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자유게시판

<푸슈킨의 생애와 작품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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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희 [edohyy] 쪽지 캡슐

2022-02-14 ㅣ No.224484

+ 찬미예수,


<푸슈킨의 생애와 작품세계>

(1799~1837/38)

 

<알랙산드로 푸쉬킨 >

(1799~1837/38)

이해와 감상;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픔의 날이 지나면

기쁨의 날도 오는 것이러니,

 

마음은 미래를 그리워 하지만

현재는 언제나 슬픈것

지금의 모든것은 사라져 가지만

지나간것은 또한 그리움으로 남는 것이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우울한 날을 견디면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푸시킨의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작품이다

2연으로 이루어진 서정시(抒情詩), 인생의 희노애락을 모두 겪고

인생의 후반부에 있는 사람이 인생의 본질이 무엇인지 관조하고 인간의 의식 

깊숙이 자리 잡은 근원적 고독에 대해 성찰하고 있다.

 

의 화자는 슬픈 날을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이 오게 되고

누구나 미래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 현재는 우울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하며 

인간사에 좌절과 행복, 걱정과 기쁨은 함께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사라지지만그것이 기쁨이든 슬픔이든 지나고 나면 

다 그리움이 되기 때문에 모두 가치와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노래한다.

 

서정적(抒情的)인 시어와 낭만적인 비유를 통해 아련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으며 

1연의 첫 구절인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마라."는 

전세계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많이 인용되고 있다.

 

인생에 대한 푸슈킨의 태도

푸시킨은 러시아의 대문호로, 자유로운 시적 상상력과 함께 

감성적인 분위기의 작품을 많이 남긴 낭만주의 詩人이다

푸슈킨은 한때 유배 생활을 하면서 인간의 본질과 삶에 대한 긍정에 대해 깊이 천착하게 되었다

그는 언제나 불행과 죽음이 닥칠 수 있으며,

 

그것이 지나면 행복이 찾아온다고 삶의 이치를 설명한다

이는 또한 푸슈킨이 이 를 통해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일 것이다

푸슈킨은 러시아 리얼리즘 문학의 기반을 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이후 러시아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의 죽음은 푸슈킨의 진보적인 사상을 두려워 하는 세력이 꾸민 일이 라고도 했다

사랑과 죽음은 젊은 나이로 허망하게 맞은 푸슈킨의 죽음 두고서 당시 

그의 문학적 재능을 아낀 많은 러시아 민중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말한다. 푸슈킨은 女子 보는 눈이 없어 얼굴은 예쁘지만 머

 

릿속이 하얀 여자를 마누라로 얻어 불행을 스스로 자초한 것이라고도 했다. 

 

나탈리야 곤차로바. 그 빈 머리(지적 수준이 미달되는)와 미모로 인해 경제

 

적 궁핍에 시달리고 목숨까지 잃는 결과를 낳았다고.

 

1826년 푸슈킨은 황제의 특별사면으로 부름을 받고 유배지에서 돌아와 지내 

16(13세 연하)의 나탈리야를 보고 반하게 되는데, 일찍이 그가 "현기증 

을 느꼈다"고 했을 만큼 빼어난 미모의 여성이었다그리하여 3년간 열애 끝 

에 그가 32세 되던 1831년에 결혼했다.

 

그러나 그는 이 결혼으로 엄청난 대가를 치른다. 가난했던 신부 측은 푸슈킨 

의 가문에 반해 결혼을 승낙했던 것이다. 궁핍한 장모에게 빚까지 내가며 거 

액의 혼수금을 줘야 했다. 게다가 유행을 좋아하고 사교계의 여왕으로 각광 

받게 된 아내 때문에 날이 갈수록 큰 돈이 들었다

 

늘어가는 빚과 사교계의 번잡함 속에서 그는 정서불안에 시달렸다. 모스크바 

에서의 신혼의 달콤한 날들은 꿈마냥 짧았다숨지기 3년 전인 1935년 무렵 

그는 황제에게 매수당했다는 비난을 각오하고 니콜라이 1세로 부터 3만 루 

블을 빌리게 된다. 그만큼 그로서는 경제적으로 힘든 처지였다.

 

이런 와중에 아내의 불륜을 암시하는 투서까지 날아들었다황제의 근위병 

중에는 프랑스 혁명때 러시아로 망명해온 귀족(단테스)이 있는데, 둘이서 

몰래 만나고 있다는 것이었다이는 푸슈킨의 진취적인 사상을 미워한 당시

세력가의 음모라는 설, 혹은 황제와 나탈리의 불륜을 덮어주기 위한 계책이 

란 설도 있지만, 푸슈킨은 '간통한 여자의 남편'이라는 익명의 편지에 분개했 

. 아내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는 '연적'과 담판을 치루어야 했다.

 

푸쉬킨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 당시의 결투용 권총 1837127일 오후. 

트페테르부르크의 검은 강가에서 둘은 결투를 벌였다. 열 발짝 떨어져서 

서로 권총을 쏘되 죽을 때까지 싸운다는 냉혹한 조건으로결과는 안타까웠 

. 푸시킨은 상대가 쏜 첫 발에 복부에 치명상을 입고 눈밭에 쓰러졌으나, 

그의 총탄은 단테스의 팔목에 상처를 입혔을 뿐이었다. 이틀 뒤 그는 숨을

거두었다.

 

아직 37세의 젊은 나이였다. 러시아의 알렉산드로 푸슈킨의 너무나 유명한 

시인,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푸슈킨의 일화입니다. 그는 모스크바 광장에서 

한 소경걸인을 발견 했습니다. 한겨울인데도 걸인은 얇은 누더기를 걸치고 

있었습니다. 그는 광장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벌벌 떨다가 사람들의 발소리 

가 나면 한푼 줍쇼, 얼어 죽게 생겼습니다!” 하면서 구걸을 했습니다.

 

 

그의 모습은 가련했지만 모스크바에 그런 걸인은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문에 그에게 특별히 동정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푸슈 

 

킨만은 줄곧 그를 주의 깊게 지켜보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 역시 가난한 형편이라 그대에게 줄 돈은 없소. 대신 글씨 몇 자를 써

 

서 주겠소. 그걸 몸에 붙이고 있으면 좋은 일이 있을 거요.” 푸슈킨은 종

 

이 한 장에 글씨를 써서 거지에게 주고 사라졌습니다. 며칠 후 푸슈킨은 친

 

구와 함께 다시 모스크바 광장에 나갔는데 그 걸인이 어떻게 알았는지 불쑥

 

손을 내밀어 그의 다리를 붙잡았습니다.

 

 

 

나리, 목소리를 들으니 며칠전 제게 글씨를 써준 분이 맞지요. 하느님이

 

도와서 이렇게 좋은 분을 만나게 해주셨나 봅니다. 그 종이를 붙였더니 그

 

날부터 깡통에 많은 돈이 쌓였답니다.”퓨슈킨은 조용히 미소를 지었습니다.

 

친구가 물었습니다. “그날 써준 내용이 도대체 무엇인지요?” “별거 아닙니다.

 

'겨울이 왔으니 봄도 멀지 않으리!’라 썼습니다.”

 

 

사람들은 이 걸인을 보고 느꼈을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처참한 날들을

 

보내고 있지만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이다. 봄을 기다리는(再起하려

 

) 이 사람은 도와줄 필요가 있다.”라고.

 

 

 

글옮긴이~도희(아오스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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