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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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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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자 [pjpp] 쪽지 캡슐

2000-06-20 ㅣ No.1296

 몸이 아프거나 고단할 때이면 복음성가를 자주 듣곤 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런데 즐겨 듣던 테이프가 한 십 예년을 사용해서인지 두 개씩 이나 망가져 안

타까운 마음을 갖게 합니다. 그래서 요즈음은 인터넷 사이트 안에 있는 찬송가 경음악을 곧

잘 들으며 일을 하곤 합니다.  

 ’내 주를 가까이 하려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일세’

이 찬송가는 어린 시절부터 내 귀에 낯설지가 않다는 느낌으로 다가오는 곡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 곡을 들으며 일을 하는데 불현듯 어느 임종자의 모습과 그의 유언이 떠오릅니다.

 

  여러 번의 유산을 경험한 후 가까스로 둘째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왠 일인지 날아

갈 듯 가벼워야할 몸은 점점 기운이 떨어져만 가고, 배가 점점 더 아파 오고 있었습니다. 복통은 잠시의 짬도 없이 계속 조여져만 오고 산고의 고통을 치른지가 엊그제인데 다시 치르는 듯한 아픔은 여러 날을 괴롭힙니다. 더는 견딜 수가 없었고 응급실을 찾아 여러가지검사로 다시 며칠 동안의 시간을 보내었지만 속시원한 해결책도 얻지 못한 가운데 이 병원 저 병원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병명을 찾을 수가 없다며 고개만 갸웃거릴 뿐 도저히 심상치 않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절망적인 소식만 내놓고있습니다.

 

 죽음의 그림자는 시시각각으로 내 곁에 다가와  단 5분도 눈을 뜨고 있을 수 없게 하였으며 눈꺼풀은 무거운 추를 하나 달아 놓은 듯 계속 내려앉는 것입니다. 나는 그 때 그 때 주님과 성모님께 매달리며 내 영혼을 위해 임종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가끔씩 이런 내가 불쌍해서인지 눈시울을 적시며 울고 있었고 나 또한 그런 그가 한없이 불쌍해 속으로 울기도 하였습니다. 구차한 살림에 어린 두 아이들을 데리고 살아 가야할  남편의 고생은 두 말 할 것도 없이 뻔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 가슴을 애이게 하는것들은 갓 태어난 어린 새 생명이 엄마의 품이며 젖도 모르고 살아 가야할 일들이 미안하다는 생각과 함께 목이 메여오는 것입니다. 이런 내가 마지막으로 찾아 간 곳이 중앙대학교부속 병원이 있는 용산 이었습니다.

 

 진찰실로 들어서자마자 의사는 배 위에 손을 대기도 바쁘게  서둘러 입원할 것을 권하였습

니다. 다시 검사들로 부산해지기 시작하였으며 그 결과 담낭이 썩어 터져 조금도 시간 여유

가 없다며 수술 준비에 들어가기 시작을 하였습니다.  이곳에 오기 전에도 병자성사를 청했

지만 잘못된 연락으로 받지 못하였고 그래서 또다시 청했건만 본당이 쉬는 날이라 성사를

받지 못하자 주님께 내 영혼을 맡기며 수술실을 향해 갑니다. 수술 도중 의사들은

놀라 사색이 된 얼굴로 남편에게 다가와 오진을 해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다시 수술을 해

야한다며 다 썩은 장기들을 들고 나와서 보여 주었다는 것입니다. 상태가 너무나 위중해 중

환자실에 가게 될 거라는 말과 함께  여덟 시간의 수술은  무사히 끝이 났고 다시 살아난

나는  중 환자실을 면하고 회복실로 옮겨져 많은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찾아와 기적이라는

위로와 잘 참았다며 격려를 하였습니다.

 

 수술실에서 나온 내게 남편은 손에 묵주를 걸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을 가져오기 위해서

이른 새벽 집에 들려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술실 문밖에서 애를 태우며 기다리던 남편은 기도도 할 줄모르는 가운데 처음으로 하느님께 기도를 하였다고 합니다. 다음날 그는 내 가슴 위에 묵주와 상본을 올려주고 직장을 갔습니다. 회복실에서 하루 밤을 지새는 동안 많은 환자들의 고통스러운 신음소리와 대소변 냄새가 역겨워 도무지 눈을 붙일 수조차 없어 길고 지루한  밤을 뜬 눈으로 지새우고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내 자리 옆에 위독해 보이는 듯한 한 남자 환자 한 분이 들어 온 것입니다. 그의 뒤를 따라서 들어 온 많은 가족들은 그를 둘러싸고 극진한 보살핌을 하고 있었습니다. 몸을 움직일 수가 없던 나는 그를 제대로 볼 수가 없었지만 그의 곁에서 극진한 마음으로 보살피던 그의 효성스런 아들을 보았습니다.

 

 아버지 드실것이 있으시면 다 말씀하라시며 시중을 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환자인 아버지께 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다 말씀하시라며 마지막 가시는 아버지의 임종 앞에 최선을 다 하고 서있었습니다. 무슨 병으로 인한 것인지 제대로 알 수가 없었지만 먹을 것을 드시기만 하면 계속토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그의 아들은 여전히 아버지 입에다 넣어 드리며 또다시 무엇을 더 드릴 것인지 살피다 누가 또 보고 싶은지 또 무엇이 드시고 싶은지 말씀하라시며 극진한 마음으로 대하는 그 옆에서 지켜보던 환자의 부인은 계속 그를 책망하고 서있었습니다.  왜? 토하면서 달라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따뜻한 아들의 보살핌을 받던 아버지는 회복실에 들어오던 그 시간부터 계속 가족들에게

끊임없이 유언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아침!  저 쪽에서 빛나는 십자가가 보이더니 그 빛나는 십자가가 나를 오라고 불렀

다. 그러니 너희들은 꼭 잊지 말고 명동성당을 나가야 된다. 알았지!  알았지! "  라고 하면서 확답을 얻고자하는 그를 보살피던 아들과 딸은 " 예 아버지! 알았어요. 잊지 않고 꼭 그렇게 할께요." 라고 대답하고 나면 또다시 "오늘 아침에 저 쪽에서 빛나는 십자가가 나를 오라고 불렀다. 그러니 너희들은 꼭 명동성당에 가야한다."라고 되풀이하시던 말씀들은 마치도 녹음되어진 테이프처럼 연실 반복되어 들려 오는 것입니다. 또다시 새로운 얼굴이 찾아와 아들은 아버지께  누가 누가 왔다고 소개를 하면 그에게도 똑같은 말을 계속 되풀이해서 들려주는 것입니다.

 

 말조차 하기 힘들고 몸을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속에 극진한 보살핌을 하고있는 아들을

손끝으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명동성당 사무실에 연락을 해서 아버지의 위중함을 알리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그의 아들은 가까스로 전해 주는 나의 말을 귀담아 듣고는 감사하다는 말을 연실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나의 병 수발까지 들어주는 자상함도 보여 주었습니다. 그 때 갑작스레 의사 몇명이 저에게 다가와 병실을 옮겨야 한다며 보호자를 찾고 있습니다. 아무도 없다고 말을 하자 병실로 옮기는 일에 있어 그도 의사들과 하나되어 거들어주었습니다. 다음날 아름답고 훌륭한 유언을 남기신 그분이 궁금해져 간호사와 의사에게 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내가 병실로 옮기던 그날 오후에 운명하셨다고 합니다.

 

 혼자서 성당을 찾고 세례 받은 지 삼 년도 채 안된 그가 자기의 영혼 구령과 함께 가족들의 영혼까지 챙기기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마지막 남기신 그 유언을 그는 끝까지 지키려고 애를 쓰고 계셨습니다. 아마도 그 분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유언을 가족과 자식에게 남기고 가시지 않았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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