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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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범과 김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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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규 [vegabond] 쪽지 캡슐

2010-07-17 ㅣ No.53381

                    강도범과 김형사

 김형사는 오늘 오랫동안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았습니

다. 한 달이 넘게 추적한 금은방 강도범을 잡아 순순히 자백을

받아냈고, 조사를 다 끝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검찰에서 구

속영장이 떨어지면 구치소에 송치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래

도 저녁은 먹여 보내야 했기에 설렁탕 두 그릇을 시키고 강도

범 강현국과 마주 앉았습니다.

 

 "담배 한 대 줄까?"

 강현국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의 입에 담배를

물려준 다음 자신의 입에도 담배 한 대를 물고 불을 붙인 김형

사가 입을 열었습니다.

  "그래도 사람이 많이 다치지 않아서 형량이 무겁지는 않을

거야. 법원에 가면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도록 잘해. 변호는 국

선변호인이 해줄 거야."

 

 강현국은 아무런 말도 없었습니다. 사실 이 녀석을 잡았을

때 김형사도 조금은 놀랐습니다. 눈빛이나 분위기가 강도짓을

할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실직 상태에 있어

서 돈이 궁했다지만 그 정도 이유로 강도짓을 하기에는 녀석은

너무 선하게 보였습니다.

 

 "애들이 둘 있다 그랬지?"

  "네."

 "이름이 뭐야?"

  "아늘놈은 햇님이고,딸아이는 별님이에요/"

 진짜 호적에 올린 이름이 그래?"

 "네."

 "예쁘군."

 

 설렁탕을 다 비웠을 즈음 구속영장이 떨어졌다는 연락이 왔

고 김형사는 서울 구치소까지 강현국을 이송했습니다. 경찰서

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김형사는 자꾸 강현국이라는 인간이 궁

금해졌습니다.

 

 '금은방이나 터는 강도놈이 자식 이름을 그렇게 예쁘게 짓

다니?'

 

 다음날 김형사는 강현국의 집을 찾아가보기로 했습니다. 강

현국의 집은 약수터가 있는 야산 뒤쪽 판자촌에 있었습니다.

어렵게 찾아간 집에는 강현국의 아내와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강현국의 아내는 김형사를 보더니 긴장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이미 경찰서에서 몇 번 만난 적이 있어서 구면이었습니다.

 

 "또 무슨 일이세요?"

 "그냥 들렀습니다. 좀 앉아도 될까요?"

 "그러세요."

 "강현국이 몇 년이나 일을 못 했지요?"

  "2년쯤 됐어요. 재주라곤 극장 간판 그리는 것밖에 없는 사

람인데, 극장들이 그림이 아닌 사진을 걸기 시작하면서 일거리

가 부쩍 줄었죠."

  "어떻게 만나셨어요?"

  "스무 살 때 만났어요. 저는 시골에서 올라와 극장 매표소에

서 일하고 있었고, 애들 아빠는 간판 보조였어요. 늘 생각에 잠

겨서 담배를 피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지요."

  "그랬군요."

 "숟가락과 밥그릇만 가지고 살림을 차렸어요. 고아로 자라

서 그런지 현국 씨는 식구들을 끔찍하게 아꼈어요. 가난했지만

행복했죠. 아이들도 생겼고."

 "아무리 어려웠어도 강도짓까지······."

 "작은 애가 심장 판막이 좋지 않아요. 간판 일로 번 돈으로는

통원 치료비도 안 됐죠. 게다가 일까지 놓은 뒤부터는······."

 "완치는 된다고 합니까?"

 "수술하면 된대요. 그런데 더 크면 수술이 힘들어진다네요. 돈

이 없는 게 죄지. 부모가 돼서 자식 생명 하나 못 지켜주고······."

 

 아주머니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김형사는 마음 한구석이 찌릿햇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어렵

지만 않았어도 절대 강도짓 같은 건 안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복도 없는 놈이군. 잡히지나 말든지."

 

 김형사는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가보겠습니다."

  "교도소에는 오래 있게 되나요?"

 "그렇게 오래 있지는 않을 겁니다. 사람이 많이 다치지 않

았고, 전과도 없으니까요. 게다가 반성하는 자세까지 보이고

있으니."

  김형사는 산동네를 내려오며 당장 내일부터라도 아주머니

가 할 수 있는 일거리를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재판부에 선처를 부탁하는 탄원서도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어

느새 날이 저물어 희미한 가로등이 산동네를 비추고 있었습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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