 머문 그 분들을 통하여도 내안의 깊은 나로 현존하시는 주님의 늑방은 지금은 매우 좁고 작은 방으로 보이겠으나 실제 그방을 들어가면 고해소의 그것처럼 세상에서 가장 넒고 거룩하며 선한 방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이로써 세상 이웃들이 다만 그분의 그것처럼 사랑스럽고 그 무엇을 나눌 성사를 주실 것입니다.
 
 
♡ 다섯째 질문에 대하여
 
    다섯째 질문 역시 실적에 연연했던 개신교의 약장수형 일부 목사들의 사고에 형제께서 물들어 계심을 볼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그 반대 급부에 대해서도 함께 묵상함은 우리의 숙제일 것입니다. 청년들의 성가를 보더라도 이들의 목소리는 매우 싱싱하고 형제, 자매들의 그것은 세속에 지친 장년부의 그 음색을 뛰어넘어 젊은 사람들에게 있을 수 있는 독이 덜하여 듣기 좋습니다. 신부님같은 경우는 중재자로서 주님을 보다 온전히 모시고자 그 주파수를 이것 저것 취하는 평신자인 우리가 맞추기 힘들 때도 많치요?
 
역시 외적으로는 본당 청년부의 활성화에 대하여 우리가 의심을 품을 수 있겠으나 그것은 좋은 자양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실제로 명동 사무국에는 겸손한 개신교 본부측에서 형제님의 지적처럼 역시 함께 시들어가는 청년 활성화 방안들의 작전계획을 나누고자 수화기를 드는 분들이 많다 합니다. 청년들의 미래는 우리 장년들의 숙제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본당의 예를 다시 들건데 요즘 우리 청년들 살판 났을 것입니다. 그레고리오 성가등을 워낙 모르기에 전임 보좌 신부님께서 미사중에도 엄청 쿠사리를 먹이셨는데 신학교 때 그레고리오 땡땡이 많이 치신듯한 보좌 신부님께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
 
아무튼 형제님의 나름대로 좋은 지적들 감사하게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댓글을 달게되어 영광입니다. 우리가 기도중에 내가 선을 행한들 잠시 뒤의 또다른 '나쁜 내가'그것을 가로챌 수 있기에 때때로 나의 선행이 허무하게도 다가올 것입니다. 하여 우리는 과거도 그 허물보다 용서해 주시는 주님과 소통하고자, 그것을 믿고 닮고 따르고자 여기에 앉아있기도 합니다.
 
하여 이기적인 우리 자신이 자기의 들보보다 남의 티를 봐야 함에 그것을 자양분으로 계속 나의 악과 싸워 승리하여야 할 것입니다. 자신의 취향에 맞지 않는다고 함부로 말하고 행위하는 그것들을 지금은 배척할 수 있겠으나 온전한 주님의 늑방으로 들어감으로써 나부터 다시 정화하다 보면 좋은일 있을것입니다.
 
필승!하시기 바랍니다.
부디 오늘 제가 독이 든 마음으로 바친 이 글이 염치없는 마음이오나 우리 자신의 성화되는 묵상으로 연계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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