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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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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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새움 [smallagnes] 쪽지 캡슐

2000-11-23 ㅣ No.2119

On Love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를 사랑하시듯이 강렬하고 특별한 사랑으로 사랑합시다.

서로에게 친절합시다. 불친절한 채 기적을 행하는 것보다 온유하고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 더 낫습니다.

-마더 테레사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요한 13,35

 

예수님께서는 단 한 가지 목적 때문에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하느님은 사랑이시며,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기뿐 소식을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당신과 나를 사랑하셨습니까? 당신 생명을 주심으로써 사랑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부드러운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느님의 온유하신 사랑,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것을 가르치러 오신 것입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내 사람이다."(이사 43,1)

 

 전 복음서는 매운 단순합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나의 계명을 지켜라. 그분께서는 서로서로 사랑하라는 단한 가지에 도달하기 위해서 방향을 바꾸고 뒤틀리게 하십니다.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바치고 힘을 다 쏟아 너의 하느님 야훼를 사랑하여라."(신명 6,5) 이것이 우리의 위대하신 하느님의 명령이며 그분은 불가능한 것을 명하시지 않습니다. 사랑은 열매입니다. 누구든지 그 열매를 거둘 수 있고 수확에 한계도 없습니다.

 

 누구나 묵상과 기도의 정신과 희생과 강렬한 내적 삶을 살므로써 이 사랑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순수하게 되기 위해서는 사랑이 특별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치지 않고 사랑하는 것뿐입니다. 어떻게 등잔이 탑니까? 그것을 끊임없이 심지를 태우는 몇 방울의 기름 때문입니다. 우리 삶 속의 등잔에서 이 기름방울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일상 속의 작은 것들 곧 성실함, 친절한 말 한마디,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 침묵을 지키고 바라보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들입니다. 당신을 떠난 먼 곳에서 예수님을 찾으려 하지 마십시오. 그분은 당신밖에 계시지 않고 당신 안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등잔을 계속 타오르게 하십시오. 그러면 그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듯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단지 우리에게 빛이 될 뿐만 아니라 거룩함으로 나아가는 성장을 막는 이기심을 태워 버리는 불꽃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어’ 사랑의 한계인 십자가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이러한 사랑은 마음에서부터, 우리와  예수님의 일치로부터 나와야 합니다.

 

 사랑은 죽는 날까지 매일매일 삶과 호흡처럼 그렇게 자연스러운 것이 되어야 합니다.

 

 나는 인간의 많은 약점과 한계성을 체험해 왔으며 지금도 체험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계를 이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을 위해서 겸손한 마음, 즉 예수님의 겸손함으로 일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연약하고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사랑을 존재시키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시어 우리를 쓰십니다.

 어느날 나는 하수구에서 한 남자를 꺼냈습니다. 그의 몸에서는 벌레가 우글거렸습니다.내가 그를 집으로 데리고 왔을 때 그 사람이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그는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무도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나는 거리에서 동물처럼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토록 사랑받고 관심 속에서 천사처럼 죽어가는군요."하고 말했을 뿐입니다. 우리가 그를 깨끗이 씻기는 데 세 시간이 걸렸습니다. 마침내 그는 수녀님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수녀님, 나는 이제 주님 계시는 집으로 갑니다." 그러고는 죽었습니다. 나는 한 인간의 얼굴에서 그토록 빛나는 미소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는 주님의 집으로 갔습니다. 사랑이 할 수 있는 것을 보십시오! 그 젊은 수녀님은 그 순간에는 몰랐겠지만 그녀는 예수님의 몸을 만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마태 25,40)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그대와 내가 하느님의 계획에 따르는 길입니다.

 

 하느님 사랑의 온유함을 이해합시다. 왜냐하면 그분은 복음서에서 이렇게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여인이 자기의 젖먹이를 어찌 잊으랴! 자기가 낳은 아이를 어찌 가엾게 여기지 않으랴! 어미는 혹시 잊을지 몰라도 나는 결코 너를 잊지 아니하리라.너는 나의 두 손바닥에 새겨져 있고... "(이사49,15-16) 그대가 외로움을 느낄 때, 누구도 그대를 원치 않는다고 느낄 때, 아프고 잊혀졌다고 느낄 때 그대는 하느님께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그분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서로서로 그 사랑을 보여주십시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게서는 바로 이 사랑을 우리에게 가르치려고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열두 아이의 어머니를 기억하는데 막내 아이가 심한 불구였습니다. 그 아이의 모습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집에도 비슷한 아이들이 많기 때문에 나는 기꺼이 그 아이를 받아들이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러자 그 부인은 울기 시작했습니다. "제발 마더, 그런 말씀은 마세요. 이 아이는 나와 우리 가족에게 주신 하느님의 가장 큰 선물입니다. 우리 가족의 모든 사랑은 이 아이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당신이 이 아이를 데려가시면 우리의 삶은 텅 비게 될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이해심과 온유함이 가득찬 사랑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와 같은 사랑을 갖고 있습니까? 당신은 자녀.남편.아내.아버지.어머니.자매와 형제가 이해와 우리의 따뜻한 손길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깨닫고 계십니까?

 

 어느날 나는 우리에게 새끼 양을 보냈던 베네수엘라에 살고 있는 한 가족을 만나러 갔던 때를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감사함을 전하기 위해 찾아간 나는 거기서 심하게 불구가된 아이를 보고 그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아이 이름이 뭐예요?" 그러자 그 어머니는 가장 아름다운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우리는 이 아이를 ’사랑의 선생님.’ 이라고 부른답니다. 왜냐하면 이 아이가 계속하여 우리에게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주기 때문입니다. 이 아이에게 해주는 것이 바로 하느님께 드리는 우리의 사랑입니다."

 

 하느님의 눈에 우리는 큰 가치가 있습니다. 나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말해도 싫증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부드럽게 사랑하신다는 것은 정말 근사한 일입니다. 그 때문에 우리를 용기와 기쁨, 그리고 그 어떤 것도 우리를 하느님의 사랑에서 떼어놓을 수 없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나는 우리가 너무 자주 삶의 부정적인 면-나쁜 면-에만 집중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만일 우리가 주변에서 선과 아름다움을 기꺼이 찾고자 한다면 우리 가족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우리는 우리의 가까운 이웃을 변화시키고 그 다음에 이웃과 도시에 사는 사람들까지 변화시킬뿐만 아니라 그토록 목말라하는 평화와 사랑을 이 세상에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폭탄이나 다른 파괴 수단으로는 결코 정복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사랑으로 이 세상을 정복합시다. 우리의 삶을 희생과 사랑의 매듭으로 엮어 나갑시다. 그러면 우리는 세상을 정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과 이웃에 위대한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 굉장한 일을 수행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의 행위와 사랑의 강도만이 바로 하느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것일 테니까요.

 

 평화와 전쟁은 우리 자신의 가정에서 시작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세계 평화를 원한다면 가족 안에서 서로서로를 사랑하는 것부터 시작합시다. 때때로 서로에게 미소를 보내는 것이 어렵기도 합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남편이 아내에게 미소를 짓기가 가끔은 힘들 때도 있습니다. 사랑이 순수해지려면 우리가 이웃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 즉 가족 안에 있는 이를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바로 거기서 우리가 필요한 이들을 향해서 펼쳐집니다.

 

 멀리 있는 사랑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바로 곁에 있는 사랑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밥 한끼 제공하기는 쉽지만 우리 집안에서 누군가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며 외롭고 힘들 때 그를 위로하는 건 참으로 어렵습니다.

 

 나는 당신이 당신 가정 안의 가난한 이를 찾아 나서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당신의 사랑은 거기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나는 당신이 주변에서 기쁜 소식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당신이 바로 당신 이웃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 주기를 바랍니다. 당신 이웃은 누구인지 아십니까?

 

 진정한 사랑이란 고통과 상처를 통해 기쁨을 가져오는 그런 사랑입니다. 우리가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시가고 하느님께 기도하고 또 청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마음에 가득찬 것을 말하게 됩니다. 당신 마음에 사랑이 가득하다면 사랑을 이야기할 것입니다. 나는 커다란 사랑으로 여러분의 가슴을 채우기 바랍니다. 그런 사랑이 진실되게 타오르기 위해서는 뭔가 색다른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랑 안에서 필요한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입니다.

 

 어느날 나는 흙더미 속에서 온몸이 불덩이처럼 펄펄 끓는 한 여인을 발견했습니다. 그녀는 죽어가면서 "이 짓을 한 녀석은 제 아들입니다." 하고 중얼거렸습니다. 나는 그녀를 안고 수녀원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들을 용서해 줄 것을 호소했습니다. 죽기 전에 그녀는 순수한 용서의 감정으로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고통 받고 열병으로 죽어간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녀의 가슴을 찢어지게 한 것은 바로 자식에게 버림 받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거룩한 영혼은 때때로 큰 시련을 겪음으로써 어둠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의 현존을 느끼기를 바란다면 먼저 우리가 그것을 확신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와 같이 사랑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수천 명이나 있지만 하느님께서는 타인을 사랑하는 기쁨을 나누기 위해 오늘 우리가 있는 곳에 존재하도록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서로서로 사랑하고 서로에게 고통을 느낄 때까지 우리 자신을 내어주기를 원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주는가가 아니라 그 안에 얼마나 큰 사랑을 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아버지의 말씀 안에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더러운 것은 깨끗하게, 미지근한 것은 데우고, 약한 것은 강하게, 어두운 것은 빛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선포하고 그분이 사랑하셨듯이 사랑하기를 겁내지 않아야 합니다. 하느님이 계시는 곳에 사랑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이 있는 곳에 늘 봉사하고 싶은 열정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하느님께 대한 배고픔이 있습니다.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시듯 우리도 서로에게서 하느님을 보게 될 때 서로를 사랑하게 될 것입니댜. 서로 사랑한다는 것, 그것이 율법의 완성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오신 모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듯 그분께서는 우리도 서로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까닭은 단순히 이 세상에서 사람 수나 채우고 학위나 자격증만을 위해서 뛰다가 이 일 저 일 해보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더 큰 위대한 일을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서 창조되었습니다.

 

 언제나 작은 일에 충실하십시오. 왜냐하면 그 안에 우리의 힘이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 하느님께는 사소한 것이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어떤 것이라도 사소하게 만드실 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소한 일 하나하나까지 모두 무한합니다. 가장 미세한 일 그 자체까지도 하느님의 위대한 목적을 위해 충실하게 실행해 보십시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존중합니다.

 

 빛나는 행위를 추구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는 하느님의 손에 맡겨드림으로써 노력의 대가에 대한 욕구를 말끔히 내던져야만 합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 자신의 선물, 즉 당신이 하는 행위마다 쏟아넣은 사랑의 정도입니다.

 

 당신이 최선을 다했다면 어떤 실패에 대해서도 상심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성공과 영광에 대해서도 모두 하느님께 돌려드립시오.

 

 만약 당신이 실망한다면 자신의 힘을 믿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자만심의 표현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속태우지 마십시오. 겸손하십시오. 그러면 결코 방해 받지 않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지금 내가 있는 이곳에 있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분께서 해답을 주실 것입니다.

 

 병든 자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대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통받는 몸을 만지는 것이며 이러한 손길이 우리를 영웅적으로 만들 것입니다. 그것은 협오감과 우리 안에 내재된 자연스런 경향을 잊게 만듭니다. 우리는 인간의 아들 중 가장 아름다운 이가 숨겨져 있는, 부서진 몸과 더러운 옷 속에서 그리스도를 볼 수 있는 깊은 믿음의 눈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는 고통과 수난으로 상처 입은 이들의 몸을 만지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손이 필요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재지 않습니다. -그냥 주는 것입니다.

 

 자선행위는 우리 안에 있는 하느님 사랑이 흘러나오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선은 살아 있는 불꽃과 같습니다. 연료가 마르면 마를수록 불꽃은 활활 타오릅니다. 이와 같은 세속적인 원인에서 자유로워 질 때 비로서 자유로운 봉사를 하게 됩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사랑이 전적으로 봉사로서 떠올라야 합니다. 그 일이 혐오스러울수록 사랑은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가난한 사람들의 누더기 속에 감추어진 주님께 구원을 청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자선이 열매를 맺으려면 대가를 치러야만 합니다.실제로 우리는 자선에 대해 많이 듣고 말도 하지만 그 중요성만큼 완전히 준 적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첫번째 계명과 같은 자격으로 우리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사랑할 수 있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행위 속의 사랑이며 행위 속의 사랑은 봉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랑할 수 있기 위해서는 보고 만져야 합니다. 기도를 통한 행위 속의 믿음과 봉사를 통한 행위 속의 믿음은 같은 것이며 같은 사랑이며 같은 공감입니다.

 

 벌써 몇 년이 흘러갔지만 나는 캘켜타에 왔던 프랑스 소녀를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녀는 근심에 차 있는 듯이 보였습니다. 그녀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임종의 집으로 일하러 갔습니다. 열흘 후에 그녀는 나를 만나러 왔습니다. 그녀는 나를 껴안으며 "저는 예수님을 찾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그녀가 어디서 예수님을 찾았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가난한 이들을 위한 임종의 집에서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을 찾은 후에 무엇을 했어요?" "저는 15년 만에 처음으로 고해성사와 영성체를 했습니다.", "그 밖에 또 무엇을 했나요?" 내가 다시 물었습니다. "저는 부모님께 ’예수님을 찾았습니다.’라는 전보를 보냈습니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이제 짐을 꾸려 집으로 가세요. 집에 가서 기쁨과 사랑과 평화를 부모님께 드리세요." 그녀는 가슴 가득 기쁨을 안고 집으로 갔습니다. 그녀는 가족에게 얼마나 큰 기쁨을 가져갔을까요! 그것은 바로 그녀가 잃어버린 젊음의 순결을 되찾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기꺼이 주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하느님과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현하는 최상의 방법은 모든 것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기쁜 마음은 사랑으로 불타는 가슴의 정상적인 결과입니다. 기쁨은 힘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예수님 안에 머물고 예수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보다 놓은 힘 때문에 예수님께 매료됩니다. -예수님의 눈과 손, 몸에서 흘러나와 하느님과 사람 속에 존재하는 바로 그 힘입니다.

 

 그 어떤 것도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거나, 슬픔이나 실망으로 우리를 채우지 말고 부활의 기쁨이 우리를 강화하도록 하십시오. 하느님과 영혼에 봉사하는 데 기쁨은 단순히 기분 문제가 아닌 늘 어려운 문제입니다. 바로 그 때문에 우리가 기쁨을 찾고 그 기쁨이 우리 마음속에서 자라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많은 것을 줄 수 없을지라도 하느님과의 사랑 안에서 마음으로부터 샘솟는 기쁨은 항상 줄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목마르고 배고파합니다. 우리는 기쁨을 뿌려 배고픔을 채워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쁨은 유혹에 대항하는 가장 좋은 파수꾼의 하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영혼이 기꺼이 의탁할 때만 우리의 영혼을 완전히 소유하실 수 있습니다.

 

 언젠가 누군가가 내게 "결혼하셨어요?"라고 물었습니다. 나는 "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원하시는 것이 많아 때로는 그분께 미소짖기가 참 어렵군요."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나 자신보다 더 가까이 내 안에 존재하십니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숨쉬고 움직이며 살아갑니다."(사도17,28) 존재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생명과 힘과 존재 자체를 부여하는 분은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나 그분의 존재가 흔들리면 모든 존재는 끝나고 무로 떨어집니다. 당신이 하느님 안에 있고, 하느님께 둘러싸여 있고, 그분 안에서 헤엄친다고 생각하십시오. 하느님의 사랑은 무한합니다. 하느님과 함께라면 불가능은 없습니다.

 

 

 

 

삶이 끝날 때 우리는 사랑으로 심판 받게 될 것이다.

-십자가의 성 요한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주셨다.

-요한 3,16

 

 

마더 테레사 수녀님의 말씀이었습니다

http://myhome.cjdream.net/tere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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