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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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풍병자인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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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옥 [smalllark] 쪽지 캡슐

2005-01-14 ㅣ No.9053

재작년 봄, 어렵고 어려운 결정을 하고, 신학교 들어가기 전, 피정을 갔습니다.
어두운 소성당에서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예수님, 저, 학교 들어가는데 무슨 말씀을 해주실거예요?"

 잠시 후, 떠오른 성서의 장면입니다. 
아주 짧은 찰나였다 생각되었고, 전광석화같은 머리 속 스침이었는데, 
글로 만들어보니 길군요.^^


지붕을 뚫고 내려온 중풍병자를 치유시켜주시는 복음입니다. 예수님 가까이 가지 못하게 입구를 가로막는 많은 병자들. 그것은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의 일그러진 모습들. 찌그러지고 비틀린 수많은 거짓 자아들은 언제나 그분을 만나는데 장애를 일으켰지요. 그 많은 환자들의 모습에다 하나씩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너는 나의 두려움이다" "너는 나의 근심이다" "너는 나의 불안이다" "또 너는 나의 미움, 질투심, 경쟁심, 분노다" "너는 나의 소심함" "너는 나의 무심함" "너는 나의 완고함" . . . . 그렇게 하나씩을 이름붙여가며... 내 안에 살고 있는 그들을 모두 불러내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밖으로 나와 예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았습니다. 그 모두는 나였고, 그래서 나는 꼼짝도 못하는 중풍병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그분을 만나려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특단의 비상조치를 취해야 할 판이 되었습니다. 누군가 나를 들것에 태워 지붕으로 기어 올라갑니다. 그런데 그 네명의 협조자들 역시 나 자신이었습니다. 예수님 앞으로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가야한다는 그래야 생명과 구원이 있다는 '나의 의지들'이었습니다. 기를 쓰고 지붕에 올라가긴 올라갔는데 지붕까지 뚫었는데 이번엔 침상에 네 줄을 달아 균형을 잡고 잘 내려와야 했습니다. "네 줄이 균형을 잡아야 그분 앞에 안전하게 도착한다는 것" 나는 이 줄의 의미를 곧바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학교에 들어가는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에 꼭 들어맞는 시기 적절한 하느님의 말씀이었죠. 이성과 신앙, 말씀과 실천의 네 줄? 기도와 행동, 배움과 가르침의 네 줄? 하느님과 이웃, 성서와 성사의 네 줄? 그렇습니다. 때에 따라 네 줄의 이름을 다르게 붙여도 상관없지만 하여튼 그런 것들이 탄탄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일러주셨습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칠 때, 그분 앞에 공손히 내려와 그분을 뵈옵는 것이 아니라 꼴사나운 추락이 있을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잊지말아야할 것은 그분은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니라. 밑으로 내려가야 만날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비록 그분을 알기 위해, 그분의 가르침을 알기 위해, 한단계 한단계 올라가고 있는 듯 느껴지더라도 (지붕을 올라가듯...) 최종적인 만남은 역시 내려가야 한다는 것을 결코 잊어선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내려가지 않고는 그분을 궁극적으로 만나지 못할 것이며 그분과 만나지 못하면 결국 치유도 죄사함도 모두 실패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사방이 막혀있는 중풍병자인 나, 그분에게서 치유를 받아 온전해지고, 죄사함으로 더없이 깨끗해지는 날, 무수히 둘러 서 있던 나의 일그러진 분신들조차 '하느님을 찬양'하는 한 무리의 '찬양단'이 될 것이라 하셨습니다. 학교를 다니며 내가 명심해야 할 것은, 바로 그것 뿐임을 일러주셨습니다. 예수님, 그분은 오늘도 저의 내려옴을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계실 것입니다. 위태위태, 간당간당 줄에 매어달린채 조심조심 내려오는 저를 말입니다. 그 생각만 하면 저는 용기가 납니다.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내려오게 됩니다. 아니, 내려오는 것을 아주 기쁘게 여기게 됩니다.
 
ps. 가톨릭 사이트, 이 묵상방에 있는 글을 순서대로 올린다는 약속을 깨고 
오늘 복음에 관해서는 영혼에 각인된 것이 있기에 그것을 올려봅니다. 
이 복음에서 여태까지 한번도 생각지도 못한, 
그리고 어느 책에서도 읽어보지 못한 묵상(?)인지 혹은 관상(?저는 그렇게 믿어집니다만)인지를 체험하고, 
그 날 주님이 제게 주신 그대로를 글로 옮겨 본 것입니다. 
이 글을 올리면서 다시 읽어보며 많은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본의는 아니었지만 며칠 간의 정말 보잘것없는 실랑이로 흉한 모습을 보여드린 것이라든지
아직도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지 못하고, 기어 올라가려했던 내 모습이라든지, 
무엇보다 그렇게 큰 은총을 받았음에도 이렇게 밖에 못살고 있는 것이 너무 죄송스러워 
잠시 침잠하기로 했습니다. 
그러지않을 수 없는 또다른 이유는 멀리 다녀와 밤잠도 못자고 
며칠을 긴장하고 있었던 후유증이 한꺼번에 밀려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죄송합니다. 심려를 끼쳐드려서... 마음, 몸, 추수린 후... 다시 오던지 하겠습니다.
본의였든, 오해였든, 그런 것을 해명하고 따지고 싶은 마음은 이제 없으며
어떻든 제 꼬리글 때문에 생긴 문제이니, 이순의님, 님의 마음에 또 상처를 드렸다니 용서하세요. 
저 때문에 중간에서 잘해보려고 하시다 속상하셨을 안나님, 죄송합니다. 
그리고, 쪽지를 보내서 사과하시고 위로해주시던 많은 분들도 고맙습니다. 
모두 제 부족한 탓입니다. 좀더 조심하지 못한 탓입니다. 
올라간 듯 여겨질 때 저 조심하고, 보인 다 여겨질 때 더 신중했어야 했습니다.
누구의 탓이 아닌 제 탓입니다. 제가 늘 잘 빠지는 함정입니다. 
저 묵상글의 마지막 부분을 보고 무엇보다 제 자신에게 부끄럽습니다.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아래로 내려오게 됩니다. 아니, 내려오는 것을 아주 기쁘게 여기게 됩니다."
그때는 정말 그랬었는데... 이게 왠일입니까?... 그게 얼마나 오래되었다고 이게 왠일입니까? 
이제라도 깨달았으니 이번 일은 제게 득이되면 됬지, 해가 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교훈을 또 잊었습니다. 그분과 궁극적인 만남이 없다면(나의 목표가 거긴데...)
바울로 사도의 말처럼 이 모두는 쓰레기요 장애일 뿐입니다.
잘난 묵상글 올린답시고 방학 한달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계획표는 모두 물건너가고...이래저래 오늘 밤도 또 잠이 올 것 같지 않습니다. 
게시판을 사랑하시는 분들께 깊이 머리 숙여 사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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