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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동엽 신부님의 신간 [희망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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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소희 [totoro29] 쪽지 캡슐

2013-04-11 ㅣ No.82

 희망의 귀환

희망을 부르면, 희망은 내게 온다 -

밀리언셀러 『무지개 원리』저자 차동엽의 따뜻한 희망 멘토링
 
◆  ◆ 책 소개

 

희망을 묻는 이들에게 딱 알맞춤인 나침반과 같은 글!

 

밀리언셀러 『무지개 원리』 저자 차동엽 신부가 2013년 “지금 우리가 있는 장소에서, 우리가 가진 것을 동원하여, 우리가 꿈꿀 수 있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해가 바뀌고, 정권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우리들 얼굴에선 밝은 빛이 보이지 않는다고?

절망, 포기, 체념을 넘어 이제 더 이상 버틸 힘조차 남아있지 않다고?

그 어떤 말로도 위로 되지 않고 “다 필요 없다” 하면서도, 그럼에도 누군가 나를 다시 한 번 잡아 주었으면 좋겠다고?

그렇다면 우리시대 희망멘토 차동엽 신부가 말하는 희망에 귀 기울여 보자.

진짜 희망의 근원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아니 정말 희망이 실제로 있기나 한 건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보일 듯 보이지 않는 희망의 실체를 진지하면서도 유쾌하게 까발려 보는 거다.

그 희망이 어떻게 나를 일으켜 줄 수 있는지도!

 

이 책 『희망의 귀환』은 크게 4개의 파트, 곧 ‘Part1. 포옹하라 - Part2. 춤추라 - Part3. 심기일전하라 - Part4. 즐겨라’로 구성된다. 한 파트 당 3개의 주제들을 담아 총 12가지 희망의 증거들을 노래하는, 그야말로 ‘희망경전’이다.

특히 매 주제 끝에, 우리시대 고민과 아픔의 질문들을 차동엽 신부 특유의 빛나는 사유로 갈무리한 보석 같은 멘토링을 얻을 수 있다.

 

 ◆  ◆ 저자 소개

 

▶ 차동엽

경기도 화성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서울 가톨릭대학교, 오스트리아 빈대학교, 미국 보스턴대학교(교환장학생) 등에서 수학하였고, 오스트리아 빈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2013년 현재 인천 가톨릭대학교 교수 및 미래사목연구소 소장으로 봉직하고 있다.

 

▶ 주요저서 『무지개 원리』(개정판)(2012), 『잊혀진 질문』(2012), 『김수환 추기경의 친전』(2012), 『바보존(Zone)』(2010) 외 다수

 

▶ 역서 『아가페』(2012), 『365땡큐(Thank you)』(2011)

 

 ◆  ◆ 목차

 

서(序)

프롤로그_ 나도 희망한다, 너도 희망하라

 

 PART1. 포옹하라

 

<네게 희망이 오고 있다>

- 꿈을 접은 그대, 그만 일어나라

- ‘희망놀이’ 한번

- 너의 들판 위에

- 괜찮다, 괜찮다 -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괴롭힌다. 극복할 길은?

 

<이제 희망을 이야기하자>

- 청춘특권

- 피로사회의 출구

- 아무거나 붙잡고 희망이라고 우겨라

- 괜찮다, 괜찮다 - 희망 꼬투리가 잡히지 않을 땐?

 

<절망은 껍데기일 뿐>

- 알맹이 없는 절망

- 만들어진 절망

- 절망을 선동하는 말

- 괜찮다, 괜찮다 - 뜬금없이 절망이 덮칠 땐, 어떻게 해야 하나요?

 

 

PART2. 춤추라

 

<희망은 불끈한다>

- 오기(傲氣)!

- 호기(浩氣)!

- 강기(剛氣)!

- 괜찮다, 괜찮다 - ‘이겨야 한다’는 강박으로 스트레스가 심하다! 벗어날 길은?

 

<희망은 명중한다>

- 추적의 법칙

- 바라봄의 법칙

- 누적의 법칙

괜찮다, 괜찮다 - 지치고 힘들 때는 어떻게?

 

<희망은 도약한다>

- 약점을 통해

- 불안을 통해

- 고통을 통해

- 괜찮다, 괜찮다 -  좌절이 올 때, 출구를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PART3. 심기일전하라

 

<맷집으로>

- 나는 나를 믿는다

- 나는 내가 좋다

- 내 인생 내가 산다

- 괜찮다, 괜찮다 - ‘부정적인 생각’이 나를 지배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

 

<돌파력으로>

- 버텨라

- 의미를 물으라

- 꼬리를 자르라 

- 괜찮다, 괜찮다 - 실패의 악몽이 크다. 벗어날 길은?

 

<뒤집기로>

- 불리함의 효과

- 고통의 생얼

- 99%의 지대 

- 괜찮다, 괜찮다 - “세상이 내 희망을 빼앗았다”는 생각 때문에 화가 난다. 분노를 어째야 하나?

 

 PART4. 즐겨라

 

<길이 목표다>

- 내 인생의 약도

- 우보만리

- 너의 때

- 괜찮다, 괜찮다 - “이룬 것이 없다”는 자괴감으로 괴롭다. 해결책은?

 

<사람이 희망이다>

- 너로 인해 산다

- 우리를 결합시키는 것

- 함께라면

- 괜찮다, 괜찮다 - 살다 보면 경쟁도 필요하고 공생도 필요하다. 지혜로운 선택의 방법은?

 

<유쾌한 희망지혜>

- 희망은 공짜

- 한 걸음만

- 1할-2할 오케이!

- 괜찮다, 괜찮다 - 스마트 시대에 뒤떨어지고 싶지 않다. 길은?

 

 에필로그_ 구원투수는 불펜(bull pen)에 없다

 

 ◆  ◆ 저자 서문

 

아무리 눈앞이 칠흑이어도, 희망은 기어코 귀환한다.

<희망의 귀환>은 철석같은 약속이다.

 

희망이 돌아온다? 그렇다. 목적을 성취하고 장하게 귀환한다. 일단 끝까지 믿어주면, 희망은 자신의 미션을 수행한 후 승리의 깃발을 들고 개선한다.

희망이 돌아온다? 맞다. 행복 찾아 집 떠난 파랑새처럼 여지없이 귀환한다. 입때껏 밖에서 행복의 꼬투리를 찾아 헤매던 궤적에서 선회하여, 이윽고 희망은 ‘나’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희망이 돌아온다? 옳다.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순리 속에서 어김없이 귀환한다. 이름하여 변증법적 순환 안에서 희망의 귀환이다. 꼭 누구의 이론이랄 것 없이, 역사는 수레바퀴처럼 돌고 돈다. 희망에서 절망으로, 절망에서 새희망으로, 새희망에서 새절망으로, 새절망에서 새새희망으로….

 

이런 줄도 모르고 아직도 휘청거리며 유랑하는 이들에게 괴테는 〈경고〉를 보낸다.

 

어디까지 방황하며 멀리 가려느냐?

보아라, 좋은 것은 여기 가까이 있다.

행복을 잡는 방법을 알아두어라.

행복이란 언제나 네 곁에 있다.

 

‘경고’라 이름 붙였으되, 한 인생 베테랑의 독백이다. 행복을 겨냥하고 있지만, 사실상 그와 얽힌 모든 가치 군락에 유효한 진술이다. 홀연, 뇌리가 환해진다.

 

<희망의 귀환>은 필연이다.

희망을 부르라. 희망은 네게 온다.

 

 무지개(舞之開) 차동엽
◆  ◆ 출판사 서평

 

‘희망 증발’을 슬퍼하는 이들을 향한 토닥이는 위로.

‘희망 실종’을 부추기는 문화를 거스른 유쾌한 희망 변론.

 

 밀리언셀러 『무지개 원리』저자로 대중에게 친숙한 차동엽 신부가 ‘희망’ 한 다발 들고 돌아왔다.

강연가로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는 대중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를 자신의 주제로 여기며 울고 웃는다.

그의 희망 탐사는 집요하고, 끈질기고, 장쾌하다. 그리하여 이 책 『희망의 귀환』은 별별 절망의 명분을 훼파하고 있음은 물론, 동서의 빛나는 희망 예지를 망라하여 집적하고 있으며, 여태 아무도 밟지 않은 희망 지평을 새벽처럼 열고 있다.

 

저자는 말한다.

<<고백하거니와 이 글은 누군가 벼랑 끝에서 희망을 찾는 이를 위한 변호임과 동시에, 나 자신 희망이 절실해질 때를 위한 비상구로서도 의미를 지닌다.

 

나는 지상에서 가장 호소력 있는 희망 경구로 다음의 라틴어 격언을 즐겨 꼽는다.

“나도 희망한다, 너도 희망하라.”(스페로 스페라: Spero, spera)

 

얼핏 평범한 상투어인 듯하나, 이 말의 속뜻엔 거부할 수 없는 울림이 있다. 지금 누군가에게 희망을 권면하는 그 사람은 더 혹독한 시련 가운데 있다. 그는 겨우, 간신히, 억지로 희망을 부여잡고 버티는 중이다. 그리하여 그는 살아있음 자체가 주위 사람들에게 힘찬 희망의 응원이 된다. 그의 처절한 고백!

“나도 희망한다.”(Spero)

이는 이제 거역할 수 없는 명령이 된다.

“너도 희망하라!”(Spera)

 

이 바다 건너 지혜를, 지금 희망과 작별을 고하려 망설이는 모든 이에게 전하고자 이 글을 쓴다.>> -본문 중에서

 

 “온 세상이 너의 희망 밭이며 들판이다!”

“역사 이래 꿈 시장에 불경기란 없었다!”

 저 속수무책인 절망문화의 확산을 우리는 어째야 할까? 이 물음에 직면하여, 이 사회 지식층 일각에서 일고 있는 준열한 성찰에 귀를 기울여 본다. 일부 날카로운 비평가들은 이 절망문화의 주범이 바로 과장된 성취경쟁 때문이라고 가차 없는 비판을 가한다.

이들의 말에 백번 공감한다. 우리 사회문화는 지난날 오직 성공만을 향하여 질주할 것을 종용해 왔다. 이로 인해 행복, 기쁨, 사랑, 평화 등 우리네 삶의 본질적 목표가 경제 및 출세 논리에 압도되었다. 당연히 그 부작용은 피로, 과로, 좌절, 우울증 등이었던 것이고. 이런 ‘피로사회’ 증후군엔 치유가 시급한 것이 사실이다.

이런 맥락에서 ‘피로사회’에 방점을 찍고 있는 지식인들에게 되묻고 싶다.

“그러면, 절망이 답인가?”

이들의 의도는 그것만이 아닌 것 같다.

“절망이구 희망이구 차분히 가라앉히고 그냥 내버려 두라. 호들갑스럽게 희망을 부추기지 말고, 희망으로 하여금 스스로 일어나도록!”

아마도 이쯤이 아닐까. 설득력 있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피로사회의 출구는 무엇인가? 저자는 여기서 그 대안 가운데 하나로서 차분한 희망담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다 뭉뚱그려 “전진 일변도의 희망선동을 폐기하자”고 하는 생각 역시 균형을 잃은 견해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무책임한 희망 부추기기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희망원리 자체의 발견! 이것을 꾀해 보자는 얘기다.

“희망 자체의 다이내믹에 대한 과학적 ․ 심리적 진술, 역사의 검증을 받은 희망 이야기에 대한 귀납적 진술, 그거라면 괜찮지 않을까!!!”

아무렴. 이런 희망이라면 한번쯤 가져볼 만하지 않은가? 기왕 누구에게나 주어진 똑같은 하루라면.

이런 까닭에 저자는 어떤 반론에도 굴하지 않고 노상 그의 희망철학을 외쳐댄다.

“역사 이래 꿈 시장에 불경기란 없었다!”

그렇지 않은가. 경제일선의 불경기 때, 사람들에게 더욱 필요한 것은 꿈이다. 호경기 때는 또 그 상승의 붐이 꿈을 부채질한다.

 

뒤집어 보라. 희망이 숨어 있을 것이다.

멀리 보라. 희망이 아스라이 보일 것이다.

폭넓게 보라. 희망이 옆구리를 드러낼 것이다.

꿰뚫어 보라. 희망이 바닥에서 꿈틀거릴 것이다.

 

◆  ◆ 책 속에서

 

▶ 사실 우리는 은연중에 기쁨놀이를 하면서 시련이나 역경을 이겨왔다. 긍정적 사고에 익숙한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해야 할 이유를 찾아내고야 만다. 오랜 세월 우리 민족은 기쁨놀이의 정수들을 속담으로 갈무리해 두기도 했다.

“젊어서 고생은 돈 주고도 못 산다.”

“인생사 새옹지마!”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

“…….”

영어로도 운치를 더하는 격언이 있다.

“Every cloud has a silver lining!”(모든 구름엔 은빛 테두리가 있다)

구름 뒤에는 언제나 은빛 찬란한 희망이 숨어 있다는 뜻이니, 부정 뒤에 숨겨진 긍정의 발굴이라 할까. […]

 

기쁨놀이를 약간 다른 각도에서 이름 붙이면 ‘희망놀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강조점이 조금 다를 뿐, 내용은 거의 동일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의 이유 대신에 희망의 이유를 찾는 것이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희망놀이는 생존의 탈출구가 될 수 있다.

성공회대 신영복 석좌교수는 ‘희망놀이’로 20년 감옥생활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는 이렇게 회상한다.

“교도소에서 자살하는 사람들이 참 많아요. 보도가 안 되지만요. […] 제가 무기징역 받고 추운 독방에 앉아 있을 때, 왜 자살하지 않나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심각하게 고민했었죠.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하거든요. 자살하지 않은 이유는 […] 햇빛 때문에 안 죽었어요. 그때 있었던 방이 북서향인데, 2시간쯤 햇빛이 들어와요. 가장 햇빛이 클 때가 신문지 펼쳤을 때 정도구요. 햇빛을 무릎에 올려놓고 앉아 있을 때 정말 행복했어요. 내일 햇빛을 기다리고 싶어 안 죽었어요.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비록 20년의 감옥이 삶 속에 있지만 결코 손해는 아니다. 태어나지 않은 것과 비교한다면요.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매일 2시간쯤 들어오는 무릎 면적의 햇빛!

희망을 모르는 이에게는 죽음의 이유가 되고도 남는 지독스런 결핍이다.

하지만 희망을 아는 이에게는 살아야 할 이유가 되는 충분한 명분인 것이다. (본문 ‘네게 희망이 오고 있다-희망놀이 한번’ 중에서)

 

▶ 꿈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뚜렷한 동기부여가 없기 때문에 그냥 헤매면서 아무렇게나 살 수밖에 없다. 반면에, 꿈을 가지면 목표만 보인다. 그리하여 우리의 관심에서 잡다한 잔가지를 쳐준다. […]

이는 꼭 미사일이나 내비게이션이 목표에 이르는 과정과 비슷하다. 목표추적장치라 할까? 어떻게 부르건, 우리가 꿈을 품을 때, 꿈은 이처럼 우리 안의 목표추적장치를 작동시켜 결국 원하는 목표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도 또 한 걸음 더 나아간 희망이나 꿈이 있다.

선명한 희망, 목표가 뚜렷한 꿈! […]

선명하고 요지부동인 희망은 닻과 같이 작동된다. 이런 희망은 그냥 길을 안내하는 내비게이션이 아니다. 내비게이션은 가다가 딴 데로 갈 수도, 엉뚱한 데로 갈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닻은 뭔가? 닻은 이미 목표지점에 고정되어 있다. 희망을 품은 사람과 이 닻 사이에는 밧줄로 이어져 있다.

닻과 밧줄은 한 몸체다. […]

희망이 닻이요 밧줄이라면,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줄을 잡아당기기만 하면 되는 것! 하여간 방향은 모른다. 그런데 눈 감고 당겨도 우리의 최종목표인 닻이 이미 박혀 있기에 상관없다. 우리의 희망은 이런 것이다. (본문 ‘희망은 명중한다-추적의 법칙’ 중에서)

 

▶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는 “희망은 모든 인간의 행위 속에 들어 있는 ‘신적인 힘’이다”라고 정의했다. 이는 우리의 꿈속에 신적인 창조력이 깃들어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엄청난 얘기다. 우주만상을 창조한 신의 창조력을 인간이 꿈이라는 방식으로 지니고 있다니… 그렇다면 꿈을 가진 자는 이미 신적인 잠재력을 작동시키고 있는 사람이라는 얘기!

이 놀라운 비밀을 알았던 것일까. 월트 디즈니는 이렇게 말했다.

“꿈꾸는 것이 가능하면 그 꿈을 실현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는 디즈니랜드를 세움으로써 몸소 이를 입증했다. (본문 ‘희망은 명중한다-바라봄의 법칙’ 중에서)

 

▶ “희망은 비용이 들지 않는다.”

프랑스의 소설가 콜레트가 한 말이다.

희망은 공짜!

새로울 것이 없는 이 사실을 우리는 감쪽같이 모르는 척 하고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마치 희망의 가격이 억만금이라도 되는 듯이 희망의 진열장 앞을 서성이며 선뜻 집어 들지 못했다. 감히 손에 쥐어 보고서도 만지작거리기만 하다가 그만 내려놓기 일쑤였다.

 

희망은 자본이 들지 않는다.

무일푼으로도 ‘희망사업’은 누구든지 할 수 있다.

잘 되면 대박, 밑져야 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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